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사전 편찬자들
- 761
• 지은이 : 정철
• 가격 : 16,000원
• 책꼴/쪽수 :
142×210mm, 356쪽
• 펴낸날 : 2017-07-07
• ISBN : 9791160940992 03900
• 십진분류 : 역사 > 역사 (900)
• 태그 : #어학사전 #백과사전 #편찬자
저자소개
지은이 : 정철
1999년부터 IT 경력을 시작해 네이버, 다음을 거쳐 현재 카카오에서 웹사전을 만들고 있다. 한국사전학회에서 활동하면서 연세대학교 언어정보연구원에서 사전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회사에서 하는 웹사전 기획 이외에 한국위키미디어협회 이사이자 위키백과의 열혈 편집자로 활약하고 있다.
우표, 지우개, 딱지 따위를 모으고 종이사전을 탐독하며 유소년기를 보낸 그는 록 음악을 들으며 사춘기를 통과했고, PC통신이 꽃피던 시기 대학에 들어가 ‘하이텔’ 형들을 따라 레코드판을 사 모으며 20대를 보냈다. 먹고 살 길을 찾던 무렵, 자신의 수집과 정리에 대한 강박을 발휘할 최적의 분야가 ‘사전’이라 판단한 그는 네이버의 문을 두드린다. 종이사전이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던 시기이자 웹사전이 이제 막 걸음마를 떼던 2000년대 초중반 네이버, 다음을 거치며 한국 웹사전의 기본 틀을 디자인하고, 다양한 콘텐츠로 그 속을 채웠다.
지금은 홀대받는 사전의 운명을 안타까워하며 ‘IT 시대 사전과 교양의 관계’를 고민하며 지낸다. 여가 시간은 여전히 록 음악 듣기와 레코드판 사 모으기에 탕진하고 있다.
우표, 지우개, 딱지 따위를 모으고 종이사전을 탐독하며 유소년기를 보낸 그는 록 음악을 들으며 사춘기를 통과했고, PC통신이 꽃피던 시기 대학에 들어가 ‘하이텔’ 형들을 따라 레코드판을 사 모으며 20대를 보냈다. 먹고 살 길을 찾던 무렵, 자신의 수집과 정리에 대한 강박을 발휘할 최적의 분야가 ‘사전’이라 판단한 그는 네이버의 문을 두드린다. 종이사전이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던 시기이자 웹사전이 이제 막 걸음마를 떼던 2000년대 초중반 네이버, 다음을 거치며 한국 웹사전의 기본 틀을 디자인하고, 다양한 콘텐츠로 그 속을 채웠다.
지금은 홀대받는 사전의 운명을 안타까워하며 ‘IT 시대 사전과 교양의 관계’를 고민하며 지낸다. 여가 시간은 여전히 록 음악 듣기와 레코드판 사 모으기에 탕진하고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웹사전 기획자 정철은 전작 『검색, 사전을 삼키다』를 통해 인터넷과 검색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종이사전의 몰락과 그 결과로 국내의 거의 모든 사전이 20년 가까이 개정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신간 『최후의 사전 편찬자들』은 사전 출판사들이 문을 닫으면서 함께 자취를 감춘 사전 편찬자들을 인터뷰한 책이다. 종이사전 콘텐츠를 웹으로 옮기기 위해 사전 편찬자들을 만나러 다녔던 저자는 사전의 전성기 시절에조차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던 이들이 그렇게 소리 없이 사라져가는 것이, 또 사전 편찬이라는 고도의 지적 기술을 우리가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사전의 유형별로 대표적인 편찬자 한 사람씩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과거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전을 만들었는지,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묻고 기록하고 세상에 전하는 확성기가 되기로 했다. 이 책은 우리나라 현대 사전 편찬의 역사를 사전 편찬자들의 말을 통해 기록한 최초의 단행본이자, 사전을 사랑한 한 남자가 그것을 만들어온 이들의 노고에 바치는 헌사, 그리고 웹사전 편찬자와 종이사전 편찬자의 경계를 넘어선 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거창한 의미는 접어두고라도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수십만 개나 되는 단어를 모아 뜻과 용례를 정리해왔을까를 엿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책이다.
목차
들어가며 4
1장 사전 앞에서는 언제나 청년인 50년 사전 장인
_ 조재수(겨레말큰사전편찬위원장)
『겨레말큰사전』에 관하여 17
『우리말큰사전』과 한글학회 23
한글 맞춤법과 사전의 규범성 34
말뭉치와 예문 49
일본어의 잔재와 취음 한자 59
누가 돈을 낼 것인가 63
모든 단어는 독자적이다 68
사전은 가장 발전적인 책 75
●사전 편찬자의 사생활 79
2장 브리태니커는 지식의 구조, 사전의 가치를 고민해온 회사
_ 장경식(한국브리태니커회사 대표)
한국어판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이 나오기까지 87
브리태니커의 사전 편찬자들 96
한창기와 한국브리태니커회사 110
인터넷의 등장과 브리태니커의 대응 116
지식의 구조를 고민하며 부단히 변화해온 브리태니커 125
백과사전의 두 가지 기능, 참조와 교육 130
백과사전과 우리 시대의 교양 133
●사전 편찬자의 사생활 142
3장 사전은 둘러앉아 떠들면서 만들어야 해요
_ 도원영(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사전편찬부 부장)
3대 한국어사전 151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의 비표준, 비규범적 요소들 164
표제어를 둘러싼 논쟁 172
뜻풀이를 어디까지 쪼갤 것인가 186
대사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195
무엇이 사전을 만드는가 207
●사전 편찬자의 사생활 222
4장 규범이 언어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됩니다
_ 안상순(금성출판사 사전팀장)
사전은 과거를 참조해 미래를 만드는 작업 231
『금성판 국어대사전』과 규범성 234
퇴보하는 사전 편찬 기술 242
사전의 마케팅 251
외국어사전을 만든다는 것 255
읽는 재미, 지적 만족을 주는 사전 261
무엇이 좋은 예문인가 270
규범성과 기술성 273
국가가 말을 다듬는다는 것 279
●사전 편찬자의 사생활 286
5장 일본 사전의 유산을 인정하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면 됩니다
_ 김정남(금성출판사, 민중서림 편집부장)
한 사전 편찬자의 이력서 293
일본 사전의 유산 297
저작권 개념이 없던 시절 사전을 만들던 방식 306
국가도 민간도 외면한 외국어사전 312
한영사전과 영한사전 321
전문가를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327
●사전 편찬자의 사생활 332
부록 _ 일본의 사전 편찬자를 만나다(류사와 다케시龍澤武)
사전은 ‘정보’가 아니라 ‘지식’을 다루는 책입니다 337
찾아보기 348
1장 사전 앞에서는 언제나 청년인 50년 사전 장인
_ 조재수(겨레말큰사전편찬위원장)
『겨레말큰사전』에 관하여 17
『우리말큰사전』과 한글학회 23
한글 맞춤법과 사전의 규범성 34
말뭉치와 예문 49
일본어의 잔재와 취음 한자 59
누가 돈을 낼 것인가 63
모든 단어는 독자적이다 68
사전은 가장 발전적인 책 75
●사전 편찬자의 사생활 79
2장 브리태니커는 지식의 구조, 사전의 가치를 고민해온 회사
_ 장경식(한국브리태니커회사 대표)
한국어판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이 나오기까지 87
브리태니커의 사전 편찬자들 96
한창기와 한국브리태니커회사 110
인터넷의 등장과 브리태니커의 대응 116
지식의 구조를 고민하며 부단히 변화해온 브리태니커 125
백과사전의 두 가지 기능, 참조와 교육 130
백과사전과 우리 시대의 교양 133
●사전 편찬자의 사생활 142
3장 사전은 둘러앉아 떠들면서 만들어야 해요
_ 도원영(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사전편찬부 부장)
3대 한국어사전 151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의 비표준, 비규범적 요소들 164
표제어를 둘러싼 논쟁 172
뜻풀이를 어디까지 쪼갤 것인가 186
대사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195
무엇이 사전을 만드는가 207
●사전 편찬자의 사생활 222
4장 규범이 언어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됩니다
_ 안상순(금성출판사 사전팀장)
사전은 과거를 참조해 미래를 만드는 작업 231
『금성판 국어대사전』과 규범성 234
퇴보하는 사전 편찬 기술 242
사전의 마케팅 251
외국어사전을 만든다는 것 255
읽는 재미, 지적 만족을 주는 사전 261
무엇이 좋은 예문인가 270
규범성과 기술성 273
국가가 말을 다듬는다는 것 279
●사전 편찬자의 사생활 286
5장 일본 사전의 유산을 인정하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면 됩니다
_ 김정남(금성출판사, 민중서림 편집부장)
한 사전 편찬자의 이력서 293
일본 사전의 유산 297
저작권 개념이 없던 시절 사전을 만들던 방식 306
국가도 민간도 외면한 외국어사전 312
한영사전과 영한사전 321
전문가를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327
●사전 편찬자의 사생활 332
부록 _ 일본의 사전 편찬자를 만나다(류사와 다케시龍澤武)
사전은 ‘정보’가 아니라 ‘지식’을 다루는 책입니다 337
찾아보기 348
편집자 추천글
말의 뒤를 따라 걷는 가장 느리고 성실한 기술자들
사전 편찬자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최초의 책
벽돌책의 원조, 궁극의 편집, 압축과 정제의 세계……. 사전을 수식하는 말들은 극한의 미학을 뽐내기라도 하듯 끝을 향해 치달린다. 사전 만들기는 편집이라는 말로도 모자라 편찬編纂이라는 단어를 쓰는 유일한 작업이기도 하다. 그런 고도의 지적 기술인 만큼 사전은 오랜 시간 가장 믿을 만한 지식을 집대성한 책으로 권위를 인정받아왔다. 그러나 그 어려운 작업을 해낸 사전 편찬자들은 공론의 영역에서 조명 받은 일이 거의 없다. 사전에 대한 비판은 있어도 사전 편찬자를 호명하거나 평가하는 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메리엄-웹스터 사전의 편찬자 코리 스탬퍼Kory Stamper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사전 편찬은 본질적으로 느린 작업이다. 사전 편찬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리고 다양한 출처와 화자를 아울러 단어의 사용 양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검토해야 한다. …… 언어는 사전 편찬자보다 훨씬 더 빨리 움직이지만, 세세한 것들에 대한 사전 편찬자의 근시안적인 집착이야말로 사전의 내용을 조지 오웰의 소설 속 정부기관과 같아지지 않도록 지켜내는 힘”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일 자체가 가진 속성 때문에 늘 한 발짝 뒤에서 세상보다 천천히 움직이던 사전 편찬자들은 인터넷과 검색의 시대가 열리면서 세상에서 완전히 밀려나버렸다. 한 번도 주인공이 되어보지 못했는데, 무대 자체가 아예 사라져버린 것이다.
IT 기업에서 일하지만 자신을 ‘사전 편찬자’라고 규정하는 저자는 그 어느 때보다 (양적으로) 풍요로운 사전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에 정작 그 콘텐츠를 생산한 사전 편찬자들은 아무런 인정도 받지 못한 채 일자리마저 잃어버린 현실이 안타까웠다. 또한 당대의 언중 사이에서 자리 잡은 ‘말’(어학사전)과 분야별 전문가들의 검증을 거친 ‘지식’(백과사전)을 성실하게 갈무리해온 사전 편찬의 전통이 기록 하나 없이 사라져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과거 사전 편찬의 현장에서 활약했던 5명의 사전 편찬자를 만났다. 그가 만난 이들은 시대적으로는 1930년대 조선어학회부터 현재까지, 분야로는 백과사전에서 한국어사전 및 외국어사전까지, 편찬 주체로는 학회와 대학 연구소, 출판사를 아우르는 현대 한국 사전의 역사 거의 전 범위를 포괄한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는 ‘사전 편찬자의 사생활’이라는 장별 부록을 만들어 집단 저작물이라는 사전의 속성에 가려져 있던 사전 편찬자의 개인성을 드러냈다.
현대 한국의 지적 자산은 어떻게 축적되어왔는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사전은 크게 한국어사전과 백과사전, 외국어사전으로 나눌 수 있다. 각 사전의 발전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방 전후부터 현재까지 현대 한국의 지적 자산이 정리되고 정착되어온 과정을 일별할 수 있다.
먼저 조선어학회/한글학회의 『큰사전』에서 본격화된 한국어사전의 역사는 이희승, 신기철・신용철 등 전문가를 앞세운 출판사 사전들의 경쟁 시대, 1988년에 개정된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을 신속하게 적용한 사전들의 상업적 성공을 거쳐, 1999년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 출간으로 민간의 한국어사전들이 한순간에 상업적 가치를 잃고 두 대학(고려대, 연세대)과 국가가 만든 사전만 살아남은 현재에 이르렀다. “전체적으로 보면 민간의 역할을 국가가 가져가 수행한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42쪽) 이 과정은 한국인들이 한국어와 한글을 바라보는 관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국민들은 어휘의 정확한 사용법이나 표기법을 모를 때 국립국어원에 무엇이 옳은지 묻고, 국립국어원은 그것을 일일이 검토해 답해주는 일종의 결정자 역할을 하고 있다. 문법과 표준어는 기본적으로 권장사항일 뿐인데, 한국어 사용자들은 마치 이것을 지켜야 할 법인 양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43쪽)
1970~90년대 한국의 백과사전 시장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 책에서는 그 가운데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이하 『브리태니커』)에 주목했다. 『브리태니커』는 번역사전이긴 하지만, ‘한국’ 관련 항목을 충실히 보강하면서 진보적 색채를 띠기까지 했고, 국내 백과사전들에 비해 일본 사전의 영향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또한 한창기라는 걸출한 문화인이 『브리태니커』 영어판 판매에서 시작해 한국어판을 출간하기까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루어낸 『뿌리깊은나무』, 『한국의 발견』 등의 빛나는 문화적 성취를 엮어 한국 출판문화의 한 절정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브리태니커회사의 장경식 대표는 지식의 구조와 백과사전의 역할을 부단히 고민해온 ‘브리태니커 정신’을 소개하며, 위키백과를 제외한 모든 백과사전이 힘을 잃고 균형 잡힌 지식, 신뢰할 만한 지식을 누구도 제시하지 않는 시대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이 책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주제는 바로 현대 한국 사전의 역사에 드리운 일본의 짙은 그림자이다. 특히 외국어사전의 경우 대다수가 여러 종의 일본 사전을 번역해 짜깁기하는 식으로 만들어졌다. 일본어가 익숙했던 1세대 사전 편찬자들에게는 영미권의 사전을 참조하는 것보다 일본 사전을 그대로 번역하는 편이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표적 사전 출판사였던 민중서림과 금성출판사에서 편찬 실무를 총괄했던 안상순, 김정남 선생에게 대체 일본 사전을 얼마나 베낀 것인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고, 그들은 부끄러운 과거지만 당시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저자가 이를 집요하게 물은 건 그런 ‘흑역사’를 인정한 뒤에야 미래의 사전을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웹사전 편찬자 VS 종이사전 편찬자
신뢰와 애정을 바탕으로 한 건설적인 토론을 관전하는 즐거움
『최후의 사전 편찬자들』은 웹사전 편찬자와 종이사전 편찬자의 대화를 엮은 책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시대적, 사회적 배경에 따른 입장 차이가 드러난다. 규범사전의 시대를 살았던 종이사전 편찬자들은 기본적으로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지하는 편이다. 규범이 언중의 언어생활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며 충분히 열려 있는 태도를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킬 건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에 웹사전 편찬자인 저자는 오늘날의 사전 편찬은 수많은 예문을 모아놓은 말뭉치 안에서 어휘와 예문을 얼마나 잘 꺼내 기술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정확한 정의, 엄격한 규범을 제시하기보다는 다양한 예문과 그것이 쓰이는 빈도를 충실히 보여주는 게 오늘날 사전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조재수 : 그건 기본입니다. 어느 나라라도 철자법 같은 규범은 지켜야 하는 것이죠. 다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표준어라는 족쇄에 붙잡혀 있는 것이 문제인데, 표준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표준어를 계속해서 늘려나가야 한다는 거죠. _ 47쪽
정철 : 저는 빈도주의자예요. 대부분의 언어 현상은 빈도와 분포가 설명해준다고 생각하거든요. 뜻풀이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사람은 어떤 문장을 마주했을 때 단어 하나하나를 각각 분석해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문장을 통째로, 각 단어들이 어우러진 관계 전체를 입체적으로 받아들이잖아요. 그러니 다양한 예문을 많이 접하게 해주면 그 안에서 각 단어의 의미도 파악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각 단어가 사용된 빈도라고 하는 확실한 숫자를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내용이 전달되죠. _ 261쪽
안상순 : 물론 언어의 규범은 없어질 수도 없고 없어져서도 안 되죠. 말은 문법이라는 규칙에 의해 운용되고 있으니까요. 그 규칙은 학자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언어 공동체가 오랜 세월에 걸쳐 함께 만들어낸 겁니다. 그런데 그 규범을 단어 하나하나에까지 적용해서 쓸 수 있는 말과 쓸 수 없는 말을 미리 규정하고 지나치게 제약을 가하는 것은 억압일 수 있어요. _ 276쪽
『브리태니커』 한국어판을 총괄했던 장경식 대표와 위키백과의 열혈 편집자이기도 한 저자가 백과사전의 역할을 놓고 벌이는 토론도 흥미롭다. 검증된 지식을 엄격한 체계에 따라 서술해 전달하는 것이 백과사전의 역할이라고 보는 장 대표에게 저자는 “좀 계몽적인 입장 아닌가요?” 하고 조심스레 반기를 든다. 저자는 웹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람인 만큼 인터넷으로도 토론이 가능하고, 집단지성의 힘으로 유의미한 지식을 생산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지만 장 대표는 “저는 불가능할 것 같아요”라며 단호하게 부정한다. 이런 대립은 부록으로 수록된 일본의 사전 편찬자 류사와 다케시 선생과의 대화에서도 나타난다. 일본어 위키백과의 현황을 묻는 저자에게 류사와 선생은 위키백과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의 모음일 뿐 ‘지식’을 축적하는 백과사전이라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장경식 : 인터넷에 아이를 그냥 두는 것은 드넓은 사바나에 풀어놓는 것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위키백과처럼 백과사전의 형태를 갖춰놓았다고 다 된 걸까요? 교육이라면 균형과 통제의 안목이 있어야 유의미해진다고 생각해요. 백과사전은 인터넷의 일차적인 소스, 그러니까 지식과 정보의 원천 역할을 해야 해요. 아이에게 필요한 정보를 줄 때 난이도를 조절해가며 가이드를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걸 위키백과와 나무위키가 해줄 수는 없죠. 많다고 좋은 게 아니에요. _ 135쪽
류사와 다케시 : 제 관점에서 위키백과를 평가하자면, 이는 백과사전이라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방대한 정보가 집적되어 있더라도 기사의 집필 주체는 물론 편집 주체도, 거기에 기록되어 있는 ‘지식’의 검증 과정도 분명하지 않은 것을 신뢰할 수 있는 백과사전이라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백과사전은 단순하고 단편적인 ‘지식’의 축적이 아닙니다. 지식의 그물망의 편제, 즉 항목의 편제 방식이 그 백과사전의 편집 방침입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단편인 채로 모아본들 백과사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의 연관을 어떻게 항목으로 편제해갈 것인가, 그것이야말로 백과사전의 최우선 편집 방침인데, 위키백과에서는 그것이 불명확합니다. _ 344~345쪽
이처럼 ‘사전’이라는 대상을 사이에 둔 두 사람의 논쟁은 그 바탕에 깔린 애정이 읽혀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한다. 인터뷰 대상자 대부분이 이미 현업에서 떠난 이들이지만, 사전에 대한 애정과 진지한 고민만큼은 여전하다. 자신이 가치를 부여하는 대상에 대한 건설적인 토론이 흔치 않은 요즘 이들의 대화가 귀한 이유다.
- 주요 내용 -
1장 사전 앞에서는 언제나 청년인 50년 사전 장인 _ 조재수
조재수 선생은 20여 년간 한글학회의 『우리말큰사전』 편찬에 참여했으며, 최근까지 최초의 남북 합작 사전인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을 주도한 한국어사전 편찬사의 산증인이다. 이 인터뷰에서는 어학사전 편찬에 대한 기초 지식,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가 정착해온 역사, 그것을 성실하게 갈무리해온 시기별 대표 사전들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북에 나와 상대가 될 만한 분이 있어요. 나이는 나보다 두세 살 위고, 나는 대학이 순조롭지 못해서 3년을 헛보냈는데 그분은 김일성대학 나오자마자 『조선말사전』 편찬 보조원으로 들어가서 오늘날까지 사전 편찬에 관한 일만 해온 분입니다. 북쪽 사전 편찬의 산증인이지. 나는 남쪽에서 그런 사람이고. 서로 얘기해보면 안 통하는 것이 없어요. 마침 조선어학회의 역사도 많이 알고 계시고. 이극로 선생이 북으로 가서 처음에 조선언어문화연구소 소장을 하면서 사전 편찬실을 주관하셨는데, 그 그늘에서 일하면서 여러 가지 배우고 그랬다니까 나하고는 잘 통했어요. 그런데 연세가 많아서……. 다음 회의가 언제 열릴지는 모르겠는데, 거기나 나나 거의 끝나가지 않나 싶어요. 정순기 선생님. _ 21~22쪽
이효석이 『조광』 잡지에 처음 발표했을 때는 「모밀꽃 필 무렵」이었거든. 모밀밭으로 썼고. 그런데 어느 시점에 ‘메밀’이 표준어가 된 거지. 이젠 모두 ‘메밀꽃’으로만 알고 있잖아요. 심지어 며칠 전 ‘이효석 문화제’에서도 보니 ‘메밀꽃 필 무렵 문화제’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하고 있더라고. 이효석은 「모밀꽃 필 무렵」을 썼지 「메밀꽃 필 무렵」을 쓰진 않았지. 그것이 강원도, 함경도 말이라 하더라도 사전에 담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동안의 사전은 표준어와 비표준어가 있을 때 표준어를 중심으로 뜻풀이나 해주는 것이었다고. 이 간단한 사례에도 우리말의 현주소가 다 드러나요. 단어 하나에는 역사적, 문학적 발자취 같은 것이 다 남아 있어요. 우리 사전은 그걸 온전히 담지 못하고 있어. _ 50~51쪽
아무래도 웹은 도구일 뿐입니다. 학교나 학회 혹은 포털 사이트 등 사전을 만드는 주체를 생각해봤을 때 포털은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오기만을 바라거든요. ‘메밀’과 ‘모밀’의 형태를 고증하는 일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고, 어떻게든 신어新語를 빨리 받아들여서 사람들이 검색했을 때 나오게 해야 한다는 게 포털의 목표입니다. 관심이 너무 달라요. 학문적인 것이든 문화적인 것이든 어떤 것이 바람직한 형태인지 판단하고 조절할 수 있는 곳이 주체가 되어야 하지 않나 싶네요. 포털이 자발적으로 지적인 것에 애정을 쏟기를 바라는 건 너무 낭만적이라고 생각합니다. _ 56쪽
2장 브리태니커는 지식의 구조, 사전의 가치를 고민해온 회사 _ 장경식
장경식 한국브리태니커회사 대표는 대규모 백과사전의 편찬 과정을 소개하며, 백과사전이 엄격한 구조와 체계를 통해 한 사회의 지적 토대로서 기능했던 시절을 반추한다. 브리태니커 특유의 내적 일관성을 지키는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북한 지리’ 같은 논쟁적인 주제도 과감하게 다뤘던 용기 등 브리태니커 편찬자들의 숨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한편 백과사전 CD롬을 가장 먼저 개발했던 브리태니커가 오늘날의 포털 사이트에 버금가는 지식 플랫폼을 구상했지만, 종이사전식의 완결성을 고수하다 무료 웹사전 시대의 개막과 함께 쇠락한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디지털 시대를 맞이할 수도 있었다는 데서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그 무렵 북한과 우리가 유엔UN에 동시 가입했으니 북한도 국가로 인정한 것으로 보고, 북한어를 외국어로 간주했습니다. 이를 전제로 자체적으로 만든 표기 원칙을 관련 기관에 보내 공유도 했고요. 이런 과정 끝에 북한의 표기를 존중한 ‘로동신문’으로 최종 결정을 했어요. 그렇게 결정하고 1, 2, 3권을 출간했습니다. 당연히 ‘ㄴ’ 항목이 포함되어 있는 1, 2, 3권에서 ‘로동신문’은 빠졌지요. 그랬는데 교육부에서 ‘로동신문’이 아니라 두음법칙을 적용한 ‘노동신문’으로 쓰겠다고 방침을 정한 거예요.
우리는 이미 세 권을 출간했고, 그렇다고 뒤에 나올 책에서 ‘로동신문’을 빼버릴 수도 없어서 결국 두 가지 버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노동신문’이 없는 1, 2, 3권의 첫 판을 산 독자들을 위해 4, 5, 6권에 ‘로동신문’이 수록된 버전을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 1, 2, 3권에 ‘노동신문’이 들어간 새 버전을 따로 제작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초기 『브리태니커』 한국어판은 버전 1과 버전 2가 존재합니다. 1~6권까지를 두 번 편집하고, 두 번 인쇄한 거죠. _ 101쪽
콘텐츠의 디지털화와 관련해서 여러 기업과 협의를 했는데, SK의 넷츠고 개발팀과 뜻이 통했어요. SK가 확보한 모바일 가입자만 해도 1000만 명이었기 때문에 향후 인터넷과 모바일, 지식 데이터를 결합한 비즈니스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그 협업에서 SK가 개발비를 대려고 했어요. 브리태니커와 전략적으로 협업해 지식 포털을 개발하면 현재의 네이버 같은 것을 만들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중략) 본사에서 그 얘길 듣더니 그렇게 하면 SK에 종속될 거라고 우려를 하더군요. 결국 본사가 개발비를 대겠다고 해서 또 외화가 들어갑니다. (중략) 그러다가 두산이 네이버에 백과사전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무료 백과사전 시대가 열렸고, 순식간에 시장이 없어졌습니다. _ 118~119쪽
3장 사전은 둘러앉아 떠들면서 만들어야 해요 _ 도원영
이 장에서는 현재 한국인의 언어생활과 직결된 3개의 한국어사전이 소개된다. 바로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연세한국어사전』이 그것이다. 도원영 선생은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의 편찬 과정에서 실무자부터 관리자까지 두루 거친 인물로, 3권짜리 한국어대사전을 편찬하기까지 17년간의 지난했던 여정을 소개하며 규범사전의 역할을 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비해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이 가진 특징, 의의를 강조한다. 특히 저자가 웹사전 편찬자의 입장에서 던지는 여러 가지 논쟁적인 질문에 오랜 기간 종이사전을 만들어온 사람으로서 차분하게 반론을 제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우리 사전은 비표준어나 사람들이 쓰는 다양한 어법을 좀 더 많이 넣으려 했어요. 그런 것들이 틀린 말이니 고쳐 쓰라는 정보를 주지 않으려고 여러 가지 모색을 했었죠. 비표준어라는 표지는 저희 사전에 아예 없어요. ‘가라’라는 표현은 결국 쓰게 됐지만, 다양한 비표준형을 최대한 많이 넣으려고 노력했어요. 빈도 높은 오誤표기라든지 다른 변이형들도 들어 있습니다. 그런 노력이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언어 현실을 반영하자는 것이 우리 사전의 출판 목적이자 목표였으니까요. _ 169쪽
2000년대 초반에 ‘브런치’를 사전에 등재할지 말지를 놓고 연구원들끼리 핏대를 세울 정도로 토론했어요. 당시에는 아직 외국어라고 해서 탈락했지요. 우리한테는 ‘아점’이 있고 ‘브런치’를 쓰는 사람은 일부였으니까요. 또 얘가 살아남을지 아닐지 확신이 서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2008년에 등재했어요. (중략) 그다음 논란이 되었던 게 2002년 월드컵 이후에 사용 빈도가 급증한 ‘코리아’였어요. (중략) 그때 반대하느라 무척 힘들었어요. 소수 의견이었거든요. 간사의 재량으로 넣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건 영어니까. 하지만 당시 한국인의 의식 속에 ‘코리아’라는 새로운 개념이 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과 코리아는 각자가 품고 있는 ‘시니피에’가 다르기 때문에 넣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사실 솔깃했고 설득력도 있었어요. _ 177~178쪽
(한국어사전의 뜻풀이가 지나치게 세세하다는 저자의 의견에 대해) 풍부한 다의가 있다면 그건 우리말의 특징이니 기술해야 하는 것이죠. 종이사전 시대에는 종이책 안에 그 많은 걸 다 넣어야 하니 뜻풀이를 최대한 합쳐야 했지만, 지금은 그런 한계가 없어졌으니 고민의 여지가 없어요. 다른 의미와 변별이 된다면 그대로 기술하는 게 마땅한 일이지요. 언어가 경제성을 갖는다지만, 날로 새롭게 쓰입니다. 의미가 늘어나는 건 당연지사라고 생각해요. 다만, 사전을 담는 매체가 요렇게 조그맣게 변해서 그 안에 많은 내용을 담아야 하니까 고민이 되긴 합니다만, 그것은 웹사전 편집자의 고민인 거잖아요. _ 190쪽
4장 규범이 언어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됩니다 _ 안상순
안상순 선생은 금성출판사의 사전팀 총괄 책임자였던 인물로, 이 인터뷰에서는 국가나 대학, 학회가 아닌 민간의 영역, 즉 출판사에서 상업적으로 사전을 만들고 팔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특히 1988년에 개정된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을 바로 적용해 큰 성공을 거둔 『금성판 국어대사전』의 이야기는 한국어사전 시장에서 규범성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안상순 선생은 연구자가 아닌 실무자였기 때문에 상당히 현실적인 관점, 즉 언중의 언어생활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사전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이시옷 규정에 따르면 ‘개과(포유강 식육목의 한 과)’, ‘소과(포유강 소목의 한 과)’가 아니고 ‘갯과’, ‘솟과’로 표기해야 하는데 이런 표기가 당시로서는 정말 낯설었거든요. (중략) 사전을 발간하고 나서 독자들의 항의도 많았지요. 세상에 갯과, 솟과, 등굣길, 하굣길이 뭐냐고요. 규정의 해석을 놓고도 국립국어원에 묻고 또 물었어요. 어문 규정은 원론적이고 포괄적이지만, 사전은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문제와 맞닥뜨려야 했기 때문에 유권 해석이 반드시 필요했죠. 그런 문제, 아니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전이 나오는 순간까지 고심을 거듭했습니다. _ 235쪽
일상의 언어감각을 존중하는 위키백과에서는 표제어로서는 개과, 소과라고 쓰고, 괄호 안에 갯과, 솟과가 표준어임을 밝히고 있다. 위키백과는 한국어 언중이 받아들인 어휘가 아니라면, 규범이라고 해서 모두 따르지는 않는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한국어 언중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지 대한민국 영토 내의 사람들끼리만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어 언중이 대한민국 영토 내에 많이 살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이고, 영어 언중이 영국 영토 밖에 많이 살고 있는 것 또한 우연이라는 것이 위키백과의 관점이다. _ 236쪽
종합 국어대사전이라면 욕설이든 속어든 유행어든 방언이든 두루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령 ‘문자를 날리다’의 ‘날리다’, ‘장난이 아니다(대단하다, 심하다, 상상 밖이다)’ 같은 말은 여전히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데 그런 말들도 마땅히 사전에 등재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략) ‘왠지’라는 단어 있죠? 이건 『금성판 국어대사전』에 와서야 처음 표제어로 오른 말이에요. (중략) 그 말이 사전에 없다 보니까 표기가 항상 혼란스러웠어요. ‘왠지’와 ‘웬지’가 양립하는 상황이 벌어졌죠. 두 표기를 놓고 서로 자기가 옳다고 우기는 일이 적지 않았어요. 심지어 국어 교과서에 ‘웬지’가 버젓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왠지’가 사전에 수록되면서 어느 것이 옳으냐는 논쟁은 종결되었지요. _ 248~249쪽
5장 일본 사전의 유산을 인정하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면 됩니다 _ 김정남
김정남 선생은 금성출판사와 민중서림에서 영한사전을 편찬했던 인물로, 과거 외국어사전을 만들 때 과연 일본 사전의 영향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아보기 위해 특별히 섭외했다. 웹사전, 특히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영한‧한영사전 콘텐츠를 관리하면서 일본식 한자어를 자주 맞닥뜨렸던 저자는 그 단어들이 어떻게 해서 우리 사전에 들어가게 됐는지, 당시 사전을 만들었던 편찬자들은 어느 정도의 윤리적 감각으로 일본 사전을 참조했는지 등을 물었고, 김정남 선생은 자신을 비롯한 당시 편찬자들의 작업 방식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았다. 김정남 선생이 보여준 『신콘사이스 영일사전』과 민중서림의 『엣센스 영한사전』은 내용은 물론 장정까지 흡사해 우리 사전의 과거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우리나라에서 초창기에 사전을 만들 때는 아마 일본 사전을 절대적으로 활용했을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본 사전을 베껴먹었다며 흉을 보고 그러는데 제 생각은 그렇지 않아요. 일본은 사전을 만든 역사가 100년이 훨씬 넘습니다. (중략) 우리는 정말 힘 안 들이고 그 용어를 그대로 갖다 쓴 겁니다. 일본인은 언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사람들이에요. 영일사전을 보면 뜻 갈래를 아주 세분화해놓았어요. 옥스퍼드나 롱맨 사전은 그렇게 섬세하게 뜻을 분류하지 않았어요. (중략) 물론 무조건 베끼는 건 좋지 않지만, 그래도 일본의 절대적인 영향 덕에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이 정도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_ 300쪽
단기간에 여러 종류의 사전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에서 일본 사전을 참고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한시가 급한데 그 많은 걸 언제 다 일일이 개발하고 있겠는가. 일본 사전을 가져다가 조금만 개선해서 내놓으면 마구 팔려나가던 시절이었다. 사전을 만들던 출판사들은 사전이 돈이 된다고 판단해서 뛰어든 것이다. (중략) 더 안타까운 건 일본 사전의 유산을 극복하고 우리 힘으로 제대로 된 영어사전을 만들어보기도 전에 한국의 영어사전이 급속히 영미권 사전의 번역 시장으로 바뀌었다가 인터넷과 함께 붕괴해버렸다는 사실이다. _ 311~312쪽
정부가 좀 나빠요. 민간이 하고 있으면 더 잘하도록 돈을 지원해줄 수 있잖아요. 그게 아니라 자꾸 정부가 직접 해요. (중략) 베트남어나 태국어나 몽골어사전을 국가가 직접 만들고 있어요. 물론 국가는 돈을 쓰고, 작업은 대학에다 외주를 줍니다. 하지만 그 성과물을 국가가 소유하고 서비스도 국가가 직접 하거든요. (중략) 무엇보다 국가가 만들면 민간에서는 안 하게 되죠. 그게 제일 나빠요. 국가와 겹치는 부분은 결국 안 하게 되거든요. 국어사전도 국가가 주도하니까 민간에서 만들던 것들은 다 소멸해버렸잖아요. 외대에서도 국가가 손댄 언어들은 앞으로 업데이트를 안 할 가능성이 높아요. _ 317쪽
부록 일본의 사전 편찬자를 만나다
_ 류사와 다케시(헤이본샤 『세계대백과사전』 총괄 편집장)
한국의 사전 편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사전강국 일본.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사전을 만들어왔을까? 사전은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전 세계적으로 종이사전이 몰락하고 있는 지금, 일본의 사전 편찬 현황은 어떨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저자는 일본의 사전 편찬자 류사와 다케시 선생과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류사와 선생은 일본의 대표적 사전 출판사인 헤이본샤에서 『세계대백과사전』(전35권) 편찬을 총괄했던 인물로 지금도 일본 출판계에서 학술 총서 등을 기획할 때 조언을 구하는 원로 출판인이다. 저자는 저마다 개성을 가진 일본의 사전들이 독자에게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 또 위키백과의 등장 이후 위기를 맞은 백과사전들은 어떻게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두 사람의 견해차, 즉 ‘끊임없이 갱신되는 정보’가 중요한 웹사전 편찬자와 ‘사전은 갱신하는 것이 아니라 개정하는 것’이라는 종이사전 편찬자의 미묘한 어긋남이 흥미롭게 읽힌다.
일반적으로 백과사전이나 어학사전에는 ‘갱신’이라는 용어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개정’이라고 해야 합니다. 백과사전이든 어학사전이든 거기에 수록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지식’이며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그리 간단하게 ‘갱신’되는 것이 아닙니다. _ 346쪽
사전 편찬자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최초의 책
벽돌책의 원조, 궁극의 편집, 압축과 정제의 세계……. 사전을 수식하는 말들은 극한의 미학을 뽐내기라도 하듯 끝을 향해 치달린다. 사전 만들기는 편집이라는 말로도 모자라 편찬編纂이라는 단어를 쓰는 유일한 작업이기도 하다. 그런 고도의 지적 기술인 만큼 사전은 오랜 시간 가장 믿을 만한 지식을 집대성한 책으로 권위를 인정받아왔다. 그러나 그 어려운 작업을 해낸 사전 편찬자들은 공론의 영역에서 조명 받은 일이 거의 없다. 사전에 대한 비판은 있어도 사전 편찬자를 호명하거나 평가하는 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메리엄-웹스터 사전의 편찬자 코리 스탬퍼Kory Stamper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사전 편찬은 본질적으로 느린 작업이다. 사전 편찬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리고 다양한 출처와 화자를 아울러 단어의 사용 양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검토해야 한다. …… 언어는 사전 편찬자보다 훨씬 더 빨리 움직이지만, 세세한 것들에 대한 사전 편찬자의 근시안적인 집착이야말로 사전의 내용을 조지 오웰의 소설 속 정부기관과 같아지지 않도록 지켜내는 힘”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일 자체가 가진 속성 때문에 늘 한 발짝 뒤에서 세상보다 천천히 움직이던 사전 편찬자들은 인터넷과 검색의 시대가 열리면서 세상에서 완전히 밀려나버렸다. 한 번도 주인공이 되어보지 못했는데, 무대 자체가 아예 사라져버린 것이다.
IT 기업에서 일하지만 자신을 ‘사전 편찬자’라고 규정하는 저자는 그 어느 때보다 (양적으로) 풍요로운 사전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에 정작 그 콘텐츠를 생산한 사전 편찬자들은 아무런 인정도 받지 못한 채 일자리마저 잃어버린 현실이 안타까웠다. 또한 당대의 언중 사이에서 자리 잡은 ‘말’(어학사전)과 분야별 전문가들의 검증을 거친 ‘지식’(백과사전)을 성실하게 갈무리해온 사전 편찬의 전통이 기록 하나 없이 사라져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과거 사전 편찬의 현장에서 활약했던 5명의 사전 편찬자를 만났다. 그가 만난 이들은 시대적으로는 1930년대 조선어학회부터 현재까지, 분야로는 백과사전에서 한국어사전 및 외국어사전까지, 편찬 주체로는 학회와 대학 연구소, 출판사를 아우르는 현대 한국 사전의 역사 거의 전 범위를 포괄한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는 ‘사전 편찬자의 사생활’이라는 장별 부록을 만들어 집단 저작물이라는 사전의 속성에 가려져 있던 사전 편찬자의 개인성을 드러냈다.
현대 한국의 지적 자산은 어떻게 축적되어왔는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사전은 크게 한국어사전과 백과사전, 외국어사전으로 나눌 수 있다. 각 사전의 발전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방 전후부터 현재까지 현대 한국의 지적 자산이 정리되고 정착되어온 과정을 일별할 수 있다.
먼저 조선어학회/한글학회의 『큰사전』에서 본격화된 한국어사전의 역사는 이희승, 신기철・신용철 등 전문가를 앞세운 출판사 사전들의 경쟁 시대, 1988년에 개정된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을 신속하게 적용한 사전들의 상업적 성공을 거쳐, 1999년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 출간으로 민간의 한국어사전들이 한순간에 상업적 가치를 잃고 두 대학(고려대, 연세대)과 국가가 만든 사전만 살아남은 현재에 이르렀다. “전체적으로 보면 민간의 역할을 국가가 가져가 수행한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42쪽) 이 과정은 한국인들이 한국어와 한글을 바라보는 관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국민들은 어휘의 정확한 사용법이나 표기법을 모를 때 국립국어원에 무엇이 옳은지 묻고, 국립국어원은 그것을 일일이 검토해 답해주는 일종의 결정자 역할을 하고 있다. 문법과 표준어는 기본적으로 권장사항일 뿐인데, 한국어 사용자들은 마치 이것을 지켜야 할 법인 양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43쪽)
1970~90년대 한국의 백과사전 시장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 책에서는 그 가운데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이하 『브리태니커』)에 주목했다. 『브리태니커』는 번역사전이긴 하지만, ‘한국’ 관련 항목을 충실히 보강하면서 진보적 색채를 띠기까지 했고, 국내 백과사전들에 비해 일본 사전의 영향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또한 한창기라는 걸출한 문화인이 『브리태니커』 영어판 판매에서 시작해 한국어판을 출간하기까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루어낸 『뿌리깊은나무』, 『한국의 발견』 등의 빛나는 문화적 성취를 엮어 한국 출판문화의 한 절정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브리태니커회사의 장경식 대표는 지식의 구조와 백과사전의 역할을 부단히 고민해온 ‘브리태니커 정신’을 소개하며, 위키백과를 제외한 모든 백과사전이 힘을 잃고 균형 잡힌 지식, 신뢰할 만한 지식을 누구도 제시하지 않는 시대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이 책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주제는 바로 현대 한국 사전의 역사에 드리운 일본의 짙은 그림자이다. 특히 외국어사전의 경우 대다수가 여러 종의 일본 사전을 번역해 짜깁기하는 식으로 만들어졌다. 일본어가 익숙했던 1세대 사전 편찬자들에게는 영미권의 사전을 참조하는 것보다 일본 사전을 그대로 번역하는 편이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표적 사전 출판사였던 민중서림과 금성출판사에서 편찬 실무를 총괄했던 안상순, 김정남 선생에게 대체 일본 사전을 얼마나 베낀 것인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고, 그들은 부끄러운 과거지만 당시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저자가 이를 집요하게 물은 건 그런 ‘흑역사’를 인정한 뒤에야 미래의 사전을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웹사전 편찬자 VS 종이사전 편찬자
신뢰와 애정을 바탕으로 한 건설적인 토론을 관전하는 즐거움
『최후의 사전 편찬자들』은 웹사전 편찬자와 종이사전 편찬자의 대화를 엮은 책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시대적, 사회적 배경에 따른 입장 차이가 드러난다. 규범사전의 시대를 살았던 종이사전 편찬자들은 기본적으로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지하는 편이다. 규범이 언중의 언어생활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며 충분히 열려 있는 태도를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킬 건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에 웹사전 편찬자인 저자는 오늘날의 사전 편찬은 수많은 예문을 모아놓은 말뭉치 안에서 어휘와 예문을 얼마나 잘 꺼내 기술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정확한 정의, 엄격한 규범을 제시하기보다는 다양한 예문과 그것이 쓰이는 빈도를 충실히 보여주는 게 오늘날 사전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조재수 : 그건 기본입니다. 어느 나라라도 철자법 같은 규범은 지켜야 하는 것이죠. 다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표준어라는 족쇄에 붙잡혀 있는 것이 문제인데, 표준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표준어를 계속해서 늘려나가야 한다는 거죠. _ 47쪽
정철 : 저는 빈도주의자예요. 대부분의 언어 현상은 빈도와 분포가 설명해준다고 생각하거든요. 뜻풀이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사람은 어떤 문장을 마주했을 때 단어 하나하나를 각각 분석해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문장을 통째로, 각 단어들이 어우러진 관계 전체를 입체적으로 받아들이잖아요. 그러니 다양한 예문을 많이 접하게 해주면 그 안에서 각 단어의 의미도 파악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각 단어가 사용된 빈도라고 하는 확실한 숫자를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내용이 전달되죠. _ 261쪽
안상순 : 물론 언어의 규범은 없어질 수도 없고 없어져서도 안 되죠. 말은 문법이라는 규칙에 의해 운용되고 있으니까요. 그 규칙은 학자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언어 공동체가 오랜 세월에 걸쳐 함께 만들어낸 겁니다. 그런데 그 규범을 단어 하나하나에까지 적용해서 쓸 수 있는 말과 쓸 수 없는 말을 미리 규정하고 지나치게 제약을 가하는 것은 억압일 수 있어요. _ 276쪽
『브리태니커』 한국어판을 총괄했던 장경식 대표와 위키백과의 열혈 편집자이기도 한 저자가 백과사전의 역할을 놓고 벌이는 토론도 흥미롭다. 검증된 지식을 엄격한 체계에 따라 서술해 전달하는 것이 백과사전의 역할이라고 보는 장 대표에게 저자는 “좀 계몽적인 입장 아닌가요?” 하고 조심스레 반기를 든다. 저자는 웹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람인 만큼 인터넷으로도 토론이 가능하고, 집단지성의 힘으로 유의미한 지식을 생산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지만 장 대표는 “저는 불가능할 것 같아요”라며 단호하게 부정한다. 이런 대립은 부록으로 수록된 일본의 사전 편찬자 류사와 다케시 선생과의 대화에서도 나타난다. 일본어 위키백과의 현황을 묻는 저자에게 류사와 선생은 위키백과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의 모음일 뿐 ‘지식’을 축적하는 백과사전이라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장경식 : 인터넷에 아이를 그냥 두는 것은 드넓은 사바나에 풀어놓는 것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위키백과처럼 백과사전의 형태를 갖춰놓았다고 다 된 걸까요? 교육이라면 균형과 통제의 안목이 있어야 유의미해진다고 생각해요. 백과사전은 인터넷의 일차적인 소스, 그러니까 지식과 정보의 원천 역할을 해야 해요. 아이에게 필요한 정보를 줄 때 난이도를 조절해가며 가이드를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걸 위키백과와 나무위키가 해줄 수는 없죠. 많다고 좋은 게 아니에요. _ 135쪽
류사와 다케시 : 제 관점에서 위키백과를 평가하자면, 이는 백과사전이라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방대한 정보가 집적되어 있더라도 기사의 집필 주체는 물론 편집 주체도, 거기에 기록되어 있는 ‘지식’의 검증 과정도 분명하지 않은 것을 신뢰할 수 있는 백과사전이라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백과사전은 단순하고 단편적인 ‘지식’의 축적이 아닙니다. 지식의 그물망의 편제, 즉 항목의 편제 방식이 그 백과사전의 편집 방침입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단편인 채로 모아본들 백과사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의 연관을 어떻게 항목으로 편제해갈 것인가, 그것이야말로 백과사전의 최우선 편집 방침인데, 위키백과에서는 그것이 불명확합니다. _ 344~345쪽
이처럼 ‘사전’이라는 대상을 사이에 둔 두 사람의 논쟁은 그 바탕에 깔린 애정이 읽혀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한다. 인터뷰 대상자 대부분이 이미 현업에서 떠난 이들이지만, 사전에 대한 애정과 진지한 고민만큼은 여전하다. 자신이 가치를 부여하는 대상에 대한 건설적인 토론이 흔치 않은 요즘 이들의 대화가 귀한 이유다.
- 주요 내용 -
1장 사전 앞에서는 언제나 청년인 50년 사전 장인 _ 조재수
조재수 선생은 20여 년간 한글학회의 『우리말큰사전』 편찬에 참여했으며, 최근까지 최초의 남북 합작 사전인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을 주도한 한국어사전 편찬사의 산증인이다. 이 인터뷰에서는 어학사전 편찬에 대한 기초 지식,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가 정착해온 역사, 그것을 성실하게 갈무리해온 시기별 대표 사전들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북에 나와 상대가 될 만한 분이 있어요. 나이는 나보다 두세 살 위고, 나는 대학이 순조롭지 못해서 3년을 헛보냈는데 그분은 김일성대학 나오자마자 『조선말사전』 편찬 보조원으로 들어가서 오늘날까지 사전 편찬에 관한 일만 해온 분입니다. 북쪽 사전 편찬의 산증인이지. 나는 남쪽에서 그런 사람이고. 서로 얘기해보면 안 통하는 것이 없어요. 마침 조선어학회의 역사도 많이 알고 계시고. 이극로 선생이 북으로 가서 처음에 조선언어문화연구소 소장을 하면서 사전 편찬실을 주관하셨는데, 그 그늘에서 일하면서 여러 가지 배우고 그랬다니까 나하고는 잘 통했어요. 그런데 연세가 많아서……. 다음 회의가 언제 열릴지는 모르겠는데, 거기나 나나 거의 끝나가지 않나 싶어요. 정순기 선생님. _ 21~22쪽
이효석이 『조광』 잡지에 처음 발표했을 때는 「모밀꽃 필 무렵」이었거든. 모밀밭으로 썼고. 그런데 어느 시점에 ‘메밀’이 표준어가 된 거지. 이젠 모두 ‘메밀꽃’으로만 알고 있잖아요. 심지어 며칠 전 ‘이효석 문화제’에서도 보니 ‘메밀꽃 필 무렵 문화제’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하고 있더라고. 이효석은 「모밀꽃 필 무렵」을 썼지 「메밀꽃 필 무렵」을 쓰진 않았지. 그것이 강원도, 함경도 말이라 하더라도 사전에 담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동안의 사전은 표준어와 비표준어가 있을 때 표준어를 중심으로 뜻풀이나 해주는 것이었다고. 이 간단한 사례에도 우리말의 현주소가 다 드러나요. 단어 하나에는 역사적, 문학적 발자취 같은 것이 다 남아 있어요. 우리 사전은 그걸 온전히 담지 못하고 있어. _ 50~51쪽
아무래도 웹은 도구일 뿐입니다. 학교나 학회 혹은 포털 사이트 등 사전을 만드는 주체를 생각해봤을 때 포털은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오기만을 바라거든요. ‘메밀’과 ‘모밀’의 형태를 고증하는 일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고, 어떻게든 신어新語를 빨리 받아들여서 사람들이 검색했을 때 나오게 해야 한다는 게 포털의 목표입니다. 관심이 너무 달라요. 학문적인 것이든 문화적인 것이든 어떤 것이 바람직한 형태인지 판단하고 조절할 수 있는 곳이 주체가 되어야 하지 않나 싶네요. 포털이 자발적으로 지적인 것에 애정을 쏟기를 바라는 건 너무 낭만적이라고 생각합니다. _ 56쪽
2장 브리태니커는 지식의 구조, 사전의 가치를 고민해온 회사 _ 장경식
장경식 한국브리태니커회사 대표는 대규모 백과사전의 편찬 과정을 소개하며, 백과사전이 엄격한 구조와 체계를 통해 한 사회의 지적 토대로서 기능했던 시절을 반추한다. 브리태니커 특유의 내적 일관성을 지키는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북한 지리’ 같은 논쟁적인 주제도 과감하게 다뤘던 용기 등 브리태니커 편찬자들의 숨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한편 백과사전 CD롬을 가장 먼저 개발했던 브리태니커가 오늘날의 포털 사이트에 버금가는 지식 플랫폼을 구상했지만, 종이사전식의 완결성을 고수하다 무료 웹사전 시대의 개막과 함께 쇠락한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디지털 시대를 맞이할 수도 있었다는 데서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그 무렵 북한과 우리가 유엔UN에 동시 가입했으니 북한도 국가로 인정한 것으로 보고, 북한어를 외국어로 간주했습니다. 이를 전제로 자체적으로 만든 표기 원칙을 관련 기관에 보내 공유도 했고요. 이런 과정 끝에 북한의 표기를 존중한 ‘로동신문’으로 최종 결정을 했어요. 그렇게 결정하고 1, 2, 3권을 출간했습니다. 당연히 ‘ㄴ’ 항목이 포함되어 있는 1, 2, 3권에서 ‘로동신문’은 빠졌지요. 그랬는데 교육부에서 ‘로동신문’이 아니라 두음법칙을 적용한 ‘노동신문’으로 쓰겠다고 방침을 정한 거예요.
우리는 이미 세 권을 출간했고, 그렇다고 뒤에 나올 책에서 ‘로동신문’을 빼버릴 수도 없어서 결국 두 가지 버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노동신문’이 없는 1, 2, 3권의 첫 판을 산 독자들을 위해 4, 5, 6권에 ‘로동신문’이 수록된 버전을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 1, 2, 3권에 ‘노동신문’이 들어간 새 버전을 따로 제작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초기 『브리태니커』 한국어판은 버전 1과 버전 2가 존재합니다. 1~6권까지를 두 번 편집하고, 두 번 인쇄한 거죠. _ 101쪽
콘텐츠의 디지털화와 관련해서 여러 기업과 협의를 했는데, SK의 넷츠고 개발팀과 뜻이 통했어요. SK가 확보한 모바일 가입자만 해도 1000만 명이었기 때문에 향후 인터넷과 모바일, 지식 데이터를 결합한 비즈니스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그 협업에서 SK가 개발비를 대려고 했어요. 브리태니커와 전략적으로 협업해 지식 포털을 개발하면 현재의 네이버 같은 것을 만들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중략) 본사에서 그 얘길 듣더니 그렇게 하면 SK에 종속될 거라고 우려를 하더군요. 결국 본사가 개발비를 대겠다고 해서 또 외화가 들어갑니다. (중략) 그러다가 두산이 네이버에 백과사전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무료 백과사전 시대가 열렸고, 순식간에 시장이 없어졌습니다. _ 118~119쪽
3장 사전은 둘러앉아 떠들면서 만들어야 해요 _ 도원영
이 장에서는 현재 한국인의 언어생활과 직결된 3개의 한국어사전이 소개된다. 바로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연세한국어사전』이 그것이다. 도원영 선생은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의 편찬 과정에서 실무자부터 관리자까지 두루 거친 인물로, 3권짜리 한국어대사전을 편찬하기까지 17년간의 지난했던 여정을 소개하며 규범사전의 역할을 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비해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이 가진 특징, 의의를 강조한다. 특히 저자가 웹사전 편찬자의 입장에서 던지는 여러 가지 논쟁적인 질문에 오랜 기간 종이사전을 만들어온 사람으로서 차분하게 반론을 제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우리 사전은 비표준어나 사람들이 쓰는 다양한 어법을 좀 더 많이 넣으려 했어요. 그런 것들이 틀린 말이니 고쳐 쓰라는 정보를 주지 않으려고 여러 가지 모색을 했었죠. 비표준어라는 표지는 저희 사전에 아예 없어요. ‘가라’라는 표현은 결국 쓰게 됐지만, 다양한 비표준형을 최대한 많이 넣으려고 노력했어요. 빈도 높은 오誤표기라든지 다른 변이형들도 들어 있습니다. 그런 노력이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언어 현실을 반영하자는 것이 우리 사전의 출판 목적이자 목표였으니까요. _ 169쪽
2000년대 초반에 ‘브런치’를 사전에 등재할지 말지를 놓고 연구원들끼리 핏대를 세울 정도로 토론했어요. 당시에는 아직 외국어라고 해서 탈락했지요. 우리한테는 ‘아점’이 있고 ‘브런치’를 쓰는 사람은 일부였으니까요. 또 얘가 살아남을지 아닐지 확신이 서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2008년에 등재했어요. (중략) 그다음 논란이 되었던 게 2002년 월드컵 이후에 사용 빈도가 급증한 ‘코리아’였어요. (중략) 그때 반대하느라 무척 힘들었어요. 소수 의견이었거든요. 간사의 재량으로 넣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건 영어니까. 하지만 당시 한국인의 의식 속에 ‘코리아’라는 새로운 개념이 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과 코리아는 각자가 품고 있는 ‘시니피에’가 다르기 때문에 넣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사실 솔깃했고 설득력도 있었어요. _ 177~178쪽
(한국어사전의 뜻풀이가 지나치게 세세하다는 저자의 의견에 대해) 풍부한 다의가 있다면 그건 우리말의 특징이니 기술해야 하는 것이죠. 종이사전 시대에는 종이책 안에 그 많은 걸 다 넣어야 하니 뜻풀이를 최대한 합쳐야 했지만, 지금은 그런 한계가 없어졌으니 고민의 여지가 없어요. 다른 의미와 변별이 된다면 그대로 기술하는 게 마땅한 일이지요. 언어가 경제성을 갖는다지만, 날로 새롭게 쓰입니다. 의미가 늘어나는 건 당연지사라고 생각해요. 다만, 사전을 담는 매체가 요렇게 조그맣게 변해서 그 안에 많은 내용을 담아야 하니까 고민이 되긴 합니다만, 그것은 웹사전 편집자의 고민인 거잖아요. _ 190쪽
4장 규범이 언어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됩니다 _ 안상순
안상순 선생은 금성출판사의 사전팀 총괄 책임자였던 인물로, 이 인터뷰에서는 국가나 대학, 학회가 아닌 민간의 영역, 즉 출판사에서 상업적으로 사전을 만들고 팔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특히 1988년에 개정된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을 바로 적용해 큰 성공을 거둔 『금성판 국어대사전』의 이야기는 한국어사전 시장에서 규범성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안상순 선생은 연구자가 아닌 실무자였기 때문에 상당히 현실적인 관점, 즉 언중의 언어생활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사전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이시옷 규정에 따르면 ‘개과(포유강 식육목의 한 과)’, ‘소과(포유강 소목의 한 과)’가 아니고 ‘갯과’, ‘솟과’로 표기해야 하는데 이런 표기가 당시로서는 정말 낯설었거든요. (중략) 사전을 발간하고 나서 독자들의 항의도 많았지요. 세상에 갯과, 솟과, 등굣길, 하굣길이 뭐냐고요. 규정의 해석을 놓고도 국립국어원에 묻고 또 물었어요. 어문 규정은 원론적이고 포괄적이지만, 사전은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문제와 맞닥뜨려야 했기 때문에 유권 해석이 반드시 필요했죠. 그런 문제, 아니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전이 나오는 순간까지 고심을 거듭했습니다. _ 235쪽
일상의 언어감각을 존중하는 위키백과에서는 표제어로서는 개과, 소과라고 쓰고, 괄호 안에 갯과, 솟과가 표준어임을 밝히고 있다. 위키백과는 한국어 언중이 받아들인 어휘가 아니라면, 규범이라고 해서 모두 따르지는 않는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한국어 언중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지 대한민국 영토 내의 사람들끼리만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어 언중이 대한민국 영토 내에 많이 살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이고, 영어 언중이 영국 영토 밖에 많이 살고 있는 것 또한 우연이라는 것이 위키백과의 관점이다. _ 236쪽
종합 국어대사전이라면 욕설이든 속어든 유행어든 방언이든 두루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령 ‘문자를 날리다’의 ‘날리다’, ‘장난이 아니다(대단하다, 심하다, 상상 밖이다)’ 같은 말은 여전히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데 그런 말들도 마땅히 사전에 등재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략) ‘왠지’라는 단어 있죠? 이건 『금성판 국어대사전』에 와서야 처음 표제어로 오른 말이에요. (중략) 그 말이 사전에 없다 보니까 표기가 항상 혼란스러웠어요. ‘왠지’와 ‘웬지’가 양립하는 상황이 벌어졌죠. 두 표기를 놓고 서로 자기가 옳다고 우기는 일이 적지 않았어요. 심지어 국어 교과서에 ‘웬지’가 버젓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왠지’가 사전에 수록되면서 어느 것이 옳으냐는 논쟁은 종결되었지요. _ 248~249쪽
5장 일본 사전의 유산을 인정하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면 됩니다 _ 김정남
김정남 선생은 금성출판사와 민중서림에서 영한사전을 편찬했던 인물로, 과거 외국어사전을 만들 때 과연 일본 사전의 영향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아보기 위해 특별히 섭외했다. 웹사전, 특히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영한‧한영사전 콘텐츠를 관리하면서 일본식 한자어를 자주 맞닥뜨렸던 저자는 그 단어들이 어떻게 해서 우리 사전에 들어가게 됐는지, 당시 사전을 만들었던 편찬자들은 어느 정도의 윤리적 감각으로 일본 사전을 참조했는지 등을 물었고, 김정남 선생은 자신을 비롯한 당시 편찬자들의 작업 방식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았다. 김정남 선생이 보여준 『신콘사이스 영일사전』과 민중서림의 『엣센스 영한사전』은 내용은 물론 장정까지 흡사해 우리 사전의 과거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우리나라에서 초창기에 사전을 만들 때는 아마 일본 사전을 절대적으로 활용했을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본 사전을 베껴먹었다며 흉을 보고 그러는데 제 생각은 그렇지 않아요. 일본은 사전을 만든 역사가 100년이 훨씬 넘습니다. (중략) 우리는 정말 힘 안 들이고 그 용어를 그대로 갖다 쓴 겁니다. 일본인은 언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사람들이에요. 영일사전을 보면 뜻 갈래를 아주 세분화해놓았어요. 옥스퍼드나 롱맨 사전은 그렇게 섬세하게 뜻을 분류하지 않았어요. (중략) 물론 무조건 베끼는 건 좋지 않지만, 그래도 일본의 절대적인 영향 덕에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이 정도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_ 300쪽
단기간에 여러 종류의 사전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에서 일본 사전을 참고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한시가 급한데 그 많은 걸 언제 다 일일이 개발하고 있겠는가. 일본 사전을 가져다가 조금만 개선해서 내놓으면 마구 팔려나가던 시절이었다. 사전을 만들던 출판사들은 사전이 돈이 된다고 판단해서 뛰어든 것이다. (중략) 더 안타까운 건 일본 사전의 유산을 극복하고 우리 힘으로 제대로 된 영어사전을 만들어보기도 전에 한국의 영어사전이 급속히 영미권 사전의 번역 시장으로 바뀌었다가 인터넷과 함께 붕괴해버렸다는 사실이다. _ 311~312쪽
정부가 좀 나빠요. 민간이 하고 있으면 더 잘하도록 돈을 지원해줄 수 있잖아요. 그게 아니라 자꾸 정부가 직접 해요. (중략) 베트남어나 태국어나 몽골어사전을 국가가 직접 만들고 있어요. 물론 국가는 돈을 쓰고, 작업은 대학에다 외주를 줍니다. 하지만 그 성과물을 국가가 소유하고 서비스도 국가가 직접 하거든요. (중략) 무엇보다 국가가 만들면 민간에서는 안 하게 되죠. 그게 제일 나빠요. 국가와 겹치는 부분은 결국 안 하게 되거든요. 국어사전도 국가가 주도하니까 민간에서 만들던 것들은 다 소멸해버렸잖아요. 외대에서도 국가가 손댄 언어들은 앞으로 업데이트를 안 할 가능성이 높아요. _ 317쪽
부록 일본의 사전 편찬자를 만나다
_ 류사와 다케시(헤이본샤 『세계대백과사전』 총괄 편집장)
한국의 사전 편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사전강국 일본.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사전을 만들어왔을까? 사전은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전 세계적으로 종이사전이 몰락하고 있는 지금, 일본의 사전 편찬 현황은 어떨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저자는 일본의 사전 편찬자 류사와 다케시 선생과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류사와 선생은 일본의 대표적 사전 출판사인 헤이본샤에서 『세계대백과사전』(전35권) 편찬을 총괄했던 인물로 지금도 일본 출판계에서 학술 총서 등을 기획할 때 조언을 구하는 원로 출판인이다. 저자는 저마다 개성을 가진 일본의 사전들이 독자에게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 또 위키백과의 등장 이후 위기를 맞은 백과사전들은 어떻게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두 사람의 견해차, 즉 ‘끊임없이 갱신되는 정보’가 중요한 웹사전 편찬자와 ‘사전은 갱신하는 것이 아니라 개정하는 것’이라는 종이사전 편찬자의 미묘한 어긋남이 흥미롭게 읽힌다.
일반적으로 백과사전이나 어학사전에는 ‘갱신’이라는 용어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개정’이라고 해야 합니다. 백과사전이든 어학사전이든 거기에 수록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지식’이며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그리 간단하게 ‘갱신’되는 것이 아닙니다. _ 3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