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랏차차, 내일을 향해 날갯짓 백만 번!

제9회 사계절문학상 수상작이 탄생했다. ‘홀수 해에는 당선작이 나오지 않는다’는 징크스를 보란 듯이 깨뜨리고 나타난 행운의 작품은『내 청춘, 시속 370㎞』. 바이크에 죽고 못 사는 열일곱 살 동준이의 매 길들이기 프로젝트를 유쾌하게 그려 낸 청소년소설이다. 안정적인 구성과 세련된 유머 감각, 탁월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이 작품에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손을 들어 주었다. 이에 이번 호 특집에서는『내 청춘, 시속 370㎞』로 제9회 사계절문학상을 수상한 이송현 작가를 만났다.
이송현 작가를 만나기로 한 날,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약속 시간 20분 전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발가락을 다쳐 조금 늦을지도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다친 발을 절뚝이며 빗속을 뚫고 올 그를 생각하니 걱정이되었다. 잠시 뒤 카페 문을 열고 그가 들어섰다. 오른발 엄지발가락에는 정말 붕대가 감겨 있었다. 방문에 발을 찧어 발톱이 빠졌단다. 그는 앉자마자 간밤에 일어난 비극에 대해 술술 풀어내기 시작했다. 당사자에겐 아찔한 사건이었을 테지만, 듣는 나는 배를 잡고 낄낄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발톱 빠진 이야기’로 30분 이상을 떠들 수 있는, 어떤 이야기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해 내는 천생 이야기꾼이었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혹시 예상은 했나?
전혀. 사실 응모한 사실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원고 보내고 바로 호주 여행을 다녀온 데다 이런저런 집안일로 정신이 없었다. 당선 통보 전화를 받고서야 알았다. 아참, 원고를 쓰는 동안 범상치 않은 꿈을 하나 꾸긴 했다. 원래 꿈을 잘 안 꾸는 편인데. 꿈에 멋진 뿔을 가진 사슴이 나왔다. 그냥 뿔이 아니라 한 그루 나무처럼 울창한 뿔이었다. 사슴이 슬슬 내 쪽으로 오더라. 겁은 났지만 의연한 척 쳐다봤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 내가 사슴 목을 잡고 나란히 앞을 바라봤다. 어머니한테 말했더니 사회적인 명성을 얻거나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꿈이라고 했다. 그땐 그냥 웃고 넘겼는데, 당선 소식을 듣고서야 그 꿈이 기억났다. 사실 기쁘면서도 슬펐다. 아, 배우자가 생길 꿈은 아니었구나.
 
 
상복이 참 많다. 마해송문학상과 신춘문예, 거기에 사계절문학상까지. 원래 운이 좋은 편인가?
그런 건 잘 모르겠다. 상을 받았다고 하루아침에 인생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공모전은 내가 글을 쓸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러고 보니 운이 좋은 것도 같다.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뒤 꼭 받고 싶었던 상을 다 받았으니까.
 
 
이력이 독특하다. 시트콤 구성 작가로 활동했다. 그것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지붕뚫고 하이킥>이라니!
정말 우연한 계기로 참여하게 됐다. 아는 언니가 내 원고 하나를 가지고 있었는데, 김병욱 피디가 시트콤 작가를 구한다기에 그 원고를 보냈다. 곧 그쪽에서 전화가 왔다. 인터뷰를 하러 갔는데 여러 사람을 만나보고 그 중 한 명만 뽑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별 기대 안 했다. 그때 나는 한창 수구에 빠져 있었는데, 경기 중에 상대편 어떤‘분’이 내 겨드랑이를 잡아뜯었다. 그래서 인터뷰 내내 손으로 겨드랑이를 만지작거렸더니, 왜 그러냐고 묻더라. 그래서 사실대로 다 얘기했다. 거기 있던 사람들 모두 빵 터졌다. 결국 겨드랑이 때문에 뽑힌 것 같다.
 
 
그 얘기 자체가 한 편의 시트콤인데?
내 일상이 좀 그런 편이다. 나는 인생을 대하드라마나 미니 시리즈처럼 살고 싶은데 맘대로 안 된다.
 
 
구성 작가를 한 경험이 작품 쓰는 데 도움이 됐나?
문학 작품을 쓰는 일과 그 일은 전혀 다르다. 전자가 아주 사적이고 정적인 작업이라면, 후자는 정반대다. 게다가 시트콤은 여러 사람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밤새 아이디어를 내고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서로 설득하고 협의하는 공동 작업에 가깝다. 나는 개인적으로 혼자 생각하고 쓰는 일에 만족감을 느낀다.
 
 
 
 
이제 본격적으로 작품이야기를 해보자. 간단히 정리하자면, ‘스피드를 사랑하는 고등학생 동준과 아직 제대로 날아 보지 못한 어린 보라매 보로의 좌충우돌 동거 이야기’쯤 될 것 같다. 매사냥에 빠져 가족은 나 몰라라 하는 매잡이 아버지와의 갈등과 화해가 소설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원고를 읽고 처음 든 생각은 ‘입담이 보통이 아닌데?’였다. 적지 않은 분량인데도 앉은자리에서 다 읽었다. 마치 작품에 등장하는 시티백을 탄 느낌이랄까.
이왕이면 로드스타로 해 주지.
 
그건 너무 인간미 없어 보이고. 아무튼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눠 보니 그런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겠다. 이야기를 참 맛깔나게 잘한다.
워낙 사람들과 이야기하길 좋아한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즐긴다. 솔직히 웃겨야 한다는 강박도 조금 있다. 고등학생 시절엔 도시락을 다 먹고 집에 간 적이 없다.
 
 
왜?
점심시간이건 쉬는 시간이건 이야기하느라 밥 먹을 틈이 없었다. 밥을 마저 먹으려고 하면 항상 점심시간 끝나는 종이 울렸다. 그 정도다.
 
 
 
그런 만담가의 기질은 집안 내력인가?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어머니가 참 재미있는 분이다. 사실 남동생도 개그맨 못지않다. 아버지도 나름의 유머를 가지고 계시고. 그런데 우리 가족은 서로를 비하하는 개그를 주로 구사한다. 이를테면…… 엄마가 연두색 옷을 입으면 그런다.“ 엄마, 꼭 애벌레같아.”
 
 
그런 대화 코드, 작품 읽으면서도 느꼈다. 특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여기 등장하는 아버지, 참 독특하다. 기존 청소년소설에서 만나기 힘든 캐릭터다. 어쩌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동준이 아니라 아버지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마해송문학상을 수상한 동화 『아빠가 나타났다!』 역시 아버지가 주인공이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의도가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아버지 캐릭터를 만드는 일이 즐겁고 편하다. 대학원 때 석사 논문 주제도 ‘80년대 부권 부재 상황의 소설’에 관한 거였다. 개인적으로 아버지와 친한 편이다. 길을 걸을 때 어깨동무도 하고, 뮤지컬도 자주 보러 다니고 그런다. 평소 아버지에 대한 애정, 신뢰 같은 것들이 자연스레 배어 나오는 것 같다.
 
 
아버지는 어떤 분인가?
소설 속 동준의 아버지와는 전혀 다르다. 사실 내가 지금까지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버지의 지원 때문이다. 딸이 글을 쓴다는 사실에 자부심이 대단하시다. 내가 원고를 쓰면 출력부터 제본, 응모할 때는 발송까지 모두 알아서 해 주신다. 난 쓰기만 하면 된다. 사계절문학상에도 아버지가 직접 내 주셨다. 그런데 결과는 물어 보지 않으신다. 딸에게 부담 주기 싫으신 거겠지.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응모해 준 원고들이 전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동준이는 바이크에 집착한다. 아니, 바람을 가르는 속도감에 집착한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스피드를 사랑하나? 바이크 실력은?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가 오토바이를 잘 타셨다. 멋쟁이셨지. 덕분에 나도 많이 탔다. 앞자리는 늘 내 차지였다. 냉면 먹으러 갈 때는 꼭 나를 앞에 태워 주셨다. 그때 평생 탈 오토바이는 다 탄 거 같다. 그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실제로 운전은 하지 못한다. 학교 다닐 때 친한 친구가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는데, 그걸 보니 배우고 싶은 마음이 달아나더라. 스피드? 물론 사랑하지. 딱 보면 모르겠나?
 
 
작가 이송현의 두 번째 청소년소설은 어떤 이야기일까? 너무 성급한 질문일까?
눈물 펑펑 쏟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를 써 보고 싶은 적도 있었다. 실제로 그런 글을 써 보기도 했고. 그런데 한 선생님이 진지하게 “이건 아닌 것 같다.”그러셨다. 예전에는 그게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선생님이 날 정확히 보신 거다. 재미없는 이야기는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 살기 힘들잖아? 내 이야기가 지루한 일상에 깨알 같은 웃음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두 번째 작품 역시 그런 바람을 품고 쓰지 않을까 싶다.
 
 
 
 
‘깨알 같은 웃음’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내 청춘, 시속 370㎞』에는 깨알 같은 웃음을 선사하는 조연 캐릭터들이 유난히 돋보인다. 양꿍이나 나예리 같은. 특히 양꿍이라는 캐릭터, 범상치 않다. 실제 모델이 있는지 궁금하다.
예전에 영화 시나리오 기획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다문화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서 취재도 하고 자료 조사도 열심히 했다. 그 일을 하면서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한번은 우리나라에 사는 필리핀 여성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녀가 그러더라. 자기는 밖에 나가면 절대 한국말 안 쓴다고. 마트에 갔는데 한국말을 쓰니까 시선이 곱지 않더란다. 외국인 노동자로 보고 무시한 거지. 그런데 영어를 하니 대접이 달라지더라고. 많이 부끄러웠다. 양꿍도 그때 만든 캐릭터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숫기도 없고 그럴 거 같은데, 실제론 전혀 안 그렇다. 그들은 스스로를 엄연한 한국인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비뚤어진 우리의 시선이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부지런히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쉴 새 없이 독자들에게 말을 건네는 작가. 이송현, 내 이름 석 자 박힌 책을 보면 “아, 재미있겠구나!” 그런 생각부터 들게 만드는 작가가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내 청춘, 시속 370㎞』를 읽게 될 독자들에게 한마디.
으랏차차! 내가 잘 쓰는 말이다. 편지나 메일을 쓸 때도 꼭 이 말을 마지막에 적어 넣는다. 으랏차차는 상대방에게 건네는 응원인 동시에 나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이다. 이 책도 그랬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는 힘내라는 응원이, 또 누군가에게는 잘될 거라는 주문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느새 비는 그쳐 있었다. 우리는 인터뷰를 마치고도 한참이나 더 수다를 떨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문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건 아주 작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소한 농담, 따듯한 눈빛, 힘내라는 쑥스러운 응원의 말 같은 것들. 이제 막 새로운 출발선에서 힘찬 날갯짓을 시작한 작가 이송현의 앞날에 으랏차차, 응원을 보낸다.
 
 
 
인터뷰 및 정리 · 김태형 (사계절출판사 아동청소년문학팀)
 
 
1318북리뷰 2011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