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사계절그림책상 수상작 발표

5 사계절그림책상 수상작이 결정되었습니다.


대상 없음


우수상

이량덕 어떤 하루,

하목 멍뭉이는 무슨 말을 했을까?
 

심사위원: 서현(그림책 작가), 송미경(동화작가), 이지은(그림책 작가)

당선자에게는 개별 통보하였고, 수상작은 2025년 출간 예정입니다.

사계절그림책상에 응모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5회 사계절그림책상 심사평

올해로 5회를 맞는 사계절그림책상은 응모작 231편 중 예심을 거쳐 24편이 본심에 올랐다. 본심작 중 6편을 뽑아 최종심을 진행하여 우수상 두 편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작품을 응모해 준 분들께 감사드린다.
5년간 심사위원들이 함께 응모작을 살피다 보니 매해 특수한 경향성을 보게 된다. 이번에 가장 많이 거론된 부분은 텍스트였다. 비교적 완성도가 높은 그림에 비해 텍스트의 역할이 흐릿한 작품들이 많은 편이었다.
물론 그림책은 그림이 주가 되지만 그림은 단순한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서사적으로 연출을 이끌고 텍스트는 그림과 어우러져 작품이 표현하려는 바를 드러낸다. 그런데 이번 작품들은 텍스트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글과 그림이 조화롭지 못하거나 주제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거나 심지어 무슨 말을 하려는지 힘들게 해독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작가가 무슨 의도로 어떤 방식으로 주제를 드러내고 하나의 그림책 서사를 완성한 것인지 많은 의문을 가져야 했다.
그런 의문이 앞선 가운데 뚜렷한 장점을 갖고 있는 작품들, 작가의 개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최종심에 올릴 수 있었고 우리가 깊이 논의한 여섯 작품은 아래와 같다.


레이싱은 쫓고 쫓기는 약육강식의 세계, 인간과 동물의 모습을 역동적인 레이싱 경기로 표현한 작품이다. 캐릭터들이 목표를 향해 질주하다 갑작스러운 충돌을 겪고 이야기는 유머러스하게 흘러간다. 화려한 컬러와 속도감이 느껴지는 그래픽, 과감한 장면 연출은 흥미로운 한편 다소 산만한 느낌도 들었다. 모순되고 복합적인 생의 경험들을 강렬한 시각 이미지로 표현해 낸 작품이었으나 내용 이해에 어려움이 있어 아쉬웠다. 조금 더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이 채워진다면 개성 있고 흥미로운 작품이 될 것이다.

작은 엄지는 안데르센의 동화 엄지공주를 모티프로 삼아 아동폭력을 우화적으로 풀어냈다. 폭력에 노출된 아이의 상황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긴장감 있게 연출했다. 다소 아쉬운 점은 이 작품이 아동폭력 그 자체를 재현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는 점이다. 그 의도는 폭력의 고발에 있다 하더라도 작품 속 피해자나 피해 상황은 더 세심히 묘사되어야 하며 주제 표현을 위해 피해자가 대상화되거나 소모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고민이 더해진다면 장르 그림책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신기한 동물 백과사전은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진행되는 작품이다. 사실과 허구를 뒤섞어 동물의 특징과 문명의 삶을 새로운 상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밀도 있는 그림과 환상적 요소들이 만나서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흐릿하여 어떤 맥락 안에서 읽어 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독특한 발상의 힘을 가진 작품인 만큼 주제를 정리한다면 인상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 또한 상상과 허구를 뒤섞는 법칙이 좀 더 정리되고 일관성을 가진다면 그 법칙에 따라 다양한 해석의 여지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 될 것이다.

 페르난데의 벼룩들은 우쿨렐레의 유래를 기본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에 간결하고 고전적인 이미지가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입맛 까다로운 벼룩 캐릭터들과 그들이 펼치는 축제는 보는 이들도 발을 굴려 춤을 추게 할 것 같다. 벼룩의 캐릭터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반면 오늘날의 아이들과의 서사적 접점을 찾기는 어려웠다. 이야기의 모티프인 우쿨렐레의 유래를 넘어 좀 더 자유롭게 이야기를 펼치고 톡톡 튀는 벼룩의 이미지에 집중해서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서사를 꾸린다면 캐릭터가 살아 있는 그림책이 되리라 생각한다.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최종심 6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치열했다. 심사위원들은 한 작품마다 최대한 더 애정을 갖고 보기 위해 회의를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작품, 풀기 어려운 작품을 난해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예술 작품은 반드시 이해하기 쉬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다소 난해한 작품을 통해서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멈춰 있던 감각이 깨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작품을 이해하는 데 들인 시간을 오히려 가치 있게 여긴다.
그러나 작가가 풀지 못해서 비워진 문제와 독자의 해석을 위해 비워둔 문제는 엄연히 다르다. 달리 말하면 서툴게 남겨진 서사적 여백은 독자에게 혼돈을 주고, 작가가 의도를 가지고 침묵으로 채운 여백은 독자에게 다양한 해석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림책 창작에서 글과 그림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주제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글과 그림이 조화를 이루어야 거기에 더해 미학적 수단으로써 개별적인 문장과 그림의 완성도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응모작들의 검토를 반복하며 가장 기본적인 질문과 직면했다. 그림책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의 문제였다.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표현한 세계로 독자를 초대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야 하지 않을까? 그럴 때에 독자는 작품을 통해 작가가 바라본 새로운 세상, 작가가 꿈꾸는 새로운 세상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림책을 통해 하려는 말이 피상적이면 그림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소비될 뿐이다. 이번 심사를 통해 알게 된 응모작들의 경향성이 지금 우리 그림책의 현실과 어떻게 닿아 있는지, 우리 모두에게도 큰 질문이 되었다.

이번엔 대상 없이 우수상 두 편을 선정했다.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은 독자가 작품의 내러티브 즉,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나 구조에 참여하게 한다는 것이다. 독자의 언어를 작품 안에 수용하고 독자가 들어가서 자신의 방식으로 보고 느끼고 말하도록 자리를 비워 두었다. 또한 결말에 이르는 과정 하나하나가 사려 깊은 시선으로 표현되었다는 점 또한 공통점이다. 


멍뭉이는 무슨 말을 했을까?는 스쿨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길에 접어든 주인공의 여정을 그린다. 주인공은 평소엔 버스로 지나쳤기에 가 보지 않았던 길로 접어들고 학교 가는 길을 찾는다. 그러기 위해선 만나 본 적 없는 이들을 만나고 또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주인공과 낯선 존재들의 조우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다정한 한편 유머러스하면서도 뭉클한 감동이 있다. 내가 사는 세계와 그 세계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면 이 느긋한 여정은 불가능할 것이다. 정말 이런 세상이 있기를, 독자들이 길을 잃었을 때 그것이 아주 고마운 여정이 되기를 소망하게 된다. 글이 없이 서사가 진행되는데도 좋은 글을 읽은 느낌이다.

어떤 하루,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이미지를 연속적으로 제시한다. 절제되고 추상적인 이미지들은 우리가 각자 자신의 하루와 감정을 이입해 볼 수 있는 능동적 참여를 이끈다. 까만 점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그 추상적인 그래픽 이미지들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작가의 의도와 태도가 그림책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 준다. 또한 오직 그림책 장르만 할 수 있는 예술 체험을 지면 위에 펼친다. 점 하나로 이렇게나 많은 감정에 이를 수 있고 이렇게 오래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걸 기억해 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의 평범한 하루는 그 모든 날들이 태초이며 시작이고 온전하다는 깨달음과 감동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고심 끝에 이 두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글과 그림의 일체감과 독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독자적이고 선명한 작품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척박한 세계를 지탱하는 고마운 숨결 같은 두 작품을 만났다.
무질서하고 메마른 시절에 지친 독자들에게 선물 같은 그림책 두 권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 우리의 오늘에 감사하고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좋은 그림책을 응모해 주신 두 분께 축하드린다. 또한 무엇보다 자신에겐 가장 소중한 작품들을 사계절그림책상에 응모해 주신 모두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서현, 송미경, 이지은(5회 사계절그림책상 심사위원)
-대표 집필 송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