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해설] 우리의 정원


『우리의 정원』 김지현 장편소설

 
마음의 정원(庭園)
 
글 * 오세란(청소년문학 평론가)
 
고양이, 돌고래, 아이돌, 북 카페…… 언뜻 무관해 보이는 단어들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하자 신기하게도 단어들이 헤쳐 모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로 『우리의 정원』이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이다. 작품 속 주인공 정원은 휴대폰으로 트위터에 접속해 아이돌 그룹을 ‘덕질’ 하고 북 카페에서 친구들과 책을 읽고 길고양이를 돌본다.
여느 작품에도 종종 등장하는 일상의 무심한 장면들이 이 작품에서 유독 선명하게 그려지는 까닭은 왜일까? 그것은 이러한 모습이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청소년들의 삶의 핵심임을 작가가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전하지만 외로운 마음
정원은 조용한 성품으로 대인 관계에 영 서툴다. 정원의 MBTI 유형은 I로 시작하는 매우 내성적인 성향임이 분명하다. 독자에 따라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정원이 마주한 숙제는 조금 큰 세상으로 한 걸음 나아가야 하는 청소년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를 끌어당기는 과정이 너무 의아하고, 또 신기하다. 일만 개의 관계가 있다면, 양쪽을 끌어 당긴 일만 개만큼의 연이 있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건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지 감이 오지 않는다.(15쪽)
 
관계에 서툰 정원은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연을 맺는지 감이 오지 않아 친구들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사람들의 마음속 작은 점들은 어떻게 이어져 선이 될까? 정원은 관계 맺기라는 숙제 앞에서 가장 안전하지만 외로운 답을 택한다. 다름 아닌 그룹 에이세븐과 정원 자신만의 세계에 머무르는 것이다. 그는 팬심을 통해 사랑을 배우고 타인을 알아 간다. 정원은 에이세븐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며 그들의 성격을 관찰하고 자신의 일상에 에이세븐의 모습을 포개 본다. 그들을 생각하며 아침에 눈을 뜨고 그들에게 밤 인사를 보내며 잠든다.
이 작품은 ‘아이돌 덕후’를 진지한 주제로 가져온다. 지금까지 여러 청소년소설에서 단편적으로 등장하던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이 작품에서 비로소 본격적인 중심 서사로 다루어진다. 우리나라처럼 아이돌 그룹의 인기가 높은 나라에서 이런 이야기가 드물다는 것은 의외다. 그것은 여성 청소년들이 중심이 된 팬클럽 활동이 오랜 기간 지나치게 폄하되어 온 까닭도 있고 덕질을 일종의 현실 도피나 시간 낭비로 여겨 온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원은 왜 자신이 에이세븐의 팬이라고 주위에 말하지 못할까? 그가 에이세븐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하는 까닭은 에이세븐을 향한 마음이 진심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비밀로 남겨 두어야 상처받지 않는다. 아이돌 그룹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순간, 사람들은 정원의 감정을 한때 겪고 지나가는 대수롭지 않은 이벤트 정도로 여기거나 정원에게 소중한 에이세븐마저 그저 그런 인물로 만들어 버릴지 모른다. 정원이 에이세븐을 좋아하는 특별한 마음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볼 때 그저 그런 덕질에 불과 할 수도 있다.
다만 혼자만의 사랑은 안전하지만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어 외롭다. 다행스럽게 정원에게는 에이세븐 이야기를 실컷 할 수 있는 온라인 친구 달이가 있었다. 달이와 에이세븐에 대해 이야기하는 몇 분의 시간은 정원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공간과 아이돌 그룹을 사랑하는 일은 일방적으로 관계가 끝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디지털 공간에서 만난 덕메(덕질 메이트), 친구 달이가 갑자기 사라진 후 정원은 더욱 깊은 상실감을 경험한다. 정원에게 는 가까이에서 손잡아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내가 속한 모든 세계
달이가 사라져 공허함에 빠진 정원에게 가까이 있는 학교 친구들이 다가온다. 에이세븐을 좋아하는 공통점 하나로 정원에게 손을 내민 여레, 지은, 나현이다. 정원이 MBTI 상 가장 내성적인 성향에 가깝다면 친구 여레는 정반대인 ‘E’ 성향일 것이다. 선하고 적극적이고 따뜻하고 유머 가득한 친구들 덕분에 정원은 학교에서 처음으로 소속감을 느낀다. 친구들과 에이세븐 멤버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나누어 먹고 에이세븐 멤버가 읽는 책을 함께 읽으며 친구들이 쓴 팬픽을 감상한다. 세 친구들 덕분에 소중한 우정의 의미를 깨달은 정원은 이제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친구에게 시선을 돌린다.
정원은 ‘프로아나’로 불리는 과도한 다이어트에 몰두하는 친구 혜수를 돌아본다.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혜수의 식습관을 보며 정원은 혜수의 트위터를 검색하여 그를 관찰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만난 이에게 훨씬 마음을 열어 놓는 혜수에게서 자기 자신을, 혹은 달이를 발견한 정원은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친구를 돕고자 한다.

최근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자주 회자되지만 디지털 환경의 뉴미디어는 청소년에게 또 하나의 일상 공간으로 자리 잡은 지 오 래다. 주로 오프라인 친구들과 연락하기 위해 사용하지만 취미나 관심사에 따라 온라인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하나의 해시태그를 중심으로 모인다. 정원의 친구들이 링크한 ‘돌고래 방류를 위한 온라인 청원’은 자신들의 관심에서 비롯된 작은 행동이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마음을 잇는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도 좋아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함께 지키는 친구가 될 수 있다. 돌고래, 골목에서 만난 고양이나 강아지 그리고 아이돌 그룹 그 어떤 것이라도 말이다.
사실 디지털 환경은 실제 삶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인지 디지털 공간을 배경으로 삼은 작품들은 다소 보수적이고 방어적인 경우가 적지 않았고 부정적 상황에 대한 경계심에 주로 무게 중심이 실렸었다. 이 작품은 디지털 공간을 활용하는 새로운 세대의 의사소통을 긍정적 시선으로 접근한다. 디지털 공간은 나의 전체가 아닌 보여 주고 싶은 부분만 편집해서 보여 줄 수 있으나 그것을 단순히 왜곡이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다양한 자아가 있으며 디지털 공간에도 엄연히 마음 한 조각이 담긴다. 혜수가 ‘프로아나’라는 해시태그로, 정원이 ‘에이세븐’이라는 해시태그로 자신들이 몰두하는 가치를 온라인에 공유하듯 온라인은 한 사람의 또 다른 진실을 보여 주는 공간이다. 이 작품은 자신의 관심사나 취향을 통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는 공간의 의미를 짚는다.
『우리의 정원』은 먼 곳에 있는 이와 가까이 있는 사람, 온라인과 오프라인이라는 공간, 화면에 보이는 사람과 내가 손잡을 수 있는 사람 그 모든 경로를 돌며 사람과 사건을 엮어 아름다운 별자리로 만든다. 자신이 마음을 주었던 모든 자리를 공정하게 대하며 함부로 폄하하지 않고 일상에 따스하게 녹여 낸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은 이제 하나의 유니버스다.
 
좋아하는 것과 동행하기
어느덧 또래 친구와 우정을 나누는 숙제를 해결한 정원에게 고민이 한 가지 더 남아 있다.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청소년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항상 불안과 부담을 안고 있다.
 
나도 10년쯤 지나면, 저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유능하고 멋진,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워 보이는 그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어른이 될 수 있긴 한 걸까.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몇 번의 시험을 더 치르고, 축제나 체육 대회 같은 행사들을 얼마나 더 견뎌야 하는지 대충 세어 보았다. 아마 그사이에 지겨워서 죽어 버릴지도. 나는 한숨처럼 길게 숨을 내쉬었 다.(49쪽)
 
청소년이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기 힘들 때 주위에 있는 긍정적인 롤 모델은 그들의 불안을 희망으로 바꾸어 주는 역할을 한다. 다행스럽게 정원의 곁에는 그 역할을 멋지게 맡고 있는 청년들이 있다. 이들은 차분히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씩씩하게 삶을 열어 간다. 학교 상담 교사는 때로 전혀 교사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고양이 집사지만 최선을 다해 학생과 고양이를 두루 보살핀다. ‘쿠쿠 책방’의 젊은 주인 부부도 마찬가지다. 고래 덕후로 고래에 빠진 모습이나 유기견을 돌보는 장면은 환경 운동이라는 커다란 담론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끼는 작은 마음이 실천이 되어 일상에서 자리 잡는 모습을 보여 준다. 아이돌 그룹 에이세븐마저도 정원의 성장을 돕는 든든한 조력자다. 그들은 모두 정원과 가장 가까운 세대의 어른으로, 어떻게 성장해야 할지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삶을 엿볼 기회를 제공해 준다.
이 작품은 밤새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책장을 넘기던 청소년이 자라 어른이 된 후 자신이 좋아하던 것을 잃지 않고 도리어 작고 귀한 것을 하나씩 보듬어 자신의 삶으로 품는 젊은 세대들의 소박하고 새로운 풍속을 보여 준다. 이야기는 언뜻 ‘기호’, ‘취향’, ‘관심사’ 등의 일상을 말하는 듯 보이지만 정원에게는 쿠쿠 책방 나들이나 에이세븐 공연 관람, 그들의 음악을 듣는 잠시의 시간조차 엄밀히 보면 일상 속 비일상의 시간들이다. 일상에서 멀리 떠나지 않고도 잠시 일상을 내려놓는 시간이 있기에 청소년 시기에는 잠시 웃을 수 있고 다시 힘을 낼 수 있다. 그런 소소하지만 행복한 경험은 어른이 되어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망설일 때 새로운 문을 열어 주거나 인생의 가장 귀한 동행이 되기도 한다.
정원에게 주어진 일상 속 비일상의 경험들은 결국 정원의 마음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주위 친구들이 함께 가꾸어 준 정원의 마음은 풍요로운 마음의 정원(庭園)이 된다. 여러분의 정원에도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채워 나가며 새 시대에 어울리는 성장의 지도를 마음껏 그려 나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