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테러
- 519
• 지은이 : 브래디 미카코(Brady Mikako)
• 옮긴이 : 노수경
• 가격 : 16,000원
• 책꼴/쪽수 :
128x188mm, 324쪽
• 펴낸날 : 2021-05-14
• ISBN : 979-11-6094-727-4
• 십진분류 : 사회과학 > 사회과학 (300)
• 태그 : #여성사 #아나키스트 #서프러제트 #아일랜드독립운동
저자소개
지은이 : 브래디 미카코(Brady Mikako)
보육사, 작가, 칼럼니스트.
1965년 일본 후쿠오카현 출생. 빈곤 가정 출신으로 펑크 음악에 빠져 존 라이든(펑크록 밴드 섹스 피스톨스의 보컬)에게 큰 감화를 받았다. 후쿠오카현립슈유칸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상경했다가 영국으로 건너갔다. 런던과 더블린을 전전하다 무일푼이 되어 일본으로 돌아왔지만, 1996년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지금까지 20년 넘게 살고 있다. 런던의 일본계 기업에서 몇 년간 일하다 프리랜서로 전향해 번역과 저술 활동을 해왔다. 보육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탁아소와 어린이집에서 일하며 ‘반反긴축’의 입장에 서게 되었다. 문학평론가 구리하라 유이치로는 일본의 소위 리버럴한 교양인들이 ‘반긴축’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게 된 것은 그녀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책 『아이들의 계급투쟁』으로 2017년 제16회 신초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고, 2018년 오야 소이치 기념 일본 논픽션 대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지은 책으로 『꽃의 생명은 No Future』, 『아나키즘 인 더 UK-무너진 영국과 펑크 보육사 분투기』, 『더 레프트-UK 좌파 명사 열전』, 『Europe Calling-땅바닥에서 보내는 정치학 보고서』, 『THIS IS JAPAN-영국 보육사가 본 일본』, 『지금 모리시를 듣는다는 것은』, 『노동자 계급의 반란-땅바닥에서 본 영국의 EU 탈퇴』, 『여성들의 테러』 등이 있다.
1965년 일본 후쿠오카현 출생. 빈곤 가정 출신으로 펑크 음악에 빠져 존 라이든(펑크록 밴드 섹스 피스톨스의 보컬)에게 큰 감화를 받았다. 후쿠오카현립슈유칸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상경했다가 영국으로 건너갔다. 런던과 더블린을 전전하다 무일푼이 되어 일본으로 돌아왔지만, 1996년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지금까지 20년 넘게 살고 있다. 런던의 일본계 기업에서 몇 년간 일하다 프리랜서로 전향해 번역과 저술 활동을 해왔다. 보육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탁아소와 어린이집에서 일하며 ‘반反긴축’의 입장에 서게 되었다. 문학평론가 구리하라 유이치로는 일본의 소위 리버럴한 교양인들이 ‘반긴축’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게 된 것은 그녀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책 『아이들의 계급투쟁』으로 2017년 제16회 신초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고, 2018년 오야 소이치 기념 일본 논픽션 대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지은 책으로 『꽃의 생명은 No Future』, 『아나키즘 인 더 UK-무너진 영국과 펑크 보육사 분투기』, 『더 레프트-UK 좌파 명사 열전』, 『Europe Calling-땅바닥에서 보내는 정치학 보고서』, 『THIS IS JAPAN-영국 보육사가 본 일본』, 『지금 모리시를 듣는다는 것은』, 『노동자 계급의 반란-땅바닥에서 본 영국의 EU 탈퇴』, 『여성들의 테러』 등이 있다.
옮긴이 : 노수경
197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에서 생물학과 여성학을, 도쿄대에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도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지금은 도쿄 근교의 작은 도시에서 육아와 일한번역을 하고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아이들의 계급투쟁』,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를 통해 복지제도가 축소된 사회의 밑바닥에서 빈곤과 차별, 혐오와 폭력에 삶이 무너져 내린 사람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그렸던 브래디 미카코가 이번에는 100년 전 개인의, 특히 여성의 존엄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 맞서 맹렬히 싸웠던 세 여성의 삶을 교차해 서술했다. 식민지 조선과 일본 제국주의 사이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삶과 사상을 지키려 했던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국왕의 말 앞으로 뛰어들었던 여성 참정권 운동가(서프러제트) 에밀리 데이비슨,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부활절 봉기에서 저격수로 활약했던 마거릿 스키니더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 세 사람은 힘없는 자들을 착취하고 각성한 이들을 짓밟던 거대 권력을 상대로 죽음마저 불사하며 저항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 영국, 아일랜드에서 각자의 싸움을 했던 세 사람의 이야기는 브래디 미카코의 박력 있는 문체와 만나 마치 바다와 대륙을 뛰어넘어 공동 투쟁을 벌이는 것과도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서로의 존재를 전혀 몰랐지만 이들의 분투가 하나의 싸움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싸우는 사람 옆에는 늘 또 다른 싸우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싸우는 사람 뒤에는 늘 또 다른 싸우는 사람이 온다. 자신이 산산이 부서져 사라지더라도 뒤에 올 신세계의 여성들이 다른 인생을 산다면, 그것으로 좋다고 생각했던 100년 전의 세 여성이 홀로 외롭게 싸우는 오늘의 여성들을 큰 소리로 부르고 있다.
이들 세 사람은 힘없는 자들을 착취하고 각성한 이들을 짓밟던 거대 권력을 상대로 죽음마저 불사하며 저항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 영국, 아일랜드에서 각자의 싸움을 했던 세 사람의 이야기는 브래디 미카코의 박력 있는 문체와 만나 마치 바다와 대륙을 뛰어넘어 공동 투쟁을 벌이는 것과도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서로의 존재를 전혀 몰랐지만 이들의 분투가 하나의 싸움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싸우는 사람 옆에는 늘 또 다른 싸우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싸우는 사람 뒤에는 늘 또 다른 싸우는 사람이 온다. 자신이 산산이 부서져 사라지더라도 뒤에 올 신세계의 여성들이 다른 인생을 산다면, 그것으로 좋다고 생각했던 100년 전의 세 여성이 홀로 외롭게 싸우는 오늘의 여성들을 큰 소리로 부르고 있다.
목차
가네코 후미코
에밀리 데이비슨
마거릿 스키니더
여자들이 부른다 – 후기를 대신하여
주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연보
에밀리 데이비슨
마거릿 스키니더
여자들이 부른다 – 후기를 대신하여
주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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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페이지를 넘기다 자꾸만 멈추게 된다. 어떤 땅이든 여성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곳이었다는 데 화가 나고 슬퍼서, 그럼에도 거기에 끝까지 지지 않으려는 여성들이 있었다는 데 가슴이 벅차올라서다. 이 책은 내가 나이기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세상과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에 관한 기록이다. 기를 쓰고 한 명의 인간으로 존재하려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다. 세상이 나의 목소리에 잠깐이라도 귀 기울이게 하기 위해 과격해져야만 했던 여성들의 역사다. 오늘날 한국을 사는 여성인 내가 수많은 여성들의 분투를 딛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나는 나로 살기 위해 무엇을 부수고 부정할 것인지 생각한다. 이 책을 더디게 읽는 일, 그러면서 꼼꼼하게 화내고 고민하는 일은 과거에 살았고 현재에 살고 있으며 미래에 살게 될 여성들에 대한 자매애를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_ 황효진, 팟캐스트 [시스터후드] 진행자
자매애는 강한가? 살아가며 마주치는 사건들 앞에서 종종 멈추어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책은 이 묵직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 그 누구와도,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는 것으로 내가 사는 세계를 바꾸어간 여성들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연결된다.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여성들을 모아 연결할 때, 이들의 닮은 영혼이 보인다. 싸우고 투쟁하고 세계와 불화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지금 홀로인 여성들의 이야기도 과거로부터 미래까지 그렇게 연결될 것이다. 홀로 빛나는 별처럼 보였던 외로운 여성들의 싸움은 이어져 새로운 별자리가 된다. 나는 앞으로도 또 다른 별과 이어져 끊임없이 뻗어 나갈 이 별자리의 이름을 ‘테러하는 여자들’이라고 붙이겠다.
_ 윤이나, 팟캐스트 [시스터후드] 진행자
출간 의의
“우리의 적은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100년 전, 바다와 대륙을 뛰어넘어 함께 싸운
과격한 여자들의 분투와 산화
이 책은 본문을 몇 개의 부나 장으로 나누고, 각각에 소제목을 붙이는 일반적인 단행본과는 다른 구성을 취한다. 가네코 후미코, 에밀리 데이비슨, 마거릿 스키니더 세 인물의 이야기가 교대로 등장하되, 앞사람 이야기의 마지막 구절을 다음 사람 이야기의 첫 문장이 넘겨받아 마치 끝말잇기를 하듯 전개된다. 예를 들면 “눈동자 깊은 곳에 검은 불꽃을 품은 아이는 뚜벅뚜벅 땅바닥을 밟으며 썩은 여자들이 사는 지옥의 집으로 돌아갔다”라는 문장으로 끝난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를 “지옥이란, 틀림없이 바로 여기다”라며 에밀리 데이비슨의 이야기가 넘겨받는 식이다. 저자 브래디 미카코는 한 번도 겹친 적 없는 세 여성의 삶을 부단히 이어 붙이며, 이들이 결국 같은 얼굴의 적을 향해 싸웠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그 적이란 바로 국가, 민족, 전통, 신분, 도덕, 제도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지배 권력이다. 또한 고귀한 사람과 열등한 사람이 따로 있다고 말하는 공고한 사회 구조다. 기존의 권력과 사회 구조에서 이들은 ‘자격을 얻지 못한 사람’이었다. 무호적자였던 후미코는 학대에 가까운 유년을 보낸 뒤 정해진 거처 없이 사회 밑바닥을 떠돌았고, 유복한 사업가와 하녀 사이에서 태어난 에밀리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치적 권리를 얻지 못했으며, 스코틀랜드에서 아일랜드인 부부의 딸로 태어난 마거릿은 영국 통치하에서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던 아일랜드를 위해 총을 들었지만 처참히 실패했다. 이들로서는 어차피 경계 바깥에 있고, 자격 없는 인생이라면 장렬히 싸우다 부서진다 해도 아쉬울 게 없었다.
‘무자격자’를 얕보지 마라. 나의 출생은 데이터에 들어가지 않았다. 탈진실post-truth이란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사실fact 이전에 존재한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나를 그 누구도 지배할 수 없으리라. - 15쪽
시켜도 하지 말라고. 기대를 해도 배신하란 말이야. 예속의 사슬을 참으로 끊을 수 있는 사람은 주인이 아니야. 노예뿐이라고. - 145~146쪽
브래디 미카코가 이들의 삶을 연결해 100년 후 오늘로 가져온 것은 ‘자격’을 얻기 위한 투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별, 인종, 계급, 정체성, 국적, 장애 등을 이유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동등한 자격과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싸움은 100년 전, 혹은 그 전후의 많은 불화와 분투를 딛고 앞으로 나아간다. 서로의 얼굴도 존재도 몰랐던 세 여성이 동시대에 벌인 공동 투쟁의 이야기는 오늘의 여성들에게, 또 미래의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힘찬 동력과 영감을 제공할 것이다.
이는 “나는 어쩐지 내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다”라는 것을 스스로 명확하게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때 에밀리는 개인의 인생보다 더 긴, 먼 시간 뒤의 무언가와 접속했을지도 모른다. - 96쪽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테러하는 여자들, 이들은 왜 과격해졌는가
후미코, 에밀리, 마거릿은 이른바 과격하고 무모한 여자들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총을 쏘고, 폭탄을 던지고, 유리창을 깨고, 불을 질렀다. 달리는 경
주마에 뛰어들고, 투신자살을 시도하고, 단식 투쟁을 하고, 법관을 비웃고, 끝끝내 전향하지 않고 죽음을 맞았다. 이들은 왜 이렇게 과격해졌을까. 자신의 주장을 담은 글을 쓸 수도 있고, 권력자에게 대화를 청할 수도 있으며, 평화적인 시위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폭력을 사용하고 목숨을 내던지는 방식으로 저항했을까. 그것은 누구도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과 글로는 달라지는 게 없었다. 대화와 소통은 힘을 가진 자들이나 하는 것이다. 그들이 듣지 않겠다고 한다면, 깨고 부수고 보란 듯이 죽어 세상에 충격을 주는 수밖에 없었다.
주권의 회복. 통치자에게서, 부자에게서, 기득권층에게서 주권을 돌려받는다. 독립이란 스스로 제 인생의 주권을 돌려받는 것이다. 살려달라고 부탁해서 어쩌자는 거냐.
총을 들고 다이너마이트를 배에 감고 살아가라.
삶의 주권은 나에게 있으니. - 43~44쪽
후미코는 박열과 함께 아나키스트 단체 불령사를 조직했다가 천황 일가를 암살하려 했다는 대역사건에 연루된다. 함께 사건을 모의한 바는 없지만, 박열과 함께하기로 한 이상 흔들림 없이 감옥에서 자기 글을 쓰다가 모든 권력과 권위를 비웃으며 죽음을 향해 걸어갔다. 에밀리는 여성 참정권을 주장하기 위해 기물 파손, 방화, 폭력, 의회의사당 침입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 수차례 투옥되고, 교도소 안에서 단식 투쟁을 벌이다 강제 음식 주입을 당하고도 다시 또 같은 일을 벌여 체포, 수감되었다. 온몸이 부서지도록 싸워도 아무 소용이 없자, 결국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경마 대회에서 서프러제트의 깃발을 가슴에 품은 채 국왕의 말 앞으로 뛰어들어 죽고 만다. 스코틀랜드에서 수학 교사로 일하며 총 쏘는 법을 배운 마거릿은 1915년 크리스마스에 기폭 장치와 폭탄 제조 장비를 더블린으로 반입해 아일랜드 독립운동가들에게 전달한다. 1916년 부활절 봉기 때 다시 더블린으로 넘어가 저격수로 활약하다 총상을 입는다. 이후로도 마거릿은 아일랜드의 독립과 여러 사회 운동에 자기 삶을 오롯이 바친다.
에밀리의 묘비에는 서프러제트의 슬로건이기도 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힘없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행동은 ‘죽음’이었다. 이들은 다른 내일을 위해서라면 죽는 것조차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삶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 세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내 삶을 속박하는 모든 것에 분노하고 저항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깨달을 때까지 반복해주지, 라고 그들은 말하는 것이다. 너희 안의 각성된 것, 살고 싶어 하는 그것을 죽이라고. 그것이 죽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는 살아갈 수 없다고.
하지만 이것을 뒤집으면 어떻게 될까? 진짜로 죽으면 오히려 살 수 있지 않을까? 정말로 죽으면 역으로 살릴 수 있는 것 아닐까?
무엇을? 나를. 그리고 여자들을. - 176~177쪽
“나를 한번 찾아보렴” 하고 부르는 과거의 사람들
지워진 목소리를 되살리는 브래디 미카코식 역사 쓰기
이 책의 세 주인공 가네코 후미코, 에밀리 데이비슨, 마거릿 스키니더는 국내 독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인물이다. 가네코 후미코는 영화 〈박열〉을 통해 대중에게 소개되었으나, 이 영화는 박열과의 관계 속에서 후미코를 묘사하기 때문에 그의 일면을 보여주는 데 그쳤다. 에밀리 데이비슨 역시 영화 〈서프러제트〉에 등장하지만 주인공의 주변 인물로 설정되어 그 생애나 사상이 잘 드러나지는 않았다. 마거릿 스키니더는 더욱이나 낯선데, 국내에서는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고 영국이나 아일랜드에서도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의 후기에서 마거릿과의 만남을 소개하며 “나를 한번 찾아보렴. 이런 방식으로 부르는 고인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역사에 쓰이지 않은 사람들, 쓰였더라도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렀던 이들에게 목소리와 숨결을 부여하는 일은 ‘저변’ 혹은 ‘밑바닥’ 사람들의 삶에 주목해온 저자의 시선이 그대로 과거로 향했음을 보여준다. 브래디 미카코는 공식적인 기록에서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던 세 여성의 삶과 사상을 정성껏 복원하여 그들이 뒤늦게나마 자기 목소리를 내게 한다. 1인칭과 3인칭을 오가며 질주하는 문체는 마치 저자와 후미코, 에밀리, 마거릿 네 사람이 혼연일체가 되어 같은 곳을 향해 달려가는 듯한 감각을 준다.
눈치를 보며 참고 견디는 것은 미지근하다. 독립시켜달라고 청한들 들어줄 리 없다. 멋대로 독립해버리면 된다. 선언해버리면 내 것이다. 누구도 우리를 멈출 수 없다. 경사로세! 얼쑤, 좋구나! 롱 리브 마이 인디펜던스! 만세! 만세! - 34쪽
왜 나는 그저 방관하고 있어야 하는가. 공화국 선언은 남녀평등을 외치고 있다. 그런데 왜 여자는 아일랜드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없는가. - 157~158쪽
이 책에는 후미코, 에밀리, 마거릿 이외에도 그동안 역사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저자는 식민지 조선과 일본 제국주의,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 아일랜드의 부활절 봉기라는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세계 곳곳에서 저항을 실천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전한다. 후미코가 일생을 통해 찾아낸 단 한 명의 여성이라고 표현했던 니힐리스트 니야마 하쓰요, 귀족 신분임에도 여성 참정권 운동에 투신한 레이디 콘스턴스 리턴, 무력 투쟁파 서프러제트로서 에밀리와 특별한 유대 관계를 맺었던 메리 리, 마거릿을 물심양면으로 도와 활동가로 키운 인물이자 부활절 봉기와 아일랜드 독립 전쟁을 이끌고 영국 최초의 여성 의원으로 당선된 콘스턴스 마키에비치, 아일랜드 시민군 지도자 제임스 코널리, 『아일랜드의 여성들』이라는 신문의 편집 책임자이자 배우, 무력 투쟁파 정치 활동가였던 헬레나 몰로니 등 브래디 미카코가 오늘로 불러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다양한 사상과 이념, 가치와 도덕이 분출하고 충돌하던 100년 전 세계의 모습을 실감나게 살펴볼 수 있다.
책 속으로
계급을 가로지르는 여자들의 연대
에밀리가 귀족의 영애와 뭔가를 함께한다는 것은 계급 간에 교류가 없던 당시 영국에서는 드문 일이었다. 이 ‘계급을 가로지르는 여자들의 연대’는 서프러제트 운동의 역동적인 특징 중 하나였다. (중략) 이 야성미 넘치는 여자들과 우아할 것이 틀림없는 상류층 여자들이 거리에서 함께 소동을 벌인다면 자연스럽게 “너 제법인데?” “너야말로” 하면서 우정이 싹틀 것이 분명하다. 항상 맨 앞에 서서 온몸을 던지던 에밀리의 주변에는 이런 계급을 초월한 여성 투사들의 네트워크가 생겨났다. - 19~20쪽
3‧1운동을 목격한 후미코
조선인들은 밤이 되면 산으로 올라가 횃불을 들고 “독립 만세!”를 외쳤다.
독립. 홀로 선다. 그 말에 후미코는 황홀해졌다. 종속을 거부하고 종속적이지 않음을 자발적으로 선언하며 축복하는 사람들의 봉기가 후미코의 마음을 고양시켰다.
후미코도 독립하고 싶었다, 썩어빠진 속물 할머니들의 지배로부터. 여자아이를 집안의 소유물로 취급하며 친척들 사이에서 여기저기로 내돌리는 성차별적 가족관의 억압으로부터. 친족보다 훨씬 더 친밀하게 대해준 밑바닥 조선인들을 학대하는 대일본제국으로부터. - 33~34쪽
이과 여자 저격수 마거릿
마거릿의 사격 솜씨는 소년들을 놀라게 했다. 소년들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사격 솜씨를 구경할 때면 마거릿이 여자라는 사실을 아는 멤버들만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수학 교사인 마거릿은 시쳇말로 소위 ‘이과 여자’였다. 폭탄 공격을 위한 상세 도면을 그릴 수 있었는데 이런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미적분학을 배웠기 때문에 거리를 측정하여 지도를 그리는 것 정도는 간단한 일이었다. 마거릿은 더블린 거리를 돌아다니며 폭파하기 적당한 장소의 건물 높이와 거리를 측정하여 어디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면 가장 효과적일지를 도면에 그려 마담에게 주었다. - 41쪽
부활절 봉기를 향하여
일할 사람은 다 모였다.
교육자, 작가, 몽상가 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영국에서는 이들을 얕잡아보았지만, 교육자와 시인과 마르크스주의자가 정말로 밑바닥 사람들을 이끌어 대영제국에 반란을 일으키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시작했다. (중략) 회색빛 시가지로 속속 몰려든 반역의 기사들은 숨을 죽인 채 최초의 일격을 날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길 위에서 잠드는 사나운 개들처럼. - 121쪽
서프러제트, 날뛰는 여자들
세상은 ‘날뛰는 여자들’을 두려워했다. 특히 기득권층은 역사상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성들의 반역이 대영제국의 존속을 위협하는 상황을 심각하게 우려했다. 경찰 당국은 서프러제트를 항상 감시했으며 그들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최첨단 촬영 기술을 사용했다. 영국에서 망원렌즈를 사용해 감시한 최초의 테러 조직은 바로 서프러제트였다. - 134쪽
내가 나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잠긴 채 수면을 올려다보면서 차가워진 머리로 생각한다. 이 열광은 내가 나를 살아가는 것과 본질적으로 어떤 관계일까?
후미코가 생각하는 ‘나 자신의 일’은 권력 타도나 하나도 남김없이 다 부순다는 사정射精적인 혹은 오르가슴적인 순간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죽음의 순간까지 후미코는 ‘나 자신의 일’과 자신을 부르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생각했을 것이다. 이 젊은 여성은 운동가가 아니라 철학자였다. - 168쪽
에밀리의 죽음은 사고였을까, 자살이었을까
‘우발적 사고’였을까, ‘자살’이었을까? 에밀리의 죽음을 둘러싼 논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중략) 에밀리는 만약 자기가 말하지 못하는 몸이 된다 해도 이는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워온 인간의 몸이라는 것을 자신의 몸을 수습하는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죽은 몸이 무언가를 웅변하고 있다면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살아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움직이는 몸이라고 해서 다 살아 있다고는 할 수 없다. - 225쪽
혼자 죽게 하지 않을게, 브라더
후미코에게 이 세상에 우등한 사람과 열등한 사람을 만드는 기만의 근원은 천황제였다. 오직 천황제가 전 생애에 걸쳐 후미코를 열등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누가 실패했다든가 말려들었다든가 하는 절차상의 문제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우리는 땅바닥의 개새끼 신분으로 천황제와 싸우는 희대의 바보, 영혼의 동지다. 혼자 죽게 하지 않을게, 브라더. - 238~239쪽
후미코는 후미코 자신을 위해 죽었다
후미코가 최후의 순간까지 박열도 죽는다고 믿었다든가, 순애를 위해 몸을 바쳤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여성스러운 자기희생”으로 해석하는 방식은 여성을 가련한 존재로 그리던 시대의 것이며, 박열의 부록sidekick 같은 후미코의 이미지 또한 남성 무정부주의자들이 퍼뜨린 것이다. 만약 후미코 본인이 “후미코는 조선과 박열을 위해 죽었다”라는 소리를 들었다면 그런 이타주의로 나의 생애를 폄하하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중략) 후미코는 사상을 몸에서 분리해 책상 위에 올려두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상을 책으로 읽은 것이 아니라 몸으로 획득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상은 몸이며, 몸이 사상이었다. 전향이 사상을 죽이는 것이라면 그때 몸도 죽는다. 사상만이 살해당한다고 생각했던 당국이 틀렸다. - 286~288쪽
페이지를 넘기다 자꾸만 멈추게 된다. 어떤 땅이든 여성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곳이었다는 데 화가 나고 슬퍼서, 그럼에도 거기에 끝까지 지지 않으려는 여성들이 있었다는 데 가슴이 벅차올라서다. 이 책은 내가 나이기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세상과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에 관한 기록이다. 기를 쓰고 한 명의 인간으로 존재하려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다. 세상이 나의 목소리에 잠깐이라도 귀 기울이게 하기 위해 과격해져야만 했던 여성들의 역사다. 오늘날 한국을 사는 여성인 내가 수많은 여성들의 분투를 딛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나는 나로 살기 위해 무엇을 부수고 부정할 것인지 생각한다. 이 책을 더디게 읽는 일, 그러면서 꼼꼼하게 화내고 고민하는 일은 과거에 살았고 현재에 살고 있으며 미래에 살게 될 여성들에 대한 자매애를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_ 황효진, 팟캐스트 [시스터후드] 진행자
자매애는 강한가? 살아가며 마주치는 사건들 앞에서 종종 멈추어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책은 이 묵직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 그 누구와도,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는 것으로 내가 사는 세계를 바꾸어간 여성들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연결된다.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여성들을 모아 연결할 때, 이들의 닮은 영혼이 보인다. 싸우고 투쟁하고 세계와 불화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지금 홀로인 여성들의 이야기도 과거로부터 미래까지 그렇게 연결될 것이다. 홀로 빛나는 별처럼 보였던 외로운 여성들의 싸움은 이어져 새로운 별자리가 된다. 나는 앞으로도 또 다른 별과 이어져 끊임없이 뻗어 나갈 이 별자리의 이름을 ‘테러하는 여자들’이라고 붙이겠다.
_ 윤이나, 팟캐스트 [시스터후드] 진행자
출간 의의
“우리의 적은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100년 전, 바다와 대륙을 뛰어넘어 함께 싸운
과격한 여자들의 분투와 산화
이 책은 본문을 몇 개의 부나 장으로 나누고, 각각에 소제목을 붙이는 일반적인 단행본과는 다른 구성을 취한다. 가네코 후미코, 에밀리 데이비슨, 마거릿 스키니더 세 인물의 이야기가 교대로 등장하되, 앞사람 이야기의 마지막 구절을 다음 사람 이야기의 첫 문장이 넘겨받아 마치 끝말잇기를 하듯 전개된다. 예를 들면 “눈동자 깊은 곳에 검은 불꽃을 품은 아이는 뚜벅뚜벅 땅바닥을 밟으며 썩은 여자들이 사는 지옥의 집으로 돌아갔다”라는 문장으로 끝난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를 “지옥이란, 틀림없이 바로 여기다”라며 에밀리 데이비슨의 이야기가 넘겨받는 식이다. 저자 브래디 미카코는 한 번도 겹친 적 없는 세 여성의 삶을 부단히 이어 붙이며, 이들이 결국 같은 얼굴의 적을 향해 싸웠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그 적이란 바로 국가, 민족, 전통, 신분, 도덕, 제도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지배 권력이다. 또한 고귀한 사람과 열등한 사람이 따로 있다고 말하는 공고한 사회 구조다. 기존의 권력과 사회 구조에서 이들은 ‘자격을 얻지 못한 사람’이었다. 무호적자였던 후미코는 학대에 가까운 유년을 보낸 뒤 정해진 거처 없이 사회 밑바닥을 떠돌았고, 유복한 사업가와 하녀 사이에서 태어난 에밀리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치적 권리를 얻지 못했으며, 스코틀랜드에서 아일랜드인 부부의 딸로 태어난 마거릿은 영국 통치하에서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던 아일랜드를 위해 총을 들었지만 처참히 실패했다. 이들로서는 어차피 경계 바깥에 있고, 자격 없는 인생이라면 장렬히 싸우다 부서진다 해도 아쉬울 게 없었다.
‘무자격자’를 얕보지 마라. 나의 출생은 데이터에 들어가지 않았다. 탈진실post-truth이란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사실fact 이전에 존재한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나를 그 누구도 지배할 수 없으리라. - 15쪽
시켜도 하지 말라고. 기대를 해도 배신하란 말이야. 예속의 사슬을 참으로 끊을 수 있는 사람은 주인이 아니야. 노예뿐이라고. - 145~146쪽
브래디 미카코가 이들의 삶을 연결해 100년 후 오늘로 가져온 것은 ‘자격’을 얻기 위한 투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별, 인종, 계급, 정체성, 국적, 장애 등을 이유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동등한 자격과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싸움은 100년 전, 혹은 그 전후의 많은 불화와 분투를 딛고 앞으로 나아간다. 서로의 얼굴도 존재도 몰랐던 세 여성이 동시대에 벌인 공동 투쟁의 이야기는 오늘의 여성들에게, 또 미래의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힘찬 동력과 영감을 제공할 것이다.
이는 “나는 어쩐지 내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다”라는 것을 스스로 명확하게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때 에밀리는 개인의 인생보다 더 긴, 먼 시간 뒤의 무언가와 접속했을지도 모른다. - 96쪽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테러하는 여자들, 이들은 왜 과격해졌는가
후미코, 에밀리, 마거릿은 이른바 과격하고 무모한 여자들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총을 쏘고, 폭탄을 던지고, 유리창을 깨고, 불을 질렀다. 달리는 경
주마에 뛰어들고, 투신자살을 시도하고, 단식 투쟁을 하고, 법관을 비웃고, 끝끝내 전향하지 않고 죽음을 맞았다. 이들은 왜 이렇게 과격해졌을까. 자신의 주장을 담은 글을 쓸 수도 있고, 권력자에게 대화를 청할 수도 있으며, 평화적인 시위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폭력을 사용하고 목숨을 내던지는 방식으로 저항했을까. 그것은 누구도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과 글로는 달라지는 게 없었다. 대화와 소통은 힘을 가진 자들이나 하는 것이다. 그들이 듣지 않겠다고 한다면, 깨고 부수고 보란 듯이 죽어 세상에 충격을 주는 수밖에 없었다.
주권의 회복. 통치자에게서, 부자에게서, 기득권층에게서 주권을 돌려받는다. 독립이란 스스로 제 인생의 주권을 돌려받는 것이다. 살려달라고 부탁해서 어쩌자는 거냐.
총을 들고 다이너마이트를 배에 감고 살아가라.
삶의 주권은 나에게 있으니. - 43~44쪽
후미코는 박열과 함께 아나키스트 단체 불령사를 조직했다가 천황 일가를 암살하려 했다는 대역사건에 연루된다. 함께 사건을 모의한 바는 없지만, 박열과 함께하기로 한 이상 흔들림 없이 감옥에서 자기 글을 쓰다가 모든 권력과 권위를 비웃으며 죽음을 향해 걸어갔다. 에밀리는 여성 참정권을 주장하기 위해 기물 파손, 방화, 폭력, 의회의사당 침입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 수차례 투옥되고, 교도소 안에서 단식 투쟁을 벌이다 강제 음식 주입을 당하고도 다시 또 같은 일을 벌여 체포, 수감되었다. 온몸이 부서지도록 싸워도 아무 소용이 없자, 결국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경마 대회에서 서프러제트의 깃발을 가슴에 품은 채 국왕의 말 앞으로 뛰어들어 죽고 만다. 스코틀랜드에서 수학 교사로 일하며 총 쏘는 법을 배운 마거릿은 1915년 크리스마스에 기폭 장치와 폭탄 제조 장비를 더블린으로 반입해 아일랜드 독립운동가들에게 전달한다. 1916년 부활절 봉기 때 다시 더블린으로 넘어가 저격수로 활약하다 총상을 입는다. 이후로도 마거릿은 아일랜드의 독립과 여러 사회 운동에 자기 삶을 오롯이 바친다.
에밀리의 묘비에는 서프러제트의 슬로건이기도 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힘없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행동은 ‘죽음’이었다. 이들은 다른 내일을 위해서라면 죽는 것조차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삶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 세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내 삶을 속박하는 모든 것에 분노하고 저항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깨달을 때까지 반복해주지, 라고 그들은 말하는 것이다. 너희 안의 각성된 것, 살고 싶어 하는 그것을 죽이라고. 그것이 죽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는 살아갈 수 없다고.
하지만 이것을 뒤집으면 어떻게 될까? 진짜로 죽으면 오히려 살 수 있지 않을까? 정말로 죽으면 역으로 살릴 수 있는 것 아닐까?
무엇을? 나를. 그리고 여자들을. - 176~177쪽
“나를 한번 찾아보렴” 하고 부르는 과거의 사람들
지워진 목소리를 되살리는 브래디 미카코식 역사 쓰기
이 책의 세 주인공 가네코 후미코, 에밀리 데이비슨, 마거릿 스키니더는 국내 독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인물이다. 가네코 후미코는 영화 〈박열〉을 통해 대중에게 소개되었으나, 이 영화는 박열과의 관계 속에서 후미코를 묘사하기 때문에 그의 일면을 보여주는 데 그쳤다. 에밀리 데이비슨 역시 영화 〈서프러제트〉에 등장하지만 주인공의 주변 인물로 설정되어 그 생애나 사상이 잘 드러나지는 않았다. 마거릿 스키니더는 더욱이나 낯선데, 국내에서는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고 영국이나 아일랜드에서도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의 후기에서 마거릿과의 만남을 소개하며 “나를 한번 찾아보렴. 이런 방식으로 부르는 고인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역사에 쓰이지 않은 사람들, 쓰였더라도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렀던 이들에게 목소리와 숨결을 부여하는 일은 ‘저변’ 혹은 ‘밑바닥’ 사람들의 삶에 주목해온 저자의 시선이 그대로 과거로 향했음을 보여준다. 브래디 미카코는 공식적인 기록에서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던 세 여성의 삶과 사상을 정성껏 복원하여 그들이 뒤늦게나마 자기 목소리를 내게 한다. 1인칭과 3인칭을 오가며 질주하는 문체는 마치 저자와 후미코, 에밀리, 마거릿 네 사람이 혼연일체가 되어 같은 곳을 향해 달려가는 듯한 감각을 준다.
눈치를 보며 참고 견디는 것은 미지근하다. 독립시켜달라고 청한들 들어줄 리 없다. 멋대로 독립해버리면 된다. 선언해버리면 내 것이다. 누구도 우리를 멈출 수 없다. 경사로세! 얼쑤, 좋구나! 롱 리브 마이 인디펜던스! 만세! 만세! - 34쪽
왜 나는 그저 방관하고 있어야 하는가. 공화국 선언은 남녀평등을 외치고 있다. 그런데 왜 여자는 아일랜드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없는가. - 157~158쪽
이 책에는 후미코, 에밀리, 마거릿 이외에도 그동안 역사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저자는 식민지 조선과 일본 제국주의,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 아일랜드의 부활절 봉기라는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세계 곳곳에서 저항을 실천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전한다. 후미코가 일생을 통해 찾아낸 단 한 명의 여성이라고 표현했던 니힐리스트 니야마 하쓰요, 귀족 신분임에도 여성 참정권 운동에 투신한 레이디 콘스턴스 리턴, 무력 투쟁파 서프러제트로서 에밀리와 특별한 유대 관계를 맺었던 메리 리, 마거릿을 물심양면으로 도와 활동가로 키운 인물이자 부활절 봉기와 아일랜드 독립 전쟁을 이끌고 영국 최초의 여성 의원으로 당선된 콘스턴스 마키에비치, 아일랜드 시민군 지도자 제임스 코널리, 『아일랜드의 여성들』이라는 신문의 편집 책임자이자 배우, 무력 투쟁파 정치 활동가였던 헬레나 몰로니 등 브래디 미카코가 오늘로 불러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다양한 사상과 이념, 가치와 도덕이 분출하고 충돌하던 100년 전 세계의 모습을 실감나게 살펴볼 수 있다.
책 속으로
계급을 가로지르는 여자들의 연대
에밀리가 귀족의 영애와 뭔가를 함께한다는 것은 계급 간에 교류가 없던 당시 영국에서는 드문 일이었다. 이 ‘계급을 가로지르는 여자들의 연대’는 서프러제트 운동의 역동적인 특징 중 하나였다. (중략) 이 야성미 넘치는 여자들과 우아할 것이 틀림없는 상류층 여자들이 거리에서 함께 소동을 벌인다면 자연스럽게 “너 제법인데?” “너야말로” 하면서 우정이 싹틀 것이 분명하다. 항상 맨 앞에 서서 온몸을 던지던 에밀리의 주변에는 이런 계급을 초월한 여성 투사들의 네트워크가 생겨났다. - 19~20쪽
3‧1운동을 목격한 후미코
조선인들은 밤이 되면 산으로 올라가 횃불을 들고 “독립 만세!”를 외쳤다.
독립. 홀로 선다. 그 말에 후미코는 황홀해졌다. 종속을 거부하고 종속적이지 않음을 자발적으로 선언하며 축복하는 사람들의 봉기가 후미코의 마음을 고양시켰다.
후미코도 독립하고 싶었다, 썩어빠진 속물 할머니들의 지배로부터. 여자아이를 집안의 소유물로 취급하며 친척들 사이에서 여기저기로 내돌리는 성차별적 가족관의 억압으로부터. 친족보다 훨씬 더 친밀하게 대해준 밑바닥 조선인들을 학대하는 대일본제국으로부터. - 33~34쪽
이과 여자 저격수 마거릿
마거릿의 사격 솜씨는 소년들을 놀라게 했다. 소년들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사격 솜씨를 구경할 때면 마거릿이 여자라는 사실을 아는 멤버들만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수학 교사인 마거릿은 시쳇말로 소위 ‘이과 여자’였다. 폭탄 공격을 위한 상세 도면을 그릴 수 있었는데 이런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미적분학을 배웠기 때문에 거리를 측정하여 지도를 그리는 것 정도는 간단한 일이었다. 마거릿은 더블린 거리를 돌아다니며 폭파하기 적당한 장소의 건물 높이와 거리를 측정하여 어디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면 가장 효과적일지를 도면에 그려 마담에게 주었다. - 41쪽
부활절 봉기를 향하여
일할 사람은 다 모였다.
교육자, 작가, 몽상가 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영국에서는 이들을 얕잡아보았지만, 교육자와 시인과 마르크스주의자가 정말로 밑바닥 사람들을 이끌어 대영제국에 반란을 일으키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시작했다. (중략) 회색빛 시가지로 속속 몰려든 반역의 기사들은 숨을 죽인 채 최초의 일격을 날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길 위에서 잠드는 사나운 개들처럼. - 121쪽
서프러제트, 날뛰는 여자들
세상은 ‘날뛰는 여자들’을 두려워했다. 특히 기득권층은 역사상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성들의 반역이 대영제국의 존속을 위협하는 상황을 심각하게 우려했다. 경찰 당국은 서프러제트를 항상 감시했으며 그들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최첨단 촬영 기술을 사용했다. 영국에서 망원렌즈를 사용해 감시한 최초의 테러 조직은 바로 서프러제트였다. - 134쪽
내가 나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잠긴 채 수면을 올려다보면서 차가워진 머리로 생각한다. 이 열광은 내가 나를 살아가는 것과 본질적으로 어떤 관계일까?
후미코가 생각하는 ‘나 자신의 일’은 권력 타도나 하나도 남김없이 다 부순다는 사정射精적인 혹은 오르가슴적인 순간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죽음의 순간까지 후미코는 ‘나 자신의 일’과 자신을 부르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생각했을 것이다. 이 젊은 여성은 운동가가 아니라 철학자였다. - 168쪽
에밀리의 죽음은 사고였을까, 자살이었을까
‘우발적 사고’였을까, ‘자살’이었을까? 에밀리의 죽음을 둘러싼 논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중략) 에밀리는 만약 자기가 말하지 못하는 몸이 된다 해도 이는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워온 인간의 몸이라는 것을 자신의 몸을 수습하는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죽은 몸이 무언가를 웅변하고 있다면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살아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움직이는 몸이라고 해서 다 살아 있다고는 할 수 없다. - 225쪽
혼자 죽게 하지 않을게, 브라더
후미코에게 이 세상에 우등한 사람과 열등한 사람을 만드는 기만의 근원은 천황제였다. 오직 천황제가 전 생애에 걸쳐 후미코를 열등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누가 실패했다든가 말려들었다든가 하는 절차상의 문제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우리는 땅바닥의 개새끼 신분으로 천황제와 싸우는 희대의 바보, 영혼의 동지다. 혼자 죽게 하지 않을게, 브라더. - 238~239쪽
후미코는 후미코 자신을 위해 죽었다
후미코가 최후의 순간까지 박열도 죽는다고 믿었다든가, 순애를 위해 몸을 바쳤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여성스러운 자기희생”으로 해석하는 방식은 여성을 가련한 존재로 그리던 시대의 것이며, 박열의 부록sidekick 같은 후미코의 이미지 또한 남성 무정부주의자들이 퍼뜨린 것이다. 만약 후미코 본인이 “후미코는 조선과 박열을 위해 죽었다”라는 소리를 들었다면 그런 이타주의로 나의 생애를 폄하하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중략) 후미코는 사상을 몸에서 분리해 책상 위에 올려두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상을 책으로 읽은 것이 아니라 몸으로 획득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상은 몸이며, 몸이 사상이었다. 전향이 사상을 죽이는 것이라면 그때 몸도 죽는다. 사상만이 살해당한다고 생각했던 당국이 틀렸다. - 286~2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