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라 미술 (개정판)
- 1853
저자소개
지은이 : 이주형
저서로 『아프가니스탄, 잃어버린 문명』(2004), 『인도의 불교미술』(2006), 『동아시아 구법승과 인도의 불교미술』(공저, 2008) 등이 있으며, “Presenting the Buddha: Images, Conventions, and Significance in Early Indian Buddhism”(2013), “Seeing Maitreya: Aspiration and Vision in an Image from Early-Eighth Century Silla”(2013), “Reading Coomaraswamy on the Origin of the Buddha Image”(2010), 「인문학으로서의 미술사학: 반성과 모색」(2010), 「종교와 미학 사이: 불상 보기의 종교적 차원과 심미적 차원」(2007) 등 다수의 인도미술과 불교미술 관련 논문이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이 책은 세계적인 간다라 미술 권위자인 서울대 이주형 교수의 열정과 학문적 성과가 응축된 간다라 미술 개설서이다. 2003년 초판본 출간 당시 간다라 미술에 대한 입체적이고도 다각적인 시각, 방대하고 체계적인 서술, 치밀한 연구를 통한 독보적인 성취로 주목 받아 그해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후 지금까지 간다라 미술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충실한 교과서가 되어왔으며, 현재에도 명실공히 국내 유일의 간다라 미술 입문서이자 필독서로 많은 독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간다라 미술』은 ‘간다라’라 불리는 지역의 역사, 문화적 맥락, 현재적 의미 등을 유기적으로 조망한다. 이 지역에서 발원한 불교미술의 두 원류 가운데 하나인 ‘간다라 미술’의 역사와 의미를 고고학과 미술사학, 불교문헌과 불교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객관적이며 심층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초판 출간 이후 12년 만에 보완 정비하여 출간하게 된 개정판 『간다라 미술』은 일차적으로는 초판의 오류를 바로잡고 표현을 일부 바꾸었으며, 그간의 새로운 학설과 현지의 지리적 사회적 변화 등을 반영하였다. 또한 더욱 질 좋은 도판으로 교체함과 동시에, 보다 새롭고 편안한 디자인으로 독자들에게 가깝게 다가서고자 하였다.
목차
개정판 서문
프롤로그
1 간다라, 그리스인, 불교
간다라||그리스인|불교|
그리스인의 도시와 유물
2 간다라 미술의 시원
샤카·파르티아 시대|
탁실라|스와트|쿠샨 왕조
3 불상의 탄생
무불상 시대|최초의 불상|
간다라와 불상의 창안|불상의 형상
4 불교사원과 불탑
불교미술의 흥륭|승원|
스투파|불당과 불감
5 불상과 보살상
석조상|불상의 양식적 유형|
불상의 도상과 이름|보살상
6 불전 부조
불전 문학과 미술|본생|강생에서 성도까지|
초전법륜에서 대반열반까지
7 삼존과 설법도
삼존 부조|대승불교의 봉헌물|
설법도 부조|부파불교와 대승불교
8 다양한 신과 모티프
불교 신과 힌두교 신|그리스계의 신|
디오뉘소스와 풍요의 기원
9 소조상의 유행
소조상|탁실라|핫다
10 만기(晩期)의 간다라
에프탈과 돌궐|바미얀과 폰두키스탄|
스와트, 카슈미르, 칠라스|불교미술의 동점
11 간다라 그 후
이슬람|식민지 시대와 유럽인들|
그 이후와 오늘
부록
주석|용어해설|참고문헌|
도판목록|찾아보기|간다라 전도
편집자 추천글
● 불교미술 최대의 화두이자 정수精髓,
간다라 미술의 역사와 현재를 만나는 장대한 파노라마
오늘날의 파키스탄 서북부와 아프가니스탄 동부, 인도의 북서쪽을 가리키는 간다라 지역은 헬레니즘 문화와 불교가 만났던 동서양 문화교류의 장이자 불교미술의 발원지로서, 불교사와 미술사, 문명교류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서양의 미술 전통이 동양의 대표 종교인 불교와 만나 불상이라는 새로운 양식을 탄생시켰다는 점, 그 옛날 지중해 세계의 미술 양식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동방에서 꽃피었다는 사실로 인해 간다라 미술에 대한 유럽인들의 관심은 일찍부터 상당히 높았다. 영국의 식민지배 기간 동안 수많은 미술품이 유럽 각국으로 반출되어, 현재 런던의 대영박물관과 빅토리아앤드앨버트박물관, 베를린의 아시아미술박물관, 로마의 국립동양미술박물관, 파리의 기메미술관 등에 흩어져 수장되어 있다. 또한 최근까지도 끊이지 않는 위작 논란과 반달리즘 현상으로 간다라 미술은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간다라 미술』은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을 시작으로 불교문화의 융성, 간다라 미술의 시발, 불상의 탄생, 전성기, 새로운 세력에 의한 불교의 쇠퇴, 이슬람교의 장악으로 인한 간다라 미술의 절멸, 근대 서구인들의 간다라 미술 재조명과 새로운 의미의 부활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간다라의 역사와 그곳에서 펼쳐진 불교미술의 흥망성쇠를 치밀하고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간다라 미술이 인류 문명사에서 동서 문화 만남의 귀중한 예화例話로서 지니는 가치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2000년 전 이곳에서는 헬레니즘 문화와 불교의 신비로운 만남이 있었고, 그 결실인 간다라 미술은 그리스와 이란, 인도와 중국을 연결하는 문명사의 대사건으로 발전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 유럽의 학자들은 어린 시절 알렉산드로스의 전기를 읽고 미지의 세계에 남겨진 그리스인들에 대한 꿈을 키우며 이 분야의 연구에 들어섰다. 한편 동양의 많은 이들은 간다라를 불교의 또 하나의 고향으로 여기며 현장과 혜초의 발걸음을 좇아 이 땅에 순례의 발길을 내딛는다. 알렉산드로스, 메난드로스, 아폴로니우스, 카니슈카, 석가모니, 아쇼카, 아쉬바고샤, 바수반두 ….
인연의 불꽃으로 나타났다 사라져 간 수많은 이름과 더불어 간다라는 풍부한 상념을 일으킨다. 무엇보다 그것이 간다라 미술을 다른 미술과 구별 짓는 특징이며, 끊임없이 동서의 많은 이를 매료시키는 이유일 것이다. - 본문 중에서
간다라 지역에 대한 관심은 학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주제가 불교에 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조형양식이 서양 지중해 지역에서 비롯된 헬레니즘·로마풍이기 때문이다. ‘동양의 성자’ 부처의 얼굴이 곱슬머리의 유럽인처럼 표현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간다라 미술은 동방의 종교와 서방의 고전미술이 절묘하게 결합된 혼성 미술이다. 따라서 대승불교의 발상지이자 불상의 탄생지라는 종교적인 의미를 차치하더라도, 간다라의 불상들은 예술 그 자체로도 빠져나오기 어려운 신비로운 매력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 간다라 미술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
지은이가 서문에서 밝혔듯, 이 책은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쓰였지만 지나치게 경직된 학술서의 성격을 띠지 않는다. 오히려 널리 알려진 내용과 저자의 연구 성과에 따른 의견을 일반 독자들도 이해하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특히 미술 작품의 양식적 분류나 편년 구분, 형식 설명에 치중해온 기존의 미술사 이론서와는 달리, 미술 양식이 나타나기까지의 역사·종교·문화·지리 등 문화사 전반과 그러한 양식적 특성이 발현되기까지의 다양한 주변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제시함으로써 이해의 폭을 넓히고 본질에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도록 이끈다. 또한 간다라 미술에 대한 입체적인 접근을 시도하면서 간다라 미술의 모티프를 다양한 신화와 문화적·역사적 배경에 입각해 설명하는 동시에 이 양식에 현재적 의미를 부여하는 일도 빠뜨리지 않는다.
고대 도시의 흔적을 답사하며 간다라 미술의 시원을 추적하는 지은이는 감상적인 서술은 피하고, 간다라 미술 세계를 객관적·심층적으로 살피면서 그간 미술사적 측면에서 평가되던 불상을 종교적·사회적 의미로 확장시켜 분석했다. 또한 붓다와 보살 외에 간다라 미술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의 이야기를 간다라인의 문화와 생활상과 엮어 소개하는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간다라 미술의 맥락을 깊고 넓게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 270여 장의 사진 자료로 만나는 간다라 미술
2001년 탈레반은 다이너마이트와 로켓포를 이용해서 바미얀 석불 등 찬란한 간다라의 유물과 유적들을 파괴했다. 이는 반달리즘의 대표적인 예로, 과거 거대한 문명들이 모이고 섞이고 흐르던 지역에서 벌어진 참상에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이주형 교수는 지난 2003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일원으로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되어 문화유산의 파괴 실상을 조사하고 돌아와 이듬해 아프가니스탄 문화유산의 탄생과 존속, 발견과 파괴를 총체적으로 다룬 『아프가니스탄, 잃어버린 문명』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개정판 『간다라 미술』에는 파괴되기 전의 바미얀 석불을 비롯하여 쉽게 찾아보기 힘든 간다라 미술품 사진 270여 장이 실려 있다. 필자가 직접 답사하고 촬영한 간다라 지역의 전경과 간다라 지역 박물관에 소장된 유물들은 보다 생생하고 정확하게 내용의 이해를 돕는다. “국내 학술서로는 보기 드물게 꼼꼼하고 치밀한 자료 조사를 거쳤다. 참고 문헌과 사진 자료만 보더라도 그 내용이 방대하고 체계적이어서 외국 학술 서적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라는 44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심사평처럼 이 책에서는 간다라 미술의 대표 유물인 불상과 보살상, 붓다의 본생과 마지막 생을 다룬 불전 부조, 설법 자세의 붓다를 묘사한 삼존상과 설법도, 그 밖에 불교와 관련되거나 힌두교나 그리스계에서 불교로 습합된 다양한 신들을 주제로 한 상 등, 간다라의 최고 미술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외에도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 경로, 간다라와 그 주변을 보여주는 지도는 간다라에 대한 지리적 이해를 돕고, 사당과 사원의 평면도와 조감도는 간다라 미술을 더욱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실감할 수 있게 한다.
part 1 간다라 미술의 성립 배경과 불상의 탄생 (1~3장)
● 동서양 문명의 교차로, 간다라
‘간다라’라는 명칭은 인도 베다 시대(기원전 15~6세기) 성전聖典에 언급되어 있는 ‘간다리족’이 정착했던 인도 서북 지역의 옛 지명에서 유래했다. 간다라 지역은 오늘날 페샤와르 분지를 중심으로 한 파키스탄 북서부 일대와 아프가니스탄 동부, 이를 중심으로 그레코로만 양식의 조각이 출토된 주변의 여러 지역을 아우른다(438쪽 “간다라 전도” 참조). 간다라는 예로부터 동서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유럽, 인도,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간의 문화 교류와 민족 이동이 이곳을 거쳐 이루어졌다. 이 지역의 문화적 영향력이 동아시아까지 이어지면서, 중국 구법승들을 통해 불교와 불교미술이 전래되는 주요한 통로가 되었다. 간다라는 이 같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일찍이 기원전 1500년경 인도에 유입했던 아리아인을 필두로 페르시아인, 그리스인, 인도인, 중앙아시아 출신의 샤카족, 쿠샨족, 에프탈, 돌궐족의 지배를 번갈아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다양한 민족과 전통이 혼재된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었다.
● 헬레니즘 문화와 불교 융합의 결실, 간다라 미술
간다라 미술은 간다라 지역에서 기원 전후 시기부터 수세기에 걸쳐 번성했던 독특한 성격의 불교미술을 칭한다. 독특하다고 하는 이유는 이 미술의 주제가 대부분 인도에서 태동한 불교에 관한 것임에도, 그 조형 양식은 멀리 지중해 세계에서 비롯된 헬레니즘·로마풍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간다라 미술은 동방의 종교 전통과 서방의 고전미술 전통이 기묘하게 결합된 혼성 미술인 것이다.
간다라 미술의 기반이 되는 두 축은 헬레니즘 문화와 불교이다. 기원전 4세기경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 이후 간다라 지역에 정착한 그리스인들을 통해 간다라 지역에 헬레니즘 문화가 뿌리내리게 되었고, 이는 기원전 5세기에 탄생하여 깨달음의 사상을 널리 전파한 석가모니의 불교와 융합된다. 불교는 기원전 3세기경 인도 서북쪽을 지배했던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 왕이 귀의하면서 더욱 융성하였는데,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은 간다라 지역에서 동서양 문화가 혼재한 독특한 미술이 탄생하는 토대가 되었다.
● 간다라 미술의 시원과 전통의 확립
간다라 미술의 시원은 샤카족과 파르티아인이 그리스인 세력을 물리치고 간다라 지역의 주도권을 잡게 된 샤카?파르티아 시대(기원전 2~1세기경)의 고대도시 “탁실라”와 “스와트”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서양 고전풍을 계승한 화폐나 석조품,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은 스투파나 사원지 등의 불교 유적에서 간다라 미술의 태동을 엿볼 수 있다. 다음으로 이 지역의 패권을 장악한 쿠샨 왕조 때에는 간다라와 더불어 마투라(간다라와 함께 불교조각의 양대 기원지이자 중심지)도 쿠샨의 세력권에 놓이게 된다. 쿠샨 왕조는 카니슈카 왕 때 가장 번성했으며, 이때 불상의 조성이 본격화되고 간다라 미술의 전통이 확립되며 통상적인 불상의 유형이 창안되었다(도37, 43 참조). 알렉산드로스 동방 원정 이후 인도 고대사에서 간다라 지역의 주도권을 가졌던 주요 세력들을 차례대로 살펴보면 그리스인들의 왕조, 샤카?파르티아 왕조, 쿠샨 왕조의 순으로, 간다라 미술은 이들의 문화적 성향과 전통 하에서 태동하고 발전하게 된다.
● 간다라, 완전한 의미의 ‘불상의 탄생’
석가모니의 탄생 이후 약 400년간 ‘불상’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보리수나 빈 대좌, 발자국 등으로 붓다의 존재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붓다 사후 수세기 동안 이러한 “무불상 표현”의 시대가 지속된 이유는, 이 시기 인도에서는 상을 숭배하는 관습이 보편적이지 않았고, 초기 불교에서는 붓다 자체보다 붓다가 전한 진리인 “법”이 우선시되었으며, 붓다의 분신인 유골 숭배를 위한 스투파의 건립과 예배가 더 성행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인도 지역에서의 통상적인 불상 조성이 마투라보다는 간다라에서 먼저 시작되었다고 보는데, 그 몇 가지 근거는 다음과 같다. 우선 바로 앞서 제시한 무불상 시대가 지속된 이유와 더불어, 간다라 지역 유물에서는 무불상 표현이 인도 본토에 비해 드물다는 점, 그리고 헬레니즘 문화의 유입으로 다양한 상像을 폭넓게 접해 조상造像의 개념을 수용하기가 보다 용이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카니슈카 시대 화폐에 20여 가지 신상과 함께 불상이 등장하는 데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도39, 41 참조).
간다라에서 창안된 완전한 의미의 불상은 커다란 천을 몸에 두르고 장신구를 걸치지 않은 모습이다. 이러한 차림새는 당시 인도에서 유행하던 불교 승려의 복장에 기초한 것이며, 상세한 묘사는 붓다 신체의 특징 서른두 가지를 체계화한 ‘삼십이상’과, 불보살이 지닌 거룩하고 뛰어난 특징인 ‘팔십종호’를 근거로 한다. 이 특징들은 인도 전통의 대인상大人相에 관한 전승을 따르고 있는데, 솟은 머리모양에 머리카락이 말려 있는 나발 형태, 미간에 표현된 백호, 머리 뒤의 광채, 독특한 수인手印 등을 포함한다. 다만 간다라 불상은 인도 본토의 상들에 비해 삼십이상의 조항이 적극적으로 표현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리스?로마계 신상이나 황제상의 요소들, 정면관을 중시했던 파르티아 미술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part 2 전성기의 간다라 미술 (4~8장)
● 불교사원과 불탑
파키스탄의 페샤와르 분지가 간다라 미술의 중심지로 등장한 것은 쿠샨 왕조의 카니슈카 왕 시기로 생각되며, 이때부터 약 200년간 간다라 미술 전성기의 최고 석조품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특히 분지 북쪽의 탁트 이 바히, 사흐리 바흐롤, 자말 가르히, 로리얀 탕가이 사원지에서 현전하는 대다수의 석조상이 출토되었으며 이외에도 탁실라, 스와트, 잘랄라바드와 카불 분지 등 간다라 지역 곳곳에 수많은 불교사원과 불탑이 건립되었다.
간다라의 불교사원은 인도 본토와 마찬가지로 승려들의 수행공간인 승원과 붓다의 사리를 모신 스투파로 구성되어 있는데, 붓다의 유골과 사리에 대한 신앙과 불탑에 대한 숭배는 절대적인 권위를 누렸다. 간다라 스투파의 기본 형태는 방형 기단 위에 원통형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스투파의 원형이자 중심인 돔을 올리고, 돔의 정상은 ‘세계의 축’을 상징하는 찰주刹柱와 이를 둘러싸는 하르미카라는 부분으로 구성한다. 본문에서는 간다라 지역에 남아 있는 스투파의 현황과 스투파의 각 부분이 상징하는 의미, 스투파의 규모 등 간다라 불교사원과 불탑의 양상 및 특징을 상세히 설명한다(111-137쪽). 승원과 불탑 외에 불상을 봉안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불당과 감실형 불당, 즉 불감이 남아 있는데 그 수는 많지 않다. 이 가운데 감실들이 줄지어 선 형태로 축조된 열립감형 불당은 상을 봉안하는 중요한 시설로, 동아시아에서는 비교적 큰 크기의 단독 불상을 모시는 형식이 일반적인 데 반해 간다라의 불상은 열립감에 나란히 봉안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점에 미루어볼 때 간다라에서 불상의 의미나 비중은 우리와 다소간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석조 불상과 보살상
간다라의 석조 불상과 보살상은 간다라 미술을 대표하는 유물이다. 간다라 불상 양식이 서양 고전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여기에는 헬레니즘 요소, 이란적 요소, 로마적 요소 등 여러 경로로 전한 외래 요소들과 이미 확연히 지역화한 양상이 결합되어 있다. 따라서 서양 고전 양식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고,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이주형 교수는 이렇듯 다양한 요소를 지닌 간다라 불상의 세부 표현과 분위기를, 그러한 양식이 존재했을 시간과 공간까지 고려해 5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143-160쪽). 간다라 불상의 정확한 제작시기는 여전히 흥미로운 의문으로 남는데, 연대가 새겨진 당시의 불상 4점은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하지만 이 연대가 어느 왕조를 기원으로 하는 것인지를 두고 여러가지 해석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간다라 미술 편년 시도는 여전히 미제未濟로 남아 있다.
앞서 언급한 바대로 간다라의 석조 불보살상이 일정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된 이유는, 간다라 미술 전성기에 이 일대에 존재했던 소수의 공방에서 석조 조각을 주도했기 때문이라 추측한다. 페샤와르 분지에서 만들어진 석조상은 회색, 회흑색, 회청색의 편암으로 되어 있는데, 층층이 쪼개지는 편암의 성질 때문에 깊이감의 표현이 제한되어 상의 뒷면은 조각하지 않은 부조에 가깝다. 크기도 대부분 등신대이거나 그보다 약간 작은 크기로, 대형 상은 드물다.
보살은 깨달음을 얻기 전의 석가모니를 가리키는 말로, 왕이나 귀족, 브라흐만 등 세속인으로서 가장 훌륭한 차림새로 표현되었다. 머리카락을 리본이나 상투 모양으로 묶고 왼손에 물병을 든 모습이 간다라의 전형적인 미륵보살상이다. 터번을 쓰고 왼손을 옆구리에 댄 싯다르타보살상, 꽃다발이나 연꽃을 든 보살입상은 관음보살상으로 여겨지며, 경전을 들고 있는 예는 문수보살로 추정한다.
● 불전 부조
간다라 불교사원의 다양한 건조물은 붓다의 생애를 도해한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그 내용은 크게 붓다의 전생 이야기인 ‘본생담’과, 왕자로 태어나 깨달음을 얻고 열반에 든 ‘마지막 생’으로 나눌 수 있다. 간다라 지역에는 10여 가지의 본생 사건이 그곳에서 일어났다는 신앙이 전승되고 있다. 실제 10여 가지의 본생담 부조를 간다라 유물에서 찾아볼 수 있고, 그 가운데 ‘연등불 수기 본생’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간다라 불교도들의 관심은 석가모니의 마지막 생에 집중되어 있었던 듯, 석가의 탄생에서 열반, 그 유골로 스투파를 세우는 장면까지 70가지가 넘는 사건이 조각으로 표현되었다. 그중 태자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장면만 해도 30여 가지가 넘는다. 붓다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옆구리에서 붓다를 낳는 장면(도138), 출가를 결심하는 태자의 모습(도143), 마왕을 물리치는 붓다(도148, 149), 첫 설법을 뜻하는 ‘초전법륜’(도150), 열반에 이른 붓다(도157) 등 서사적인 장면의 풍부하고 다채로운 표현력은 감상자의 감탄을 자아낸다.
● 삼존과 설법도, 다양한 신과 모티프
앞서 소개한 입체적인 불보살상, 통상적인 불전 부조와 구별되는 조각 형식으로, 연화좌 위에 앉아 설법 자세를 취한 채 협시보살을 거느린 삼존불 형식과, 유사한 형식의 불좌상이 수많은 보살과 불전 장면에 둘러싸인 형식의 부조 작품들이 있다.
다양하고 풍부한 모티프를 담고 있는 삼존불상은 몇 가지 유형의 협시보살과 함께 조각되었는데, 보살상의 자세 또한 입상, 좌상, 교각상 등으로 다양하다. 본문에서는 이 상들의 형식과 유래, 동아시아에서 유행한 아미타삼존과의 연관성 등을 흥미롭게 논하고 있다. 특히 부조에 새겨진 도상들의 근거를 찾기 위해 『대지도론(大智度論)』, 『잡비유경(雜譬喩經)』, 『수마제보살경(須摩提菩薩經)』, 『이구시녀경(離垢施女經)』, 『현겁경(賢劫經)』, 『보리자량론(菩提資糧論)』 등의 불교경전을 인용?분석한 부분에서는 저자의 학문적 깊이와 치밀함이 돋보인다.
간다라 미술에는 불보살 외에도 많은 신들이 등장한다. 불교와 관련된 신으로 바즈라를 들고 붓다를 경호하는 바즈라파니, 아이들을 잡아먹는 못된 짓을 일삼다 붓다에게 교화되어 어린아이들의 수호신이 된 하리티 외에, 고대 인도의 경전에 등장하는 인드라나 브라흐만 등도 불교에 습합되어 천인으로 표현되었다.
part 3 간다라 미술의 쇠퇴와 오늘의 간다라 (9~11장)
● 간다라 미술의 쇠락과 동점東漸
간다라 미술은 약 4세기경까지 전성기를 누리다 5세기경부터는 서서히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5~8세기경 간다라의 상황과 그 지역에 전승하는 불교유적에 관한 이야기는 북위의 관리였던 송운, 당나라의 고승 현장, 신라 출신 승려 혜초 등 간다라를 다녀온 사람들의 기록을 통해 접할 수 있다. 6세기의 기록인 송운의 『송운행기』에는 간다라가 (서술 시점에서) 두 세대 전에 에프탈의 침입으로 멸망했으며, 에프탈인은 불교를 믿지 않고 귀신을 신봉했다고 전한다. 『연화면경』이라는 경전과 현장의 『대당서역기』(7세기)에는 승려를 쫓아내고 불교와 관련된 모든 것을 파괴했다는 에프탈 왕의 만행이 기록되어 있으며, 『대당서역기』에는 간다라 여러 지역의 가람이 황폐화되고 승려가 줄었으며 스투파가 모두 부서져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전승과 기록을 토대로 에프탈 지배기에 간다라 지역의 불교와 불교미술이 크게 쇠퇴하였으며, 서양 고전풍의 간다라 미술도 크게 위축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 간다라의 불교가 완전히 절멸된 것은 아니며, 불교미술도 명맥
은 유지하고 있었다.
간다라 만기(晩期) 불교미술의 명맥은 바미얀, 폰두키스탄, 스와트, 카슈미르, 칠라스 등 간다라 중심에서 벗어난 외곽 지역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특히 바미얀에는 현장의 여행기에도 기록된 각각 140척, 100여 척에 이르는 거대한 불상이 남아 있었다. 또한 대불의 주위에 조성된 750여 개의 석굴과 그 안에 그려진 6~8세기 벽화는 바미얀 지역의 불교가 융성했음을 보여준다.
9세기부터 간다라에서는 힌두교를 믿는 이른바 힌두 샤히 왕조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이 시대를 지나며 불교는 더욱 위축되었으며, 10세기 말에는 아프가니스탄의 가즈니에서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왕조가 흥기하여 힌두 샤히 왕조를 무너뜨리고 아프가니스탄과 서북 인도를 완전히 장악했다. 이와 함께 간다라의 불교와 불교미술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러나 간다라 미술은 이 지역에 한정된 역사 속의 일화로 끝나지 않고, 인도 본토뿐 아니라 동쪽으로 서역과 동아시아를 포괄하는 광대한 지역으로 퍼져나가 후대 불교미술사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 식민지 시대의 유럽인들과 간다라 미술의 부활
간다라에 아랍계 이슬람교도들이 침입하기 시작한 것은 7세기 후반부터이다. 이후 16세기 인도에 가장 성공적으로 뿌리내린 이민족 이슬람 왕조로 해석되는 무갈 왕조의 전성기를 거쳐, 아프가니스탄의 두라니 왕조와 펀잡의 시크 왕조가 무갈 제국의 옛 영토를 나누어 갖게 되는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그 땅을 점령한 수많은 세력들은 그들의 신앙에 근거하여 우상을 파괴하고 사원을 불태웠다. 천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간다라 미술의 유산과 ‘간다라’라는 이름은 까맣게 잊혔다. 그러다 간다라 미술이 새롭게 되살아난 것은 유럽인들이 이 지역에 진출하면서부터이다.
유럽에서는 15세기경부터 고대 유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수집 활동이 활발해졌는데, 18세기에 들어 이러한 움직임이 본격화되어 지중해 세계의 유물뿐 아니라 이집트와 페르시아, 인도까지 관심이 확대되었다. 그러면서 간다라 유물은 불교도들의 숭배 대상도 아니고 이슬람교도들의 배척 대상도 아닌, 신비롭고 흥미로운 고대 유물로서 서양 문화사의 맥락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게 되었다.
유럽인들의 본격적인 인도 진출은 16세기에 시작되었으며, 특히 영국인들은 1600년 동인도회사 설립 이후 포르투갈, 프랑스를 차례로 물리치고, 인도 현지의 마라타까지 제압하면서 인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을 완충지대로 러시아와 대치하면서, 인도 서북 지역을 자주 찾았다. 영국인 엘핀스톤은 간다라 유물에 대한 유럽인 최초의 기록을 남겼고,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매슨은 핫다 부근의 탐사에서 유명한 비마란 사리기를 수집했다. 하지만 서양인들에 의한 간다라의 초기 발굴과 수집 과정은 유물의 훼손과 약탈, 파괴에 불과했으며, 이러한 무분별한 약탈 행위는 19세기 말 인도의 총독으로 취임한 로드 커즌이라는 인물에 의해 본격적인 학술 조사가 이뤄지기 시작하면서 막을 내린다.
● 오늘의 간다라 미술
1947년 파키스탄의 독립과 더불어, 페샤와르 분지와 탁실라, 스와트 지역의 조사는 파키스탄 정부로 넘어갔다. 이후 파키스탄 정부의 박물관?고고학국과 페샤와르대학 고고학과가 중심이 되어 간다라 유적 발굴과 보존 작업을 활발히 전개해오고 있다. 아울러 영국, 이탈리아, 일본인의 발굴 작업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간다라 미술과 관련한 몇 가지 문제점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의 관심과 소유욕으로 인해 위작이 범람하고 있다는 사실과 2003년 탈레반의 바미얀 대불 파괴 사건이나 최근 IS와 같은 극단적 무장단체의 문화재 테러로 파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가 극에 달한 오늘의 사회와 극단적 종교분쟁의 역사 속에서, 고대의 역사와 유물은 또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