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 775
• 지은이 : 강상중
• 옮긴이 : 노수경
• 가격 : 11,500원
• 책꼴/쪽수 :
128×188mm, 184쪽
• 펴낸날 : 2017-03-24
• ISBN : 9791160940480 03300
• 십진분류 : 사회과학 > 사회학, 사회문제 (330)
• 태그 : #악惡 #연대 #용서
저자소개
지은이 : 강상중
1950년 일본 규슈 구마모토 현에서 재일 한국인 2세로 태어났다. 청년 시절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고, 1972년 첫 한국 방문을 계기로 “나는 해방되었다”고 할 만큼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했다. 이후 일본 이름을 버리고 ‘강상중’이라는 본명을 쓰기 시작했다.
일본 사회에 대해 비판적이고 날카로운 분석을 제시하며 비판적 지식인으로 활동하고 있고,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고민하는 힘』을 비롯해 인문서, 에세이, 소설 등을 발표하며 지식인, 교수, 작가로서 일본 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또 신문과 방송 등 언론매체를 통해서 보여주는 냉정한 분석과 세련되고 지적인 분위기, 호소력 강한 목소리로 많은 팬을 가지고 있다.
이번 책 『마음』은 일본 근대 문학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과 독일 문학의 거장 괴테의 『친화력』의 구조와 이야기를 모티프로 강상중 개인의 경험과 대참사로 이어진 동일본대지진 사건을 중층적으로 엮어내며 삶과 죽음, 사랑과 관계, 자연과 개발에 대해 성찰하는 독특하고 두터운 소설이다. 특히 죽음으로 인한 상처, 구원과 치유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절박한 물음을 이야기하며 동일본대지진으로 상처받은 수많은 일본인들에게 위로가 되었고, 30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재일 한국인 최초로 도쿄대학 정교수가 되었고, 도쿄대학 대학원 정보학환 교수를 거쳐 현재 세이가쿠인대학 총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재일 강상중』 『내셔널리즘』 『세계화의 원근법』 『20세기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두 개의 전후와 일본』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 『고민하는 힘』 『청춘을 읽는다』 『반걸음만 앞서 가라』 『어머니』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살아야 하는 이유』 『사랑할 것』 등이 있다.
일본 사회에 대해 비판적이고 날카로운 분석을 제시하며 비판적 지식인으로 활동하고 있고,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고민하는 힘』을 비롯해 인문서, 에세이, 소설 등을 발표하며 지식인, 교수, 작가로서 일본 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또 신문과 방송 등 언론매체를 통해서 보여주는 냉정한 분석과 세련되고 지적인 분위기, 호소력 강한 목소리로 많은 팬을 가지고 있다.
이번 책 『마음』은 일본 근대 문학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과 독일 문학의 거장 괴테의 『친화력』의 구조와 이야기를 모티프로 강상중 개인의 경험과 대참사로 이어진 동일본대지진 사건을 중층적으로 엮어내며 삶과 죽음, 사랑과 관계, 자연과 개발에 대해 성찰하는 독특하고 두터운 소설이다. 특히 죽음으로 인한 상처, 구원과 치유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절박한 물음을 이야기하며 동일본대지진으로 상처받은 수많은 일본인들에게 위로가 되었고, 30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재일 한국인 최초로 도쿄대학 정교수가 되었고, 도쿄대학 대학원 정보학환 교수를 거쳐 현재 세이가쿠인대학 총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재일 강상중』 『내셔널리즘』 『세계화의 원근법』 『20세기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두 개의 전후와 일본』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 『고민하는 힘』 『청춘을 읽는다』 『반걸음만 앞서 가라』 『어머니』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살아야 하는 이유』 『사랑할 것』 등이 있다.
옮긴이 : 노수경
197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에서 생물학과 여성학을, 도쿄대에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도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지금은 도쿄 근교의 작은 도시에서 육아와 일한번역을 하고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전작 『마음』 『마음의 힘』 『구원의 미술관』을 통해 대재앙이 초래한 갑작스런 상실, 파괴적 자본주의가 낳은 불안과 정체성의 위기 등 우리 시대가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을 깊이 들여다보았던 강상중이 이번에는 시선을 바깥으로 돌려 엄청난 충격과 공포로 우리 일상을 잠식해 들어오는 ‘악惡의 힘’을 고찰했다. 저자는 엽기적인 살인, 잔혹한 테러, 조직과 자본의 논리가 낳은 얼굴 없는 범죄에 이르기까지 우리 일상에 만연한 악의 모습을 그려 보인 뒤, 그러한 악이 과연 ‘나’와는 무관한 것인가 의문을 던진다. 우리를 경악케 하는 악행이 모두 ‘광기’에 사로잡힌 ‘악인’에 의한 것일 뿐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논리도 막아낼 방법도 찾지 못할 것이다. 저자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진 사회적 존재인 한, 죽음을 향해 갈 수밖에 없는 태생적 공허함을 품은 존재인 한 ‘악’의 출현은 불가피하다는 생각으로 『성서』 『파리 대왕』 『파우스트 박사』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변신』 등의 문학작품을 통해 인간 존재 자체가 품고 있는 악의 특징을 포착해낸다. 악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공허함,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 속에 깃든다. 저자는 우리가 악을 향해 분노하는 순간에도 ‘용서할 수 없다’는 감정을 통해 하나로 묶여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악의 시대를 함께 건너가자고 제안한다.
‘이 녀석만은 용서할 수 없어’라는 감정의 싹이 인간성에 깊이를 더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를 회복하는 기회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의 뒷면에는 자신의 내면에서 움튼 ‘증오’라는 에너지를 다른 사람에게도 공감받고 이해받고 싶은, 그러니까 다른 사람과 이어지고 싶다는 절절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용서할 수 없다’라는 거친 감정의 근저에 실은 검디검은 에너지뿐만이 아니라 사회와 이어지기를 바라는 공감을 향한 회로도 숨어 있는 것입니다. _ 프롤로그 중에서
‘이 녀석만은 용서할 수 없어’라는 감정의 싹이 인간성에 깊이를 더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를 회복하는 기회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의 뒷면에는 자신의 내면에서 움튼 ‘증오’라는 에너지를 다른 사람에게도 공감받고 이해받고 싶은, 그러니까 다른 사람과 이어지고 싶다는 절절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용서할 수 없다’라는 거친 감정의 근저에 실은 검디검은 에너지뿐만이 아니라 사회와 이어지기를 바라는 공감을 향한 회로도 숨어 있는 것입니다. _ 프롤로그 중에서
목차
한국어판 서문 4
프롤로그 8
1장| 악의로 가득한 세상
1. 우리 안에 있는 악
가와사키시 중학교 1학년 남학생 살해사건 18
‘귀축’인가 ‘자유의지’인가 21
환자 18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군마대학병원 사건 23
나고야대학 여학생 살인·상해·방화사건 25
잔학무도한 IS 27
‘악’은 우리 바깥에 존재하는가 29
2. 악의 기쁨
샤덴프로이데 = 꼴좋다 33
공허에 뿌리를 내리는 악 36
허무함을 메우는 순간의 ‘성취감’ 38
신체성의 결여 41
3. 악의 축
홀로코스트를 낳은 나치 독일의 공동감 44
‘복붙’ 같은 IS의 원리주의 49
악은 ‘무엇이든 OK’인 세상을 좋아한다 51
4. 시스템 속의 악
익명으로 나타나는 조직 속의 악 55
최대의 악은 자본주의? 57
2장| 악이란 무엇인가
1. 악의 백 가지 얼굴
악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62
2000년 이상 변함없는 악의 이미지 63
이교의 신 ‘베르제바브’란 누구인가 67
‘광조’ 때문에 배척된 베르제바브 69
악령의 진면목은 ‘빙의’ 71
시대의 우화로 등장하는 악마 72
2. 어둠 속에서 나온 악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 75
순진무구한 존재에 깃든 어둠 저편의 악 78
『핀처 마틴』— 어느 에고이스트의 회상 81
3. 공허를 즐기는 악
그레이엄 그린의 『브라이턴 록』 84
악에 의거하여 신을 믿겠다 89
경험을 거절하는 공허한 악 92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 — 레버퀸과 ‘그 녀석’의 대화에 드리운 나치의 그림자 95
4. 근원적인 악과 진부한 악
인간의 자유와 악에 대하여 98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원죄 100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로 보는 신체성의 결여 103
악은 병이다 105
3장| 왜 악은 번성하는가
1. 역사는 악으로 넘쳐난다
밀턴의 『실낙원』으로 보는 악으로 가득한 역사 110
세계적 살육의 장, 20세기 112
2. 악의 연쇄
악을 줄이는 세 가지 요소—안전, 정의, 자유 115
세상을 향한 미움 119
자아와 세상 사이의 골을 돌파하는 악? 123
3. 무엇이 악을 키우는가
자본주의는 악의 배양기인가 126
악과의 거래를 통해 꽃피는 자본주의— 『꿀벌의 우화』 127
중산층의 도덕을 파괴한 자본주의 130
소세키가 간파한 ‘패망의 자본주의’ 131
세계와 단절된 인간의 파괴 충동, 테러 135
4장| 사랑은 악 앞에서 무력한가
1. 악과 고뇌
악이 낳은 고뇌 140
루프트한자 계열 항공기 추락과 유족들의 고뇌 143
2. 「욥기」의 물음
신을 향한 욥의 질문 146
납득할 수 없는 「욥기」의 신 149
‘대답할 수 없기에’ 만연하는 악 151
3. 이해하기 힘든 사랑
욥과 같은 상황에 처한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 155
‘복종’은 사랑인가 157
나는 세상의 일부인가 158
4. 절망 속에서도 함께 살아간다는 것
소세키가 그린 ‘세간’ 161
도덕은 세간 바깥에는 없다 163
함께 살아간다 166
에필로그 169
이 책을 마치며 176
참고문헌 178
옮긴이의 말 180
프롤로그 8
1장| 악의로 가득한 세상
1. 우리 안에 있는 악
가와사키시 중학교 1학년 남학생 살해사건 18
‘귀축’인가 ‘자유의지’인가 21
환자 18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군마대학병원 사건 23
나고야대학 여학생 살인·상해·방화사건 25
잔학무도한 IS 27
‘악’은 우리 바깥에 존재하는가 29
2. 악의 기쁨
샤덴프로이데 = 꼴좋다 33
공허에 뿌리를 내리는 악 36
허무함을 메우는 순간의 ‘성취감’ 38
신체성의 결여 41
3. 악의 축
홀로코스트를 낳은 나치 독일의 공동감 44
‘복붙’ 같은 IS의 원리주의 49
악은 ‘무엇이든 OK’인 세상을 좋아한다 51
4. 시스템 속의 악
익명으로 나타나는 조직 속의 악 55
최대의 악은 자본주의? 57
2장| 악이란 무엇인가
1. 악의 백 가지 얼굴
악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62
2000년 이상 변함없는 악의 이미지 63
이교의 신 ‘베르제바브’란 누구인가 67
‘광조’ 때문에 배척된 베르제바브 69
악령의 진면목은 ‘빙의’ 71
시대의 우화로 등장하는 악마 72
2. 어둠 속에서 나온 악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 75
순진무구한 존재에 깃든 어둠 저편의 악 78
『핀처 마틴』— 어느 에고이스트의 회상 81
3. 공허를 즐기는 악
그레이엄 그린의 『브라이턴 록』 84
악에 의거하여 신을 믿겠다 89
경험을 거절하는 공허한 악 92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 — 레버퀸과 ‘그 녀석’의 대화에 드리운 나치의 그림자 95
4. 근원적인 악과 진부한 악
인간의 자유와 악에 대하여 98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원죄 100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로 보는 신체성의 결여 103
악은 병이다 105
3장| 왜 악은 번성하는가
1. 역사는 악으로 넘쳐난다
밀턴의 『실낙원』으로 보는 악으로 가득한 역사 110
세계적 살육의 장, 20세기 112
2. 악의 연쇄
악을 줄이는 세 가지 요소—안전, 정의, 자유 115
세상을 향한 미움 119
자아와 세상 사이의 골을 돌파하는 악? 123
3. 무엇이 악을 키우는가
자본주의는 악의 배양기인가 126
악과의 거래를 통해 꽃피는 자본주의— 『꿀벌의 우화』 127
중산층의 도덕을 파괴한 자본주의 130
소세키가 간파한 ‘패망의 자본주의’ 131
세계와 단절된 인간의 파괴 충동, 테러 135
4장| 사랑은 악 앞에서 무력한가
1. 악과 고뇌
악이 낳은 고뇌 140
루프트한자 계열 항공기 추락과 유족들의 고뇌 143
2. 「욥기」의 물음
신을 향한 욥의 질문 146
납득할 수 없는 「욥기」의 신 149
‘대답할 수 없기에’ 만연하는 악 151
3. 이해하기 힘든 사랑
욥과 같은 상황에 처한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 155
‘복종’은 사랑인가 157
나는 세상의 일부인가 158
4. 절망 속에서도 함께 살아간다는 것
소세키가 그린 ‘세간’ 161
도덕은 세간 바깥에는 없다 163
함께 살아간다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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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악의로 가득한 세상
악이란 무엇인가, 악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강상중은 최근 일본 사회를 경악케 한 3건의 엽기적인 사건과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IS의 잔악무도한 테러에 대한 스케치로 이 책을 시작한다. 밝은 성격에 인기가 많았던 열세 살짜리 중학생을 한 무리의 소년들이 고문에 가까운 폭행을 가하다 끔찍한 방법으로 죽인 사건, 대학병원에서 4년 동안 18명의 환자가 ‘과실’로 죽어 나갔고 이 모든 죽음에 40대의 한 집도의가 관련되었으나 병원 시스템이 그를 제재하지 못한 사건, 한 여대생이 단지 ‘사람을 죽여보고 싶어서’ 수년에 걸쳐 동급생에게 독극물을 먹이고 방화를 하고 이웃을 살해한 사건, 그리고 전 세계에 인질의 참수 영상을 공개하는 IS. 이 끔찍한 사건들을 따라가며 한국 독자는 자연스레 최근 우리 사회에서 목도한 수많은 악행과 악의를 떠올리게 된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강남역 살인사건, 국정 농단 사태로 불거져 나온 권력자들의 추악한 행태와 치밀한 범죄들…….
‘악의 시대’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경악스러운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분노하거나 슬퍼하거나 두려워만 할 뿐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대개는 나와는 상관없는, 광기에 사로잡힌 이상한 인간이 저지른 일로 잘라내고는 내 일상이 아직은 안전하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만다. 저자는 이렇게 해서는 결국 악을 더욱 만연케 할 뿐이라며, 악을 인간의 존재 조건으로 보고 악이 왜 발생하는지, 우리 앞에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 악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다양한 논점을 제시하며 생각의 물꼬를 터준다.
악은 공허함 속에 깃든다
성서와 문학을 통해 보는 악의 여러 가지 얼굴
저자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상식이나 규칙을 넘어서고 싶다는 욕망, 누군가를(혹은 자신을) 해치고 싶다는 충동, 타인의 불행에 ‘꼴좋다’며 쾌재를 부르는 심성에서 악의 뿌리를 찾는다. 다시 말해서 악은 합리적 인간의 영역 너머에 있는 광기나 악령 따위에 씌어서가 아니라, 파괴의 충동에 시달리고 늘 불안하며 자기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인간 존재 자체의 공허함을 채우듯 다가온다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자기 안의 이런 요소를 잘 길들여 사회적 존재로 살아간다. 하지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일본의 여대생이나 과대망상적 자기 긍정으로 ‘불순한’ 유대인을 절멸시키려 한 나치, 아무것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이것 하나라도 믿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강박적인 원리주의로 흐르고 만 IS 등은 이 공허함을 견디지 못하고 엄청난 파괴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악이라는 것이 이처럼 인간의 존재 조건이라면, 오랜 시간 인간의 삶과 함께해온 다양한 이야기 속에는 당연히 악이라는 주제가 빠지지 않을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신약성서』에 이르는 동안 악의 이미지는 ‘이교의 신’에서 ‘악의 화신’으로 변했고, 그런 악이 상징하는 바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되었다. 또한 그런 만큼 문학의 주요 소재로 쓰였다. 저자는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 『핀처 마틴』, 그레이엄 그린의 『브라이턴 록』,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 등을 통해 어둠 깊은 곳에서 나온 듯한 악의 압도적인 힘, 공허를 즐기는 악, 살아 있다는 실감이 없어 죽음의 충동으로 돌진하고 마는 악 등 악의 여러 가지 얼굴을 보여준다.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왜 이렇게 악이 번성하는 것일까? 저자는 무엇보다도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 자신은 세상의 일부가 될 수 없다는 자기혐오에서 악이 자라난다고 말한다. 그는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이반과 『악령』의 스타브로긴을 통해 세상을 향한 격렬한 증오, 자아와 세상 사이에 깊게 팬 골에 깃드는 악을 묘사한다. 여기서 분출된 파괴와 폭력의 에너지가 자살이나 무차별 살인, 테러를 낳는 것이다. 이러한 악의 연쇄는 오늘날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시스템인 자본주의를 통해 더욱 강화된다. 자본주의는 악의 배양기라고 할 만큼 세상에서 단절되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을 점점 더 많이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악의 연쇄를 끊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연쇄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자아와 세상 사이에 팬 골을 메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떻게 해야 자신을 세상의 일부로 느낄 수 있을까? 저자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랑은 구체적인 타자와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자신이 세상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추상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나쓰메 소세키가 여러 작품을 통해 성실하게 묘사한 세간世間, 즉 “아무래도 좋을 세상 사람들의 심정이나 감정 그리고 인간관계 속의 밀고 당기는 모습”과 같은 일상의 희로애락에 가까운 것이다. 그 얽히고설킨 하루하루의 삶을 ‘함께 살아가는 것’만이 이 악의 시대를 건너갈 유일한 길이다.
악이란 무엇인가, 악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강상중은 최근 일본 사회를 경악케 한 3건의 엽기적인 사건과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IS의 잔악무도한 테러에 대한 스케치로 이 책을 시작한다. 밝은 성격에 인기가 많았던 열세 살짜리 중학생을 한 무리의 소년들이 고문에 가까운 폭행을 가하다 끔찍한 방법으로 죽인 사건, 대학병원에서 4년 동안 18명의 환자가 ‘과실’로 죽어 나갔고 이 모든 죽음에 40대의 한 집도의가 관련되었으나 병원 시스템이 그를 제재하지 못한 사건, 한 여대생이 단지 ‘사람을 죽여보고 싶어서’ 수년에 걸쳐 동급생에게 독극물을 먹이고 방화를 하고 이웃을 살해한 사건, 그리고 전 세계에 인질의 참수 영상을 공개하는 IS. 이 끔찍한 사건들을 따라가며 한국 독자는 자연스레 최근 우리 사회에서 목도한 수많은 악행과 악의를 떠올리게 된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강남역 살인사건, 국정 농단 사태로 불거져 나온 권력자들의 추악한 행태와 치밀한 범죄들…….
‘악의 시대’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경악스러운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분노하거나 슬퍼하거나 두려워만 할 뿐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대개는 나와는 상관없는, 광기에 사로잡힌 이상한 인간이 저지른 일로 잘라내고는 내 일상이 아직은 안전하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만다. 저자는 이렇게 해서는 결국 악을 더욱 만연케 할 뿐이라며, 악을 인간의 존재 조건으로 보고 악이 왜 발생하는지, 우리 앞에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 악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다양한 논점을 제시하며 생각의 물꼬를 터준다.
악은 공허함 속에 깃든다
성서와 문학을 통해 보는 악의 여러 가지 얼굴
저자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상식이나 규칙을 넘어서고 싶다는 욕망, 누군가를(혹은 자신을) 해치고 싶다는 충동, 타인의 불행에 ‘꼴좋다’며 쾌재를 부르는 심성에서 악의 뿌리를 찾는다. 다시 말해서 악은 합리적 인간의 영역 너머에 있는 광기나 악령 따위에 씌어서가 아니라, 파괴의 충동에 시달리고 늘 불안하며 자기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인간 존재 자체의 공허함을 채우듯 다가온다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자기 안의 이런 요소를 잘 길들여 사회적 존재로 살아간다. 하지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일본의 여대생이나 과대망상적 자기 긍정으로 ‘불순한’ 유대인을 절멸시키려 한 나치, 아무것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이것 하나라도 믿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강박적인 원리주의로 흐르고 만 IS 등은 이 공허함을 견디지 못하고 엄청난 파괴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악이라는 것이 이처럼 인간의 존재 조건이라면, 오랜 시간 인간의 삶과 함께해온 다양한 이야기 속에는 당연히 악이라는 주제가 빠지지 않을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신약성서』에 이르는 동안 악의 이미지는 ‘이교의 신’에서 ‘악의 화신’으로 변했고, 그런 악이 상징하는 바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되었다. 또한 그런 만큼 문학의 주요 소재로 쓰였다. 저자는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 『핀처 마틴』, 그레이엄 그린의 『브라이턴 록』,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 등을 통해 어둠 깊은 곳에서 나온 듯한 악의 압도적인 힘, 공허를 즐기는 악, 살아 있다는 실감이 없어 죽음의 충동으로 돌진하고 마는 악 등 악의 여러 가지 얼굴을 보여준다.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왜 이렇게 악이 번성하는 것일까? 저자는 무엇보다도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 자신은 세상의 일부가 될 수 없다는 자기혐오에서 악이 자라난다고 말한다. 그는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이반과 『악령』의 스타브로긴을 통해 세상을 향한 격렬한 증오, 자아와 세상 사이에 깊게 팬 골에 깃드는 악을 묘사한다. 여기서 분출된 파괴와 폭력의 에너지가 자살이나 무차별 살인, 테러를 낳는 것이다. 이러한 악의 연쇄는 오늘날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시스템인 자본주의를 통해 더욱 강화된다. 자본주의는 악의 배양기라고 할 만큼 세상에서 단절되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을 점점 더 많이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악의 연쇄를 끊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연쇄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자아와 세상 사이에 팬 골을 메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떻게 해야 자신을 세상의 일부로 느낄 수 있을까? 저자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랑은 구체적인 타자와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자신이 세상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추상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나쓰메 소세키가 여러 작품을 통해 성실하게 묘사한 세간世間, 즉 “아무래도 좋을 세상 사람들의 심정이나 감정 그리고 인간관계 속의 밀고 당기는 모습”과 같은 일상의 희로애락에 가까운 것이다. 그 얽히고설킨 하루하루의 삶을 ‘함께 살아가는 것’만이 이 악의 시대를 건너갈 유일한 길이다.
주요 내용
공허에 뿌리를 내리는 악
‘죽음의 충동’에 의해 조종된 듯한 ‘살인을 위한 살인’을 보면 저는 밑바닥을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의 존재 바로 그 자체의 공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존재 바로 그 자체가 너무도 불안하다는 감각입니다. 내가 나라는 ‘자기정체성(아이덴티티)’이 느껴지지 않는 공허함만이 깃든 상태. 그러한 상태는 더할 나위 없는 불안을 불러일으킵니다. (중략) 마치 이 공허함을 메워주듯이 악은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이지요. _ 37쪽
악은 복잡함을 견디지 못한다
사는 법이란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죽음의 충동을 조금씩 길들여 제어하고 조절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중략)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그곳이 직장이건 공공장소이건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하면서 아주 섬세하게 사회적인 룰이 결정됩니다. 공허한 존재의 악은 세계의 그런 물질적인 복잡함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 견딜 수 없는 부분이 죽음의 충동으로 분출되지 않았을까요. _ 42~43쪽
악은 ‘무엇이든 OK’인 세상을 좋아한다
무엇이든 괜찮은 세상이라면 옳은 것과 틀린 것,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 성聖과 속俗이 같아질 것입니다. 의미라는 것에 거의 의미가 없어져버립니다. 그 결과 모든 일에 아무런 실감이나 보람을 느낄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텅 빈 곳에서야말로 원리주의가 활개를 치지요. ‘실감을 느끼고 싶다’, ‘믿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 ‘기댈 만한 의미를 찾고 싶다’ 는 욕구가 사람을 원리주의를 향해 질주하게끔 하는 것 같습니다. _ 52~53쪽
『파리 대왕』, 순진무구한 존재에 깃든 어둠 저편의 악
이 책을 읽으면 깊은 어둠 속에서 나온 악의 힘에 압도되는 기분이 듭니다. 순진무구한 아이들 속에도 살육을 향한 파괴 충동이 깃들어 있어 어떤 계기를 만나면 그 악이 풀려 나올 수 있다는 것을 『파리 대왕』은 시사하고 있습니다. (중략) 골딩은 잔혹한 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었으며 전쟁의 비참함을 통절하게 느낀 세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원죄와도 같은 악에 민감하게, 또 가슴 아프게 반응하지 않았을까요. 그러한 악을 아이들과 연결 지어 보다 생생하고 선명하게 드러내려 한 것 같습니다. _ 79~80쪽
인간의 자유와 악에 대하여
왜 우리가 악을 행하는지 탐구해가다 보면 결국 그 최종적인 원인이 인간의 자유라는 사실에 다다르게 됩니다. (중략) 그런데 이런 관점에는 약점이 있습니다. 이 사고방식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한없이 신자유주의에 가까운 자기 책임론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자유롭기 때문에 악행을 저지른다는 논리는 악이 자기 결정과 자기 책임에 기초하여 생겨난다는 개인의 책임론이 되어버립니다. (중략)
누구나 사회적 존재이기에 결코 원죄로서의 악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물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미미한 것이라 해도 그 악순환을 타자와 자신을 살리는 연쇄로 바꿔나가는 것 역시 가능합니다. 이는 줄곧 ‘개인화’를 밀어붙이며 독립적인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자기 책임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와 대척점에 있다 하겠습니다. _ 99~103쪽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세상과 자신을 향한 격렬한 혐오
이반이라는 강렬한 자아를 가진 존재는 철저하게 세상을 미워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요. 그러니 자신은 세상의 일부가 될 수 없다면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잘라내는 것이지요. (중략)
여기에는 사실 자기혐오가 깃들어 있는데 이반은 세상 그 자체에 자아를 가두고 있는 것입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등장인물들은 현실세계의 악, 그리고 고난에 의해 고양된 세상과 자기를 향한 혐오가 어떻게 악을 외부로 투사하도록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지, 바로 그것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_ 121~122쪽
욥의 물음, 왜 신이 만들어낸 세상에 악이 넘쳐나는가
신이 만들어낸 이 세상에 왜 이렇게까지 불합리한 일들이 넘쳐나는지, 그리고 신은 왜 그것들을 그냥 내버려두는지 욥은 신을 향해 거의 항의하듯이 묻습니다. (중략) 도스토옙스키도 「욥기」의 결말에 옳고 그름을 따져 물었던 사람입니다. 그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말하고자 한 주제는 욥의 물음보다 더욱 격렬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이렇게 어린아이들이 무슨 이유로 이런 참혹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 신은 왜 이렇게 무자비한가. (중략)
단 한 명의 소녀조차 구할 수 없는 세상은 믿지 않는다는 이반을 욥과 같은 말로 침묵시킬 수는 없겠지요. 경건한 기독교 신자인 알료샤라도 이반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못합니다. 물론 신도 침묵한 채입니다. 대답할 수 없기에 바로 악이 만연하는 것입니다. 악이란 세계와 자기 자신을 향한 혐오가 바깥으로 전가되었을 때 생기는 폭력이나 파괴 행위입니다. 이는 타자뿐만이 아니라 스스로도 파괴해갑니다. _ 148~153쪽
도덕은 세간 바깥에는 없다
왜 나쓰메 소세키는 이런 작품들을 계속 썼을까요? 이 작품을 통해 소세키는 인간의 도덕에 관해서 이야기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도덕이란 세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엉망진창이라 어찌할 도리가 없어 보이는 세간의 세부細部에 있다는 주장을 소세키는 되풀이하는 듯 보입니다.
저는 소세키가 말하는 도덕을 사랑이나 신뢰라는 말로 바꿔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소세키에게는 일곱 명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을 짊어지고서도 그는 마지막까지 세간으로부터 빠져나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문학이라는 생업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도덕의 연쇄를 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이를 인정人情이나 사랑의 연쇄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_ 163~164쪽
함께 살아간다
이 사회에 절망하면서도 함께 살아가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신뢰를 멈추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인간을 믿고 스스로를 세상의 일부라 느낀다면 공생의 도덕을 실천하는 것 외에는 악이 번성하는 이 시대를 살아갈 방도가 없습니다. 이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내가 나를 뛰어넘는 어떤 존재와 이어져 있음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중략)
악의 연쇄를 인간적인 연쇄로 바꿔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한 ‘세간’과 얽힌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저는 소중하게 여기려 합니다. 악의 연쇄가 언젠가 인간적인 연쇄로 변해가는 것을 꿈꾸며. _ 167~168쪽
‘죽음의 충동’에 의해 조종된 듯한 ‘살인을 위한 살인’을 보면 저는 밑바닥을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의 존재 바로 그 자체의 공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존재 바로 그 자체가 너무도 불안하다는 감각입니다. 내가 나라는 ‘자기정체성(아이덴티티)’이 느껴지지 않는 공허함만이 깃든 상태. 그러한 상태는 더할 나위 없는 불안을 불러일으킵니다. (중략) 마치 이 공허함을 메워주듯이 악은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이지요. _ 37쪽
악은 복잡함을 견디지 못한다
사는 법이란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죽음의 충동을 조금씩 길들여 제어하고 조절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중략)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그곳이 직장이건 공공장소이건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하면서 아주 섬세하게 사회적인 룰이 결정됩니다. 공허한 존재의 악은 세계의 그런 물질적인 복잡함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 견딜 수 없는 부분이 죽음의 충동으로 분출되지 않았을까요. _ 42~43쪽
악은 ‘무엇이든 OK’인 세상을 좋아한다
무엇이든 괜찮은 세상이라면 옳은 것과 틀린 것,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 성聖과 속俗이 같아질 것입니다. 의미라는 것에 거의 의미가 없어져버립니다. 그 결과 모든 일에 아무런 실감이나 보람을 느낄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텅 빈 곳에서야말로 원리주의가 활개를 치지요. ‘실감을 느끼고 싶다’, ‘믿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 ‘기댈 만한 의미를 찾고 싶다’ 는 욕구가 사람을 원리주의를 향해 질주하게끔 하는 것 같습니다. _ 52~53쪽
『파리 대왕』, 순진무구한 존재에 깃든 어둠 저편의 악
이 책을 읽으면 깊은 어둠 속에서 나온 악의 힘에 압도되는 기분이 듭니다. 순진무구한 아이들 속에도 살육을 향한 파괴 충동이 깃들어 있어 어떤 계기를 만나면 그 악이 풀려 나올 수 있다는 것을 『파리 대왕』은 시사하고 있습니다. (중략) 골딩은 잔혹한 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었으며 전쟁의 비참함을 통절하게 느낀 세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원죄와도 같은 악에 민감하게, 또 가슴 아프게 반응하지 않았을까요. 그러한 악을 아이들과 연결 지어 보다 생생하고 선명하게 드러내려 한 것 같습니다. _ 79~80쪽
인간의 자유와 악에 대하여
왜 우리가 악을 행하는지 탐구해가다 보면 결국 그 최종적인 원인이 인간의 자유라는 사실에 다다르게 됩니다. (중략) 그런데 이런 관점에는 약점이 있습니다. 이 사고방식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한없이 신자유주의에 가까운 자기 책임론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자유롭기 때문에 악행을 저지른다는 논리는 악이 자기 결정과 자기 책임에 기초하여 생겨난다는 개인의 책임론이 되어버립니다. (중략)
누구나 사회적 존재이기에 결코 원죄로서의 악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물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미미한 것이라 해도 그 악순환을 타자와 자신을 살리는 연쇄로 바꿔나가는 것 역시 가능합니다. 이는 줄곧 ‘개인화’를 밀어붙이며 독립적인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자기 책임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와 대척점에 있다 하겠습니다. _ 99~103쪽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세상과 자신을 향한 격렬한 혐오
이반이라는 강렬한 자아를 가진 존재는 철저하게 세상을 미워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요. 그러니 자신은 세상의 일부가 될 수 없다면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잘라내는 것이지요. (중략)
여기에는 사실 자기혐오가 깃들어 있는데 이반은 세상 그 자체에 자아를 가두고 있는 것입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등장인물들은 현실세계의 악, 그리고 고난에 의해 고양된 세상과 자기를 향한 혐오가 어떻게 악을 외부로 투사하도록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지, 바로 그것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_ 121~122쪽
욥의 물음, 왜 신이 만들어낸 세상에 악이 넘쳐나는가
신이 만들어낸 이 세상에 왜 이렇게까지 불합리한 일들이 넘쳐나는지, 그리고 신은 왜 그것들을 그냥 내버려두는지 욥은 신을 향해 거의 항의하듯이 묻습니다. (중략) 도스토옙스키도 「욥기」의 결말에 옳고 그름을 따져 물었던 사람입니다. 그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말하고자 한 주제는 욥의 물음보다 더욱 격렬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이렇게 어린아이들이 무슨 이유로 이런 참혹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 신은 왜 이렇게 무자비한가. (중략)
단 한 명의 소녀조차 구할 수 없는 세상은 믿지 않는다는 이반을 욥과 같은 말로 침묵시킬 수는 없겠지요. 경건한 기독교 신자인 알료샤라도 이반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못합니다. 물론 신도 침묵한 채입니다. 대답할 수 없기에 바로 악이 만연하는 것입니다. 악이란 세계와 자기 자신을 향한 혐오가 바깥으로 전가되었을 때 생기는 폭력이나 파괴 행위입니다. 이는 타자뿐만이 아니라 스스로도 파괴해갑니다. _ 148~153쪽
도덕은 세간 바깥에는 없다
왜 나쓰메 소세키는 이런 작품들을 계속 썼을까요? 이 작품을 통해 소세키는 인간의 도덕에 관해서 이야기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도덕이란 세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엉망진창이라 어찌할 도리가 없어 보이는 세간의 세부細部에 있다는 주장을 소세키는 되풀이하는 듯 보입니다.
저는 소세키가 말하는 도덕을 사랑이나 신뢰라는 말로 바꿔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소세키에게는 일곱 명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을 짊어지고서도 그는 마지막까지 세간으로부터 빠져나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문학이라는 생업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도덕의 연쇄를 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이를 인정人情이나 사랑의 연쇄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_ 163~164쪽
함께 살아간다
이 사회에 절망하면서도 함께 살아가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신뢰를 멈추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인간을 믿고 스스로를 세상의 일부라 느낀다면 공생의 도덕을 실천하는 것 외에는 악이 번성하는 이 시대를 살아갈 방도가 없습니다. 이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내가 나를 뛰어넘는 어떤 존재와 이어져 있음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중략)
악의 연쇄를 인간적인 연쇄로 바꿔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한 ‘세간’과 얽힌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저는 소중하게 여기려 합니다. 악의 연쇄가 언젠가 인간적인 연쇄로 변해가는 것을 꿈꾸며. _ 167~1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