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에 불을 지고
- 508
• 지은이 : 김혜빈
• 가격 : 16,000원
• 책꼴/쪽수 :
130x205mm, 280쪽
• 펴낸날 : 2025-05-26
• ISBN : 979-11-6981-375-4 03810
• 십진분류 : 문학 > 한국문학 (810)
• 도서상태 : 정상
• 태그 : #화재사건 #미스터리 #추리 #진실 #현혹
저자소개
지은이 : 김혜빈
20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같은 해 ‘박화성소설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캐리어』 『그라이아이』, 소설집 『하지의 무능한 탐정들』(공저) 『SF 보다 Vol. 4 그림자』(공저) 등이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등단 직후 ‘박화성소설상’ 수상
“샤먼의 복화술사 같은 환상적 이야기꾼의 등장”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몰아치는 현혹!
소설 속 화재 사건을 파헤치는 당신을 따라붙는 목소리,
“그런데 불타버린 곳이 정말 소설뿐인가?”
김혜빈 작가는 20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해에 ‘박화성소설상’을 수상하며, “이야기를 지체 없이 시작하여 서두부터 독자를 끌어당기는 동시에, 장편이라는 긴 호흡을 책임감 있게 끌고 가는 신예”라는 평과 함께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번에 출간된 장편소설 『등에 불을 지고』 역시 인쇄소에서 벌어진 의문의 화재 사건 속으로 독자를 단숨에 끌어당긴다.
불타버린 자리에는 뼈대만 남은 인쇄소 건물과 사상자 그리고 그날 인쇄되었던 타다 만 신인 소설가의 첫 책뿐. 호연은 아버지가 한평생 일궈온 인쇄소에 남은 흔적들을 따라가며, 화재 사건의 진실에 다가간다. 그 과정에서 느닷없이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동창생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그사이 화재 사건의 사상자에 안타까움을 표하던 사람들은 어느 틈엔가 첫 책 출간이 미뤄진 소설가 유기영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는데. ‘그
소설이 불길을 데려왔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유기영은 도리어 유명세를 얻게 된다.
결말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쉴 새 없이 발목을 잡는 맥거핀의 향연, 무엇이 진실인지 다가가려는 순간 눈앞을 가로막는 불길! 그 속에서 불현듯 연기가 걷힌 자리에는 익숙한 사실만이 침묵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서 있는 땅과 소설의 배경이 과연 다른 곳일까? 외면을 먹고 자란 불씨는 이미 우리 발밑에 당도해 있음을 질문하는 소설.
“샤먼의 복화술사 같은 환상적 이야기꾼의 등장”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몰아치는 현혹!
소설 속 화재 사건을 파헤치는 당신을 따라붙는 목소리,
“그런데 불타버린 곳이 정말 소설뿐인가?”
김혜빈 작가는 20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해에 ‘박화성소설상’을 수상하며, “이야기를 지체 없이 시작하여 서두부터 독자를 끌어당기는 동시에, 장편이라는 긴 호흡을 책임감 있게 끌고 가는 신예”라는 평과 함께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번에 출간된 장편소설 『등에 불을 지고』 역시 인쇄소에서 벌어진 의문의 화재 사건 속으로 독자를 단숨에 끌어당긴다.
불타버린 자리에는 뼈대만 남은 인쇄소 건물과 사상자 그리고 그날 인쇄되었던 타다 만 신인 소설가의 첫 책뿐. 호연은 아버지가 한평생 일궈온 인쇄소에 남은 흔적들을 따라가며, 화재 사건의 진실에 다가간다. 그 과정에서 느닷없이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동창생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그사이 화재 사건의 사상자에 안타까움을 표하던 사람들은 어느 틈엔가 첫 책 출간이 미뤄진 소설가 유기영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는데. ‘그
소설이 불길을 데려왔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유기영은 도리어 유명세를 얻게 된다.
결말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쉴 새 없이 발목을 잡는 맥거핀의 향연, 무엇이 진실인지 다가가려는 순간 눈앞을 가로막는 불길! 그 속에서 불현듯 연기가 걷힌 자리에는 익숙한 사실만이 침묵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서 있는 땅과 소설의 배경이 과연 다른 곳일까? 외면을 먹고 자란 불씨는 이미 우리 발밑에 당도해 있음을 질문하는 소설.
목차
1부
2부
3부
작가의 말
2부
3부
작가의 말
편집자 추천글
♦ 추천사
사람들은 항상 눈앞에 당장 펼쳐지는 것만 본다. 내일이 있을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듯 항상 현재만을 바라본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삶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런 삶의 시간들에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있다. 이 소설에서 불은 실제의 삶을 위태롭게 하는 가장 큰 위협이다. 이 위협으로 인물들은 가족을 잃거나, 삶이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이 균열은 묘하게도 인물들이 여태 잊고 있었거나, 간과하고 있던 어떤 인물을 떠올리게 하고, 그 인물이 말하지 못한 진실로 향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눈앞의 이 실질적인 위협은 한편으로는 ‘너머의 무언가’를 보지 못하게 하는, 끝없이 번져나가는 인간의 불안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 다다라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누구나 삶의 균열을 가지고 있고 누군가는 그걸 잊고 살길 바라고, 누군가는 그것마저 기억해주길 바란다. 우리는 우리의 불안을 넘어서 혹은 안고서 그 ‘너머’의 무언가를 기꺼이 볼 수 있을까. 이 소설은 기꺼이까지는 아니더라도 함께 응시해보자고 말하는 것 같다. 저 불(안) 너머의 세계를. _ 한정현(소설가)
인쇄소에서 벌어진 의문의 화재 사건으로
첫 책이 불타버린 신인 소설가가 유명세를 얻게 되고,
그의 책이 불길을 데려왔다는 소문이 퍼지는데!
김혜빈 작가는 『그라이아이』로 박화성소설상을 수상할 당시 구병모, 이기호 작가로부터 “지체 없이 본론으로 들어가며 1부에서 시선을 빼앗기게” 만드는 신인, 우찬제 문학평론가로부터는 “샤먼의 복화술사 같은 환상적 이야기꾼의 등장”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번 신작 『등에 불을 지고』는 앞선 장점들이 극대화된 작품으로 장편을 책임감 있게 끌고 가는 작가, 김혜빈의 등장을 다시금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소설은 돌연 인쇄소에서 벌어진 화재 사건으로 시작한다. 한평생 아버지가 일궈온 자리에는 뼈대만 남은 인쇄소 건물과 사상자 그리고 그날 인쇄되었던 타다 만 신인 소설가의 첫 책만이 남아 있다. 경찰이 화재의 원인을 찾는 사이, 화재 사건을 다룬 기사들 사이로 사람들의 추측이 점화된다. 화재 현장에 주목하던 기자들은 점점 인쇄소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관계나 첫 책 출간이 미뤄진 신인 소설가의 사생활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사람들은 화재와는 크게 관련이 없는, 자극적인 소재에 저마다의 추측과 일말의 가능성을 더해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그 과정에서 ‘그 소설이 불길을 데려왔다’는 소문이 퍼지고, 사람들은 ‘도대체 그 소설이 무엇이기에?’ 궁금해하는 지경에 이른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소설가 유기영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을 찾거나, 읽어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감상과 견해가 오르내린다. 그 과정에서 유기영은 자신의 책에 대해, 화재 사건에 대해 적당한 흥밋거리와 궁금증이라는 불쏘시개를 조용히, 그리고 끊임없이 제공한다.
혼란 속 실체를 올곧게 바라보려는 시도
그 속에서 작가가 길어 올린 우리 사회의 민낯
무엇이 우리의 눈을 가로막고 있는가?
화재 사건의 초점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동안, 호연은 깨어나는 것이 과연 당사자에게 좋은 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다친 아버지의 침상을 지킨다. 아버지와 인쇄소에 대한 근거 없는 말들이 재생산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호연은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정말 저 말들이 사실은 아닐지’ 의심하고픈 유혹에 휩싸인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된 아버지의 사생활은 호연의 마음에 일어나는 강렬한 거부감만큼이나 짙은 의심의 씨앗을 심는다. 하지만 사실을 이야기해줄 아버지는 말이 없고, 호연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불확실한 상상의 한가운데 서 있게 된다.
그런데 만약 아버지가 깨어나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호연은 그것을 믿을 수 있을까? 저마다의 추측을 더해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과 아버지에 대한 호연의 믿음은 무엇이 다를까? 피부의 대부분이 손상된 채로 막 구급차에 실린 아버지를 보았을 때, 호연은 물었다. “이 사람이 정말 저희 아버지가 맞나요?” 눈앞의 사람에게는 호연이 익숙하게 기억하는 아버지의 얼굴과 목소리, 체취, 감촉 그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구급대원은 동생에게 아버지의 바지와 신발을 확인했다고 했다. 그제야 호연은 낡은 신발에 난 낯익은 찢긴 자국을 발견한다. 그 작은 자국 하나로, 아버지가 아니었던 사람이 일순간 아버지가 된다.
호연을 둘러싼 소설 속 환경은 현실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매일 원하든 원치 않든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에스엔에스, 기사 들 속에 노출되어 있다. 그 정보들은 우리를 사건의 본질로 안내하기도, 끝없이 먼 곳으로 데려다놓기도 한다. 사실과 추측이 묘하게 뒤섞인 정보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다. 소설의 인물들은 현실과 매우 유사한 환경 속에 놓여 독자에게 몇 가지 예시로써 다가간다. 현혹을 생산하려 드는 인물 안에서도 적극적인 유형과 고민의 경계에 걸친 유형이 있고, 본질에 다가가려는 인물 안에서도 끝내 현혹되지 않는 유형과 이미 현혹되어 그것이 본질이라 믿는 유형이 나온다. 소설에서 이러한 유형을 구분하는 과정은, 책장을 덮은 뒤 마주한 현실에서 현혹과 본질을 가려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줄 것이다. 가장 먼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자신은 현혹되지 않았다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말하고 싶은 것을 믿는다.
이건 그냥 책이 아닌가?
지금 우리 발밑이 불타고 있잖아.”
독자들은 멈출 새 없이 흘러가는 눈앞의 사건들을 따라가는 동안 자연히 익숙한 사실 하나를 잊게 된다. 바로 이 소설의 배경이 비무장지대 안에 위치한 ‘녹우리’라는 마을인 점이다. 억 단위의 손실을 입힌 화재 사건에 둘러싼 진실과 사라진 동창생의 행적을 따라가는 일과 자꾸만 불씨를 일으킨다고 제보가 들어오는 유기영의 책에 대한 소문 들을 쫓아가며 우리는 자연히 궁금해진다. 과연 소설이 어떻게 끝을 맺을까? 이 사건들의 진실은 무엇일까?
‘그런데 이건 그냥 책이 아닌가?’ 많은 비밀을 지닌 듯 보이는 사건과 ‘녹우리’라는 마을이 현실에도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 가운데 우리가 무엇에 더 흥미를 가지는지 알아차리는 순간, 이 소설은 새롭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야기를 따라가던 사람들은 불을 보는 순간 알아차린다. 곧 이야기가 끝나겠군. 그런데 뭘 태우는 거지? (…) 그러나 불은 단순하다. 태울 무언가가 없다면 꺼진다. 불을 키우는 건 불이 아니다. 불은 숨결, 볏짚, 증오, 사랑을 디디고 일어난다.”(76쪽)
발화점을 일으키는 온갖 이야기들을 의심하게 만드는 이 소설의 작동원리 역시 소설이라는 장르 안에서 발생한다. 작가는 소설 속 소설 『부름』을 통해 해체하고자 한 ‘이야기의 속성’을 ‘소설’과 ‘책’으로 비롯되는 이야기 자신을 앞세워 전한다. “이야기가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건 환상이야. 강간하고, 때리고, 총질하는 세상은 바뀌지 않아. (…) 더 이상의 기록은 무의미해. 우리 발밑이 불타고 있잖아.”(126쪽) 그럼에도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가닿으려 한 작가의 이 기록은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보다 소설이,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재현, 그것은 오히려 불가능하기를 바라는 힘이다.”(188쪽) 그 때문에 이 소설은 끝으로 갈수록 더 간절하게 자신의 작동원리가 재현되지 않기를 역설한다.
연기에 현혹되지 말고 이미 당도해 있는 불타는 발밑을 바로 보자고, 이 소설은 스스로를 제물 삼아 우리 곁에 당도했다.
“이번에는 정말, 정말로 큰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이 같은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소설과 예술이 작아지고,
내가 작아지는 시간을 견디다가 시간이 흐른 지금에는 어쩌면 그날의 감정들이 이 소설을 견인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도발과 포격과 선전과 대응 사이에 인간이 자고, 먹고, 밭을 갈고, 내일을 갈구하거나 망치고 있지만 그사
이에도 소설은 생의 자각을 향해 나아갑니다.” (작가의 말)
♦ 책 속으로
사람들은 말하고 싶은 걸 믿는다.
그 누구도 자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호수는 눈을 감았다. 불이 꺼졌는데도 그을음의 냄새가 느껴졌다. 그것은 상상의 냄새, 앞으로 자신의 뒤를 계속 따라붙을 백일몽의 향이었다. 62-63쪽
희슬은 그들을 이해해서 웃은 게 아니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웃었던 것이다. 희슬은 조금 독특하고 천재적인, 그리고 그만큼 평범하기 짝이 없는 스물두 살의 대학생이었다. 68쪽
많은 이야기가 불을 지르기 위해 내달린다. (…) 불은 쉽다. 불이 닿는 곳은 모두 재로 변한다. 악당도, 허접한 플롯도 불이 닿으면 저항 없이 타버린다.
그러나 불은 단순한다. 태울 무언가가 없다면 꺼진다. 불을 키우는 건 불이 아니다. 불은 숨결, 볏짚, 증오, 사랑을 디디고 일어난다. 75-76쪽
너, 자기 암시라는 거 알아?
유기영은 희슬의 뺨을, 비밀이 많아 보이는 입술을 응시했다. 한 번도 부딪쳐본 적 없던 세계와 격돌하기 직전이었다. 98쪽
꿈이나 미래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아니라, 기도가 아니라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미래의 불안을 씻어낼 열쇠라고. 100쪽
우리 엄마는 식어가는 다리미를 자기 배에 대는 사람이야. 남은 열이 아까워서. (…)
그 상처를 기억해. 너무 뜨거운 다리미를 대느라 배에 남은 화상 자국을. 나한테도 비슷한 자리에 화상 흉터가 있어. 엄마한테서 옮은 거지. 아직도 나는 잔열이 남은 다리미를 보면 무의식중에 뜨거운 쇠판을 배에다가 대고 있어. 그런 게 삶이라고 생각해. 원하지 않아도 하게 되는 일들 말이야. 103쪽
이야기가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건 환상이야. 강간하고, 때리고, 총질해대는 세상은 바뀌지 않아. 매력적인 연쇄 살인마에게 팬페이지가 생기고, 누군가는 전쟁을 일으켜 돈을 벌어들이지. 이제 이야기에 열광할 시간은 없어. 더 이상의 기록은 무의미해. 우리 발밑이 불타고 있잖아. 126쪽
강 아래서 잠자고 있던 건 토사도 핏물도 아니었다. 이곳이 잊혀서는 안 된다는 믿음, 더 이상 가만있지 않겠다는 의지가 불이 되어 물 밑에서 넘쳐흐르고 있었다. 213쪽
사람들은 항상 눈앞에 당장 펼쳐지는 것만 본다. 내일이 있을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듯 항상 현재만을 바라본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삶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런 삶의 시간들에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있다. 이 소설에서 불은 실제의 삶을 위태롭게 하는 가장 큰 위협이다. 이 위협으로 인물들은 가족을 잃거나, 삶이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이 균열은 묘하게도 인물들이 여태 잊고 있었거나, 간과하고 있던 어떤 인물을 떠올리게 하고, 그 인물이 말하지 못한 진실로 향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눈앞의 이 실질적인 위협은 한편으로는 ‘너머의 무언가’를 보지 못하게 하는, 끝없이 번져나가는 인간의 불안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 다다라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누구나 삶의 균열을 가지고 있고 누군가는 그걸 잊고 살길 바라고, 누군가는 그것마저 기억해주길 바란다. 우리는 우리의 불안을 넘어서 혹은 안고서 그 ‘너머’의 무언가를 기꺼이 볼 수 있을까. 이 소설은 기꺼이까지는 아니더라도 함께 응시해보자고 말하는 것 같다. 저 불(안) 너머의 세계를. _ 한정현(소설가)
인쇄소에서 벌어진 의문의 화재 사건으로
첫 책이 불타버린 신인 소설가가 유명세를 얻게 되고,
그의 책이 불길을 데려왔다는 소문이 퍼지는데!
김혜빈 작가는 『그라이아이』로 박화성소설상을 수상할 당시 구병모, 이기호 작가로부터 “지체 없이 본론으로 들어가며 1부에서 시선을 빼앗기게” 만드는 신인, 우찬제 문학평론가로부터는 “샤먼의 복화술사 같은 환상적 이야기꾼의 등장”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번 신작 『등에 불을 지고』는 앞선 장점들이 극대화된 작품으로 장편을 책임감 있게 끌고 가는 작가, 김혜빈의 등장을 다시금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소설은 돌연 인쇄소에서 벌어진 화재 사건으로 시작한다. 한평생 아버지가 일궈온 자리에는 뼈대만 남은 인쇄소 건물과 사상자 그리고 그날 인쇄되었던 타다 만 신인 소설가의 첫 책만이 남아 있다. 경찰이 화재의 원인을 찾는 사이, 화재 사건을 다룬 기사들 사이로 사람들의 추측이 점화된다. 화재 현장에 주목하던 기자들은 점점 인쇄소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관계나 첫 책 출간이 미뤄진 신인 소설가의 사생활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사람들은 화재와는 크게 관련이 없는, 자극적인 소재에 저마다의 추측과 일말의 가능성을 더해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그 과정에서 ‘그 소설이 불길을 데려왔다’는 소문이 퍼지고, 사람들은 ‘도대체 그 소설이 무엇이기에?’ 궁금해하는 지경에 이른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소설가 유기영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을 찾거나, 읽어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감상과 견해가 오르내린다. 그 과정에서 유기영은 자신의 책에 대해, 화재 사건에 대해 적당한 흥밋거리와 궁금증이라는 불쏘시개를 조용히, 그리고 끊임없이 제공한다.
혼란 속 실체를 올곧게 바라보려는 시도
그 속에서 작가가 길어 올린 우리 사회의 민낯
무엇이 우리의 눈을 가로막고 있는가?
화재 사건의 초점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동안, 호연은 깨어나는 것이 과연 당사자에게 좋은 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다친 아버지의 침상을 지킨다. 아버지와 인쇄소에 대한 근거 없는 말들이 재생산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호연은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정말 저 말들이 사실은 아닐지’ 의심하고픈 유혹에 휩싸인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된 아버지의 사생활은 호연의 마음에 일어나는 강렬한 거부감만큼이나 짙은 의심의 씨앗을 심는다. 하지만 사실을 이야기해줄 아버지는 말이 없고, 호연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불확실한 상상의 한가운데 서 있게 된다.
그런데 만약 아버지가 깨어나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호연은 그것을 믿을 수 있을까? 저마다의 추측을 더해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과 아버지에 대한 호연의 믿음은 무엇이 다를까? 피부의 대부분이 손상된 채로 막 구급차에 실린 아버지를 보았을 때, 호연은 물었다. “이 사람이 정말 저희 아버지가 맞나요?” 눈앞의 사람에게는 호연이 익숙하게 기억하는 아버지의 얼굴과 목소리, 체취, 감촉 그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구급대원은 동생에게 아버지의 바지와 신발을 확인했다고 했다. 그제야 호연은 낡은 신발에 난 낯익은 찢긴 자국을 발견한다. 그 작은 자국 하나로, 아버지가 아니었던 사람이 일순간 아버지가 된다.
호연을 둘러싼 소설 속 환경은 현실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매일 원하든 원치 않든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에스엔에스, 기사 들 속에 노출되어 있다. 그 정보들은 우리를 사건의 본질로 안내하기도, 끝없이 먼 곳으로 데려다놓기도 한다. 사실과 추측이 묘하게 뒤섞인 정보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다. 소설의 인물들은 현실과 매우 유사한 환경 속에 놓여 독자에게 몇 가지 예시로써 다가간다. 현혹을 생산하려 드는 인물 안에서도 적극적인 유형과 고민의 경계에 걸친 유형이 있고, 본질에 다가가려는 인물 안에서도 끝내 현혹되지 않는 유형과 이미 현혹되어 그것이 본질이라 믿는 유형이 나온다. 소설에서 이러한 유형을 구분하는 과정은, 책장을 덮은 뒤 마주한 현실에서 현혹과 본질을 가려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줄 것이다. 가장 먼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자신은 현혹되지 않았다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말하고 싶은 것을 믿는다.
이건 그냥 책이 아닌가?
지금 우리 발밑이 불타고 있잖아.”
독자들은 멈출 새 없이 흘러가는 눈앞의 사건들을 따라가는 동안 자연히 익숙한 사실 하나를 잊게 된다. 바로 이 소설의 배경이 비무장지대 안에 위치한 ‘녹우리’라는 마을인 점이다. 억 단위의 손실을 입힌 화재 사건에 둘러싼 진실과 사라진 동창생의 행적을 따라가는 일과 자꾸만 불씨를 일으킨다고 제보가 들어오는 유기영의 책에 대한 소문 들을 쫓아가며 우리는 자연히 궁금해진다. 과연 소설이 어떻게 끝을 맺을까? 이 사건들의 진실은 무엇일까?
‘그런데 이건 그냥 책이 아닌가?’ 많은 비밀을 지닌 듯 보이는 사건과 ‘녹우리’라는 마을이 현실에도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 가운데 우리가 무엇에 더 흥미를 가지는지 알아차리는 순간, 이 소설은 새롭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야기를 따라가던 사람들은 불을 보는 순간 알아차린다. 곧 이야기가 끝나겠군. 그런데 뭘 태우는 거지? (…) 그러나 불은 단순하다. 태울 무언가가 없다면 꺼진다. 불을 키우는 건 불이 아니다. 불은 숨결, 볏짚, 증오, 사랑을 디디고 일어난다.”(76쪽)
발화점을 일으키는 온갖 이야기들을 의심하게 만드는 이 소설의 작동원리 역시 소설이라는 장르 안에서 발생한다. 작가는 소설 속 소설 『부름』을 통해 해체하고자 한 ‘이야기의 속성’을 ‘소설’과 ‘책’으로 비롯되는 이야기 자신을 앞세워 전한다. “이야기가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건 환상이야. 강간하고, 때리고, 총질하는 세상은 바뀌지 않아. (…) 더 이상의 기록은 무의미해. 우리 발밑이 불타고 있잖아.”(126쪽) 그럼에도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가닿으려 한 작가의 이 기록은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보다 소설이,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재현, 그것은 오히려 불가능하기를 바라는 힘이다.”(188쪽) 그 때문에 이 소설은 끝으로 갈수록 더 간절하게 자신의 작동원리가 재현되지 않기를 역설한다.
연기에 현혹되지 말고 이미 당도해 있는 불타는 발밑을 바로 보자고, 이 소설은 스스로를 제물 삼아 우리 곁에 당도했다.
“이번에는 정말, 정말로 큰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이 같은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소설과 예술이 작아지고,
내가 작아지는 시간을 견디다가 시간이 흐른 지금에는 어쩌면 그날의 감정들이 이 소설을 견인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도발과 포격과 선전과 대응 사이에 인간이 자고, 먹고, 밭을 갈고, 내일을 갈구하거나 망치고 있지만 그사
이에도 소설은 생의 자각을 향해 나아갑니다.” (작가의 말)
♦ 책 속으로
사람들은 말하고 싶은 걸 믿는다.
그 누구도 자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호수는 눈을 감았다. 불이 꺼졌는데도 그을음의 냄새가 느껴졌다. 그것은 상상의 냄새, 앞으로 자신의 뒤를 계속 따라붙을 백일몽의 향이었다. 62-63쪽
희슬은 그들을 이해해서 웃은 게 아니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웃었던 것이다. 희슬은 조금 독특하고 천재적인, 그리고 그만큼 평범하기 짝이 없는 스물두 살의 대학생이었다. 68쪽
많은 이야기가 불을 지르기 위해 내달린다. (…) 불은 쉽다. 불이 닿는 곳은 모두 재로 변한다. 악당도, 허접한 플롯도 불이 닿으면 저항 없이 타버린다.
그러나 불은 단순한다. 태울 무언가가 없다면 꺼진다. 불을 키우는 건 불이 아니다. 불은 숨결, 볏짚, 증오, 사랑을 디디고 일어난다. 75-76쪽
너, 자기 암시라는 거 알아?
유기영은 희슬의 뺨을, 비밀이 많아 보이는 입술을 응시했다. 한 번도 부딪쳐본 적 없던 세계와 격돌하기 직전이었다. 98쪽
꿈이나 미래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아니라, 기도가 아니라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미래의 불안을 씻어낼 열쇠라고. 100쪽
우리 엄마는 식어가는 다리미를 자기 배에 대는 사람이야. 남은 열이 아까워서. (…)
그 상처를 기억해. 너무 뜨거운 다리미를 대느라 배에 남은 화상 자국을. 나한테도 비슷한 자리에 화상 흉터가 있어. 엄마한테서 옮은 거지. 아직도 나는 잔열이 남은 다리미를 보면 무의식중에 뜨거운 쇠판을 배에다가 대고 있어. 그런 게 삶이라고 생각해. 원하지 않아도 하게 되는 일들 말이야. 103쪽
이야기가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건 환상이야. 강간하고, 때리고, 총질해대는 세상은 바뀌지 않아. 매력적인 연쇄 살인마에게 팬페이지가 생기고, 누군가는 전쟁을 일으켜 돈을 벌어들이지. 이제 이야기에 열광할 시간은 없어. 더 이상의 기록은 무의미해. 우리 발밑이 불타고 있잖아. 126쪽
강 아래서 잠자고 있던 건 토사도 핏물도 아니었다. 이곳이 잊혀서는 안 된다는 믿음, 더 이상 가만있지 않겠다는 의지가 불이 되어 물 밑에서 넘쳐흐르고 있었다. 21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