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연극이 끝난 후

필리버스터, 연극이 끝난 후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음악 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 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온 국민에게 새삼, 아니 누군가에게는 처음으로 정치의 본질을 깊이 생각하고 느끼게 해준 필리버스터가 막을 내렸습니다.
정치는 본래 이렇게 어떤 문제를 쟁점으로 삼아 의견을 내고, 반박을 하고,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또다시 이야기를 나누는
느리고 번거롭고 복잡한 과정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정치를 ‘시원스럽게 결정해주는 권력’, 혹은 ‘권모술수와 이전투구로 점철된 그들만의 리그’ 정도로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5시간, 10시간씩 서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국회의원들을 지켜보며, 또 그들에게 채팅창으로 직접 의견을 제시하거나
그들의 말을 이곳저곳으로 퍼 나르며
우리는 정치가 그저 구경만 하는 장이 아니라 내가 개입해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이라는 걸 체험했습니다.
 
필리버스터라는 9일간의 연극이 끝나고 38명의 배우들은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조명이 꺼진 무대 위에는 다시 정적만이 남아 있습니다.
뭔가 손에 잡힐 듯한 느낌을 얻었던 우리는 다시 허망한 기분이 되려고 합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무대에 남아
아무도 없는 객석을 본 적이 있나요
힘찬 박수도 뜨겁던 관객의 찬사도
이젠 다 사라져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 있죠  
슬픔만이 흐르고 있죠
 
 
여기 국회의원이라는 대표들을 통해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전하는 우리의 대의민주주의를
연극으로서의 대표제’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한 정치학자가 있습니다.
 
 
정치인은 각각의 역할을 연기합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논전을 펼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중략) 정치적 쟁점이 어디에 있고, 대립 축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누구의 의견에 가깝고, 어떤 점이 다른가? 대표들이 펼치는 정치극을 보면서 이러한 것들이 명확해집니다. 대표라는 존재가 전혀 없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정치적인 논의를 시작하는 것조차 얼마나 곤란한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_ 스기타 아쓰시, 『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삶이다』  50쪽
 
 
허망한 기분에 빠지지 말고, 우리 다 함께 천천히 정치 공부를 해보는 게 어떨까요?
 
 
일본의 행동하는 정치학자 스기타 아쓰시,
요가하듯 천.천.히 잠들어 있던 ‘정치 근육’을 깨우다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정치의 당사자이며, 현재의 정치가 안고 있는 많은 병폐들의 공범이기도 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정치의 원점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결정, 대표, 토론, 권력, 자유, 사회, 한계, 거리라는 8개의 키워드를 통해
정치에 관한 상식과 전제들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또한 누가 어떻게 해도 잘 돌아가지 않는 현대 정치의 어려움을 강조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치 공부,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재인식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