왜 근사한 주인공들은 가출을 하는 걸까?

어린 시절, 나를 매료시킨 책들에는 이런 공통점이 있었다. 주인공들은 고아였고(아니면 부모님이 잠시 먼 곳으로 떠나 잠시 고아가 되었거나) 갖은 구박을 받지만, 그럼에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다는 거였다. 주인공처럼 나도 고아가 되어 차가운 얼음물에 빨래를 하며 언 손을 호호 불어대는 상상에 빠져드는 순간 어머니는 밥 먹어라, 소리친다. 소설 속 세계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나는 김치찌개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지금 보고 있는 이 세계가 오히려 가짜가 아닐까 하는 공상에 빠져든다.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 세상 모든 나라의 고아들을 상상하며, 또 마지막에 그들에게 찾아
올 행복을 상상하며, 겨울방학을 보내는 기분이란! 그렇게 책에 빠져들었고 그렇게 책을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자라듯 주인공들도 점점 자랐다. 그들도 사춘기를 맞이했고, 삐딱해졌고, 시큰둥해졌다. 고아거나 잠시 고아였던 주인공들은 더 이상 키다리 아저씨를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이제 그들은 가출을 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집 밖에 있었다. 결석은커녕 지각 한 번도 하지 않던 나는 가출한 주인공들을 만날 때마다 박수를 쳐 주었다. 그래. 괜찮아. 까짓거.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나는 일요일 오전이면 빈 교실에 앉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내 세상이 좁아 보일수록, 내 세상이 답답해 보일수록, 더더욱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 시절 나는 단 한 번도 하이틴 로맨스 소설을 읽고 마음이 두근거린 적이 없었다. 그건 내 또래 여학생들 사이에선 다소 이상한 일이긴 했다. 나를 흥분시킨 책은 거리를 헤매는 사람들 이야기였다.
 
근래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멋진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모텔의 도시』는 고아인 소년 우지룬의 가출기이다. 고아와 가출이라니. 책을 읽기도 전에 이미 나는 십대 시절로 되돌아갈 마음의 준비를 하고야 말았다. 앞에 가장 멋진 첫 문장으로 시작된다는 말을 했으니 우선 그 첫 문장을 잠깐 소개해 보자면, “자꾸만 재채기를 해 대고 싶다. 재채기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냥 그러고 싶다.”이다. 학교를 때려치우고, 큰아버지 댁을 나온, 열일곱 살 소년 우지룬이 정착한 곳은 어느 모텔이다. 그 모텔의 마당에 서서 우지룬은 말한다. 재채기를 하고 싶다고. 첫 줄을 읽고 나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어, 이 꼬마 뭔가 좀 아는 녀석인데.’ 모텔 카운터에서 일을 하는 열일곱 살 남자아이의 균형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 힘들다고 징징대지 않고, 그렇다고 어른들보다 세상을 더 아는 척 지나치게 잘난 척하지 않는, 그런 말투. 모텔이라는 공간 설정도 흥미로웠는데, 가출한 주인공이 일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공간이기 때문이 아니라, 주인공이 모험을 하기에는 다소 밋밋한 공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고로 가출한 주인공이라면 더 먼 곳으로, 더 낯선 곳으로,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나만의 편견이 있기도 했다. ‘가출 = 로드무비’의 공식이 나도 모르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것이 21세기형 가출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간다고 해서 가출이 이루어지는 시대는 아니니까. 새로운 공간을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니까. 그러니 모텔 입구에서 수많은 손님을 관찰하는 우지룬이 재채기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첫 문장이 근사하게 들렸던 것은 그가 21세기형 가출을 제대로 경험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어른들의 세계를 보아 버렸다는 듯.
 
가출한 아이들은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않기도 하지만 그런 물리적 공간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돌아오는 공간은 자기 자신 안이다. 그 자신은 처음의 자신과 다르다. 우지룬도 그러하다. 그러니 독서의 즐거움은 바로 그 사이에서 찾아야 한다. 어떻게 다른 인물이 되어 가는지. 그가 어떻게 성장하고 또 어떻게 실패하는지. 방황하는 우지룬을 따라가다 보면 사백 페이지가 넘는 이 두꺼운 책이 얇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 이렇게 고백하는 청년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이미 나 이외의 세상은 물론이고 내 몸과 영혼 속에도 수많은 작은 허점이 존재하고 있으며, 내 안에 나보다 더 겁 많고 졸렬한 놈이 숨어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 번의 가출로 나는 세상을 알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가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가까스로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다. 나 자신이 별 볼 일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리고 그것을 사랑하는 것. 우지룬은 그것을 지금 막 해냈다.
 
글|윤성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