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방 (사계절1318문고 128)
- 590
• 지은이 : 최양선
• 가격 : 11,000원
• 책꼴/쪽수 :
145x225mm, 140쪽
• 펴낸날 : 2021-03-10
• ISBN : 979-11-6094-716-8
• 십진분류 : 문학 > 한국문학 (810)
• 태그 : #성장 #내면 #삶
저자소개
지은이 : 최양선
집이란 그저 머무는 곳, 삶을 살아가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살아온 현실과 눈앞에 놓인 현실, 두 세계를 오가며 영선을 만났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마음으로 살다 영선을 만나며 비로소 어른이 된 듯하다.
2009년 『몬스터 바이러스 도시』로 제11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1년 『지도에 없는 마을』로 제16회 창비 ‘좋은어린이책’ 원고 공모 창작 부문 대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 『너의 세계』, 『밤을 건너는 소년』, 『별과 고양이와 우리』, 『달의 방』 등이 있다.
2009년 『몬스터 바이러스 도시』로 제11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1년 『지도에 없는 마을』로 제16회 창비 ‘좋은어린이책’ 원고 공모 창작 부문 대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 『너의 세계』, 『밤을 건너는 소년』, 『별과 고양이와 우리』, 『달의 방』 등이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달’이 사라진 지구는 어떨까? ‘달’이 없는 우주는 또 어떨까? 지구에게, 우주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저마다 달은 어떤 존재일까? 『달의 방』에는 저마다 다른 ‘달’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 곁의 청소년들을 들여다보는 다섯 편의 청소년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 심리와 사회 이면을 깊숙하게 파고드는 최양선 작가는 ‘나만의 달’이 혹여나 사라질지라도 괜찮다는, 그마저도 모두 빛나는 순간이라는, 섬세한 위로를 건넨다. 사계절1318문고 128번째 작품.
목차
일시 정지
달의 방
달 없는 우주
붉은 조끼
바람에 닿다
작가의 말
달의 방
달 없는 우주
붉은 조끼
바람에 닿다
작가의 말
편집자 추천글
달, 사라짐, 우리, 오늘
전혀 연관 없을 것 같은 단어들의 우주적인 연결, 『달의 방』 출간!
매일 우리 곁에 있어서 그 존재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공기, 해, 달, 별 같은 우주적인 것들. 그 우주적인 것들은 늘 우리를 둘러싸고 가만히 존재하지만, 가끔씩 존재감을 드러내며 시선을 사로잡을 때가 있다. 해가 사라지는 일식, 달이 사라지는 월식, 별들이 쏟아지는 유성우가 찾아오는 바로 그런 날들이다. 별들은 쏟아지며 그 존재감을 과시하지만 해와 달은 사라짐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해는 늘 낮에 떠 있고, 달은 늘 밤하늘에 있지만, 해도 달도 사라지는 날이 오면 우린 새삼스럽게 하늘을 본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 곁에 있었음을 인식한다.
혹시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지는 않은지? 매일 곁에 있어서, 혹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아서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사람인데, 어느 순간 나의 곁에서 사라져 버린 사람. 어쩌면 그도 사라짐으로써 존재를 드러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라지는 것밖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들을 생각하며 최양선 작가는 『달의 방』 속 다섯 작품을 써 내려갔다.
‘보이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라져 버리는 일이다. 나는 이상하게 그 말이 애틋하고 슬펐다. _「달의 방」 본문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응시하다, 그 일의 슬픔, 애틋함, 신비로움을 느끼고, 그마저도 모두 빛나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최양선 작가는 이 소설집을 통해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2009년에 『몬스터 바이러스 도시』로 제11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을, 2011년에는 『지도에 없는 마을』로 제16회 창비 ‘좋은어린이책’ 원고 공모 창작 부문 대상을 받은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깊이 있는 사색이 더해진 유려한 문장으로 섬세하면서도 한층 묵직해진 기량을 드러낸다. 달, 사라짐, 우리, 오늘, 언뜻 보기엔 무슨 연관이 있을까 싶은 단어들이지만, 그 어떤 것보다 우주적으로 연관된 이 단어들로 풀어내는 『달의 방』의 다섯 편의 이야기를 만나 보자.
‘일시 정지’되어 ‘바람에 닿’은 ‘달의 방’
『달의 방』에 수록된 다섯 작품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다른 상황에 처해 있지만, 모두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때때로 사라지고 싶은 순간을 느끼며 살아간다. 「일시 정지」의 주인공 다연은 그럴 때마다 아예 시간이 멈춘 듯 세상이 ‘일시 정지’된다. “다연은 열다섯 살 이후부터 때때로 시간이 멈추는 듯한 일을 겪었다. 싹둑 잘려 나간 듯이 지나가 버린 짧은 시간 동안의 일은 기억나지 않았다.”(본문 13쪽) 왜 다연의 어떤 순간은 일시 정지될 수밖에 없을까. 다연과 상관없이 세상의 시간은 흘러가는데, 왜 다연은 멈춰 있을 수밖에 없을까. 다연이 느끼는 감정의 결을 따라 읽다 보면 열다섯 살 이후 일시 정지될 수밖에 없었던 다연의 순간들을 오롯이 느끼며, 앞으로 그의 삶이 일시 정지되기 않기를, 유유히 흘러가기를 응원할 수밖에 없게 된다.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건 「바람에 닿다」의 재아도 마찬가지다.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따라간 제주도 가족여행이지만, 고3인 자신이 이런 곳에 와 있어도 되는 건지,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닌지 늘 불안하다. 그 불안함은 바람결을 타고 흘러가 나오가 매달아 둔 리본에 가 닿고, 이 둘의 만남은 서로에게 각기 다른 응원으로 삶에 남는다.
「달의 방」의 정은 역시 늘 사라짐을 생각한다.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세상으로부터 밀려나다가 먼지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 사라져 버리는……. 또다시 발바닥이 간질간질해졌다.”(본문 48쪽) 달이 사라지는 개기월식을 마주친 정은은 무언가에 애틋함을 느낀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환상적인 일을 경험하게 된다. 달이 사라지던 그날 밤, 정은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늘 현실에서 달아나고 싶은, 사라지고 싶은 우리 청소년들이 일상이 정지되는 순간이나 달이 사라지는 순간에 오히려 자신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어쩌면 그들에게 진짜 필요한 순간은 잠시 멈춰 차분히 생각해 볼 시간이라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다연과 재아, 정은이 마주한 삶의 면면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그들이 살아가는 시공간은 다르지만 묘하게 하나로 이어지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모두가 사라지지 않고 목소리 낼 수 있는 우주적인 꿈
같은 ‘달’이지만 「달 없는 우주」의 우주에게 달은 「달의 방」 정은이와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미술학원 선생님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부터 월경이 멈춰 버린 우주는 다시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러던 중 비슷한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를 발견하고, 더욱 혼란을 느낀다. “오는 내내 생각했다. 내 마음에 대해서. 잊고 싶었다. 상관없이 살고 싶었다. 하지만 지수라는 아이를 완전히 외면할 수 없었다.”(본문 79쪽) 우주는 잊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지수를 외면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붉은 조끼」의 남주는 ‘사라짐’ 자체에 트라우마가 있다. 병으로 자신의 곁을 떠난 엄마의 사라짐이 두렵고, 엄마 대신 자신을 맡아 준 할머니도 사라질까 무섭다. 그런 두려움에 소위 무섭게 잘나가는 아이들과 어울려도 봤지만 그런 일들로 채워질 수 있는 부재가 아니다. 그러던 중 할머니의 일터에서 근로 환경 문제로 돌아가시는 분이 생기고, 할머니의 동료들은 파업에 돌입하지만, 할머니는 동료들을 외면한 채 남주 곁에 남으려 한다. 할머니마저 잃는 건 두렵지만, 그렇다고 할머니를 붙잡을 수도 없는 남주.
우주도 남주도 가장 쉬운 선택은 오히려 사라져 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눈앞에 닥친 타인의 상황을 외면하고 눈감아 버리는 것. 그 상황으로부터 도망치는 것. 그러나 우주도 남주도, 우리도 사라지는 선택 대신 사라지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선택하곤 한다. 그런 목소리들이 하나둘씩 모이다 보면 사회를 더 긍정적으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운동들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더 나은 사회를 꿈꾸기 위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작은 목소리, 사라지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 그 안의 큰 바람, 결국 우리만의 달을 주목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양선 작가의 다섯 편의 소설을 읽고, 누군가는 외면하고 있었던 자신의 달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그 달이 우리의 오늘을 바꾸는 일을 해내길, 모든 사람이 그 달을 바라보는 우주적인 일들이 일어나길, 기대해 본다.
책 속으로
다연도 해리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아무도 다연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다연의 얼굴이 점점 뜨거워지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정지하기 전의 전조 증상일까. 다연은 그대로 손을 무릎에 올리고는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 숫자를 셌다. -「일시 정지」 (본문 20쪽)중에서
엄마가 내 말을 듣지 않아 서운했다. 하지만 늘 있는 일이었다. 엄마는 중개인이 보내 준 문자를 확인했다. 나는 엄마 휴대폰에 찍힌 비밀번호를 보았다. ‘1770017’ 분명 숫자의 나열인데 글자처럼 보였다. 이유를 생각하다 엄마가 비밀번호를 누르기 직전 떠올렸다.
“엄마 moon이야. 달이라고.” -「달의 방」 (본문 49쪽)중에서
혼자서라도 그림을 그려 보려고 연필을 잡고 드로잉북 앞에 앉았다.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놀리다 정신을 차려 보면 드로잉북은 온통 검은색이었다. 산부인과에서 보았던 초음파 장면처럼. 태양도 별도 달도 없는 우주가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달 없는 우주」 (본문 74쪽)중에서
얼마 전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했던 대사가 떠올랐다. 그녀는 기회비용에 대해 말했다. 한 가지를 얻으면 다른 한 가지는 포기해야 한다. 가장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두려운 것을 피하는 것을 선택할 것인가. 그 대사를 듣자마자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떠올랐다. 혼자 남는 것이다. 할머니는 나를 잃는 것이 무서워 좋아하는 것보다는 두려운 것을 피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붉은 조끼」 (본문 103쪽)중에서
엄마 아빠가 마트에서 장을 보는 동안 나는 차 안에 있기로 했다. 창문을 열어 둔 채 책을 펼쳤다. 창틈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 속에는 야릇한 비린내와 쌉싸름한 나무 향이 배어 있었다.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빨아들이자 책을 쥐고 있던 손에서 스르르 힘이 풀렸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둠의 세상에 뿌연 안개가 깔려 있었다. 제주도의 첫인상이었다. -「바람에 닿다」 (본문 109쪽)중에서
전혀 연관 없을 것 같은 단어들의 우주적인 연결, 『달의 방』 출간!
매일 우리 곁에 있어서 그 존재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공기, 해, 달, 별 같은 우주적인 것들. 그 우주적인 것들은 늘 우리를 둘러싸고 가만히 존재하지만, 가끔씩 존재감을 드러내며 시선을 사로잡을 때가 있다. 해가 사라지는 일식, 달이 사라지는 월식, 별들이 쏟아지는 유성우가 찾아오는 바로 그런 날들이다. 별들은 쏟아지며 그 존재감을 과시하지만 해와 달은 사라짐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해는 늘 낮에 떠 있고, 달은 늘 밤하늘에 있지만, 해도 달도 사라지는 날이 오면 우린 새삼스럽게 하늘을 본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 곁에 있었음을 인식한다.
혹시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지는 않은지? 매일 곁에 있어서, 혹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아서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사람인데, 어느 순간 나의 곁에서 사라져 버린 사람. 어쩌면 그도 사라짐으로써 존재를 드러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라지는 것밖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들을 생각하며 최양선 작가는 『달의 방』 속 다섯 작품을 써 내려갔다.
‘보이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라져 버리는 일이다. 나는 이상하게 그 말이 애틋하고 슬펐다. _「달의 방」 본문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응시하다, 그 일의 슬픔, 애틋함, 신비로움을 느끼고, 그마저도 모두 빛나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최양선 작가는 이 소설집을 통해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2009년에 『몬스터 바이러스 도시』로 제11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을, 2011년에는 『지도에 없는 마을』로 제16회 창비 ‘좋은어린이책’ 원고 공모 창작 부문 대상을 받은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깊이 있는 사색이 더해진 유려한 문장으로 섬세하면서도 한층 묵직해진 기량을 드러낸다. 달, 사라짐, 우리, 오늘, 언뜻 보기엔 무슨 연관이 있을까 싶은 단어들이지만, 그 어떤 것보다 우주적으로 연관된 이 단어들로 풀어내는 『달의 방』의 다섯 편의 이야기를 만나 보자.
‘일시 정지’되어 ‘바람에 닿’은 ‘달의 방’
『달의 방』에 수록된 다섯 작품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다른 상황에 처해 있지만, 모두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때때로 사라지고 싶은 순간을 느끼며 살아간다. 「일시 정지」의 주인공 다연은 그럴 때마다 아예 시간이 멈춘 듯 세상이 ‘일시 정지’된다. “다연은 열다섯 살 이후부터 때때로 시간이 멈추는 듯한 일을 겪었다. 싹둑 잘려 나간 듯이 지나가 버린 짧은 시간 동안의 일은 기억나지 않았다.”(본문 13쪽) 왜 다연의 어떤 순간은 일시 정지될 수밖에 없을까. 다연과 상관없이 세상의 시간은 흘러가는데, 왜 다연은 멈춰 있을 수밖에 없을까. 다연이 느끼는 감정의 결을 따라 읽다 보면 열다섯 살 이후 일시 정지될 수밖에 없었던 다연의 순간들을 오롯이 느끼며, 앞으로 그의 삶이 일시 정지되기 않기를, 유유히 흘러가기를 응원할 수밖에 없게 된다.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건 「바람에 닿다」의 재아도 마찬가지다.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따라간 제주도 가족여행이지만, 고3인 자신이 이런 곳에 와 있어도 되는 건지,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닌지 늘 불안하다. 그 불안함은 바람결을 타고 흘러가 나오가 매달아 둔 리본에 가 닿고, 이 둘의 만남은 서로에게 각기 다른 응원으로 삶에 남는다.
「달의 방」의 정은 역시 늘 사라짐을 생각한다.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세상으로부터 밀려나다가 먼지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 사라져 버리는……. 또다시 발바닥이 간질간질해졌다.”(본문 48쪽) 달이 사라지는 개기월식을 마주친 정은은 무언가에 애틋함을 느낀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환상적인 일을 경험하게 된다. 달이 사라지던 그날 밤, 정은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늘 현실에서 달아나고 싶은, 사라지고 싶은 우리 청소년들이 일상이 정지되는 순간이나 달이 사라지는 순간에 오히려 자신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어쩌면 그들에게 진짜 필요한 순간은 잠시 멈춰 차분히 생각해 볼 시간이라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다연과 재아, 정은이 마주한 삶의 면면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그들이 살아가는 시공간은 다르지만 묘하게 하나로 이어지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모두가 사라지지 않고 목소리 낼 수 있는 우주적인 꿈
같은 ‘달’이지만 「달 없는 우주」의 우주에게 달은 「달의 방」 정은이와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미술학원 선생님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부터 월경이 멈춰 버린 우주는 다시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러던 중 비슷한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를 발견하고, 더욱 혼란을 느낀다. “오는 내내 생각했다. 내 마음에 대해서. 잊고 싶었다. 상관없이 살고 싶었다. 하지만 지수라는 아이를 완전히 외면할 수 없었다.”(본문 79쪽) 우주는 잊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지수를 외면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붉은 조끼」의 남주는 ‘사라짐’ 자체에 트라우마가 있다. 병으로 자신의 곁을 떠난 엄마의 사라짐이 두렵고, 엄마 대신 자신을 맡아 준 할머니도 사라질까 무섭다. 그런 두려움에 소위 무섭게 잘나가는 아이들과 어울려도 봤지만 그런 일들로 채워질 수 있는 부재가 아니다. 그러던 중 할머니의 일터에서 근로 환경 문제로 돌아가시는 분이 생기고, 할머니의 동료들은 파업에 돌입하지만, 할머니는 동료들을 외면한 채 남주 곁에 남으려 한다. 할머니마저 잃는 건 두렵지만, 그렇다고 할머니를 붙잡을 수도 없는 남주.
우주도 남주도 가장 쉬운 선택은 오히려 사라져 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눈앞에 닥친 타인의 상황을 외면하고 눈감아 버리는 것. 그 상황으로부터 도망치는 것. 그러나 우주도 남주도, 우리도 사라지는 선택 대신 사라지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선택하곤 한다. 그런 목소리들이 하나둘씩 모이다 보면 사회를 더 긍정적으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운동들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더 나은 사회를 꿈꾸기 위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작은 목소리, 사라지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 그 안의 큰 바람, 결국 우리만의 달을 주목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양선 작가의 다섯 편의 소설을 읽고, 누군가는 외면하고 있었던 자신의 달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그 달이 우리의 오늘을 바꾸는 일을 해내길, 모든 사람이 그 달을 바라보는 우주적인 일들이 일어나길, 기대해 본다.
책 속으로
다연도 해리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아무도 다연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다연의 얼굴이 점점 뜨거워지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정지하기 전의 전조 증상일까. 다연은 그대로 손을 무릎에 올리고는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 숫자를 셌다. -「일시 정지」 (본문 20쪽)중에서
엄마가 내 말을 듣지 않아 서운했다. 하지만 늘 있는 일이었다. 엄마는 중개인이 보내 준 문자를 확인했다. 나는 엄마 휴대폰에 찍힌 비밀번호를 보았다. ‘1770017’ 분명 숫자의 나열인데 글자처럼 보였다. 이유를 생각하다 엄마가 비밀번호를 누르기 직전 떠올렸다.
“엄마 moon이야. 달이라고.” -「달의 방」 (본문 49쪽)중에서
혼자서라도 그림을 그려 보려고 연필을 잡고 드로잉북 앞에 앉았다.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놀리다 정신을 차려 보면 드로잉북은 온통 검은색이었다. 산부인과에서 보았던 초음파 장면처럼. 태양도 별도 달도 없는 우주가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달 없는 우주」 (본문 74쪽)중에서
얼마 전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했던 대사가 떠올랐다. 그녀는 기회비용에 대해 말했다. 한 가지를 얻으면 다른 한 가지는 포기해야 한다. 가장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두려운 것을 피하는 것을 선택할 것인가. 그 대사를 듣자마자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떠올랐다. 혼자 남는 것이다. 할머니는 나를 잃는 것이 무서워 좋아하는 것보다는 두려운 것을 피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붉은 조끼」 (본문 103쪽)중에서
엄마 아빠가 마트에서 장을 보는 동안 나는 차 안에 있기로 했다. 창문을 열어 둔 채 책을 펼쳤다. 창틈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 속에는 야릇한 비린내와 쌉싸름한 나무 향이 배어 있었다.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빨아들이자 책을 쥐고 있던 손에서 스르르 힘이 풀렸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둠의 세상에 뿌연 안개가 깔려 있었다. 제주도의 첫인상이었다. -「바람에 닿다」 (본문 109쪽)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