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신기한 방귀 가루

 

엉망진창 이야기의 매력
 
천효정|동화 작가, 초등학교 교사



초등학교 교실에서 ‘막장’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받는다. 어린이들이 자발적으로 생산하고 유통하는 이야기 속에는 복수, 살해, 뜨거운 사랑, 엽기, 패륜, 종말의 요소가 단골처럼 등장한다. 엉망진창으로 진행되다가 황당하기 짝이 없게 끝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어린이에게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이들이 느끼는 즐거움은 이야기의 개연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금기 해체와 권력 전복 작업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어린이의 카니발적 욕망이 슬쩍 고개를 내민다. 강자가 독점하고 있는 사회 권력을 전복시키고 싶은 욕망, 금지된 것을 어기고 싶은 욕망, 성인의 세계를 엿보고 싶은 욕망, 타인 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바로 그것이다. 이 때문에 카니발적 특성을 실현하는 동화에서는 아동이 성인의 규칙과 금기를 전복하고 해체함으로써 스스로가 서사의 주인공이 되며, 아동의 발랄한 생명력을 고양하는 서사가 주요 내용이 된다.(『강의실 에서 읽은 동화』, 권혁준 2018)

그런 점에서 보면 요 네스뵈의 『괴짜 박사 프록토르① 신기 한 방귀 가루』는 카니발 서사의 전범이라 할 만하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이야기는 ‘방귀’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다. ‘방귀’나 ‘똥’ 이야기는 어른들이 ‘짐짓 모른 척’하고 있던 금기를 만천하에 폭로한다. “다들 뀌고, 다들 싸는 거잖아!”라고 외치는 어린이의 목소리에는 어른이 쓰고 있는 ‘점잖음’의 가면을 벗겨 내고, 권력을 탈취하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가 담겨 있다. 그러니 독자는 읽기 전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이 책에서 ‘예의범절’ 따위를 애당초 기대해서는 안 된다. 

단짝 친구가 이사를 가는 바람에 외톨이가 된 소녀 리세. 다행히도 이웃집에 새로운 친구가 이사를 온다. 키는 물론, 눈 코 입도 모두 콩알만 하고, 머리칼은 불타오르듯 새빨간 소년, 불레다. 불레는 “키가 작으니까 책상 위에 올라가서 자기소개를 하는 게 좋겠다”는 선생님의 조롱에 ‘냉큼’ 책상 위로 올라가 신나게 사설을 푸는, 대범하다 못해 뻔뻔한 녀석이다. 가진 것 중에서 큼직한 것이라고는 주근깨뿐인 불레는 권력 관계를 역전시키는 데 도사다. 심술궂은 트룰스와 트륌 쌍둥이로부터 음수대에 처박히는 신고식을 치른 불레. 거의 물고문 수준의 괴롭 힘을 당한 불레가 말 한마디로 상황을 역전시키는 장면은 통쾌하다.

“이 음수대는 약해 빠졌구나.”
주위가 조용해졌다. 불레는 얼굴을 닦았다.
“베를린의 쿠르퓌르스텐담 거리에 있는 음수대는 물줄기가 10미터나 솟구쳐 올라간대. 내 친구가 거기서 물을 마시려다가 세찬 물줄기에 어금니 두 개가 빠지고, 치아 교정기까지 삼키고 말았지 뭐야. 물을 마시러 온 이탈리아 사람은 그만 가발이 휙 벗겨졌다니까.” (46-47쪽)


소심하고 내성적인 리세는 불레에게 단번에 매료된다. 언뜻 잘 어울리지 않는 리세와 불레의 조합에 옆집에 사는 괴짜 박사 프록토르가 가세하면서 엉뚱한 시너지가 폭발한다. 때마침 프록토르 박사는 터무니없이 요란한 방귀를 뀌게 해 주는 방귀 가루를 발명한 참이다. 리세와 불레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무용해 보이는 이 발명품의 가치를 대번 알아챈다. 이들은 곧 같은 학교 학생들에게 방귀 가루를 판매해서 떼돈을 벌 계획을 세운다. 예상대로 방귀 가루는 어린이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으며 완판 행진을 계속한다.

물론 일이 계속 이렇게 순조롭게 풀릴 리 만무하다. 불레와 프록토르 박사는 위험한 물질을 제조・판매한 혐의로 ‘죽음의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런데 진짜 흥미로워지는 건 여기부터다. ‘나중에 수습이 가능할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이야기가 폭주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변기 구멍을 통과해서 밖으로 나가고, 하수구에서는 난데없이 아나콘다와의 혈전이 벌어지며, 뱀 배 속에서의 탈주극도 이어진다. 

『괴짜 박사 프록토르① 신기한 방귀 가루』의 특별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이야기는 아이들이 창작하는 이야기와 많이 닮아 있다. 엉망진창이지만 엄청나게 매력적인 이야기. 이야기를 읽는 어느 순간, 엉망진창이라는 것 자체가 아무 의미 없어지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그렇다고 이 책을 ‘그냥’ 엉망진창이라고 단언하기는 이르다. 요 네스뵈의 엉망진창은 용의주도하고 고급스럽다. 아슬아슬하게 파탄을 피해 가면서, 조화롭게 완성되는 엉망진창의 풍경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려 보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