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의 딸이다

돌아가신 박완서 선생의 소설에는 친정어머니에 관한 글들이 많다. 일찍 남편을 여윈 선생의 어머니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개성에서 서울로 유학을 감행했다. 명문 학교에 딸을 보내 신여성을 만들기 위해 당시로서는 생소했을 위장전입을 감행했을 만큼 억척스러운 분이었다. 자전적 데뷔작인 「나목」에는 자의식이 강한 딸이 어머니에게 갖는 애증의 감정이 잘 드러나 있다. 재미난 건 박완서 선생이 어머니가 되어 결혼한 딸들에게 전화를 할 때마다 “내다” 소리를 했다는 점이다. 친정어머니가 늘 자신에게 전화를 할 때 했던 말을 똑같이 따라했던 거다. 딸들은 이렇게 무의식중에 제 어미를 속속들이 닮는구나 싶어 무릎을 쳤던 기억이 난다.

나 역시 나이가 들며 엄마랑 닮은 구석을 발견할 때마다 속으로 놀라곤 한다. 특히 술을 조금 마시면 친정 엄마의 사투리며 특유의 억양까지 쏙 빼닮도록 똑같아진다. 십대시절 내내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하고 다짐했지만 정작 엄마가 되고 보니 “과연 나는 엄마만큼 잘 살고 있는 걸까?” 하는 회한도 밀려온다. 이것이 딸들의 인생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런 후회가 드는 건 딸들이 엄마가 된 후의 일이다. 십대시절 딸들에게 엄마는 참으로 다양한 감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존재다. 대부분 사춘기에 이를 때 즈음이면 그 품이 너무 따뜻했고 절대적으로 보였던 엄마가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엄마의 장점은 당연하고 단점만 눈에 들어온다. 엄마에게 대놓고 신경질을 부리고 일부러 엄마가 속이 상하도록 도발도 한다. 그야 말로 갈등은 극에 달한다.

최나미의 『진실 게임』은 이런 십대의 딸과 엄마의 갈등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엄마와 딸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는 엄마와 딸 사이가 불편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독자에게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과거의 사건을 숨겨놓고 그 진실을 딸이 쫒도록 만들어 마치 추리소설처럼 흥미진진하다.

재영이와 재서는 쌍둥이다. 엄마가 몸이 아파 쌍둥이를 혼자 키울 수 없자 오빠인 재서를 할머니에게 보냈고 일곱 살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재서 때문에 재영이는 엄마, 아빠 그리고 재서에게 미안해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늘 재서에게만 시선이 가있는 엄마가 자신에게 냉정하고 무자비하게 군다는 사실 때문에 재영이는 마음의 문을 일찌감치 닫아걸었다. 몸이 약하고 공황장애마저 생긴 재서 때문에 아빠는 엄마의 고향인 솔구 마을로 이사를 단행한다. 전학 간 학교에서 만난 친구 윤지는 대뜸 재영이를 보자 그런다. “냄새가 나. 곧 너와 연관된 무슨 사건이 일어날 것 같아. 사건의 냄새가 난다고.” 아니나 다를까. 평소 음악이라면 치를 떨던 엄마였는데, 마을 교회에서 중고등부 성가대 반주를 하는 엄마의 사진이 발견되고, 집으로 수신인이 잘못 기재된 편지와 소포가 날아든다. 소설은 엄마의 과거를 따라가며 엄마가 왜 딸과 사사건건 부딪힐 수밖에 없었는지, 그 속내를 보여준다.

‘진실 게임’이란 제목은 두 가지 의미를 품는다. 하나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진실의 의미다. 사람들은 사실이 무엇인지 보다는 그저 자기가 알고 있는 걸 진실이라고 쉽게 믿어버린다. 그건 사실이 아니라 자기만 믿는 진실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또 하나는 이런 식의 태도가 소문뿐 아니라 가장 가까운 엄마를 대하는 태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이다.

나는 아직도 종종 내 엄마가 내가 아는 친정엄마가 정말 맞을까 싶을 때가 많다. 유독 자존심이 세고 비록 딸일지라도 그 앞에서 아쉬운 소리를 못 하는 엄마, 그 모습이 위선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얼마나 속앓이를 하며 살았던 걸까. 세월이 흐르고 보니 나 역시 가슴에 묻은 말을 잘 못하는 엄마처럼 살고 있다.

엄마란 어떤 경우에도 자식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엄마도 사람인지라 몸과 마음이 지치고 고통 받고 그러다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사실을 깨닫자면 딸들이 자라 엄마가 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최나미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딸들은 엄마에게 많은 걸 물려받는다. 여성이라는 자부심, 몸에 대한 당당함 그리고 자존감까지, 몸과 영혼이 딸들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다시 딸들이 엄마가 되어 다음세대에게 모든 것이 물려진다. 엄마는 곧 나의 딸이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 엄마와 딸들이 솔직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된다면 좋겠다.
 
 
 
글 - 한미화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