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인터뷰] 『해님이 웃었어』 기쿠치 치키

그림책에서 만날 수 있는
시각적  즐거움과
색채의 신세계를 보여준 작품 
『해님이 웃었어』
작가 기쿠치 치키에게
작품과 작업 과정 그리고 
소소한 일상에 대해 물었습니다.

정성껏 보내준 작가의 대답들을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

 
『해님이 웃었어』 한국어판이 출간되었습니다. 기분이 어떠세요?
- 이 책의 원화는 목판화입니다. 기존에 주로 쓰던 방식이 아니었기에 마지막까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과 마주하며 작업을 진행했어요. 저는 물론 편집자, 디자이너, 인쇄 관계자 모두가 긴장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목판화 작업을 포함해 인쇄, 장정 등 여러 방면에서 도전이었던 작품입니다. 복잡하고 특별한 과정을 거쳐 출간한 이 책을 한국에서도 관심 가져 주셔서 기뻤습니다. 한국의 독자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되어 너무 좋습니다. 


해외에서 작품이 출간될 때, 작가로서 꼭 체크하는 부분이 있나요?
- 제 작품을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내용이나 책의 만듦새가 원서와 얼마나 비슷한지도 중요하지만 나라마다 제작 환경이 다르기도 하고, 그 나라만의 특색이 담긴 작품이 나오는 것도 또 다른 기쁨으로 여기는 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열정으로 작품을 대하며 최선을 다해 그림책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작품도 한국에서 오퍼가 왔을 때, 오퍼 이유에 대해서 여쭤봤는데 그 답이 무척 감동적이어서 고마웠습니다. 진행 과정에서도 매우 꼼꼼하게 정성을 다해 작업해 주시고, 일본에서 제안한 샘플 요청도 무리 없이 부드럽게 진행해 주시는 모습을 보며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작은 산으로 둘러싸인 작업실 모습

어떻게 시작된 작품인가요? 주인공의 모델이 된 어린이가 있나요? 
- 저희 아들이 모델입니다. 아들은 머리가 좀 긴 편이어서 중성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어요. 그림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남자 아이로도 보이고 여자 아이로도 보였으면 했는데 아들이 이 작품의 모델로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제 그림책에 등장하는 어린이와 동물은 대부분 아들을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이번 책에서만 특별하게 등장한 것은 아니고 평소에 느끼는 대로 그린 거예요. 
저희 집은 작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아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느끼는 것이 참 많습니다. 아주 소중한 것들을 되새기게 해 줘요. 아들이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자기 자신과 자연, 벌레, 동물 사이에 뚜렷한 경계선을 갖고 있지 않았는데 그 자유롭고 천진한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분명 이런 모습은 모두가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렸습니다.



 

​아들이 모델이 된 그림책 속 주인공 모습


자유롭고 천진한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어떤 사건보다는 그냥 흘러가는 느낌이 좋습니다.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 특별한 목적을 정해두지 않고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목적을 정하면 거기에 묶여 버려서 답답해지거든요. 대충 이미지에서 출발해 손을 움직이는 동안 자유롭게 등장인물이 행동하기 시작하고 감정이 샘솟으면서 점차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이런 방식을 좋아해요. 항상 시작 단계에서는 작품이 어떻게 완성될지 알지 못하죠. 처음과 끝이 전혀 달라지기도 하고 그때마다 소중한 부분들도 달라집니다.


 


 
목판화 작업 과정에 대해 알려 주세요.
- 그림을 그릴 때, 장면마다 방향성과 떠오르는 문장을 적어 스케치를 하고 목판에 대략적으로 밑그림을 그립니다. 인쇄를 4색으로 찍는 것처럼 목판도 장면마다 4색(경우에 따라 2색이나 3색을 쓰기도 합니다.)으로 나눠서 4장의 그림을 조각도로 팝니다. 그리고 목판에 물감을 칠하고 종이를 올려서 롤러로 밀어 나무에 그려진 그림을 종이에 찍어 냅니다. 한 장의 종이에 4색을 겹쳐서 찍으면 장면 하나가 완성됩니다. 찍었을 때 생각했던 것과 다르면 또 찍기를 반복하죠. 그림책 한 권이 만들어질 때까지요. 이번에는 200장 이상 목판을 파고, 수정하고, 찍어 냈어요. 대단히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이번 작업에서 특별한 점이 있었나요?
- 일반적인 인쇄는 CMYK로 찍습니다. 완성된 원화를 스캔해 컴퓨터로 CMYK 4색을 분리하고 그것을 인쇄기에서 4색 잉크로 인쇄하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림책 자체를 목판화처럼 작업했습니다. 완성한 목판화를 스캔하는 것이 아니라 색마다 나눠진 목판화를 별도로 스캔했습니다. 인쇄기에서 4색의 판이 겹쳐져 장면이 완성되었고 결국 모든 장면이 각각 하나의 목판화처럼 완성된 셈입니다. 


원화와 완성된 작품 속 색이 다르다고 알고 있어요.
- 처음 목판화를 제작할 때는 인쇄했을 때의 이미지를 상상하기 위해 먼저 CMYK에 가까운 색으로 찍었습니다. 그림책을 만들 때마다 이야기에 맞는 색을 정하는데 스캔 후에 컴퓨터로 판마다 찍힐 색을 상상하면서 별색을 정했어요. 목판화로 여러 색을 테스트하려면 시간과 체력이 더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아마 그렇게 했다면 책을 완성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어떤 의미로는 인쇄 후 처음으로 완성된 그림의 원화를 본 거였어요. 인쇄가 되는 과정을 지켜볼 때 마치 목판화를 찍는 순간처럼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 앞서 말했지만 그림책 자체가 목판화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목판화 원화를 완성시키고 나중에 인쇄에서 어떤 이미지가 나올지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손 그림과 다른 느낌을 주는 목판화 기법이 이야기와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가 중요했어요.
작업 도중에 벌레들이 땅에서 움직이는 장면이 있는데 아들에게 그림을 보여 주었을 때 “아 징그러워! 그런데 아름다워.”라고 말했어요. 너무 기뻤습니다. 이 그림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알려준 듯한 기분이 들어서 땅이 움직이는 장면이 특히 마음에 남아요.

 

작가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들과 반려견

·····

작가에게 아주 소소한 것들을 물었습니다. 

좋아하는 색은? 
- 검정색.

좋아하는 순간은? 
- 아들이 웃을 때. 강아지와 아들이 장난치는 모습을 볼 때.

싫어하는 것은?
-지네, 높은 곳.

꼭 챙겨서 나가는 소지품은? 
- 그림 도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휴대폰입니다.

작업 스타일은?
- 낮에도 밤에도 작업을 하지만 아무래도 아들과 강아지가 잠든 밤에 집중이 잘 됩니다.

SNS를 하시나요?
- 전혀 하지 않습니다. 

여름휴가 계획은?
- 아직 특별하게 정한 것은 없지만 아들과 풀장에 가려고 합니다. 여름방학에 추억이 될 만한 곳을 함께 가고 싶어요. 

같이 사는 동물이 있나요?
- 잡종인 검은 강아지 쿠로. 

빈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 스케줄 조절에 서툴러서 좀처럼 쉬는 시간이 없어요. 되도록 가족과 보내려고 합니다. 도예를 하거나 목공, 정원 정리도 좋아합니다.

 
 


끝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려요. 
- 그림책은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함께 읽을 수 있는 멋진 장르입니다. 또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매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직접 그림책을 펼쳐서 그 자유로움을 느낀다면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즐길 수 있을 거예요. 『해님이 웃었어』를 통해 한국의 독자 여러분과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번역 | 황진희
정리 | 사계절출판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