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의 삶 이야기-버려야 할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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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지은이 : 도종환
시집으로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부드러운 직선』 『슬픔의 뿌리』 『해인으로 가는 길』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는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마음의 쉼표』 등이 있다. 그동안 신동엽창작상, 올해의 예술상(2006), 정지용문학상, 윤동주상 등을 수상했다.
홈페이지 http://djhpoem.co.kr
책정보 및 내용요약
목차
작가의 말
1. 꽃은 소리없이 핀다
강물과 바다
들은 꽃을 자라게 할 뿐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목수가 만든 악기
가까이하면서도 물들지 않는 사람
물은 자기가 나아갈 길을 찾아 멈추는 일이 없다
꽃은 소리 없이 핀다
큰 말은 담담하고 작은 말은 수다스럽다
무심한 동심
지혜를 주는 나무
먼지 속에 살아도 먼지를 떠나 산다
비어 있음의 그 충만
불은 나무에서 생겨 나무를 불사른다
바람으로 온 것들은 바람으로 돌아가리
새를 보며
모두들 어디로 돌아갔을까
자기 이미지는 자기를 가두는 감옥이다
2. 벼랑 끝에서도 희망은 있다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눈물 흘려 본 사람은 남의 눈물을 닦아 줄 줄 안다
벼랑 끝에서도 희망은 있다
코스모스꽃 피면 누나 생각 납니다
어느 젊은 미결수에 대한 추억
나는 여인을 등에서 내려놓았는데 그대는 아직도 업구 있구려
생각해 보면 우리 주위엔 기뻐할 일들이 많다
셋이서 우동 한 그릇만 주문해도 괜찮을까요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당신은 사람을 모으는 사람인가, 사람이 모이는 사람인가
연필로 쓰기
아름다운 생애
근본과 원칙
3. 사랑하면 보인다
내 마음의 군불
하나인 듯 둘이고 둘인 듯 하나인 삶
사랑한다는 이 한마디 내 이 세상 떠난 뒤에 남으리
당신은 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가
사랑받는 세포일수록 건강하다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고독하게 하소서
봄으로부터의 편지
사랑하면 보인다
결실의 계절 앞에서
4. 나는 지금 어떤 나무일까
작아지지 말자
나는 지금 어떤 나무일까
어느 소리가 더 시끄러운가
나뭇잎 하나의 소중함, 나무 전체의 아름다움
마음속의 불
너도 밤나무?
항아리 속 된장처럼
악인은 그리기 쉬운데 선인은 그리기 어렵다
뒷모습
내리고 싶다 이 세월의 열차에서
어리석은 자야, 네 영혼이 오늘밤 네게서 떠나가리라
지식과 덕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가장 낮게 나는 새가 가장 자세히 본다
가장 고요히 나는 새가 가장 깊게 본다
편집자 추천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산문가 도종환의 에세이 두 권이 동시에 나왔다. 『도종환의 삶 이야기』 『도종환의 교육 이야기』는 각각 1998년과 2000년에 나온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의 개정판이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대로 우리네 강과 산은 ‘경제 살리기’의 희생양이 되어 본모습을 잃었으며, 사람들 역시 점점 더 빨라지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느라 앞만 보고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다. 이 책들이 처음 세상에 나온 지 십년이 더 지났지만, 도종환 시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오히려 지금 우리의 삶과 맞아떨어지며 더 절실히 와 닿는다.
바쁜 일상에 등 떠밀려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현대인에게, 아이들에게 경쟁과 성공을 강요하며 온갖 공부를 시키면서도 정작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는 가르쳐 주지 못하는 부모와 교사에게 저자가 건네는 솔직담백하면서도 시처럼 아름다운 글들은 우리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처음의 의미를 놓치지 않으면서 끝없이 살피고 만지며 다듬은 문장들은 십년의 세월만큼 깊고 진한 울림을 준다.
도종환의 삶 이야기-버려야 할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
급변하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느라 숨 고를 틈도 없는 현대인에게 모든 것을 잠시 멈추고 조용히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이 책은, 우리가 살면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게 한다.
시인은 ‘살면서 우리가 버려야 할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결국 같은 것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모든 건 다 내 안에 있으며 내가 그것을 움켜쥐고 평생 갈등하고 싸우고 기뻐하고 속상해하다 조금씩 생각이 깊어지고 행동이 진중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이라고 한다.
“조금 더 고요해지고 깊어져야지만 새잎은 반드시 잎 진 자리에서 피어난다는 것도 알게 되고, 한겨울에도 살아 움직이는 가지는 가장 부드럽고 가장 여린 가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의 모습도 살펴보고 다시 차근차근 나아가다 보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지, 왜 사랑과 연대가 그토록 소중한지 알게 된다. 가르침이 아닌 삶의 소중한 깨달음을 몸소 발견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해인 수녀 시인이 추천사에 쓴 것처럼 도종환 시인은 삶의 구석구석 눈여겨보지 않는 데가 없다. 흔하게 마주치는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도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깊은 사색과 철학으로 길어 올려 우리 삶의 중요한 화두로 삼는다. 시골길에서 마주친 코스모스꽃을 보며 우리가 잃어버린 소박한 삶, 꾸밈없고 욕심 없이 살던 모습을 아쉬워하고, 아주 작은 냉이꽃 한 송이, 꽃다지 한 포기도 추위와 어둠을 양분 삼아 제 빛깔의 꽃을 얻듯이 우리도 삶의 경계마다 화두 하나씩을 깨쳐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남의 눈을 의식해 여자 후배를 집까지 바래다주지 못한 일을 반성하며, “계율의 형식과 위엄을 지키려고 하는 근본율에 얽매인 선객과 마음과 내면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심지계의 자리에 선 선객의 이야기”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 내용은 이렇다. 물이 불어 개울물을 건너지 못하는 여인을 못 본 체하고 혼자 개울을 건너간 선객이 그 여인을 등에 업고 건넌 선객을 꾸짖자 여인을 업어 건넨 선객은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아까 여인을 등에서 내려놓았는데 그대는 아직도 업고 있구려.” (107쪽)
또 도종환 시인은 ‘불은 나무에서 생겨나 도리어 나무를 불사른다’는 고승 대덕의 말을 자신의 언어로 새롭게 풀어 놓는다.
내 몸을 무너뜨리는 것도 결국은 나 자신의 내부에서 움튼다. 외부의 자극과 시련에는 꿈쩍도 않고 버티며 살아가다가도 내부에서 나를 녹슬게 만드는 것들로 끝내는 무너지고 만다.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언제나 나의 내부에 있다. (62쪽)
그러나 “자신을 태우는 일을 반복하게 되는 게 사람이고, 저를 태우는 것이 늘 저에게서 비롯되고 저를 녹슬게 하는 것이 저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걸 알고도 같은 길을 걷게 되는” 것 역시 사람임을 인정한다. 우리의 삶이 고통의 바다라지만 그 바다를 만드는 이 역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살아오는 동안 형성된 자기 모습, 자신에 대해 남들이 알고 있고 이야기하는 것만 의식하면서 거기에 끌려 다니다가 진정한 자기 모습을 잃을 수 있음을 경계하며, 자기 이미지의 감옥에서 벗어나 솔직하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살면서 자신을 잃지 않고 진정한 자기 모습을 찾아가는 일이야말로 자기완성의 바른 길이라 말한다.
비움으로써 충만해지는 삶
우리네 마음의 욕정에서부터 스스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자신의 뒷모습에 이르기까지 시인은 찬찬히 살피며 우리가 살면서 버려야 할 것과 지켜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일깨운다. 계절이 바뀌고 새로운 꽃들이 다시 피고 지는 동안 들은 그 꽃들을 마음껏 자라게 할 뿐 소유하려 하지 않는 것처럼, 집을 짓고 방을 만들 때 그 내부를 비워 둠으로 해서 방이라는 용도로 쓸 수 있는 것처럼 비움으로써 비로소 가득 채울 수 있다는 진리를 전한다. 결국 우리의 삶도 비워야 충만해진다는 것이다.
“많은 벼들이 함께 있으면서도 썩지 않고 자라는 것은 그들 스스로 최소한의 자기 존재를 지켜 나갈 수 있는 거리와 여유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하루에도 몇 번씩, 어떤 일에 부딪칠 때마다 망심, 즉 허망한 생각과 삿된 마음에 빠지기 쉬운 게 우리 인간이지만 가만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아직 때가 덜 묻은 청정한 본심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쉬고 있으면 마음이 텅 비고, 비워야지만 다시 실하게 채울 수 있으며, 그렇게 가득 찰 때 비로소 모든 일이 순서대로 잘 다스려진다고 일러 준다. 그런 삶 속에서야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돌아볼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남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은 인생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다.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은 고생을 알고 가난을 알고 삶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다. 자기의 아픔 때문에 눈물 흘려 본 사람은 남이 흘리는 눈물을 닦아 줄 줄도 안다. 많이 알고 많이 가진 사람이 큰사람이 아니다. 내가 겪은 고통으로 남이 겪는 고통을 아는 사람, 내가 아파 보았기 때문에 남의 아픔을 나누어 가지려는 사람이 큰사람이다. (87쪽)
깊은 사색에서 길어 올린 삶의 아포리즘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에서는 못에 꼬리가 박힌 채 3년을 산 도마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 곁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먹을 것을 구해다 주면서 함께 살아온 다른 도마뱀이 있었음을 상기시키며 우리에게 연대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또 그는 「봄으로부터의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저를 희망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이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울이 지나고 때가 되면 으레 나타나는 제 모습이 희망이 아니라, 손에 손을 잡고 숲을 이루어 겨울에 맞서고 봄을 이루어 가는 여러분이 희망입니다. 여러분이 깨어 있고 살아 움직이며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갈 때 이 땅에 희망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178쪽)
도종환 시인의 말대로 우리는 “배운 대로 실천하고 정직하게 일하며 원칙에 맞게 사는 삶의 태도를 잊고, 대충 타협하고 적당히 눈감아 주며, 잘못된 줄 알면서도 돈으로 싸 덮어 버리고 부실하게 지어 놓은 집의 겉만 화려한 벽지 앞에서, 현란한 장식과 조명 곁에서, 위태로운 목숨의 그네를 타고 살아왔다.” 이제라도 근본과 원칙에 충실한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많이 생각하고 충분히 준비하는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에게 있어 시 쓰기는 “깜깜한 어둠의 나무판 위에 칼질을 해서 밝은 햇살 하나씩 새겨 넣는 일,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들판에서 더듬거리며 논둑길을 찾아가는 일, 절망의 바위 위에 희망의 들꽃 한 송이 피워 올리는 일”이다. 『도종환의 삶 이야기』는 시인이 깊은 사색에서 길어 올린 간결한 시어로 가득한 삶의 아포리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은은한 목백일홍 같기도 하고, 때로는 항아리 속 된장 같은 시인의 잘 숙성된 글을 끝까지 읽고 나면 우리는 어느새 아름답고 지혜로운 사람이 된 것 같은 보람과 기쁨으로 행복해진다. _이해인(수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