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로드 – 고추가 일으킨 식탁 혁명
- 1220
• 지은이 : 야마모토 노리오
• 옮긴이 : 최용우
• 가격 : 16,000원
• 책꼴/쪽수 :
142×200mm, 228쪽
• 펴낸날 : 2017-05-26
• ISBN : 9791160940886 03900
• 십진분류 : 역사 > 역사 (900)
저자소개
지은이 : 야마모토 노리오
1943년 오사카 출생. 교토대학 농학부 농림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했다. 전공 분야는 민족학, 민족식물학, 인류학, 농경문화(안데스 지역)로 교토대학에서 농학 박사학위를, 도쿄대학에서 학술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민족학박물관 교수를 거쳐 현재는 이곳의 명예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잉카의 후예들』 『감자와 잉카제국』 『라틴아메리카와 악기 기행』 『구름 위에서 살다』 『감자가 걸어온 길』 『천공의 제국 잉카』 『우메사오 다다오–‘지의 탐험가’의 사상과 일생』 『중앙 안데스 농경문화론』 등이 있고, 엮은 책으로 『세계의 식문화–중남미』 『안데스 고지』 『고추 찬가』 등이 있다.
옮긴이 : 최용우
일본 게이오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중일어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어느 하급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이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맛이라면 단연 매운맛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매운맛을 내는 대표적 재료인 고추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기껏해야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 ‘김치에 고추가 쓰인 지는 불과 250년밖에 되지 않았다’ 정도가 전부다. 이 책은 고추의 식물학적 특성부터 고추가 세계 각지로 전파되어 각국의 식문화에 일으킨 커다란 변화에 이르기까지 고추를 하나의 식물이자 문화로서 종합적으로 접근한 본격 고추 입문서이다. 또한 고추의 원산지인 중남미에서 출발해 지구를 오른쪽으로 돌며 유럽, 아프리카,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고추가 전파된 길, 즉 페퍼 로드pepper road를 따라가며 각국의 음식문화를 만나는 흥미로운 여행기이기도 하다. 저자 야마모토 노리오는 대학 시절 안데스 지대를 답사하다 우연히 야생 고추와 마주친 이후 50년 동안 전 세계를 누비며 고추와 인간의 관계를 연구해온 학자이다. 그 오랜 집념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는 저자가 직접 걸은 길의 흙냄새와 눈을 질끈 감고 맛본 고추 요리들의 매콤한 향이 한껏 배어 있다.
목차
추천의 글 5
들어가며 12
1장 고추의 ‘발견’
고추와 콜럼버스 20
중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작물 26
다양한 만큼 분류하기 어려운 고추의 품종 30
알려지지 않은 고추 34
잡초와 다름없는 조상 야생종 40
고추는 왜 매울까 42
매운맛을 내는 요소 45
2장 야생종에서 재배종으로 - 중남미
야생종과 재배종의 차이 50
열매의 탈락성이야말로 야생종의 특징 55
고추 야생종은 왜 사라지지 않을까 59
고추는 어떻게 재배화되었을까 66
3장 후추에서 고추로 - 유럽
경계해야 할 식물 72
이탈리아의 고추아카데미 77
칼라브리아의 명물인 고추 요리 81
파프리카의 고향 - 헝가리 84
파프리카 박물관 88
노벨상을 배출한 파프리카 91
맵지 않은 파프리카가 나오기까지 94
헝가리의 대표 요리, 구야시 96
4장 노예제가 바꿔놓은 식문화 - 아프리카
포르투갈인의 공헌 102
사탕수수와 노예제 104
노예무역을 통해 고추도 이동했을까 107
멜레구에타 페퍼를 대체한 고추 109
고추가 들어간 커피를 즐기는 에티오피아인들 112
나이지리아의 엄청나게 매운 요리 117
5장 고추 없는 요리라니 - 남아시아・동남아시아
향신료 왕국 - 인도 122
카레 이야기 124
빨갛게 물든 대지 – 네팔 132
진정한 고추 마니아 – 부탄 138
고추로 만든 소스, 삼발 – 인도네시아 142
6장 고추의 ‘핫 스팟’ - 중국
마파두부와 두반장 148
중국의 고추 사랑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 151
고추가 중국에 이르기까지 154
고추를 좋아하는 티베트인 156
티베트인의 고추 요리 158
중국에도 야생 고추가 있을까 163
7장 고추의 혁명 - 한국
고추에 독이 있다? 168
김치를 꽃피운 한반도의 육식문화 171
고추에 관한 민간신앙 174
김장 체험 177
김치 냉장고 181
고추의 혁명 185
8장 점점 더 매운맛으로 - 일본
시치미고추 188
빨간 잠자리와 고추 191
다양한 품종 193
약에서 음식으로 196
고추 상인의 등장 198
문명개화와 고추 200
에스닉 요리 붐 204
9장 고추의 매력
도취와 쾌락의 맛 210
부패 방지 212
후기 215
참고문헌 219
들어가며 12
1장 고추의 ‘발견’
고추와 콜럼버스 20
중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작물 26
다양한 만큼 분류하기 어려운 고추의 품종 30
알려지지 않은 고추 34
잡초와 다름없는 조상 야생종 40
고추는 왜 매울까 42
매운맛을 내는 요소 45
2장 야생종에서 재배종으로 - 중남미
야생종과 재배종의 차이 50
열매의 탈락성이야말로 야생종의 특징 55
고추 야생종은 왜 사라지지 않을까 59
고추는 어떻게 재배화되었을까 66
3장 후추에서 고추로 - 유럽
경계해야 할 식물 72
이탈리아의 고추아카데미 77
칼라브리아의 명물인 고추 요리 81
파프리카의 고향 - 헝가리 84
파프리카 박물관 88
노벨상을 배출한 파프리카 91
맵지 않은 파프리카가 나오기까지 94
헝가리의 대표 요리, 구야시 96
4장 노예제가 바꿔놓은 식문화 - 아프리카
포르투갈인의 공헌 102
사탕수수와 노예제 104
노예무역을 통해 고추도 이동했을까 107
멜레구에타 페퍼를 대체한 고추 109
고추가 들어간 커피를 즐기는 에티오피아인들 112
나이지리아의 엄청나게 매운 요리 117
5장 고추 없는 요리라니 - 남아시아・동남아시아
향신료 왕국 - 인도 122
카레 이야기 124
빨갛게 물든 대지 – 네팔 132
진정한 고추 마니아 – 부탄 138
고추로 만든 소스, 삼발 – 인도네시아 142
6장 고추의 ‘핫 스팟’ - 중국
마파두부와 두반장 148
중국의 고추 사랑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 151
고추가 중국에 이르기까지 154
고추를 좋아하는 티베트인 156
티베트인의 고추 요리 158
중국에도 야생 고추가 있을까 163
7장 고추의 혁명 - 한국
고추에 독이 있다? 168
김치를 꽃피운 한반도의 육식문화 171
고추에 관한 민간신앙 174
김장 체험 177
김치 냉장고 181
고추의 혁명 185
8장 점점 더 매운맛으로 - 일본
시치미고추 188
빨간 잠자리와 고추 191
다양한 품종 193
약에서 음식으로 196
고추 상인의 등장 198
문명개화와 고추 200
에스닉 요리 붐 204
9장 고추의 매력
도취와 쾌락의 맛 210
부패 방지 212
후기 215
참고문헌 219
편집자 추천글
추천의 글
식물학과 민족학을 함께 공부한 연구자답게 하나의 작물로서 고추가 지닌 특성을 바탕으로, 고추의 발견과 전파의 오랜 역사와 각국의 조리법까지 알차게 담아낸 이 책의 넓이와 깊이, 그리고 그 바탕에 있는 저자의 오랜 집념이 놀랍다. 그래서 감히 말할 수 있다. 작은 고추가 매운 것처럼, 이 얇은 책은 무겁다. 그리고 야생 고추를 수집하기 위해 안데스 산맥을 헤매 다니고, 고추에 대한 열정 하나로 중남미 각지와 유럽,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그리고 한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누빈 저자는 독하다. 매운맛으로 점철된 이 책은 읽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돌았다. 마지막 장을 넘길 때쯤에는 손끝에 매운맛이 밴 것 같았다. 진짜냐고? 읽어보면 안다. 나는 이제 손을 씻을 것이다. 그 옛날 혀를 씻어냈듯이. - 정동현(셰프, 칼럼니스트)
출간 의의
안데스의 야생 고추, 헝가리의 파프리카, 인도의 카레,
에티오피아의 고추 커피, 중국 쓰촨의 두반장, 한국의 김치까지
전 인류가 사랑한 고추의 맵고도 뜨거운 식탁 혁명
고추의 원산지는 어디일까? 한반도에는 고추가 임진왜란 이후에 유입되었다고 하는데, 그 고추는 과연 어떤 경로를 거쳐 들어온 것일까? 이 책은 중남미를 원산지로 하는 고추가 어떻게 단기간에 전 세계 구석구석으로 전파될 수 있었는지를 세계사적 맥락에서 설명한다. 그런 다음 각 지역에서 고추를 받아들이는 과정과 저마다의 식문화에 고추가 스며들면서 일어난 큰 폭의 변화, 새롭게 탄생한 다양한 음식들을 소개한다.
고추는 기원전 8000~7000년경 중남미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작물로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계기로 유럽에 전해졌다. 신대륙을 탐험한 초기 여행자들의 기록을 통해 다양한 품종의 고추가 이미 오래전부터 중남미 지역에서 폭넓게 이용되었으며, 매우 귀하고 신성하게 여겨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콜럼버스 일행을 비롯한 스페인 항해자들이 고추를 유럽에 들여오던 시기, 바스코 다 가마를 필두로 한 포르투갈 항해자들은 중남미에서 접한 고추를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가져갔다. 이 과정의 핵심적인 고리가 된 것은 노예무역이었다.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노예를 아메리카 대륙으로 끌고 간 포르투갈인이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길에 중남미의 작물인 옥수수, 카사바와 함께 고추도 가져간 것이다. 포르투갈인은 이후 개척한 인도 항로를 비롯해 전 세계로 뻗은 무역 루트를 통해 고추를 저 멀리 일본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 전했다.
저자는 이렇게 전파된 고추가 각 지역의 음식문화에 초래한 ‘혁명’과도 같은 변화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전 세계를 누볐다. 1968년 볼리비아 라파스의 한 시장에서 야생 고추 울루피카와 만나면서 시작된 저자의 ‘페퍼 로드’는 전 세계를 무대로 5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고추가 널리 쓰이지 않는 유럽에서 유독 고추 요리가 발달한 이탈리아, 파프리카의 고향인 헝가리, 가난한 농민의 단조로운 식탁에서 고추가 포인트 역할을 했던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 매운 카레를 즐기는 인도와 네팔, 고추 없이는 밥을 먹을 수 없다는 부탄, 마파두부와 두반장으로 유명한 중국의 쓰촨, 저자가 직접 김장 체험까지 한 김치의 나라 한국, 점점 더 매운맛에 빠져들고 있는 일본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관찰하고 맛보고 기록하며 낸 ‘고추의 길’을 걸으며 독자는 새삼 고추의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놀랍게도 고추는 ‘식탁 혁명’만 일으킨 것이 아니다. 고추, 특히 파프리카가 다량의 비타민 C를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인간은 비로소 괴혈병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발견한 헝가리의 센트죄르지 박사는 노벨상까지 수상했다. 그 밖에 캡사이신과 비타민 A. C, E의 항산화 효과 등 고추의 의약적 용도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세계인의 고추 사랑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세계 어디에서나 고추와 관련된 문화는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고추를 키우고 맛보고 연구하고 있다. 아마도 세계 지도가 전부 빨갛게 물드는 날까지 고추의 진격은 계속될 것이다.
‘식물로서의 고추’와 ‘문화로서의 고추’를 종합적으로 연구한
한 민족식물학자의 50년 고추 추적기
식물학, 농학에서 연구 경력을 시작한 저자는 이후 민족학으로 분야를 옮겨 야생의 식물이 재배화 과정을 거쳐 하나의 작물作物로서 인류 문화의 일부로 정착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그 중심에는 물론 고추가 있었다. 저자의 50년 연구 성과가 종합된 이 책에는 ‘식물로서의 고추’에 대한 자연과학적 분석과 오랜 세월 인간과 관계를 맺어온 ‘문화로서의 고추’에 대한 인문학적 해석이 균형감 있게 어우러져 있다. 음식을 소재로 한 다양한 미시사, 문화사 책들 가운데 이 책이 돋보이는 이유다.
고추는 중남미를 원산지로 하는 가짓과, 캅시쿰 속에 속하는 식물로 여기 포함되는 20종 가운데 안눔, 키넨세, 바카툼, 푸베스켄스 등 네 종 정도가 재배종으로 간주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재배되고 있는 것은 대부분 안눔 종이다. 이들 네 종은 각 종별로 매우 다양한 형태의 열매가 열리지만, 꽃이나 이파리 등 식물체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고추의 분류는 여전히 연구 대상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들의 조상 야생종과 그 지리적 분포를 소개하고, 야생종의 어떠한 특징이 고추의 확산과 재배화를 용이하게 했는지 설명한다.
야생종의 공통된 특징은 새끼손가락 끝마디 정도로 작고 빨간 열매가 위를 향해 열리며,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툭툭 떨어지는 탈락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눈에 잘 띄는 이 작고 빨간 열매는 새들의 먹이가 되어 배설물을 통해 먼 지역까지 확산될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인간이 수확 시기까지 탈락하지 않고 붙어 있는 개체를 의식적으로 선택하면서 재배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일반적인 재배식물은 재배화 이후 야생종이 점차 사라지는 반면, 고추는 지금도 야생종과 재배종이 모두 이용되고 있다. 이는 야생종이 특유의 향과 풍미, 강렬한 매운맛으로 인간을 사로잡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고추가 감자나 콩과 같이 주식으로 쓰이는 작물이 아니기 때문에 열매가 작거나 잘 떨어져도, 즉 생산성이 떨어져도 인간의 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중남미 안데스 일대의 야생 고추가 우리 식탁에 오르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 색깔의 고추로 재배화되기까지의 과정을 인간의 개입과 식물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 찬찬히 설명한다. 고추 본연의 식물학적 특성에 인간의 지대한 관심과 오랜 노력이 더해져 오늘날 고추는 품종의 다양화라는 측면에서는 어떤 것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인 작물이 되었고, 열대와 온대를 가리지 않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고 소비되는 향신료가 되었다.
주요 내용
새들은 고추의 매운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새는 고추의 매운맛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매를 찾아 먹는다. (중략) “새들에게 2퍼센트 캡사이신 용액을 먹여보았습니다. 녹일 수 있는 한 최대로 녹인 셈이죠. 사람이라면 거의 죽을 겁니다. 하지만 새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먹더군요” (중략) 고추와 새의 관계에서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다. 바로 새가 먹었던 고추의 발아율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중략) 새는 종자를 파괴하지 않고 물리・화학적으로 열매의 껍질을 부드럽게 만드는 소화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아를 촉진시킨다. 즉 고추는 다른 어떤 동물도 아닌 새의 표적이 됨으로써 더욱 발아하기 쉬운 종자 상태로 변해 널리 퍼져나가게 된다. 따라서 고추 열매가 매운 이유는 바로 새한테만 선택적으로 먹히기 위해서이며,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종자가 더욱 널리 확산되는 것이다. _ 43~44쪽
고추의 어느 부분이 매운 걸까?
고추의 캡사이신은 열매 부분에서 만들어진다. 고추 열매는 독특한 모양으로 껍질 아래쪽이 텅 비어 있다. 그래서 고춧속의 학명은 라틴어로 상자를 의미하는 ‘캅사capsa’에서 유래한 ‘캅시쿰Capsicum’이다. 이렇듯 속이 텅 비어 있는 열매 한가운데 종자가 붙어 있는 심이 있는데, 이 부분에서 캡사이신이 만들어진다. 원래 열매 껍질은 맵지 않고 꼭지 밑의 하얀 부분을 깨물어야 매운맛이 느껴진다. 이 부분을 태좌胎座라고 하는데 캡사이신은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고추 열매는 작을수록 매워지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열매가 작은 야생종은 대부분 엄청나게 맵다. 반면 피망이나 파프리카처럼 큰 고추는 그다지 맵지 않다. 아마 인간이 야생의 고추를 재배화하는 과정에서 맵지 않은 고추를 선별해나간 결과일 것이다. _ 45~46쪽
이탈리아의 고추아카데미
“아카데미는 전국적으로 회원이 3000명에 이릅니다. 연회비는 1인당 60유로입니다. 이 회비로 회원들에게 매년 고추를 키우는 방식이나 품종에 관한 설명이 담긴 책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이 책의 부록으로 아카데미에서 추천하는 고추 종자도 보내주고 있고요. 좀 더 다양한 고추가 이탈리아 전역에서 재배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요. 이탈리아 각지에는 90여 개의 지부도 있습니다. 그렇네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도쿄에도 지부가 있어요.” _ 80쪽
노벨상을 배출한 파프리카
세게드는 처음 방문한 지역이었으나 그전부터 책을 통해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다. 고추의 약효를 과학적으로 증명한 이가 바로 세게드의과대학의 교수 얼베르트 센트죄르지Albert Szent-Gyorgyi 박사였고, 1937년에 그가 이 공적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중략) 당시만 해도 오렌지와 레몬만큼 비타민 C를 많이 함유한 식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박사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헝가리의 파프리카에는 오렌지나 레몬의 5~6배에 달하는 비타민 C가 함유되어 있었다. 이를 계기로 많은 양의 비타민 C를 저렴한 비용으로 얻을 수 있게 되었으며, 이 엄청난 성과 덕분에 박사는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_ 91~94쪽
서아프리카 농민의 가난한 식탁에 일어난 고추 혁명
대부분의 서아프리카 주민은 농민이라 그들의 노동량과 소비되는 녹말의 양은 비례한다. 녹말질綠末質을 주요리로 하고 채소나 생선 요리를 추가하는 단조로운 식탁에 포인트가 된 것이 고추였다. 고추는 식욕을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서아프리카, 기니만 연안부 등 열대 저지대에서 손쉽게 재배할 수 있기 때문에 가난한 농민들도 즐겨 먹을 수 있었다. 녹말질 식료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서아프리카의 많은 국가에서는 고추가 단기간에 가난한 사람들의 식생활에 스며들고, 급속도로 현지 요리에 접목되면서 기존의 식문화를 크게 바꾸었다. 이를 고추에 의한 ‘식탁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_ 119쪽
악령을 쫓아내는 인도의 고추부적
식물학과 민족학을 함께 공부한 연구자답게 하나의 작물로서 고추가 지닌 특성을 바탕으로, 고추의 발견과 전파의 오랜 역사와 각국의 조리법까지 알차게 담아낸 이 책의 넓이와 깊이, 그리고 그 바탕에 있는 저자의 오랜 집념이 놀랍다. 그래서 감히 말할 수 있다. 작은 고추가 매운 것처럼, 이 얇은 책은 무겁다. 그리고 야생 고추를 수집하기 위해 안데스 산맥을 헤매 다니고, 고추에 대한 열정 하나로 중남미 각지와 유럽,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그리고 한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누빈 저자는 독하다. 매운맛으로 점철된 이 책은 읽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돌았다. 마지막 장을 넘길 때쯤에는 손끝에 매운맛이 밴 것 같았다. 진짜냐고? 읽어보면 안다. 나는 이제 손을 씻을 것이다. 그 옛날 혀를 씻어냈듯이. - 정동현(셰프, 칼럼니스트)
출간 의의
안데스의 야생 고추, 헝가리의 파프리카, 인도의 카레,
에티오피아의 고추 커피, 중국 쓰촨의 두반장, 한국의 김치까지
전 인류가 사랑한 고추의 맵고도 뜨거운 식탁 혁명
고추의 원산지는 어디일까? 한반도에는 고추가 임진왜란 이후에 유입되었다고 하는데, 그 고추는 과연 어떤 경로를 거쳐 들어온 것일까? 이 책은 중남미를 원산지로 하는 고추가 어떻게 단기간에 전 세계 구석구석으로 전파될 수 있었는지를 세계사적 맥락에서 설명한다. 그런 다음 각 지역에서 고추를 받아들이는 과정과 저마다의 식문화에 고추가 스며들면서 일어난 큰 폭의 변화, 새롭게 탄생한 다양한 음식들을 소개한다.
고추는 기원전 8000~7000년경 중남미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작물로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계기로 유럽에 전해졌다. 신대륙을 탐험한 초기 여행자들의 기록을 통해 다양한 품종의 고추가 이미 오래전부터 중남미 지역에서 폭넓게 이용되었으며, 매우 귀하고 신성하게 여겨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콜럼버스 일행을 비롯한 스페인 항해자들이 고추를 유럽에 들여오던 시기, 바스코 다 가마를 필두로 한 포르투갈 항해자들은 중남미에서 접한 고추를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가져갔다. 이 과정의 핵심적인 고리가 된 것은 노예무역이었다.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노예를 아메리카 대륙으로 끌고 간 포르투갈인이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길에 중남미의 작물인 옥수수, 카사바와 함께 고추도 가져간 것이다. 포르투갈인은 이후 개척한 인도 항로를 비롯해 전 세계로 뻗은 무역 루트를 통해 고추를 저 멀리 일본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 전했다.
저자는 이렇게 전파된 고추가 각 지역의 음식문화에 초래한 ‘혁명’과도 같은 변화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전 세계를 누볐다. 1968년 볼리비아 라파스의 한 시장에서 야생 고추 울루피카와 만나면서 시작된 저자의 ‘페퍼 로드’는 전 세계를 무대로 5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고추가 널리 쓰이지 않는 유럽에서 유독 고추 요리가 발달한 이탈리아, 파프리카의 고향인 헝가리, 가난한 농민의 단조로운 식탁에서 고추가 포인트 역할을 했던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 매운 카레를 즐기는 인도와 네팔, 고추 없이는 밥을 먹을 수 없다는 부탄, 마파두부와 두반장으로 유명한 중국의 쓰촨, 저자가 직접 김장 체험까지 한 김치의 나라 한국, 점점 더 매운맛에 빠져들고 있는 일본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관찰하고 맛보고 기록하며 낸 ‘고추의 길’을 걸으며 독자는 새삼 고추의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놀랍게도 고추는 ‘식탁 혁명’만 일으킨 것이 아니다. 고추, 특히 파프리카가 다량의 비타민 C를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인간은 비로소 괴혈병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발견한 헝가리의 센트죄르지 박사는 노벨상까지 수상했다. 그 밖에 캡사이신과 비타민 A. C, E의 항산화 효과 등 고추의 의약적 용도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세계인의 고추 사랑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세계 어디에서나 고추와 관련된 문화는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고추를 키우고 맛보고 연구하고 있다. 아마도 세계 지도가 전부 빨갛게 물드는 날까지 고추의 진격은 계속될 것이다.
‘식물로서의 고추’와 ‘문화로서의 고추’를 종합적으로 연구한
한 민족식물학자의 50년 고추 추적기
식물학, 농학에서 연구 경력을 시작한 저자는 이후 민족학으로 분야를 옮겨 야생의 식물이 재배화 과정을 거쳐 하나의 작물作物로서 인류 문화의 일부로 정착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그 중심에는 물론 고추가 있었다. 저자의 50년 연구 성과가 종합된 이 책에는 ‘식물로서의 고추’에 대한 자연과학적 분석과 오랜 세월 인간과 관계를 맺어온 ‘문화로서의 고추’에 대한 인문학적 해석이 균형감 있게 어우러져 있다. 음식을 소재로 한 다양한 미시사, 문화사 책들 가운데 이 책이 돋보이는 이유다.
고추는 중남미를 원산지로 하는 가짓과, 캅시쿰 속에 속하는 식물로 여기 포함되는 20종 가운데 안눔, 키넨세, 바카툼, 푸베스켄스 등 네 종 정도가 재배종으로 간주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재배되고 있는 것은 대부분 안눔 종이다. 이들 네 종은 각 종별로 매우 다양한 형태의 열매가 열리지만, 꽃이나 이파리 등 식물체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고추의 분류는 여전히 연구 대상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들의 조상 야생종과 그 지리적 분포를 소개하고, 야생종의 어떠한 특징이 고추의 확산과 재배화를 용이하게 했는지 설명한다.
야생종의 공통된 특징은 새끼손가락 끝마디 정도로 작고 빨간 열매가 위를 향해 열리며,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툭툭 떨어지는 탈락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눈에 잘 띄는 이 작고 빨간 열매는 새들의 먹이가 되어 배설물을 통해 먼 지역까지 확산될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인간이 수확 시기까지 탈락하지 않고 붙어 있는 개체를 의식적으로 선택하면서 재배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일반적인 재배식물은 재배화 이후 야생종이 점차 사라지는 반면, 고추는 지금도 야생종과 재배종이 모두 이용되고 있다. 이는 야생종이 특유의 향과 풍미, 강렬한 매운맛으로 인간을 사로잡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고추가 감자나 콩과 같이 주식으로 쓰이는 작물이 아니기 때문에 열매가 작거나 잘 떨어져도, 즉 생산성이 떨어져도 인간의 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중남미 안데스 일대의 야생 고추가 우리 식탁에 오르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 색깔의 고추로 재배화되기까지의 과정을 인간의 개입과 식물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 찬찬히 설명한다. 고추 본연의 식물학적 특성에 인간의 지대한 관심과 오랜 노력이 더해져 오늘날 고추는 품종의 다양화라는 측면에서는 어떤 것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인 작물이 되었고, 열대와 온대를 가리지 않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고 소비되는 향신료가 되었다.
주요 내용
새들은 고추의 매운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새는 고추의 매운맛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매를 찾아 먹는다. (중략) “새들에게 2퍼센트 캡사이신 용액을 먹여보았습니다. 녹일 수 있는 한 최대로 녹인 셈이죠. 사람이라면 거의 죽을 겁니다. 하지만 새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먹더군요” (중략) 고추와 새의 관계에서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다. 바로 새가 먹었던 고추의 발아율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중략) 새는 종자를 파괴하지 않고 물리・화학적으로 열매의 껍질을 부드럽게 만드는 소화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아를 촉진시킨다. 즉 고추는 다른 어떤 동물도 아닌 새의 표적이 됨으로써 더욱 발아하기 쉬운 종자 상태로 변해 널리 퍼져나가게 된다. 따라서 고추 열매가 매운 이유는 바로 새한테만 선택적으로 먹히기 위해서이며,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종자가 더욱 널리 확산되는 것이다. _ 43~44쪽
고추의 어느 부분이 매운 걸까?
고추의 캡사이신은 열매 부분에서 만들어진다. 고추 열매는 독특한 모양으로 껍질 아래쪽이 텅 비어 있다. 그래서 고춧속의 학명은 라틴어로 상자를 의미하는 ‘캅사capsa’에서 유래한 ‘캅시쿰Capsicum’이다. 이렇듯 속이 텅 비어 있는 열매 한가운데 종자가 붙어 있는 심이 있는데, 이 부분에서 캡사이신이 만들어진다. 원래 열매 껍질은 맵지 않고 꼭지 밑의 하얀 부분을 깨물어야 매운맛이 느껴진다. 이 부분을 태좌胎座라고 하는데 캡사이신은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고추 열매는 작을수록 매워지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열매가 작은 야생종은 대부분 엄청나게 맵다. 반면 피망이나 파프리카처럼 큰 고추는 그다지 맵지 않다. 아마 인간이 야생의 고추를 재배화하는 과정에서 맵지 않은 고추를 선별해나간 결과일 것이다. _ 45~46쪽
이탈리아의 고추아카데미
“아카데미는 전국적으로 회원이 3000명에 이릅니다. 연회비는 1인당 60유로입니다. 이 회비로 회원들에게 매년 고추를 키우는 방식이나 품종에 관한 설명이 담긴 책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이 책의 부록으로 아카데미에서 추천하는 고추 종자도 보내주고 있고요. 좀 더 다양한 고추가 이탈리아 전역에서 재배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요. 이탈리아 각지에는 90여 개의 지부도 있습니다. 그렇네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도쿄에도 지부가 있어요.” _ 80쪽
노벨상을 배출한 파프리카
세게드는 처음 방문한 지역이었으나 그전부터 책을 통해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다. 고추의 약효를 과학적으로 증명한 이가 바로 세게드의과대학의 교수 얼베르트 센트죄르지Albert Szent-Gyorgyi 박사였고, 1937년에 그가 이 공적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중략) 당시만 해도 오렌지와 레몬만큼 비타민 C를 많이 함유한 식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박사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헝가리의 파프리카에는 오렌지나 레몬의 5~6배에 달하는 비타민 C가 함유되어 있었다. 이를 계기로 많은 양의 비타민 C를 저렴한 비용으로 얻을 수 있게 되었으며, 이 엄청난 성과 덕분에 박사는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_ 91~94쪽
서아프리카 농민의 가난한 식탁에 일어난 고추 혁명
대부분의 서아프리카 주민은 농민이라 그들의 노동량과 소비되는 녹말의 양은 비례한다. 녹말질綠末質을 주요리로 하고 채소나 생선 요리를 추가하는 단조로운 식탁에 포인트가 된 것이 고추였다. 고추는 식욕을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서아프리카, 기니만 연안부 등 열대 저지대에서 손쉽게 재배할 수 있기 때문에 가난한 농민들도 즐겨 먹을 수 있었다. 녹말질 식료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서아프리카의 많은 국가에서는 고추가 단기간에 가난한 사람들의 식생활에 스며들고, 급속도로 현지 요리에 접목되면서 기존의 식문화를 크게 바꾸었다. 이를 고추에 의한 ‘식탁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_ 119쪽
악령을 쫓아내는 인도의 고추부적
인도에는 마늘을 고추, 레몬과 함께 부엌 위에 두어서 악령을 내쫓는 풍습도 있다고 한다. 나도 그와 유사한 광경을 인도 서부의 마하라슈트라Maharashtra 지방에 있는 푸네Pune라는 도시에서 목격했다. 그곳에 가니 무시무시한 까만 인형과 함께 라임 몇 개, 빔바라 불리는 떫은맛의 나무 열매와 파란 고추 몇 개를 얇은 철사로 꿰어놓은 것이 상점의 처마 끝 혹은 택시나 트럭의 앞 유리 같은 곳에 매달려 있었다. 이는 사시邪視(악마의 눈)를 방지하기 위한 부적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참고로 사시란 신비한 시력을 지닌 인물이 응시하면 병에 걸리거나 죽음에 이르는 등 불행이 닥친다고 생각하는 신앙이다. 이런 신앙은 세계 곳곳에 있고, 이에 대한 대응책도 각양각색이지만 인도에서는 고추가 일종의 부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인도 연구자의 말에 따르면 라임과 빔바, 고추를 한데 묶은 이유는 ‘시고’, ‘떫고’, ‘매운’ 것이 한데 모여 나쁜 존재를 떨쳐낼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_ 131~132쪽
진정한 고추 마니아 - 부탄
나는 용기를 내서 그들이 먹는 음식을 살짝 맛보기로 했다. 고추를 피해서 채소만 입에 넣었는데도 너무 매운 나머지 토할 것만 같았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고추뿐만 아니라 산초도 들어 있다고 했다. 어쩐지 혀뿐만 아니라 목까지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가이드는 “이건 특별히 매운 것도 아니고 부탄에서는 일상적인 식사예요”라고 했다. (중략) 부탄 사람들은 “고추가 없으면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추 없이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말한다. 우에다 씨 역시 “부탄 사람들이 하는 거의 모든 식사에는 고추가 들어간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부탄의 국민 음식이라 일컬어지는 에마다시emadatsi(‘에마’는 고추라는 뜻)는 고추에 치즈와 버터를 함께 넣어 삶은 것으로 조미는 간단히 소금만으로 한다. 심지어 부탄 사람 중에는 에마다시 하나만으로 삼시 세끼를 해결하는 이들도 꽤 있다고 한다. _ 138~140쪽
중국의 고추 사랑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
쓰촨 사람이라고 모두가 매운 음식만 먹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매운 음식은 쓰촨 요리 중에서 소수파에 속한다. 특히 고급 연회석 요리에서는 매운맛을 줄이는 게 일반적이다. 매운맛으로 혀가 마비되면 다른 요리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너무 매운 음식은 품위가 떨어진다고 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쓰촨 요리라고 하면 매운 음식만 떠올리기 십상인데, 이시게 씨의 말처럼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이를 거꾸로 생각하면 매운맛의 쓰촨 요리는 아직 한창 발전하는 중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쓰촨에서 고추를 왕성하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기껏해야 100년쯤 전이라고 추측된다. 그때부터 고추를 이용하는 습관이 엄청난 속도로 확산된 것이다. 이렇듯 급속도로 고추가 보급되는 형국을 보면 향후 중국에서는 서남부뿐만 아니라 기타 지역에서도 고추를 즐기는 식습관이 보편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_ 154쪽
김치를 꽃피운 한반도의 육식문화
몽골족의 한반도 지배는 130년 정도로 끝났으나 고기를 먹는 습관은 없어지지 않았다. (중략)
그러자 후추 수입은 점차 늘어났고 사람들의 생활 곳곳에 후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후추의 주된 수입지는 일본이었다. 사실 후추는 원산지가 열대 아시아인 작물로 한반도나 일본에서는 재배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남쪽에서 건너온 후추는 일종의 무역품으로 네덜란드 배로 류큐를 거쳐 일본으로 유입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고기를 금기시하던 일본에서는 후추를 사용할 일이 별로 없어서 조선에 무역품으로 보내진 것이다. (중략) 당시 육류를 먹을 때 향신료로 사용되던 후추는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가격이 비쌌던 반면에, 고추는 재배가 용이하고 가격이 저렴했던 만큼 고추가 후추를 대신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추는 한반도에서도 손쉽게 재배할 수 있었으며 어류나 육류의 냄새, 맛과도 잘 어우러졌다. _ 172~174쪽
한국전쟁으로 누린 일본의 고추 특수
원래 약용으로만 쓰이던 고추는 식생활이 서양화되면서 카레 분말이나 소스 등 다양한 음식에 활용되었으며 생산도 본격화되었다. (중략) 단 전전戰前의 고추 생산량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큰 변화를 초래한 것은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에서는 고추가 필수 불가결한 식품이었는데 전쟁으로 전 국토가 불타면서 고추 생산도 어려워졌다. 고추가 떨어지면 한국군 병사의 사기까지 떨어진다는 걸 의식한 미국은 일본산 고추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일본이 누린 한국전쟁 특수는 널리 알려진 내용이긴 하지만, 뜻밖에 고추 특수도 발생했던 것이다. _ 202~203쪽
진정한 고추 마니아 - 부탄
나는 용기를 내서 그들이 먹는 음식을 살짝 맛보기로 했다. 고추를 피해서 채소만 입에 넣었는데도 너무 매운 나머지 토할 것만 같았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고추뿐만 아니라 산초도 들어 있다고 했다. 어쩐지 혀뿐만 아니라 목까지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가이드는 “이건 특별히 매운 것도 아니고 부탄에서는 일상적인 식사예요”라고 했다. (중략) 부탄 사람들은 “고추가 없으면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추 없이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말한다. 우에다 씨 역시 “부탄 사람들이 하는 거의 모든 식사에는 고추가 들어간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부탄의 국민 음식이라 일컬어지는 에마다시emadatsi(‘에마’는 고추라는 뜻)는 고추에 치즈와 버터를 함께 넣어 삶은 것으로 조미는 간단히 소금만으로 한다. 심지어 부탄 사람 중에는 에마다시 하나만으로 삼시 세끼를 해결하는 이들도 꽤 있다고 한다. _ 138~140쪽
중국의 고추 사랑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
쓰촨 사람이라고 모두가 매운 음식만 먹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매운 음식은 쓰촨 요리 중에서 소수파에 속한다. 특히 고급 연회석 요리에서는 매운맛을 줄이는 게 일반적이다. 매운맛으로 혀가 마비되면 다른 요리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너무 매운 음식은 품위가 떨어진다고 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쓰촨 요리라고 하면 매운 음식만 떠올리기 십상인데, 이시게 씨의 말처럼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이를 거꾸로 생각하면 매운맛의 쓰촨 요리는 아직 한창 발전하는 중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쓰촨에서 고추를 왕성하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기껏해야 100년쯤 전이라고 추측된다. 그때부터 고추를 이용하는 습관이 엄청난 속도로 확산된 것이다. 이렇듯 급속도로 고추가 보급되는 형국을 보면 향후 중국에서는 서남부뿐만 아니라 기타 지역에서도 고추를 즐기는 식습관이 보편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_ 154쪽
김치를 꽃피운 한반도의 육식문화
몽골족의 한반도 지배는 130년 정도로 끝났으나 고기를 먹는 습관은 없어지지 않았다. (중략)
그러자 후추 수입은 점차 늘어났고 사람들의 생활 곳곳에 후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후추의 주된 수입지는 일본이었다. 사실 후추는 원산지가 열대 아시아인 작물로 한반도나 일본에서는 재배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남쪽에서 건너온 후추는 일종의 무역품으로 네덜란드 배로 류큐를 거쳐 일본으로 유입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고기를 금기시하던 일본에서는 후추를 사용할 일이 별로 없어서 조선에 무역품으로 보내진 것이다. (중략) 당시 육류를 먹을 때 향신료로 사용되던 후추는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가격이 비쌌던 반면에, 고추는 재배가 용이하고 가격이 저렴했던 만큼 고추가 후추를 대신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추는 한반도에서도 손쉽게 재배할 수 있었으며 어류나 육류의 냄새, 맛과도 잘 어우러졌다. _ 172~174쪽
한국전쟁으로 누린 일본의 고추 특수
원래 약용으로만 쓰이던 고추는 식생활이 서양화되면서 카레 분말이나 소스 등 다양한 음식에 활용되었으며 생산도 본격화되었다. (중략) 단 전전戰前의 고추 생산량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큰 변화를 초래한 것은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에서는 고추가 필수 불가결한 식품이었는데 전쟁으로 전 국토가 불타면서 고추 생산도 어려워졌다. 고추가 떨어지면 한국군 병사의 사기까지 떨어진다는 걸 의식한 미국은 일본산 고추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일본이 누린 한국전쟁 특수는 널리 알려진 내용이긴 하지만, 뜻밖에 고추 특수도 발생했던 것이다. _ 202~2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