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탐방 : 재미난 얘기 어디 없나하고 두리번거리는 작가, 강정연



수다를 잘 떠는 사람을‘물에 빠지면 엉덩이만 동동 뜰 사람’이라고 부르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 ‘입만 동동 뜰 사람’ 보다 한수 위 라할 수 있다. ‘입만 동동 뜰 사람’은 입이 가볍다는 걸 뜻하지만 ‘엉덩이만 동동 뜰 사람’은 물고기들과 이야기하느라 바빠서 그렇다는 것이다.
 
작가, 강정연을 보면 이런 비유가 딱 맞는 사람이다 싶다. 언제나 한 톤 높은 목소리에 약간 들뜬 듯이 밝고 명랑한 표정으로 이야기하기 바쁘다. 좀 어처구나 없는 일도 강정연이 말하면 포복절도 슬랩스틱 코미디에 버금가는 일로 탈바꿈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늘 웃음을 주고 긍정의 바이러스를 유포하는 작가, 강정연에게 ‘그대는 욕심쟁이 우후훗!’이라는 멘트를 손동작과 함께 날려 주고 싶어진다.
 
작가들 사이에 유머와 위트가 있고 행사 진행도 잘할 거 같은 사람에 단연 꼽히는 작가, 강정연은 정말 작가일까? 개그맨일까? 이런 엉뚱한 질문까지 하는 것은 작가라 하기에 개그감이 너무 충만해다. 이제 사설은 접고, 작가 강정연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해 보자.
 
 
이렇게 재미난 사람이 어떻게 작가가 되었을까?
작은 씨앗이 심어진 때는 아마 초등학생 시절일 것이다. 초등학생 강정연은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글짓기대회에 나가 상도 많이 받았다. 특히 ‘마음대로 쓰기’, ‘상상해서 쓰기’가 좋았다. 특이하게도 독서감상문대회는 싫었다. 다른 작가들의 어린 시절과 어긋나는 지점은 바로 책읽기를 싫어했다는것이다. 책말고도 재미있는 일이 너무 많았다. ‘독서는 가만히 앉아서 혼자 읽는 것’이라 싫었단다. 그 시간에 밖에 나가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백배 더 좋았던 것이다. 실제로 어린 시절보다 지금 책을 훨씬 많이 본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어린 강정연을 작가의 길로 이끈 최초 공로자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담임 선생님 꿈이 동화작가였다. 그래서 당신은 못이룬 꿈이지만 강정연에게 ‘넌 글짓기를 잘하니까 커서 동화작가 하면 되겠다’라는, 앞날을 예견(?)하는 말을 남기셨던 것이다. 그러면서『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라는 책을 손수 챙겨 주시기까지 했다. 하지만 강정연은 이내 그 말을 잊었고, 그 책도 읽지 않고 친구들과 놀기에 바빴다고 당시를 소회했다.
 
청소년 시절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에 바빴다. 친구들과 팀을 만들어 별밤 뽐내기 대회에 나가 1등을 한 적도 있다. 1등 상품이 세고비아 기타였는데 그걸 팔아 놀러 다녔다고 한다. 요즘으로 치면 태블릿 피시나 닌텐도처럼 당시 청소년들의 최고의 품목은 워크맨이었다. 그 워크맨이 갖고 싶었던 강정연은 고2 때 1학년 시절 썼던 참고서를 친구들에게 5백 원 주고 사서, 후배 1학년들에게 1천 원 주고 팔았다. 그 수익금으로 워크맨을 샀으나, 순식간에 번 돈 때문이었는지 일주일 만에 잃어버리고 말았단다.
 
학창 시절 내내 뒤에서 구경하기보다 직접 하는 걸 좋아했다. 가만히 앉아 하는 음악 감상, 독서는 좀이 쑤셔서 할 수 없는 취미였다. 친구들끼리 모여 연극 만들어 양로원에 공연 가기, 라디오 극처럼 설정 놀이를 만들어 테이프에 녹음하기, 배드민턴 채로 기타 치기, 갓 시집 온 숙모가 약자라는 걸 일찌감치 눈치채곤 숙모를 졸졸 쫓아다니며 재미난 얘기 들려주겠다고 괴롭히기 등 온갖 기행을 일삼았다. 그 모든 것을 한데 아우르는 것은, 남들 앞에서 말하는 걸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은 토론이 활발할 거 같은 정치외교학과를 지원했다. 국문학과나 문예창작학과를 갔더라면 지금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 거라 생각한단다. 글쓰기를 학과 공부로 접했다면 흥미를 잃었을 거라는 게 이유다. 하지만 막상 졸업을 하고 보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로를 고민하던 때, 섬광처럼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넌 글짓기를 잘하니까 커서 동화작가 하면 되겠다.’
그래서 동화작가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고는 바로‘어린이책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카페에 가입했고, 습작 모둠에 들어갔다. 물론 숙제도 잘 안 하고 결석도 자주 해서‘짤릴’뻔한 불량 예비작가였다. 하지만 한 작품만이라도 제대로 쓰자는 마음으로 쓴 첫 작품「누렁이, 자살하다」가 바로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덜컥 당선되고 말았다. 천재라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일단 첫 작품이 되고 나니 더 써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다음에 쓴 그림책용 단편이 한국안데르센 그림자상에 당선되고『바빠가족』이 출간되자 정말 작가가 되어 있었다.
 
말은 설렁설렁 하지만 등단한 2004년부터 지금까지 낸 책을 보면 강정연은 아주 바지런한 작가이다. 만 5년 만에 동시집『섭섭한 젓가락』을 기점으로 출간 10권을 넘어섰고 최근 출간된 7?8세가 읽는 책, 사계절 웃는 코끼리 시리즈 중『깜빡해도 괜찮아』,『 끝내주는 생일선물』까지 더하면 총 13권의 책을 출간했고, 올해 서너 권의 책이 출간을 앞두고 있다. 사람들과 모여 재미난 얘기 하길 워낙 좋아하고 여행도 즐겨 해서 언제 이 책들을 다 썼을까 싶은데 작가는 남들 몰래 바지런을 떨었나 보다.
 
“쓸 이야기가 많아요. 쓰고 싶은 얘기, 써야 할 얘기만 써도 아직 한참 남았어요.”
 
아직 써야 할 얘기가 너무나 많은 작가 강정연은 자신의 성격에 맞게 이야기에 강한 작가이다. 심리 묘사, 문체주의 이런 쪽보다는 이야기에 강한 작가다. 앞으로도 할 얘기가 너무 많아 입과 손이 근질근질한 강정연은 이런 작가로 기억되고 싶단다.
 
“누군가‘우울할 때 읽어라’또는‘기운 빠질 때 읽어 봐’라는 말을 하면서 제 책을 선물하는 그런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또 제 책을 믿고 살 수 있고, 다 읽고 나서‘역시 잘 골랐어’라고 말하는 선택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다시 처음으로‘개그맨’답다는 말로 돌아가 보자면, 강정연에게 개그맨의 피가 흐르는 이유는 바로 유전이자, ‘가족’이다. 부모님은 언제나 칭찬을 넘치게 해 주셨고,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으시다. 어떤 결정에 앞서 부모님과 다른 선택을 고집할 경우, 본인의 결정을 존중해 주었다. 그러면서 그 결과에 대해선 책임을 지고 절대 후회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단다. 그래서 강정연은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봤다고 말한다. 부모님이 왜 하지 말라고 했는지 깨달을 때도 있었고, 자신의 결정을 만족스러워할 때도 있었다. 중요한 건 부모의 반대에 부딪쳐 본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저절로 자존감이 커졌고, 타인 앞에 자신감 있게 설 수 있었다. 강정연은 칭찬의 힘으로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작가 강정연을 보면, 뛰어난 문장력, 아름다운 문체, 묵직한 주제 등이 작가의 기본 요소가 다가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살아온 한순간 한순간이 모인 결정체가 한 사람을 이룬다고 본다면 강정연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똘똘 뭉쳐진 존재로, 남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 웃음 유전인자가 가득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갓 시집 온 외숙모를 졸졸 쫓아다니며 자신이 만든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안달하는 그 아이가 커서 독자들에게 속닥속닥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_박찬석(객원 편집자)
 
 
사계절 즐거운 책 읽기 2011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