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술술 읽히는 사상이라니!

『교과서에서 만나는 사상』은 지루한 사회 교과서 때문에 학습에 도무지 흥미가 일지 않는 학생들이라면 정말 즐겁게 사상을 접할 수 있는 책이다.

무겁게 느껴지는 사상이란 단어는 생각이란 뜻을 가진 한자어 두 개가 조합된 것이 라고 받아들이면 좀 더 쉽게 다가온다. 사상이란 무언가에 대한 생각이나 생각의 체계를 말한다. 오만 가지 색을 가진 인간 군상들이 모인 사회에서 같은 생각의 모양새를 가진 사람이 없음은 분명할진대, 교과서에 등장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 역사적·사회적 의의를 얻어 버젓이 이름까지 달아 놓은 생각들은 그 자체로 큰 매력이 있다.

이 책은 서른 가지의 생각 꾸러미를 정치, 철학, 국가, 경제, 사회사상으로 나누어 설명해 놓았다. 학창 시절 힘들여 익힌 개념들이 쉽고 재미있게 서술되어 있어 막힘없이 읽을 수 있었다. 안광복 저자는 대한민국 1세대 철학 교사답게,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친절하고 알기 쉬운 예시와 술술 읽히는 편한 문장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각 사상마다 마지막에 ‘철학 화두’와 ‘더 읽어 볼 책’을 두어 능동적인 독서를 독려한 점도 마음에 들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적절한 도판 자료도 흥미를 돋우고 유연한 독서 활동을 돕는다.

간혹 이런 책들 가운데 정치적 성향을 눈에 띄게 드러내서 중립을 잃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 책은 지은이 스스로 머리말에 밝혔듯이 말을 아낀 흔적이 보인다. 자신의 생각과 닮았다 여겨지는 무리에 감정이입을 하며 글을 쓴 모습도 없었고, 오해를 살 만한 군더더기 설명도 없어 사상 입문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목차를 보면 눈에 익은 사상들이 많지만 내 눈을 끈 것은 단연 ‘해체주의’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빛에 가치를 두고 높이면 어둠은 부정적인 가치가 된다. 선을 그어 양쪽으로 나누어 차이를 만들면 차별이 생긴다. 그러나 빛은 어둠 없이 있을 수 없다. 해체주의는 한 사회가 훌륭하다고 여기는 가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차별과 폭력을 낳는 것을 비판한다. 이 사상은 사회의 다양한 부분에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면, 상표를 옷 안으로 두지 않고 밖에 내보이는 해체주의 패션이 그렇다. 실험적이고 도전 정신이 충만한 디자이너는 상표를 밖에 붙인 옷을 모델에게 입혀 무대를 활보케 한다.

언뜻 생각하면 허무주의 같기도 하고 명확한 기준이 없어 불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절대적인 잣대가 없다면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가치 있는 것이 된다. 상처를 받을 일도 사라진다. 해체주의가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바는 사회가 높게 보는 가치가 정말로 그런지 끊임없이 의심해 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레즈비언이나 게이처럼 소수의 성적 취향을 지닌 자들이 받는 차별이 있다. 해체주의는 우리에게 이런 문제들을 질문하고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다.

청소년을 위해 교과서에서 만나는 사상들을 명쾌하게 설명한 책이지만, 사회를 이해하고자 하는 어른들에게도 상당히 유익한 교양서다. 사상사나 중요 개념에 대해 대략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게도 좋은 자극이 되어 주었다. 항상 느끼지만 잘 만든 청소년 교양서는 이해가 쉽고 기본에 충실해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즐거움까지 덤으로 준다. 덕분에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윤리나 사회 수업에 염증을 느끼는 친구들이 읽으면 좋은 바탕이 될 책이니 적극 권한다.
 
글 l ghddbsk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