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호랑이 (옛이야기 그림책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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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지은이 : 이현진
책정보 및 내용요약
"토끼 요놈, 당장 잡아먹어야겠다. 어흥!"
큰소리치며 달려드는 호랑이 앞에서 토끼가 반짝 꾀를 내요.
"한입도 안 되는 저 대신에 맛난 걸 대접할게요."
토끼는 어리숙한 호랑이를 어떻게 골탕 먹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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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 그림책으로 보는 옛이야기의 재미
『토끼와 호랑이』는 점토로 캐릭터와 배경을 만들고, 촬영하여 만든 입체 그림책입니다. 책 표지에서부터 마냥 어수룩해 보이는 호랑이와 깜찍한 토끼 얼굴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책을 펼치면 볼거리 많은 입체 공간이 펼쳐집니다. 입체 그림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재미난 캐릭터와 배경이 되는 공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디지털 세대인 아이들에게 입체 그림책은 회화 그림책보다 즉각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강점이 있습니다. 『토끼와 호랑이』는 시각적인 재미에 완성도가 높은 옛이야기를 결합하여, 한 차원 높은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영리한 꾀로 힘센 강자를 골탕 먹이는 통쾌한 반전의 드라마
호랑이는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동물 중 하나입니다. 옛이야기에서 신령스러운 영물로 나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희화화하여 그려지기도 합니다. 『토끼와 호랑이』에서 호랑이는 자신의 힘만 믿고 약한 이들을 괴롭히는, 어리석은 강자를 비유합니다. 이에 반해 토끼는 몸집은 작지만 영리한 꾀로 위기를 모면하는 지혜로운 약자를 가리킵니다. 『토끼와 호랑이』에서 토끼와 호랑이는 세 번이나 만남을 이어가면서, 속고 속이는 관계를 반복합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반복될수록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집니다.
토끼와 호랑이의 첫 만남에서부터 당연히 독자는 약자인 토끼를 응원합니다.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으려고 하자, 토끼는 꾀를 내어 자신에게 떡이 있으니 실컷 먹게 해 주겠다고 합니다. 토끼는 돌멩이를 떡이라고 속인 뒤, 돌멩이를 화톳불에 굽지요. 그러고는 떡을 찍어 먹을 꿀을 가져온다며 줄행랑을 칩니다. 혼자 남은 호랑이는 뜨거운 돌멩이를 입속에 넣는데……. 결국 호랑이는 이빨이 와장창! 부러지고 맙니다.
다음에는 토끼가 어떻게 호랑이를 구워삶을까? 내심 기대하며 책장을 넘깁니다. 역시나 이야기는 토끼의 꾀를, 호랑이의 어수룩함을, 여실히 보여주며 독자의 기대에 응답합니다. 호랑이는 터무니없는 말에 속아 강물에 꼬리를 담그고 있다가 꼬리가 얼어붙고, 급기야 꼬리가 부러지고 맙니다. 매번 너무 어이없게 당하다 보니 마지막에 가서는 어수룩해도 너무 어수룩한 호랑이가 살짝 가여워지기까지 합니다. 불붙는 갈대밭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호랑이가 좀 안되어 보입니다. 이는 덩치만 컸지 거짓말에 쉽게 속아 넘어가는 호랑이의 칠칠치 못함이, 된통 당하고도 덜컥 믿고 보는 순진함이 빚어낸 해학과 익살 때문일 겁니다.
이마를 탁 치게 만드는 토끼의 꾀, 매번 속아 넘어가는 호랑이의 단순함, 약자가 강자를 엎어뜨리고 메치는 통쾌한 반전과 삼세 번 반복되는 속임수의 드라마가 점층의 묘미를 더하는, 매력적인 옛이야기입니다.
부조와 환조의 어울림으로 만들어낸 그림책의 리듬
반복의 구조를 갖고 있는 이 옛이야기에 작가는 그림책의 리듬을 만들어 내기 위해 부조와 환조 장면을 적절히 혼용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매 이야기의 시작은 불규칙한 점토 덩어리의 부조로 시작됩니다. 마치 점토 한 덩어리가 이야기 한 덩어리와 같은 느낌을 주며, 이야기의 시작을 알립니다. 이야기가 반복될수록 부조 덩어리가 조금씩 커지는데 이는 부조가 화면을 장악해 가듯이 이야기가 점층적으로 쌓이는 느낌을 시각적으로 주기 위함이지요.
부조로 시작되는 첫 장면을 넘기면, 디테일한 배경이 살아 있는 입체 공간으로 넘어갑니다. 입체 장면에서는 디테일이 풍성한 배경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나무가 우거진 숲, 눈이 쌓인 겨울 강가, 나부끼는 갈대 등이 실제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독자는 이야기 진행이 궁금하여 책장을 빨리 넘기고 싶으면서도, 화면에서 더 많은 것을 보기 위해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욕구와 충돌하게 되지요. 이렇게 이야기는 앞으로 진행되고, 장면은 더 오랜 시간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붙들면서, 이야기에 대한 긴장감과 기대감은 상승됩니다.
책 전체의 긴장감은 벌겋게 불타는 갈대밭 장면에서 극을 이룹니다. 그러다가 눈물 콧물 흘리는 호랑이의 얼굴 표정과 나뒹구는 호랑이의 동작에 포커스를 맞춘 장면과 만납니다. 이 장면은 마치 슬랩스틱 코미디의 한 장면처럼 과장되어 있는데, 이 장면에서 독자는 극적 긴장감을 해소하고 유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읽는 이의 호흡까지 섬세하게 계산하여 각각의 장면을 연출했기 때문에 이야기는 거침없이 읽히고 장면의 변화도 다채롭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독자의 상상력까지를 열어 주는 입체적인 옛이야기 그림책
본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온 옛이야기가 그러하듯이, ‘토끼와 호랑이’ 또한 전해지는 이야기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강물에 꼬리가 얼어붙어버린 호랑이가 사람에게 잡히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 호랑이는 갈대밭에 번진 불에 타 죽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에 따라서 더하고 덜어내며 고갱이를 취한 탓입니다.
이 그림책 『토끼와 호랑이』에서는 어수룩한 호랑이를 살려두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살짝, ‘토끼와 호랑이’의 뒷이야기를 예고하지요. 토끼와 호랑이는 어찌 되었을까? 이야기가 끝나고 난 다음에, 이 그림책의 사랑스러운 두 캐릭터는 무얼 하고 있을까? 하고 질문을 던지는 듯합니다. 마치 연극의 막이 내리고 나서 막 저편의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작가는 보름달 뜬 밤을 배경삼아 두 캐릭터의 익살스러운 풍경을 넌지시 그려놓았습니다. 이들이 아직도 속고 속이는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그림만 봐서는 모를 일입니다. 독자가 어떻게 추측하고 읽어내느냐에 따라 후편의 이야기가 달라지겠지요. 이 또한 이 그림책이 갖춘 매력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