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산책자 - 강상중의 도시 인문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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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지은이 : 강상중
일본 사회에 대해 비판적이고 날카로운 분석을 제시하며 비판적 지식인으로 활동하고 있고,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고민하는 힘』을 비롯해 인문서, 에세이, 소설 등을 발표하며 지식인, 교수, 작가로서 일본 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또 신문과 방송 등 언론매체를 통해서 보여주는 냉정한 분석과 세련되고 지적인 분위기, 호소력 강한 목소리로 많은 팬을 가지고 있다.
이번 책 『마음』은 일본 근대 문학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과 독일 문학의 거장 괴테의 『친화력』의 구조와 이야기를 모티프로 강상중 개인의 경험과 대참사로 이어진 동일본대지진 사건을 중층적으로 엮어내며 삶과 죽음, 사랑과 관계, 자연과 개발에 대해 성찰하는 독특하고 두터운 소설이다. 특히 죽음으로 인한 상처, 구원과 치유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절박한 물음을 이야기하며 동일본대지진으로 상처받은 수많은 일본인들에게 위로가 되었고, 30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재일 한국인 최초로 도쿄대학 정교수가 되었고, 도쿄대학 대학원 정보학환 교수를 거쳐 현재 세이가쿠인대학 총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재일 강상중』 『내셔널리즘』 『세계화의 원근법』 『20세기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두 개의 전후와 일본』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 『고민하는 힘』 『청춘을 읽는다』 『반걸음만 앞서 가라』 『어머니』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살아야 하는 이유』 『사랑할 것』 등이 있다.
옮긴이 : 송태욱
책정보 및 내용요약
메트로폴리탄과 도시인들의 속 깊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긴자, 하라주쿠, 롯폰기힐스, 신주쿠 등 도쿄 중심부와
사람 냄새 나는 야나카, 산야, 간다의 뒷골목들…
이방인 강상중의 눈으로 들여다본 도쿄의 내밀한 풍경
목차
책을 시작하며
서장 도시에서 만나는 타자와 나
당신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 한국·서울
1장 비일상적인 공간을 찾아서
마음의 성역을 찾아서 ― 메이지신궁
마음을 헤아리다, 마음을 흔들다 ― 국립신미술관
비일상성을 연출하는 다른 차원의 공간 ― 포시즌스 호텔 마루노우치 도쿄
인생의 드라마투르기를 생각한다 ― 기노쿠니야 홀
혼돈 속에서 보는 삶과 죽음의 리듬 ― 산자마쓰리
2장 모던, 포스트모던, 그 이후
도시에 우뚝 솟은 바벨탑 ― 롯폰기힐스
당신은 진지합니까? ― 나쓰메 소세키의 자취를 따라서
역사에 농락당한 벚꽃의 아름다움 ― 지도리가후치
기억이 정화되는 거리 ― 하라주쿠
근대화의 환영을 찾아서 ― 오가사와라 백작 저택
3장 글로벌화하는 도쿄
샤넬과 긴자와 브랜드 ― 샤넬 긴자점
시장의 신은 누구에게 미소 짓는가 ― 도쿄증권거래소
크리올화하는 도시의 언어 ― 신오쿠보
지의 공동체는 어디로 가는가 ― 도쿄대학
수조 안은 안전합니까? ― 시나가와 수족관
4장 도쿄의 문화, 도시의 문화
아날로그적 지의 세계를 거닐다 ― 진보초 고서점가
세련된 도회인이 사랑한‘웃음’― 신주쿠 스에히로테이
전통과 혁신의 틈새에서 ― 가부키자
꿈의 성지에서 빛나는 현대의 카리스마 ― 진구구장
나의 시네마 천국 ― 산겐자야 주오극장
5장 원자화하는 개인
어딘지 쓸쓸한 오타쿠의 성지 ― 아키하바라
야네센, 골목의 기억 ― 야나카·네즈·센다기
고양이 카페 붐에서 보는 탈욕망화 ― 고양이 카페
빈곤과 고령화를 안고 있는 거리에서 ― 산야
6장 도시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가
그 한 표로 정치는 바뀐다 ― 국회의사당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수 있는가 ― 최고재판소
에너지가 소용돌이치는 먹거리의 현장 ― 쓰키지 시장
흐르는 강물처럼 살아간다 ― 스미다가와
도쿄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가 ― 가부키초에서 황거까지
대담 고이즈미 교코 + 강상중 ― 도쿄, 교차하는 기억과 미래
책을 마치며
참고문헌
편집자 추천글
-『도쿄 산책자』는 어떤 책인가
강상중 교수가 도시 산책자의 시선으로 도쿄를 새롭게 발견하고,
메트로폴리탄과 도시인들의 속 깊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긴자, 하라주쿠, 롯폰기힐스, 신주쿠 등 도쿄 중심부와
사람 냄새 나는 야나카, 산야, 간다의 뒷골목들…
이방인 강상중의 눈으로 들여다본 도쿄의 내밀한 풍경
재일한국인이자 구마모토 출신인 강상중 교수가 도쿄의 중심부와 변두리 곳곳을 직접 걸어다니며 산책자의 시선으로 도쿄를 탐색했다. 그의 도쿄 산책은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대도시 도쿄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현대 도시인들이 도시 속의 이방인으로서 겪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따뜻한 시선과 날카로운 통찰을 동시에 보여주는 지적 산책이다. 전작 『고민하는 힘』과 『살아야 하는 이유』에서 삶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사람들에게 ‘철저한 고민을 통해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으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이번 책은 장소에 얽힌 역사적인 사실과 더불어 개인적인 경험과 사유를 풍부하게 어우르고 있다.
대도시 도쿄에서 일상을 벗어나 있는 공간들이 지닌 역사와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고, 롯폰기힐스나 하라주쿠에서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보여주고, 샤넬 긴자점과 신오쿠보 등에서는 도쿄의 경제와 가치관과 문화의 변화를 읽어낸다. 디지털시대의 급속한 변화 속에서 꿋꿋이 버텨온 진보초 고서점가나 전통 있는 로쿠고 공연장인 요세나 가부키자 등에서는 도시의 문화를 지탱하고 형성하는 도쿄의 문화 장치들은 건재한지에 대해 고찰하고, 아키하바라와 고양이 카페, 노동자 주거 지역인 산야 등을 돌아보면서 도시 속에서 개인들의 원자화를 막을 수 있을지, 빈곤과 고령화를 안고 있는 도시의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짚어본다.
저자는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사람 냄새가 지워지고 ‘평평하며 청결한 메트로폴리탄 도쿄’는 사람을 자유롭게 하기보다 욕망의 노예로 만든다고 생각해왔다. 거품경제가 꺼지고 간신히 ‘탐욕’에서 벗어난 도쿄에게 마치 질책이라도 하듯 대지진과 쓰나미, 방사능과 전력난이라는 대재난이 덮쳤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재난을 겪고 난 후의 도쿄가 예전의 오만한 도쿄에서 위축된 도쿄로 변하기보다는 이방인들도 포용하는 따뜻한 도쿄, 사람 온기가 있는 도쿄가 되길 기대하며 이 글을 썼다고 한다.
-『도쿄 산책자』를 읽는 키워드
◎ 아이덴티티(서장) : 도쿄에 대한 책이지만 이 책은 서울 방문으로 서두를 열고 있다. 그것은 도쿄를 이방인, 스트레인저의 입장에서 살펴보기 위해서는 도쿄에 관한 한 이방인이라는, 저자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짚고 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서장에서 가장 공감 가는 대목은, 한국인 아니면 일본인이라는 이분법이 결코 자신에게 제대로 된 아이덴티티를 주지 못했고 자신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자아를 받아들였을 때에야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비일상성(1장) :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일상으로부터의 탈피와 해방감, 그리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일상적인 공간이다. 도쿄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고 천황이 살고 있는 황거보다 넓은 메이지신궁은 도쿄인들에게 마음의 성역으로 자리잡고 있고, 산자마쓰리는 도쿄인들의 일상의 근심을 한꺼번에 해방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자는 “글로벌화하는 사회에서 주변으로 쫓겨나거나 불안을 느끼면서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을 이 도시가 안고 있는 한, 마쓰리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축제나 마쓰리에서 한꺼번에 자신의 에너지를 불살라 태워버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살아가는 것, 이 순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메이지신궁과 산자마쓰리 외에도 호텔 포시즌 마루노우치 도쿄와 기노쿠니야 홀을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거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비일상적인 공간으로 소개하고 있다.
◎ 근대화의 환영(2장) : 나쓰메 소세키의 자취가 남아 있는 장소들을 찾아다니면서 근대화하던 시기의 도쿄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또 그 시기를 거치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돌이켜본다. 소세키가 살았던 시대는 서양의 합리주의가 들어오고 기존의 가치관이 해체되던 ‘근대’의 막이 열리던 때로, 국가는 커지고 개인은 잘게 잘려나가 인간은 고립되고 횡적인 연대가 사라지면서 불안도 커졌다. 소세키가 신경쇠약을 20세기가 공유하는 병이라고 했다면, 저자는 21세기를 ‘우울증의 시대’라고 지칭한다. 결국 타자와의 깊은 유대 없이 개개인이 고민의 바다를 건너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진지하게 타자와 대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2장에서는 일본 근대화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장소들도 소개하고 있다. 예전에 미군 기지가 있었으나 지금은 글로벌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거리가 된 롯폰기힐스와, 마찬가지로 미군 기지가 가까이 있었으나 지금은 문교지구로 지정되어 있는 하라주쿠, 그리고 일본인의 ‘서양 환상’이 구체화된 대표적인 양관(서양식 건물) 오가사와라 백작 저택.
벚꽃의 명소인 지도리가후치 등지에서는 근대국가를 건설하려 한 메이지 신정부가 모토오리의 국학 사상을 들고 나와 ‘야마토고코로’가 왜곡 해석되고 ‘벚꽃’도 그 상징으로 이용돼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며, 모든 것을 주관적으로만 해석하는 유심론으로는 진정한 아름다움도 타자와 공통된 이해도 찾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 경제와 문화의 변화(3장) :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즐비한 긴자 거리를 통해 사회와 가치관의 변화를 짚어본다. 저자는 사람들이 명품에 목을 매는 이유를 브랜드가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하기 위한 하나의 기호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돈만 있으면 손에 넣을 수 있는 이 기호를 둘러싼 차이는 빈부 격차가 심해질 미래 사회에서는 더욱 더 두드러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시나가와 수족관에서는 갇혀 있고 스스로 가두고 있는 현대 사회에 대해 사유한다. 위험 사회라고 인식해서 감시를 강화할수록 사회는 위험에 더 취약해질 뿐이고 마치 백신처럼 이분자(異分子)를 튕겨낼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내구성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코리아타운이 있는 신오쿠보에서는 아시아의 언어들이 일본어를 도입해 변화하고 있음을 느끼고 일종의 ‘크리올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며 통찰하고, 도쿄대학에서는 해답이 없을지라도 의미나 목적에 대해 생각하는 회로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대학이 가져야 할 목표라고 강조한다.
◎ 도쿄의 문화(4장) : 도쿄의 문화를 지탱하고 있고 발전시켜 온 문화장치들은 어떤 것이고 이것들의 역할은 아직도 건재한 것일까. 저자는 아날로그적인 지적 보물창고 진보초 고서점가가 살아남은 이유는 시대에 알랑거리지 않고 꿋꿋이 자신을 지켜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주쿠 스에히로테이에서 라쿠고를 보고 나서는, 웃고 있는 사람이 정신 차리고 나면 자기 자신이 비웃음을 당하고 있는 호환성의 묘미를 보여주는 라쿠고에 비해 요즘에는 오락 프로그램조차 다수자에게 편승한 웃음을 보여주는 세태를 지적한다. 가부키 배우 이치카와 소메고로를 통해 전통이라고 해서 형태만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혁신해 나가야 진정으로 살아 있는 전통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 개인의 원자화(5장) : 오타쿠의 성지가 돼버린 아키하바라에서는 현재 오타쿠 문화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과도하게 풍요로워진 사회에서 주어진 것 안에서 놀 수밖에 없는 개인들은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끊어져도 어딘가에서 혼자 동물적인 욕망을 채우며 살아가고 있다. 오타쿠 문화도 이런 것과 어딘가쯤에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며 이것이 세계의 조류라면 오타쿠를 비판하기보다는 서로를 연결하는 유대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철저히 개인이 원자화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야나카, 네즈, 센다기 일명 ‘야네센’이라고 불리는 일대의 골목길에서 에도의 정취가 느껴지는 서민 주택이나 지장보살이 서 있는 자그마한 절, 옛날 모습을 간직한 상점가 등을 만난다. 결코 규격화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어수선한 그 거리들은 효율적이고 인공적인 거리들과는 반대되는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어 새로운 문화의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커뮤니티가 구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고도성장기의 유수한 인력시장이었던 산야는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거기다 노동자의 고령화가 진행되어 지금은 노숙자들의 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인생의 패잔병이 사는 곳은 산야뿐이 아니며 산야는 앞으로 닥칠 우리 사회를 보여주고 있다. 예전 산야에서는 다양한 취업 알선업자 등의 네트워크가 있고 같은 거리에서 생활해 일종의 횡적인 관계가 있었던 것에 비해, 핸드폰을 통해 무작위로 고용을 지시 받고 어디서 왔는지도 몰라 횡적 관계를 구축할 수도 없는 지금 노동자들의 실태는 결코 산야보다 낫다고 보기 어렵다.
◎ 도쿄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가(6장) : 도쿄는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무균의 깨끗한 도쿄로 변모했는데, 그런 부분 때문에 오히려 도쿄에서는 뜻밖의 만남이나 우발적인 일을 전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굴곡’이 사라져 안전하고 정연하지만 관용성이 결여되어 있어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저자는 도쿄를 자유로운 도시로 바꾸기 위해서는 그 도시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그 공간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장소가 많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도쿄에 필요한 공간은 뭔가 이름이 붙여지고 목적이 분명한 곳이 아니라, 의미가 부여되지 않은 장소라는 것이다. 도시인들이 단지 소비자로서 취급되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예를 들어 유럽의 철학 카페처럼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눠보는 식으로 타인들과의 만남과 소통을 통해 ‘소비자’의 자리에서 한 발짝 벗어나 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
◎ 도쿄에 새로운 바람이 분다(대담) : 책 말미에 젊은이들과 예술가들의 거리인 하라주쿠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과 예술가들과의 인터뷰를 실은 『하라주쿠 백경』을 펴낸 고이즈미 교코와의 대담이 실려 있다. 하라주쿠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가진 교코와 도쿄의 스트레인저 강상중이 도쿄의 문화와 젊은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도쿄의 젊은이들이 일으키고 있는 새로운 변화를 예감한다. ‘소중한 기억이 깃든 장소가 있는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도, 자신을 잃어버리지도 않는다’라는 대목은 공간이나 장소가 개인에게 갖는 중요한 의미를 일깨워 준다.(고이즈미 교코는 1980년대 국민적인 아이돌 스타 출신으로 가수와 배우로 일세를 풍미하고 요미우리신문의 서평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배우이자 문필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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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약 자신을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시점을 갖고 스스로 어떤 역할을 연기할 수 있다면 자아가 비대해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시점을 지니고 있다면 여러 역할을 맡는 것도 가능합니다. 서장에서도 말했습니다만, ‘자신’은 하나가 아닙니다. 여러 개의 ‘자신’을 연기함으로써 의외로 편해지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페르소나, 즉 가면을 쓰고 거짓이든 어떤 것이든 일단 해보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 인생의 연출가가 되어 자신을 창작하고 연출하는 겁니다.
그때 비로소 사람은 픽션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 1장 ― 인생의 드라마트루기를 생각한다 ― 기노쿠니야 홀 (55쪽)
여러분도 ‘가치관의 다양화’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을 텐데, 거기에도 원리원칙은 있습니다. 프랑스의 어느 철학자는 포스트모던을 ‘대서사의 종언’이라고 했습니다만, 거기에서는 우리가 예전에 배웠던 모럴이나 인간성과는 전혀 관계없는 서사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가족이나 사회를 위해 땀 흘리며 30년간 열심히 일했습니다”라고 이야기해도 “그래서 뭐? 우리는 하루에 10억엔 벌어”하고 깨끗이 부정당하고 맙니다. 어쩌면 그것은 허상이고 가짜인지도 모르지만,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가짜에도 미학이 있고, 가짜라도 가치가 있으면 그것으로 된 겁니다. 척하는 것이 전혀 없기에 인간의 욕망을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거리. 그러므로 저는 여기에는 문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쁜 의미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롯폰기라는 거리의 개성인 것입니다. 아무리 파도 근대의 지층이 나오지 않기에 직접 포스트모던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 2장 ― 도시에 우뚝 솟은 바벨탑 ― 롯폰기힐스 (66~68쪽)
CCTV, 휴대전화의 GPS 기능, 역 개찰구의 통과 기록 등 일상생활에서 감시를 가능케 하는 다양한 신기술이 도입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들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조차 적어졌습니다. 관리되는 것이 관습화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자주 듣게 되는 것이 “자기만 떳떳하다면 CCTV가 있다고 한들 무슨 상관인가”, “소지품을 검색한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은가” 하는 의견입니다. 하지만 이런 비난은 프라이버시라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입니다. 프라이버시는 ‘떳떳한지’, ‘ 떳떳하지 않은지’와는 상관없이 그 공개를 당사자의 자유에 맡겨야 하며, 그것이 정당하다고 간주되기 때문에 프라이버시인 것입니다. ……
좀 더 말하자면, 사회를 투명하게 하고 감시하면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느냐 하면 실은 그렇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주민기본대장 네트워크시스템이나 도청법 같은 것을 만들어 위기를 관리하면 할수록 위기를 관리하는 그 시스템 자체가 새로운 위험을 낳습니다. 위험은 더욱 차원이 높아지고, 역으로 사회는 위험에 취약해지는 것입니다.
▶▶ 3장 ― 수조 안은 안전합니까? ― 시나가와 수족관 (126쪽)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이미 물질적으로 충족되어 있고 문화적으로도 나올 게 다 나와 버렸으니 그것을 고쳐 만들거나 반복할 뿐입니다. 저는 이를 ‘에피고넨(epigonen, 아류)의 시대’라고 부릅니다만, 모든 것이 정점에 달하고 만 지금,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명확한 답을 찾아내기란 어렵습니다.
…… 어떤 책을 만나느냐에 따라 사람과의 만남은 달라지고, 어떤 사람과 만나느냐에 따라 책과의 만남도 달라집니다. ‘어떤 책과 만났느냐’가 당신의 사람됨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 4장 ― 아날로그적 지의 세계를 거닐다 ― 진보초 고서점가 (138~139쪽)
이러한 기지에 풍부한 유머를 그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과 대상의 거리입니다. 거리를 두기 때문에 우스꽝스러움도 나오고, 그 결과 웃음이 낯설게 하는 효과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대상이 자기 자신인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을 상대화하여 ‘보잘것없는 자신’을 자학적으로 비웃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라는 존재를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믿음에서 다소 해방되는 것입니다. 다만 대상과 거리를 두는 작업은 지적으로 고도의 기술이므로 성숙한 감각이 필요합니다.
한편 비극에는 거리감이 없습니다. 자신의 감정과 대상이 일체화될수록 비극이 됩니다. 대상과의 일체화는 무척 기분 좋은 일이지만, 사실 자신에게 취해 있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최근에는 영화나 책을 읽고 마음껏 울고 싶다거나 눈물을 흘리며 등장인물과 일체화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숙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4장 ― 세련된 도회인이 사랑한 ‘웃음’ ― 신주쿠 스에히로테이 (142쪽)
…… 동물적 욕망과 인간적 욕망에는 원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형 소비사회에 의해 소비자의 필요는 기계적으로 직접 충족되게 되었습니다. 음식도 슈퍼마켓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편리’라는 이름하에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없어졌지만, 사람들은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평론가 아즈마 히로키(東浩紀, 1971~ )도 말했듯이, 이는 상당히 ‘동물화’한 사회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풍요로움이라는 역설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포스트모던과 맞닿아 사회적 시민이라든가 인권이라든가 자아라든가 하는, 주체성을 가진 ‘인간’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세련된 소비문화를 통해 자기실현을 꾀하는 시대가 온 것이라고들 말하게 되었습니다. 오타쿠 문화는 그 아류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5장 ― 어딘지 쓸쓸한 오타쿠의 성지 ― 아키하바라 (171~174쪽)
…… 빈곤의 그러데이션이 산야를 중심으로 퍼져 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도시에는 이런 거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이는 ‘필요악’이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노숙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구조가 바뀌지 않으니 형태를 바꿔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빈곤은 없는 편이 낫다”고 누구나 말합니다. 그러나 빈곤은 반드시 생깁니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적으로 산야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노숙자들을 쫓아내고 거리를 깨끗이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 5장 ― 빈곤과 고령화를 안고 있는 거리에서 ― 산야 (190쪽)
…… 예컨대 사업에 성공해 재산을 축적했다고 해도 정치적인 동물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순수하게 사적인 영역에서의 활동이고, 인간의 본질은 ‘공적인 존재’로서 나타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公)’이란 무엇일까요. 국회의사당에서 발언하는 것만이 공적인 것은 아닙니다. 회사에서 퇴근할 때 동료와 한잔하면서 “우리의 고용은 어떻게 될까?”, “연금은 어떻게 될까?” 하는 이야기를 주고받자마자 공적 공간의 창구가 열리고 우리는 공적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해와 동시에 타자와 공동체의 이해를 생각하며 논의하는 것, 이것이 본래의 정치라는 것입니다.
▶▶ 6장 ― 그 한 표로 정치는 바뀐다 ― 국회의사당 (201쪽)
‘스트레인저’라는 건 ‘이방인’이라는 의미잖아요. 실제로 저는 구마모토 현 출신 ‘이방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방인으로 살아가자’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도쿄로 올라와 대학에 들어간 무렵에는 어쩐지 도쿄를 배회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만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적막한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런 촌놈일수록 도쿄에 관심을 가지고, 도쿄를 걸어 보자는 마음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야 가까스로 도쿄를 조금은 객관적으로 보며 걸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드디어 도쿄와 화해했다고 할까요.
▶▶ 대담 ― 도쿄, 교차하는 기억과 미래 (230쪽)
그런 기억의 장소가 있는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기억의 장소라는 게 있거든요. ……
제가 자란 구마모토의 풍경과 어머니와 아버지의 기억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고, 거기서 느낀 슬픔이나 좌절이나 기쁨은 구마모토라는 장소에 간직되어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대담 ― 도쿄, 교차하는 기억과 미래 (2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