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사계절문학상 결과 발표

제19회 사계절문학상 결과 발표
수상작 없음

 

 
제19회 사계절문학상 심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올해는 오정희·정은숙·심윤경·최상희(소설가) 네 분이 예심과 본심을 맡아 주셨습니다.
아래에 고민을 거듭하신 심사위원님들의 심사평을 밝힙니다. 응모해 주신 모든 분들과 심사위원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1년 12월 31일 마감되는 제20회 사계절문학상 응모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제19회 사계절문학상 심사평
 
올해 응모작은 모두 113편이었다. 유례없는 팬데믹이 세상과 일상을 바꾸고 매일 낯선 고립과 새로운 두려움을 사는 와중에도 어딘가에서 묵묵히 글을 쓰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건 뭉클하면서도 어쩐지 작은 위로를 주었다. 혼돈 속에서 우리를 지탱하고 일상을 지속할 평정심과 불확실한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하는 것은 이야기, 바로 이야기의 힘이라 믿고 문학이란 세상에서 여전히 사박사박 걷고 있는 이들에게서 상냥한 안부를 건네받은 기분이었다.

문학상 심사는 설레는 일이다. 어떤 이야기와 작가를 만나게 될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지금 청소년소설을 쓰는 이들은 어떤 문제에, 왜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쓰고 있는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리다. 우리가 만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카프카)’와 같은 충격, 혹은 작가의 독특한 세계관과 통찰력,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때로는 유머와 위트, 어쩌면 탄탄한 스토리와 견고한 문장, 매력적인 캐릭터, 그런가 하면 작지만 큰 이야기, 또는 거대하지만 섬세한 시선, 아마도 마음이 일렁이고 읽고 나면 한동안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합한 이야기를 기대한다. 아니, 이 중 하나도 해당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눈과 마음을 끌어당기는 이야기를 만나고 싶은지도 모른다.

본심에 오른 작품을 비롯해 응모작들의 전반적인 경향을 짚으며 청소년소설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다소 원론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흥미로운 소재와 과도한 설정, 충격적인 스토리와 극단적인 묘사가 청소년소설의 전형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흥미로운 설정에도 불구하고 서사의 볼륨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더는 흥미롭지 않았고 스토리 진행에 급급하여 공감과 감동이 앉을 자리를 내주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인물이 실종되어 있다는 점은 가장 큰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소설은 마음을 직접 서술하는 유일한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내면과 변화, 인물과 인물, 혹은 인물과 사회의 충돌에서 빚어지는 강력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작품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내 이름은 이스마엘’로 시작되는 <백경>, 거대한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기사 돈키호테,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느 밤, 황량한 워더링 하이츠에 나타난 히스클리프, 어느새 연민할 수밖에 없는 제인 에어 등, 어렸을 때 읽어서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직도 몇 장면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인물의 몫일 터이다. 그것이 몇십 년, 몇백 년 전에 쓰인 소설들이 아직도 힘을 지니는 이유일 것이다.
 
본심에서 이야기된 작품은 <스키니 시티>, <스포일러>, <피육 혹사 금지>, <sand hill> 네 편이었다.

<스키니 시티>는 아름다운 외모가 계급을 나누는 기준이 되고 비만을 사회 악으로 규정하는 ‘파인 시티’를 배경으로 하는 디스토피아 소설로, 흥미로운 설정이 레나 안데르손의 소설 <덕 시티>를 연상케 했다. 푸드 팩토리에서 제공하는 가공식품이 넘쳐나지만 날씬해지기 위해 기꺼이 먹기를 포기하거나 먹고 토하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는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로 읽혔다. 가독성이 높고 흥미로운 설정이 눈을 끌었지만 그에 비해 이야기가 단조로웠고 굿펠로가 비만한 사람들을 잡아다 인육을 먹는다는 설정 등은 설득력이 부족했고 다소 안일한 결말은 아쉬움을 주었다.

<스포일러>는 청각 장애를 가진 고등부 수영선수가 우연한 계기로 자신이 부모의 친생자가 아님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른바 출생의 비밀이 이야기의 전면에 등장하는데 롤러코스터를 타듯 감정 변화를 겪는 시기에 이런 골치 아픈 문제까지 껴안은 소년은 필연적으로 문제적 주인공일 수밖에 없기에 기대 가득한 마음으로 원고를 읽었다. 소설 속에는 또 다른 1인칭 화자가 등장하는데 어린 시절 동생을 잃어버린, 바로 수영선수의 친형으로, 동생과 형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번갈아 서술되며 불행한 두 가족의 내부를 보여 준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맞닥뜨린 고민이 지나치게 쉽게 해결되고 결말 또한 갑작스럽게 마무리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소설은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주인공이 겪는 사건으로 서사가 진행되어야 하건만 인물과 갈등을 사소하게 소비한 것이 이 작품의 단점으로 보였다.

<피육 혹사 금지>는 주인공인 소년 하희영이 친구인 네 명의 소녀와 자신의 일상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형태로 서술된다. 유리는 아빠의 감시 속에서도 계속 자살을 도모하고 방재나는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고 피승아는 거식증을 겪고 있는 프로아나고 허세은은 동성애자다(뒤에 유리와 허세은은 사귀게 된다). 이 이야기만으로도 이미 벅찬데 이게 다가 아니다. 주인공 하희영은 자신이 음식 대신 피를 마셔야만 생존할 수 있는 ‘구강 수혈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흥미로운 소재들은 이야기로 충분히 녹여지지 않고 소재로만 소비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구강 수혈자라는 매우 매력적인 설정을 만들어 냈음에도 구강 수혈자임을 자각한 주인공의 내면과 행보보다 형과의 관계 및 주변인들의 이야기에 치중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휘발되고 말았다.

<sand hill>은 중국 펑동이라는 사립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강렬한 첫 장면이 단숨에 눈을 끌었다. 제목인 ‘sand hill’은 자율적 교육을 표방하는 영국의 Summerhill 스쿨과 정반대로 규율과 규제, 학생들 간의 폭력이 만연하는 모래 언덕처럼 무너지기 쉬운 학교와 발붙일 곳 없는 지훈의 상황을 의미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부모의 불화, 불화의 계기가 된 형의 사고, 사고로 인해 형이 식물인간이 된 뒤 중국이란 낯선 장소와 상황에 던져진 지훈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친구 라희 역시 지훈의 의도와는 반대로 지훈의 행위의 결과로 참혹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사실적인 취재에 힘입은 흡인력 있는 이야기가 이 작품의 미덕이었으나 소설의 중반 이후 공안에 끌려간 친구 장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 압록강으로 가는 부분은 너무 볼륨이 큰 이야기라 전체적인 균형이 깨진 듯한 느낌을 주었다. 탈북자들의 이야기와 캐릭터가 매우 매력적이라 이 부분만을 별도의 소설로 써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식물인간이 된 형을 동굴로 데려가는 등의 서술 상의 작은 실수들이 곳곳에 보여 핍진성을 떨어뜨리는 문제도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눈 끝에 무거운 마음으로 수상작을 내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원고 하나하나에 담긴 응모자들의 노고를 너무도 잘 알지만 한 권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온다는 의미의 무게 역시 알기 때문이다.

응모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어디선가 멈추지 않고 계속 글을 쓰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글을 쓰는 행위는 고독하지만 혼자가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다. 무탈하길, 그리고 건필하길 응원한다.
 
 
 
-오정희·정은숙·심윤경·최상희 (제19회 사계절문학상 심사위원)
대표 집필 최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