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사계절그림책상 수상작 발표

제3회 사계절그림책상 수상작이 결정되었습니다. 

대상 
이봄 『백 개의 홀씨와 쥐』

우수상 
정지연 『작고 큰』


심사위원: 서현(그림책 작가), 송미경(동화작가), 이지은(그림책 작가)
당선자에게는 개별 통보하였고, 수상작은 2023년 출간 예정입니다.
사계절그림책상에 응모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3회 사계절그림책상 심사평

올해로 3회를 맞는 사계절그림책상은 예심을 거쳐 총 20편의 작품이 본심에 올랐다. 본심작 중 6편을 뽑아 최종심을 진행하여 대상 한 편과 우수상 한 편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힘겨운 시절 작품을 완결하고 응모해 준 응모자들께 감사드린다.

사람은 큰 충격을 받으면 사소한 감각이 무뎌진다. 우리는 그런 시대를 여전히 지나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여전히 코로나는 우리의 삶을 큰 성 안에 가두어 두었지만 사람들은 그 안에서도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리고 싶은 일상의 회복과 작은 행복들을 자신만의 방법대로 꾸려 나가고 있다. 마치 돌밭에 씨앗을 뿌리는 사람처럼 우리가 그림책을 만드는 일은 무모해 보이지만 어쩌면 작은 씨앗을 뿌리는 일이 우리가 이 성을 탈출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응모작들의 특징을 살펴보자면, 시각 표현이 뛰어난 작품들이 상당수였다. 누군가를 흉내 내거나 멋을 부린 작품보다는 자신이 오래 연마해 온 방식으로 타자와 소통하려는 태도가 그 어느 때보다 분명했다. 일반적으로 혼자 만드는 책은 자신만의 목소리에 갇히기 쉬운데 그곳에서 한발 나아간 작품들이 유독 많았다. 가족과 친구와 이웃의 목소리를 듣고 헤아린 흔적이었다. 또한 다양한 주제를 다양한 기법으로 연출해 낸 작품들을 보는 즐거움이 컸다. 

그림책 창작자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와 ‘어떻게 말할 것인가.’ 그리고 ‘왜 그것을 말하려고 하는가.’라는 세 가지 질문을 통과해야 한다. 앞의 두 질문이 눈에 띄는 것이라면 세 번째 질문은 선명하게 외부로 드러나지 않은 채 존재하지만 작가의 마음과 연결되어 결국엔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본심에 오른 20편의 작품들은 이 세 가지 질문에서 하나 혹은 두세 가지의 답을 가지고 올라온 작품이다. 즉 눈에 띄는 소재이거나 단단한 사유와 발상을 가졌거나 혹은 뛰어난 기법과 독창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었거나 혹은 분명한 내적 이유를 가진 작품 말이다. 
작품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시각적으로 뛰어나지만 서사에서 내적 필연성을 갖추지 못한 작품, 서사가 수려하나 시각적 어우러짐을 이끌어 내지 못한 작품, 그 모든 것을 갖추었으나 아직 완숙하지 못한 작품들은 우선 제외되었다. 

최종심에 오른 6편은 『요리사 밥 데이비드의 마지막 요리』 『백 개의 홀씨와 쥐』 『떨어진다』 『소풍날』 『작고 큰』  『깜깜해서 그래!』이다.

『요리사 밥 데이비드의 마지막 요리』는 얼굴에 사는 모낭충이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사랑스럽게 표현된 작품이다. 캐릭터로 다정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보는 즐거움과 잔잔함 감동을 주었으나 매력적인 캐릭터를 견인할 서사의 힘이 다소 약하다. 인간의 몸이라는 배경을 풍경으로만 사용하고 거대한 몸과 작은 모낭충의 대비가 가져올 수 있는 시각적 효과를 활용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림책의 형식을 고려하여 다양한 장면 연출을 시도한다면 이 사랑스러운 캐릭터는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백 개의 홀씨와 쥐』는 담백한 그림으로 서사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낸 점이 눈에 띈다. 무엇보다 그림책의 본질적인 매력 안에서 서사와 이미지를 조화롭게 담아낸 작품이다. 하나의 서사를 끝까지 안정감 있게 이끌며 울림을 남긴 것은 조용한 속삭임에 어울리는 소박한 그림체로 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과욕의 흔적도 없음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다. 수줍게 속삭이듯 다가와 자연스럽게 친해진 친구처럼 포근함을 선사하는 그림책이다. 캐릭터 사이에서 일어나는 실수와 용서와 화해, 그리고 선물처럼 얻게 되는 우정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다. 

『떨어진다』는 그래픽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바쁘고 정신없게 아침 식사를 하는 가족의 마음을 사물의 움직임을 확장하여 보여 준다. 감정을 동사 ‘떨어진다.’로 언어화하고 사물의 시각 이미지를 역동적으로 표현한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장면을 점차 쌓으면서 서사가 확장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고 이미지의 편차가 있다. 시각적인 매력에 비해 스토리를 매끄럽게 이끌지 못한 것이 약점이다. 장면을 나열하지 않고 감정과 서사의 흐름을 재구성하다면 오래도록 시선을 끄는 그림책이 될 것이다.

『소풍날』은 김밥이라는 익숙하고도 매력적인 소재의 캐릭터성을 살린 작품이다. 색색의 재료들이 김밥으로 완성되기까지 개성 있는 캐릭터들의 귀엽고 유머러스한 입담이 보는 내내 즐겁다. 먹히는 운명을 알면서도 캐릭터들이 주어진 오늘을 즐기고 노는 모습이 능청스럽게 그려져 있다.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여지가 충분한 작품이지만 그림의 완성도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김밥은 재료의 형태감과 색감이 흥미로운 소재인데 이런 소재를 다룰 땐 서사는 물론 이미지의 차별화가 더욱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고 큰』은 작은 솔방울 하나가 떨어져 땅을 울리는 장면을 시작으로, 숲속에서 빅뱅처럼 벌어지는 일을 작고 큰 존재들의 아이러니로 단단하게 그려 낸다. 그림책으로 풀기 까다로운 주제를 시각화한 솜씨가 탁월하다.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깨워 에너지를 전하고 모든 생물이 서로에게 기운을 나누고 자연의 생명력이 돌고 도는 순환을 즐겁게 표현한다. 작은 것이 크게, 큰 것이 작은 것을 다시 깨우며 증폭해 가는 서사는 절정까지 거침없는 호흡으로 치닫고 위트 있게 마무리된다. 다만 장식적인 색 표현이 흐름을 깨뜨리는 점이 있어 색을 절제해서 표현하면 작품 의도가 좀 더 선명히 전달될 것이다. 

『깜깜해서 그래!』는 시각을 잃은 개의 일상을 잔잔하게 그려 낸 작품이다. 글로 회상을, 그림으로 현실을 그리며 과거와 현재를 병치하여 상실의 감정을 깔끔한 이미지로 연출한다. 너무나 익숙했던 자신의 집이 이제는 낯설고 힘든 상황이 된 개의 심정을 절제하며 표현한 점이 좋았다. 그러나 작가의 사려 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를 각인시키는 데 다소 약한 지점이 있었다. 늙음과 상실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점은 뛰어났으나 결말에서 그 질문의 무게를 ‘모험’이라는 단어로 단순화한 점이 아쉬운 부분이다. 결말을 조금 더 고민한다면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의미 있는 그림책이 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최종 6편은 전반적으로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다. 심사위원들은 토론 끝에 기쁜 마음으로 대상과 우수상 두 작품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대상은 『백 개의 홀씨와 쥐』이다.
개의 정원에서 한 송이 민들레를 몰래 가져온 쥐에게 벌어지는 일을 통해 진정 어린 반성과 너그러운 용서를 사랑스럽게 그려 낸 작품이다. 자칫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는 단순한 이야기를 오히려 강점으로 승화시켰다. 이야기가 곁길로 빠지지 않고 한 지점을 향해 가는 방식은 독자가 캐릭터의 마음과 행동에 몰입하게 한다. 주인공 쥐의 심리를 간결한 이야기 안에서 겉치레 없이 입체적으로 드러낸 점도 훌륭하다. 캐릭터의 입체감으로 이 작은 이야기는 다채로운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무엇을, 어떻게, 왜 라는 질문이 튀어나오지 않게 서사의 뼈대를 세워 두고 알맞게 살을 입힌 이야기를 오랜만에 만났다. 마치 우리도 한 송이 민들레를 선물 받은 기분이다.

우수상 『작고 큰』은 하나의 솔방울이 버섯의 세계를 탄생시켰고 숲의 생태계를 생명력 있게 일궈 냈듯이 우리가 만난 한 존재, 우리가 일으킨 작은 사건이 우리의 오늘 하루를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하는 힘이 있다. 우연과 필연의 과정, 스러짐과 생성을 이토록 즐거운 놀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솔방울 하나가 만들어 낸 세상 때문에 누군가의 온몸이 간지럽고 두근거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경쾌한 색감과 리듬감 있는 형태로 캐릭터를 그린 점도 이 책의 큰 매력이다. 

올해 대상과 우수상으로 뽑힌 두 작품은 공교롭게도 씨앗의 움틈을 담고 있다. 절망의 시기, 무력의 시기를 이길 작은 힘이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당선작을 선정했다. 응모해 준 모든 분께도 감사의 마음과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응모작들은 저마다의 장점을 씨앗으로 품고 있었다. 다시 힘을 내어 창작해 주기를 조심스럽게 전한다.

이 책들이 출간될 즈음 어떤 날들이 펼쳐져 있을까. 아무도 그날의 풍경을 확언할 수 없지만 보다 나은 날들이기를 보다 숨 쉬기 편해지고 보다 더 큰 소리로 웃어도 되는 시절이기를 꿈꿔 본다.


서현, 송미경, 이지은(제3회 사계절그림책상 심사위원)  
-대표 집필 송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