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사박물관> 완간, 대장정을 마치며 - 말로 되짚어 본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는 ‘생활사’라는 내용과 ‘박물관’이라는 형식을 결합시킨 책이다. 여러 가지 여건상 버거운 작업이었고, 그래서 나는 곧잘 “선무당이 사람 잡은 격”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뇌고 다녔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왔던 말들을 통해 시리즈에 임했던 5년을 되돌아본다.
 
 
“생활사에는 생활이 없다”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는 따를 만한 모델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다. 심지어는 책으로 낸 다음에도 가끔씩 “거기 생활사박물관이죠? 몇 시까지 해요?”라는 전화를 받았을 만큼 매우 생소한 형식의 책이었다.
게다가 그 형식도 권을 거듭할 때마다 식상함을 없애기 위해 새로운 실험을 거쳐야 했다. 마지막으로 나온 11권과 12권만 보아도 한 시리즈의 책인가 싶게 다른 면모를 갖고 있다. 여기에는 당연히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그렇다고 기간을 무작정 늘릴 수도 없는 노릇. 이런 작업이 으레 그렇듯 마감이 닥치면 편집진은 밤에도 일하고 휴일에도 일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까 이런 자조 섞인 말도 나왔다. “생활의 역사를 만든다는 생활사 편집진에겐 생활이 없다.”
 
 
“내가 필자냐 네가 필자냐”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는 매우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해당 주제의 전문 학자가 필자로 참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11, 12권만 해도 각기 다른 전공을 가진 아홉 명의 필자가 참여했다. 그런데 학술 논문 작성과 대중적인 글쓰기 사이에는 쉽게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 있다. 이것이 가장 큰 어려움 가운데 하나였다. 게다가 <한국생활사박물관>처럼 이미지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글을 써야 하는 책은 다른 대중 역사책보다도 더 세심한 글쓰기가 요구되었다.
글을 쓸 때는 먼저 편집진과 필자가 구성안을 마련한 다음 디자인팀과 함께 글과 이미지를 결합시키는 편집 전략을 짰다. 필자는 그에 따라 초고를 작성하지만 딱딱하고 추상적인 글쓰기를 벗어나기가 매우 어려웠다. 따라서 편집진이 ‘재집필’ 수준으로 원고를 ‘교열’라는 작업이 따르곤 했다. 이 과정에서 초고의 원형이 많이 사라지므로 심심치 않게 필자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어떤 필자는 전화를 걸어 이렇게 농담 섞인 불평을 하기도 했다.
“내가 필자냐, 네가 필자냐?”
전문성과 재미가 결합된 글, 이미지와 맞물려 돌아가는 글을 효율적으로 완성하는 공정. 이것은 시리즈 중간 지점에서 돌아볼 때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로 남는 부분이다.
 
 
“그림말”
한번은 ‘일러스트레이션 디렉터’라는 긴 직함을 가진 곽영권 선생에게 물었다. 왜 ‘그림’이라고 하지 않고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외래어를 쓰느냐고. 그러자 선생은 일반적인 그림과 구분되는 일러스트레이션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그것을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그림말’이 좋을 거라고 대답했다.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말이었다. <한국생활사박물관>에서야말로 모든 그림이 ‘유창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말하기’를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담긴 그림은 다른 삽화와는 달리 본문 속의 글을 이해하기 위한 보조 장치도 아니고 글을 읽는 중간에 쉬면서 감상하는 장식 예술도 아니다. 그림 하나하나가 모두 옛사람들의 생활상에 관한 독립적인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 한 컷이 박사 논문이다”
<한국생활사박물관>의 그림은 화가가 혼자 그리는 예술 작품이 아니다. 편집진, 필자, 디자인팀의 역량이 총동원되어야만 제대로 된 ‘그림말’이 탄생할 수 있다.
그림의 원형이 처음 제시되는 곳은 필자와 편집진의 구성안 회의이다. 이 회의에서 글로는 묘사할수 없거나 글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생활사의 한 순간을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을 그림 후보로 선정한다. 이것은 디자이너가 손톱그림이나 가편집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정교해지거나 수정된다. 그렇게 해서 그림의 주제와 크기가 결정되면 이제 그림 속에 담길 내용과 시각 요소들을 논의한다.
그림 요소들이 시대 상황과 역사적 개연성에 맞는지를 고증하는 일은 1차적으로 필자, 감수자 등 학자의 책임이었다, 때로는 아주 특수한 분야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별도의 전문가를 찾아 자문을 받을 때도 있었다.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유물?유적 같은 실물보다는 문헌 자료에 의존한 연구가 발달해서, 실물 고증을 절대 필요로 하지 않는 ‘그림말’ 앞에서는 해당 시대를 10년, 20년 공부한 전공학자도 난감해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2권 필자인 송호정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 그림 한 컷 그리는 게 박사 논문 쓰는 것만큼 어려워!”
또 고증에 참여하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고, 스케치 단계와 채색 단계에서 보이는 오류가 다르기 때문에 종종 다 그린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할 때도 있었다. 이런 시행착오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 어떤 화가는 나중에 평가회의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옛사람이 되어 사는 것 같아 작업이 즐거웠어요. 하지만 하도 다시 그리라는 바람에 한 번만 더 그리라고 하면 그만두었을 거예요.”
이것은 한국생활사박물관 관련자 모두가 하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르겠다. 시리즈가 완간된 8월부터 내 혀끝에서도 “한 권만 더 만들라고 했으면 그만두었을 것”이라는 말이 맴돌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벌써부터 한국생활사박물관 시절이 그립다.
 

글 · 강은천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 주간)
 
 
1318북리뷰 2004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