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역사지도가 필요한가

최근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사를 자기네 지방정권의 역사라고 우겨 우리를 분노케 했다. 언론들은 앞다퉈 정부와 학계를 질타하며 ‘국사교육’을 강화하라고 난리를 쳤다. 그런데 이상하다. 국민 필수과목인 국사를 달달 외우며 학교를 다닌 우리 국민들 중에 고구려사가 우리 역사인지 아닌지 헷갈려 하는 사람이 많아서 문제라는 말인가. 아니, 실은 ‘국사교육’이 아니라 ‘국사연구’가 문제인 것이다.
대학 강단에서 고대사를 가르치는 한 교수의 말에 따르면 현대 고구려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는 30명 남짓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 학계의 수준이 고구려사의 편년조차 제대로 확립해 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니 무얼 더 말하겠는가.
이렇게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 역사학계의 연구 수준이 부실한데, 그중에서도 특히 연구가 안 돼 있는 분야가 바로 ‘역사지도’다.
 
 
부실한 지도 인프라
먼저 지도 그 자체에 대해서 보자. 지도에는 우선 지형이 표시되어야 한다. 해안선으로 육지와 바다의 경계를 구분하고, 등고선으로 지형의 높낮이를 표현한다. 그리고 그 위에 지명과 국경선 등을 그려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지도의 상세도는 축척으로 분류한다. 얼마나 고해상도의 축적을 구현했는가에 따라 지도의 질이 결정된다. 문제는 바로 이 축척에 있다.
우리 정부에서 등고선을 측정하고 이를 통해 지도를 작성하는 곳은 건설교통부 산하의 국토지리정보원(구 국립지리원)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우리나라에 관한 상세한 등고선 데이터를 제공받을 수 있다. 축척은 보통 2만 5천분의 1이면 충분한데, 5천분의 1까지도 가능하다. 이 정도 해상도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 ‘우리나라’의 범위이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말하는 ‘우리나라’는 어디까지나 휴전선 이남 즉, 남한만을 가리킨다. 북한에 관한 고해상도 등고선 데이터는 없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북한 지역에 존재했던 고구려나 고려의 역사지도를 그리려고 할 때 해방 이전에 측정한 저해상도 등고선 데이터밖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선이나 근현대의 역사지도도 반쪽밖에 그리지 못한다. 평양성과 그 주변의 지형과 입지를 자세하게 보여 줄 수 없고, 백두산 천지 부근의 지형이 어떻게 생겼는지 입체적으로 보여 줄 수도 없다는 말이다.
문제는 북한에만 그치지 않는다. 발해에서부터 고구려, 그리고 그 이전의 부여와 고조선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 역사의 4천년이란 시간을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현재 중국 영토이기 때문이다. 『역사부도』에 그려진 우리 고대사 지도들이 ‘허접’해 보이는 것은 바로 이렇게 정밀한 지도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아니다.
 
 
할 일 안 하는 정부
등고선 데이터는 대게 직접 측량을 통해 얻어진다. 그러나 요즘은 직접 측량하지 않고 인공위성을 통해 등고선 데이터를 얻는 방법이 이미 개발돼 있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가 인공위성이 없어서 정밀한 지도를 못 만드는가. 아니다. 우리도 여러 개의 인공위성을 띄워 놓고 정밀 사진을 찍고 있다. 따라서 얼마든지 북한지도, 만주지도를 만들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믿는다.
문제는 인식과 의지이다. 고구려사가 우리 역사라고 목소리만 높일 것이 아니라 고구려 땅이었던 곳에 어떤 산들이 솟아 있고 어떤 강이 굽이쳐 흐르는지 상세지도 정도는 만들어 놓고 무슨 주장을 하더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또다른 문제는 지도의 구현방식에 관한 것인데, 우리 수준은 어떤가. 역사지도의 경우 지도 위에 여러 가지 역사 정보들이 담겨야 하기 때문에 등고선을 그려 넣으면 지도가 너무 복잡해진다. 그렇다고 등고선에 따라 색을 입히는 고전적인 방법으로는 입체감이 살아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등고선 대신 실제 높낮이를 실감할 수 있도록 입체화한 지도를 사용하는 힐 셰이딩(hill shading)지도 혹은 음영기복도가 필요함을 느낀다. 음영기복도는 등고선 데이터를 원자료로 삼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입체화하고 그것을 가지고 다시 일러스트레이터가 북의 터치로 완성시키는 고도의 작업을 필요로 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곳에서 낸 지도책을 보면 이런 입체지도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등고선 데이터만 제공할 뿐 이러한 음영기복도는 제공하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민간업체에서 국토지리정보원으로부터 등고선 데이터를 받아 3D 프로그램을 통해 입체화해 판매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래서 적어도 남한의 경우 역사지도를 만들 때 이들 업체로부터 제공받은 음영기복도를 통해 입체적인 역사지도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나 만주의 경우에는 다른 나라 업체로부터 데이터를 제공받아야만 한다. 이런 방식으로 하다 보면 엄청난 비용이 추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만들어서 무료 혹은 염가로 제공해 주면 될 것인데 말이다. 그러면서 고구려사는 우리 역사라고 핏대만 세우는 것이 내 눈에는 코미디로 보인다.
 
 
학자들이 안이한 연구 태도
역사지도에서 컨텐츠는 연구자들의 연구 수준을 의미한다. 역사지도를 그리려고 해도 거기에 담을 내용이 빈약하다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연구 수준은 어떨까.
대표적인 예로 국경선 문제를 들어 보자.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에서 마지막 왕조인 조선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국가에 대해서도 현재 ‘이것이다’라고 정설로 확정된 국경선은 없다. 물론 근대 이전의 시대에 국경선 개념은 오늘날과는 전혀 달라 말뚝 박고 철조망 치는 식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개 왕조의 통치력이 미치는 한계 범위는 정해져 있었고 따라서 국경선의 지리적 범위는 어느 정도 확정지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정설이 없다는 것은 연구자들이 그러한 문제에 깊이 파고들지 않은 결과일 뿐이다.
특히 발해의 국경선과 관련해 유의해야 할 점은 우리 학계에서 그리는 것과 중국에서 그리는 것에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학계는 발해의 남쪽 경계선을 신라의 북쪽 경계선인 대동강에서 함흥을 잇는 선 정도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남서쪽으로는 요하를 경계로 당나라와 맞대고 있는 것으로 그린다. 그러나 중국의 공식 출판물 『중국역사지도집』을 보면 압록강 중류에서 평안도 일대까지가 전부 당나라의 영토로 표시돼 있다. 우리나 중국이나 모두 자국에 유리하게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객관적 사실(史實)이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중국 역사학계에 당당하게 문제를 제기해야 할 것이다. 『아틀라스 한국사』는 그 힘찬 출발의 첫걸음이다.
 
 
글 · 김성환 (아틀라스 한국사 편찬위원회 주간)
 
 
1318북리뷰 2004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