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귀신 선생님과 또 다른 세계


다정하고 살뜰한 사람이 되고 싶다

         
글 ✽  박소영(『어서오세요 베짱이도서관입니다』 저자 | 베짱이도서관 관장)
 
지난 몇 해 사이 우리에게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어떤 것도 내 뜻대로 해 나갈 수 없는 하루하루는 평범한 일상을 불안함으로 뒤흔들었다. 특히 보고 싶은 친구를 만날 수 없이 놀이터와 운동장을 빼앗긴 어린이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어쩌면 평생 간직할 좋은 추억을 만들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 것 아닐까. 얼굴보다 더 큰 마스크를 힘겹게 눌러쓴 어린이들을 볼 때마다 미안했다. 마음껏 숨 쉬고 실컷 뛰어 놀며 몸과 마음의 근육을 건강하게 키워야 할 어린이들에게서 소중한 일상을 얼른 돌려줘야 할 텐데, 싶어 조바심이 났다.

  지난 봄, 실외에서만이라도 답답한 마스크를 드디어 벗을 수 있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무려 세 해 만에 남동윤 작가의 신작 『귀신 선생님과 또 다른 세계』가 출간되었다는 소식도! 올해가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이라는데, 그의 만화를 고대하며 기다리던 어린이들에게 이보다 더한 선물이 또 있을까? 어린이들을 향한 미안한 마음에 보상하듯 나는 재빨리 책을 주문했다. 

  따끈따끈한 책이 도서관에 도착한 날, 때마침 놀러 온 열한 살 율이가 깜짝 놀라며 엄청 반가워했다. “우와! 작가님 책 나왔어요? 나 볼래요. 귀신 선생님 시리즈 진짜 재밌는데….” 율이를 따라온 이나는 남동윤 작가의 책이 처음이다. <귀신 선생님> 시리즈를 이미 알고 있다는 이유로 괜히 친구 앞에서 으쓱거리는 율이. 율이 곁에 바짝 붙어 책을 넘겨보던 이나는 책을 빌려간 뒤 작가님의 찐팬이 되어 돌아왔다. 등장인물들의 생생한 표정과 깨알 같은 재미를 주는 대사들은 물론, 빠져들 수밖에 없는 깊은 이야기의 세계를 아이는 온전히 경험했으리라. 

  좋은 이야기가 주는 힘은 얼마나 큰가. 어릴 적 내가 읽은 책들과 책을 읽고 마음에 남았던 어떤 울림들, 책을 덮고 펼쳐 보았던 상상의 시간들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사는 일이 때때로 버겁고 힘들 때 삶을 밀어갈 수 있는 힘은 크고 대단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작지만 소중한 기억의 샘물에서 살포시 길어 올리는 것 아닐까.

  미워할 수 없는 엽기발랄 귀신 선생님과 사랑스럽고 개성 넘치는 4학년 1반 어린이들의 모습을 통해 명랑하고 호기심 가득한 어린이들의 존재를 실감나게 그려 낸 작가의 첫 작품 『귀신선생님과 진짜 아이들』, 어린이들의 고민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귀를 기울이며 기똥차게 해결해 주고, 때론 한없는 다정함으로 어린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귀신 선생님과 고민 해결1, 2』, 좌충우돌 4학년 1반 개구쟁이 녀석들과 더불어 만화를 보는 이들을 홀린 듯 책 속으로 데려가 무섭고도 신기한 귀신 학교를 신나게 체험하게 하는 『귀신 선생님과 오싹오싹 귀신 학교』. 거기에 최근에 나온 신작 『귀신 선생님과 또 다른 세계』는 오래 기다린 만큼 배가 된 재미와 감동, 더욱 풍성한 이야기로 다시 우리를 찾아왔다. 만화를 보는 내내 나는 희망고문을 당하는 저금이가 되었다가 주인에게 버림받은 곰리자베스와 끼리코의 마음이 되었다가 하늘을 날고 싶은 우산이 되기도 했다. 그동안 내가 아름답게만 간직하던 추억 이면에 외롭고 슬픈 존재들이 있음을 뒤늦게 깨달은 시간이었다. 이제부터라도 작은 것들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함부로 여기지 않고 하나하나 귀하게 대할 수 있을까? 다정하고 살뜰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지금의 다짐을 나는 금방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럴 때면 남동윤 작가의 만화책을 다시 펼쳐 보면 되지 않을까. 

  <귀신 선생님> 시리즈가 처음 나왔을 무렵 네 살이던 ‘도서관 단골손님’ 율이는 이제 4학년이 되었다. 진짜 4학년 1반 어린이가 된 것이다. 재미와 감동이 잘 버무려진, 찰진 이야기밥 같은 남동윤의 만화를 보고 자라는 율이와 이나, 이 땅의 수많은 어린이들은 분명 적어도 나보다는 괜찮은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갈수록 각박하고 삭막해지는 세상이지만 그래서 더욱 남동윤 작가가 우리 곁에서 오래오래 만화를 그려 주기를 바란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소중한 것들을 잊지 않고 저마다 가슴속 어린이를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도록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지금처럼 다정하게 빛나는 얘기들을 계속계속 들려주면 참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