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님이 웃었어』 수업 후기


글 ✽ 오은경(오음초등학교 교사)


나는 아이들과 종종 산책을 한다. 우리 학교 주변은 들판이어서 뛰어다니기가 참 좋다. 아이들은 햇살이 내리쬐도, 비가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산책 나가자는 말을 언제나 반긴다. 그야말로 모든 날이 산책하기 좋은 날이다. 교실에 가만히 앉아 책 펴고 공부하는 것보다는 신나는 일이니 무조건 좋겠다지만 덥거나 비가 와도 귀찮아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산책을 해 보지 않은 어른들은 대개 이렇게 말한다. “뭐, 볼 것도 없는데 애들이 좋아하나?” “똑같은 곳만 맨날 가면 지루해 하지 않나?” 나 또한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 주춤할 때가 있었지만 아이들과의 산책은 언제나 ‘나오길 참 잘 했다.’ 싶은 마음을 들게 해 준다. 그래서 모든 선생님들께 산책을 권하고 싶다.

아이들이 산책을 하면 무엇을 만나는지, 어떤 기분이 드는지 이야기 나눌 책이 나왔다. 이 책을 읽자마자 우리 학교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치 우리 아이들을 보고 그림으로 그린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일본의 어느 그림책 작가도 너희들처럼 산책을 좋아하나 봐. 너희와 똑같아~” 하고 말하면서 책 표지를 보여 주었다.

파란 책싸개가 시원하다. 환한 햇살 아래에 있는 듯 웃는 아이의 모습이 금빛으로 물들어 있다. 그런 아이 때문일까? 그림에 해가 없는데 눈이 부시다. 파란 종이를 살짝 들추어 보면 단단한 파란색 책 표지에 무당벌레가 날아오르고 있다. 표지를 넘기면 진짜 눈부시게 환한 노란색이 펼쳐진다.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색이다. 이 색들을 보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은 파란색을 보고 하늘, 바다, 친구 모자, 바람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특히 바람을 떠올린 아이는 표지의 아이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있다면서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나 봐요.’라고 했다. 노란색은 해님, 민들레, 애기똥풀, 잘 익은 보리, 언젠가 누가 입었던 노란색 치마를 떠올렸다. 자신들이 본 파란색과 노란색을 다 말할 기세였다. 그러다 혜성이가 팔을 높게 치켜들었다.


“선생님, 풍경 같아요. 파란색, 노란색 다 풍경 그림 같아요. 자연 풍경이요.”

정말 그랬다. 이 색은 어느 것 하나만 말할 수 없었다. 파란색과 금빛, 책장을 넘기면서 나오는 무당벌레와 쨍한 노란색은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한마디로 정의되지 않는 것이었다. 책을 다시 덮었다. 책 속의 산책이 아니라 진짜 산책 이야기를 더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는 작가가 산책하면서 만난 것들이 나오는데, 너희들은 뭘 만났어?”

가장 먼저 개구리가 나왔다. “그럼 우리가 만난 개구리처럼 걸어 볼까?” 그러자 모두 개구리처럼 펄쩍 뛰면서 움직였다. 그렇게 잠시 개구리처럼 뛰어다니다가 또 다른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넌 누구를 만났니?” 그 친구는 우렁이를 만났다고 했다. “그럼 우렁이 알처럼 가 볼까?” 모두 바닥에 엎드려서 꿈틀댔다. 어떤 아이는 책상 다리에 붙어서 꿈틀거렸다. 이후에도 투구새우, 달팽이, 올챙이, 개미, 꿀벌, 거미 등 다양한 생명들이 나왔다.
 

“혹시 동물 말고 꽃이나 나무, 사람은 만난 적은 없을까?”

“아, 보리밭이요. 보리가 흔들리는 거!”

우리 반 아이들은 보리밭을 참 좋아한다. 다 함께 보리처럼 흔들거렸다. 또 밤나무, 소나무가 되었다가 산책 중에 빵집에서 만난 빵이 되어 보기도 했다. 논에서 일하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 바람을 말했을 땐 잠시 그것들이 되어 보았다. 아이들이 만난 건 끝도 없이 이어졌고 내용은 더 자세해졌다. 처음에는 벌레의 이름을 말하는 정도였는데 집을 짓는 거미, 줄을 타고 내려오는 거미, 한 발을 들고 논에 서 있던 새,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 다 베어진 보리밭, 뒷다리가 나오기 시작한 올챙이, 색깔이 변하고 있는 개구리, 태풍 같은 바람과 갑자기 내린 비.
멈추는 것이 어려울 지경이다. 아이들이 똑같은 곳을 산책하는 게 왜 지루하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책의 작가도 너희가 만난 걸 만났을 것 같아. 작가는 무엇을 만났을까? 이제 책을 같이 읽어 보자.”

책장을 넘기면 날아오르던 무당벌레가 민들레 꽃 위에 앉아 있다. 따뜻한 봄이 되면 무당벌레가 잎 사이로 자주 나타나는데 그래서 한동안은 모두 손바닥 위에 무당벌레를 올려놓곤 한다. 무당벌레는 도망칠 틈을 노리다 갑자기 날아오르는데, 책장을 넘기면 이 무당벌레도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고 있다.
 
[바람이랑 산책]

“아이 옷도 바람인가?”
“바람 색이네.”
“바람 불 때 뛰면 재미있는데.”


장면마다 한두 문장 밖에 없는데 아이들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곤충과 식물을 발견하고 저마다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산책을 하면 눈으로 보는 것 말고도 냄새, 촉감, 소리, 온몸으로 뛰어다니기 마련이니 그림만 봐도 그때의 느낌이 되살아나는 듯 그 어떤 책을 읽을 때보다 말들이 많았다.

반짝반짝, 소곤소곤, 흔들흔들, 후후후, 폴짝, 벌렁벌렁, 쭉쭉처럼 간결하게 쓰인 표현들은 주인공 아이가 만난 것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상상해 보게 만들었다.

 

[반짝반짝 소곤소곤]

“무엇이 반짝반짝하고 있었을까?”
“꽃잎이 반짝반짝”
“장수풍뎅이 껍질이 반짝반짝”

“누가 소곤소곤하고 있었을까?”
“무당벌레들이 소곤소곤”
“풀잎이 소곤소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다 보니 개구리에 놀라고 지네에 또 놀란 주인공이 나무에 올랐다. 그리고 드디어 나를 벅차게 만든 장면이 나왔다. 아이들의 반응이 어느 때보다 궁금했다.
 

[하늘이랑 손잡은 것 같아 / 나도 바람이랑 손잡았어 / 다 같이 손잡았어]

“우리도 손잡고 뛰어봤는데.”
“새들은 어떻게 손잡지?”
“야, 날개가 손이잖아. 날개 막 흔들면 손잡는 거지.”
“나무하고도 손잡는 것 같았는데.”
“나도 바람하고 손 잡아봤어.”


진짜로 그렇게 느꼈는지, 그림책을 따라서 말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너도나도 본 적도 있고 그런 적도 있다고 했다. 그게 뭐 중요한가. 그렇게 모두가 손잡고 모두가 웃는다고 느낀다면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할까? 해님이 성을 내듯 불볕이 내리쬐는 게 아니라 손잡고 뛰는 우리를 향해 따뜻하게 웃으니 얼마나 좋은 날인가!

그러다 한 친구가 아이의 옷 색이 풀색과 똑같아졌다고 하면서 ‘이제 다 손잡고 뛰어서 닮아진 건가 봐.’라고 한다. 또 다른 아이가 ‘모두 자연이 된 건가?’하고 말했다. 또 아까는 바람하고만 친했는데 이제 모두와 친해져서 옷 색이 자연색으로 섞인 거라고 했다. 역시 사계절 산책을 나섰던 아이들답다. 책을 다 읽고 다시 물었다.


“왜 그렇게 산책이 좋아?”

아이들의 답이 각양각색이었다.

-올챙이가 여러 모습인 걸 보면 신기해요.
-안 좋은 게 없는데?
-친구들과 발 맞춰 걷는 게 좋아요.
-나무 그늘에 앉아서 쉴 때 편안해요.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가면 좋아요.
-좋은 냄새가 나고 푹신해서 행복해져요.
-바깥에 나가면 넓으니까 야구 연습하면서 갈 수 있어요.
-물소리가 시원해서 들어가고 싶어요.
-친구랑 자연스럽게 팔짱 끼고, 손도 잡고 걷게 돼요.
-빨리 뛸 때 바람이 얼굴에 닿는 게 좋아요.
-시원한 바람이 닿는 게 좋아요. 그게 바람이랑 손잡는 건가?
-공기가 진짜 맑아요. 물소리랑 바람소리도 들려요.
-그냥 기분이 좋아져서 자꾸 뛰고 싶어져요.
-산책 갈 때는 공부를 안 해도 되니까 상쾌해요.


나는 우리 반 아이들과 책을 읽기 전에 산책을 해야 할지, 읽은 후에 산책을 해야 할지 고민했었다. 두 번 가면 좋을 걸 뻔히 알면서도 여전히 바쁘고 조급한 마음에 무엇이 더 효과적인지 계산하며 책을 읽어 주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책이 내게 말했다.

아이들이 교실 밖으로 나와 걷는 그 길이, 잠시 머무는 나무 그늘이, 살갗에 닿는 바람과 넓은 하늘이, 메뚜기 뛰는 작은 풀밭이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또 알려 준다고. 무엇보다 마음을 기댈 친구를 내어 주고 있다고 말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다. 이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아이들과, 바람과, 햇볕과 손잡고 걷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었다. 운동장이라도 뛰어야겠다. 자, 이제 모두 바람과 손잡고 뛰어 보자!




이 책을 읽고 이런 활동을 해 보세요!

1. 산책 나가기 (꼭 들판이나 숲길이 아니어도 됩니다. 골목길도 되고 운동장 구석구석을 다녀도 좋아요. 마을에 등산길이 있으면 놓치지 마세요.)

2. 길에서 만난 것들을 나누고 교실에서 흉내 내기 (되도록 자연 그대로의 것, 함께 걸은 길에서 만난 것을 떠올리게 해 주세요.)

3. 소곤소곤, 반짝반짝 등 책 속 표현들마다 주어 넣어 보기, 어떤 모양일까 흉내 내기

4. 산책이 좋은 이유 말하기

5. 모두 손잡고 바람을 느끼며 100미터 정도 힘껏 뛰어 보기
(넘어질 위험이 있으니 반드시 손을 잡고 뛰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새들이 날개를 펼쳐 손잡은 것처럼, 우리의 손 사이에는 바람이 손을 잡고 있다고 알려 주세요.)

6. 산책길에서 만난 낱말로 발 만들기 (작고 긴 종이를 열 칸 정도 지그재그 계단 접기로 접습니다. 칸마다 산책길에서 만난 것을 적고 종이들을 나란히 엮어 교실 문에 걸어 두면 발이 됩니다.)

7. 나만의 산책 카드 만들기 (글자를 처음 익히는 아이들과 해 보세요. 산책길에서 만난 것들을 낱말 카드로 만들고 아이들의 그림과 함께 나눈 이야기를 적습니다. 카드가 모이면 나만의 산책길 그림책이나 문집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