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료시카』 김지현 화가


“할머니로부터 엄마, 저를 거쳐 제 딸에게로 
전해지는 정신적인 유산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마트료시카』 김지현 작가 인터뷰
 


이 이야기를 처음 읽고 어떤 풍경이 그려지셨나요?

어느 작은 공방에서 만들어진 마트료시카가 상자에 담겨 긴 여행 끝에 어느 집 앞에 도착하는 풍경, 그리고 장식장 위에 가만히 놓여 있다가 밤이 되어 사람들이 다 잠들면 움직이기 시작하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영화 <토이 스토리>처럼 마트료시카 인형들이 낮에는 사물처럼 가만히 있다가 밤이 되면 사람처럼 움직이고, 서로 이야기 나누고, 포옹하는 그런 장면들을 떠올렸던 것 같아요.


작업 과정에 대해 들려주세요. 글 서사에서 더 나아간 지점이라든지요.

글이 매우 시(詩)적이어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마트료시카가 아주 어린 아기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의 세월을 모두 품고 있는, 한 사람의 인생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렇게 이야기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작업에 들어가니, 마트료시카의 형태적 특성상, 어떤 정서나 감정, 미묘한 뉘앙스 같은 것을 표현하기에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각각의 마트료시카가 상징하는 인생의 여러 시기를 표현할 때 실제 인물을 등장시켜 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 편이 훨씬 감정적으로 공감하기 쉬우면서, 표현의 폭도 넓어질 것 같아서요. 제가 여성이어서인지, 자연스럽게 여성의 삶을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여성의 삶, 엄마의 삶 같은 것들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외형에서 인종이나 문화권 등은 특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사람이라기보다는 정령 같은 느낌으로요. 최종적으로는 여러 연령대의 여성들을 정령의 모습으로 형상화하게 되었고요. 글 서사에서 더 나아간 지점이 있다면 이런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가장 고민하던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첫째부터 일곱째까지 각각의 마트료시카가 하나씩 차례로 소개되는 부분이요. 저는 이 부분이 설득력 있게 풀려야 이후의 서사도 독자가 수긍하며 읽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인생의 각 시기에 겪게 되는 경험이나 감정들을 하나의 이미지로 함축적으로 표현해야 했고, 이야기 전체 흐름 상 현실에서 판타지로 넘어가는 대목이었기 때문에 그런 흐름도 고려해야 했고… 가장 고민이 많았습니다.


마트료시카 몸에 새겨진 꽃들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일곱 개의 마트료시카가 인생의 각 시기를 상징적으로 보여 줬으면 했어요. 각각의 의미가 뚜렷하게 있다기보다는, 가장 작은 마트료시카의 몸에 새겨진 꽃봉오리가 인형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점점 피어나고, 가장 큰 마트료시카에 이르렀을 때에는 꽃이 풍성하게 만개하는 과정을 통해 삶을 비유적으로 보여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어떤 이들을 모델로 떠올리셨나요?

자연스럽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저희 엄마와 할머니, 제 딸, 그리고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제 자신이요.

 

가장 마음에 남는 글귀가 있나요?

첫 문장이 가장 마음에 남아요. "작가는 첫째에게 제일 너른 품과 가장 큰 꽃그늘, 깊은 주름 그리고 큰 손을 주었습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되었을 때, 이 글과 같은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글에서 ‘품’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참 좋더라고요. 나 자신도 잘 품고, 남도 잘 품을 수 있는 넉넉한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말 그렇게 되고 싶어요.


그림을 그리는 동안 여러 연령대의 여성을 지나왔다 하셨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건 어느 시절인가요?

특정한 시절에 애착이 간다기보다는, 이런 인생의 모든 시절을 나의 할머니도, 엄마도, 나도, 나의 딸도 다 겪었고 앞으로 겪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저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 많아지더라고요. 동시에 어린 저를 키우던 엄마의 젊은 시절도 떠올리게 되고, 그때의 엄마가 지금의 제 모습과 겹쳐지기도 하고요. 엄마의 유년기는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할머니로부터 엄마, 저를 거쳐 제 딸에게로 전해지는 정신적인 유산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요. 그런 것들이 『마트료시카』에도 알게 모르게 녹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작업 기간 중에 태어난 아이가 벌써 두 돌을 넘겼다 하셨어요. 달라진 게 있나요?

조금 더 힘이 생긴 것 같아요. 예전 같으면 엄두를 못 냈을 일들을 하는 용기가 생겼다고 할까요. 가령, 운전이나 운동 같은 것들이요. 하면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알지만, 귀찮아서, 갑자기 생활 패턴을 바꾸는 것이 번거로워서, 등등의 핑계로 안 하고 다음으로 미루고 그랬어요. 그런데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어떻게든 해내게 되더라고요. 귀찮다거나 하기 싫다는 생각 없이, 기꺼이, 기쁘게 하게 되는 제 자신이 참 신기했어요. 제가 운전면허를 스무 살에 수능 끝나자마자 땄는데 그 이후로 한 번도 운전대를 잡은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차로 등원시켜야 하는 거리에 있는 어린이집에 자리가 난 거예요. 그러고 나서 일주일 만에 바로 운전을 시작했어요. 아이 키우면서 체력적으로 한계가 느껴지니까 운동도 스스로 하게 되더라고요. 몸이 힘들면 아이가 놀아 달라고 할 때 제대로 놀아 주지도 못하고, 아이에게 더 쉽게 화를 내게 되니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원래 아침잠도 많고, 운동에 정말 취미가 없는 사람인데, 새벽에 일어나서 요가 가고, 요가 못 가는 날은 어떻게든 짬 내서 걷고, 집에서 스트레칭이라도 하게 되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거 아닌 일일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혁명적인 변화입니다. ^^ 아이는 가장 가까이서 저를 지켜보고 제가 하는 말이나 행동, 저의 감정까지도 그대로 흡수하니까, 그게 참 무섭거든요, 어떨 때는. 아이 눈에 비치는 제가 더 좋은, 더 나은 사람이면 좋겠고, 그래서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랑이 동력이 되는구나, 생각하게 돼요.


요즘 어떻게 보내세요?

아이 데리고 미술관에 자주 가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있는데 잔디밭이 넓어서 아이들 뛰놀기 좋고, 이 근방에서 드물게 주차도 편해서요. 저희 딸은 미술관이 주스 마시고 잔디밭에서 뛰어 노는 곳인 줄 압니다. 그래서 맨날 미술관 가자고 그래요. 그런데 막상 전시장 안에 들어가면 울면서 무서워해서 전시는 많이 못 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