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3 (개정판)
- 1483
• 지은이 : 최준식
• 가격 : 15,000원
• 책꼴/쪽수 :
223*152mm, 390쪽
• 펴낸날 : 2004-08-31
• ISBN : 9788958280354
• 십진분류 : 종교 > 종교 (200)
• 추천기관 :
한국출판인회의
제34차 한국출판인회의 이달의 책 선정도서
제34차 한국출판인회의 이달의 책 선정도서
• 태그 : #한국 #한국인 #종교 #문화 #증산교 #원불교
저자소개
지은이 : 최준식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 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종교학)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국제 한국학회 회장과 한국문화표현단 단장을 역임하고 있다.
우리 문화를 여러 각도에서 흥미롭게 분석·진단함으로써 독자들로부터 상당한 호흥을 받아왔으며, 특히 한국인의 천민성과 집단 이기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1997)는 장안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그 외에도 우리 문화 전통의 장단점을 재조명한 「한국인에게 문화는 없다고?」를 비롯하여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1, 2(1998), 『한국미 그 자유분방함의 미학』(2000),「한국인은 왜 틀을 거부하는가?」등의 저서가 있으며, 공저로는 『한국문화와 한국인』(1989), 『한국인에게 밥은 무엇인가』(2004)가 있으며, 편저로는 『개벽시대를 여는 사람들』(1998), 역서로는 『도교란 무엇인가』(1990), 『종교 심리학』상, 하(1993), 『사후생(死後生)』(2002) 등이 있다. 그외 논문으로는 「한국인의 생사관-전통적 이해와 새로운 형식」, 「조상 숭배가 전통 사회에서 갖는 두세 가지 의미에 대해」 등 다수가 있다.
우리 문화를 여러 각도에서 흥미롭게 분석·진단함으로써 독자들로부터 상당한 호흥을 받아왔으며, 특히 한국인의 천민성과 집단 이기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1997)는 장안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그 외에도 우리 문화 전통의 장단점을 재조명한 「한국인에게 문화는 없다고?」를 비롯하여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1, 2(1998), 『한국미 그 자유분방함의 미학』(2000),「한국인은 왜 틀을 거부하는가?」등의 저서가 있으며, 공저로는 『한국문화와 한국인』(1989), 『한국인에게 밥은 무엇인가』(2004)가 있으며, 편저로는 『개벽시대를 여는 사람들』(1998), 역서로는 『도교란 무엇인가』(1990), 『종교 심리학』상, 하(1993), 『사후생(死後生)』(2002) 등이 있다. 그외 논문으로는 「한국인의 생사관-전통적 이해와 새로운 형식」, 「조상 숭배가 전통 사회에서 갖는 두세 가지 의미에 대해」 등 다수가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나는 한국 종교사에서 신종교가 차지하는 위치가 확고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도 의아한 것은 학계가 담합이나 한 듯 증산교나 원불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보기에 증산이나 소태산 역시 수운 못지않게 뛰어난 종교사상가인데 교단 밖에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 두 종교가 왜 중요하고 훌륭한가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자세히 설명했다. 이제부터는 신종교가 토종이라고 업신여기지 말고 관심을 가져 보자.”
편집자 추천글
1. 기획 의도
▶ 전문가가 쓴 한국의 종교문화 교과서
종교(宗敎)하면 사람들은 신앙행위만을 연상하기 쉽다. 삶과 세계의 궁극적인 문제가 무엇이고 그에 대한 인간의 대응방식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은 주로 철학에서 찾을 뿐 종교란 구시대의 산물로만 여기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종교가 religion의 번역어로서 자리잡으면서 생겨난 것이다. 서양의 religion이 신앙행위를 주로 의미한다면 종교(宗敎)는 말 그대로 큰 가르침이다. 철학적인 사유방식과 그 실천을 하나로 묶는 완전한 정신 영역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민족 공동체의 정신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그들이 지녔던 종교를 공부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다.
한국의 신종교 연구로 미국 템플대학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화여대 한국학과 최준식 교수는 이번 책을 내면서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시리즈에서 한국 역사를 관통해온 전통종교인 무교, 유교, 불교, 선교와 19세기 한말(韓末)에 그것들을 새롭게 해석해 탄생한 신종교인 동학, 증산교, 원불교를 단행본 3권, 1200여 쪽에 걸쳐 설명하는 일을 완수했다. 종교에 대한 책은 많지만 대부분 해당 종단에서 펴낸 교리서나 학술 논문 일색이고 드물게 교양 수준의 책들이 나왔지만 분량이나 전문성 면에서 빈약한 것이 우리 출판 현실이다. 이번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3(증산교·원불교 편)으로 완간된 ‘한국 종교 시리즈’는 종교학 전문가가 각권 400여 쪽에 걸쳐 각 종교의 역사, 교주의 삶, 기본 교리를 해설하여 본격적인 한국 종교 문화 교과서로서 손색이 없다.
▶ 신종교에 대한 편견과 무관심
저자는 증산교와 원불교 등 신종교에 대한 기존 종교계와 학계의 무관심을 강하게 비판한다. 기존 종단이야 종교적 이해 관계 때문에 그렇다 치더라도 종교를 연구한다는 학자들마저 동학을 조금 알아 줄 뿐 증산교와 원불교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인들도 “도를 아십니까”는 한 번쯤 겪어보는 일이라도 그 사람들이 증산사상의 지류인 대순진리회 소속 신자들이란 사실은 모른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기성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콤플렉스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유교, 불교, 기독교 등 외래 종교만 좋은 줄 아는데 그것이야말로 종교가 발생한 해당 지역의 찬란한 전통에 눈이 가려 한국적 종교 문화를 보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 ‘개벽’을 화두로 한 종교개혁 운동
최준식 교수는 우리 나라 역사에서 정신적 호황기를 통일 신라 전후와 19세기 한말(韓末)로 본다. 통일 신라하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정신 문화의 수준이 최극성기에 이른 때라고 인정할 수 있겠지만 외세에 한참 시달리던 한말이 정신문화의 호황기였다면 의아해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저자는 바로 3대 신종교, 동학·증산교·원불교가 그 정신문화의 주역이라고 설명한다. 신종교는 전통 종교와 맞서는 말로서 소위 ‘종교개혁’의 결과인데 동학이 유교를 개혁했고(2권) 증산교는 무교와 선교를 결합했으며 원불교는 기존 불교를 일신했다는 것이다.
이들 신종교가 한국 종교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바로 이것이다. ‘천지가 개벽하는’ 한말, 외세와 일제의 침탈 속에서 민족 공동체의 존재기반마저 위태로워진 상황이 되어도 아무런 효용가치를 보이지 못하는 기존 종교를 정신의 ‘개벽’이라는 화두를 잡아 개혁하고 재해석한 것은 바로 신종교라는 점이다.
2. 주요 내용
1) 증산교 - 한 판 해원 굿으로 여는 개벽 세상
동학 혁명의 폐허 위에서(보강 : 동학의 발생 기반과 실패원인) 증산교를 창시한 강증산(1871~1907)은 원래 동학과 관련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동학 이후 국정과 민중의 삶이 거의 궤멸 상태에까지 이르자 동학의 무력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개혁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한다. 김지하 시인은 증산을 두고 “동학이 무장 혁명에 의해 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동세개벽(動世開闢)이라면 증산의 움직임은 세상을 진정시키는 정세개벽(靖世開闢)”이라고 했다. 이런 맥락과 같이하여 저자는 증산의 활동이 동학 혁명과 그 실패로 인해 파괴된 민중의 삶과 사회 개혁의 꿈을 다른 방법으로 살리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증산교는 세계의 구조적 모순에서 기인하는 여러 갈등을 현실의 혁명이 아닌 종교적 차원에서 푸는 방법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 천지공사 : 세상을 구하는 한판 굿
증산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세운 구상은 다음과 같다. 먼저 선천(先天) 세계는 상극지리(相剋之理)로 짜여진 곳이다. 다시 말해 서로 누르고 이겨서 나 혼자 살아남는 원리로 움직인다는 의미다. 당시 정세가 꼭 그러했을 것이다. 그래서 원한이 천지에 가득하다. 세상을 구하여 ‘후천 개벽(後天開闢)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천지공사(天地公事)’라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는 세상의 모든 원한을 없애는 작업을 말한다. 바로 이것이 증산교의 핵심사상인 ‘해원(解寃)’이다. 저자는 이를 전통 무교를 확대 발전시킨 결과라고 하는데 오구굿으로 대표되는 무교의 ‘풀이’가 개인이나 마을, 특정 구역의 원한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 반면 증산은 ‘한 풀이’의 범위를 전 세계로 확장시켰다는 것이다. 여기서 증산교의 종교사적 위치가 잡힌다. 기존의 무교가 개인적이고 소규모 지역적인 이해관계에 매몰되었으나 증산교는 공사(公事), 즉 세계와 민중을 구하는 작업에 무교의 한판 굿을 이용한 것이다. 동학 혁명의 무력적 방식에 실망하고 민중의 삶이 위협받는 상황을 본 증산은 무교의 ‘한 풀이’ 개념에서 출발해 민중의 삶과 세계의 모순을 위무하는 거대한 해원 굿을 벌였다는 것이다.
◇ 무교와 선도를 결합하다
증산교가 지니는 종교사적 의미는 한국 종교의 중심전통인 무교와 선도(仙道)를 아울러 수용한 데 있다. 저자에 따르면 무교는 월드컵 때 붉은 악마의 응원을 “한판 거대한 굿”이라고 표현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인의 심성을 결정적으로 규정지은 요소이다. 그리고 선도는 현재 그 흔적이 별로 남아 있지 않지만 옥황상제, 선녀, 신선 등으로 우리 전통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종교 전통이다. 증산교는 ‘해원’ 이라는 무교의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선도의 수행법인 주문외기 등을 도입했다. 다시 말해 세계 속의 원한을 푸는 작업, 곧 세계의 모든 모순을 없애는 굿을 벌인 다음 당대 사람들이 주문외기 등 선도의 수행법을 통해 신령과 교통할 수 있게 되면 새로운 세상, 곧 개벽 선경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특징을 바탕으로 증산교를 ‘무교적 선도(Shamanistic folk Toism)'라고 규정했다.
2)원불교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
천지개벽의 근대를 맞아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박중빈, 1891~1943)은 현대인을 “칼을 쥔 아이”에 비유했다고 한다. 물질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세계에서 인간의 정신 수준은 아직 전근대의 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인간들은 그 물질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남을 해치는 데만 쓴다는 것이다. 소태산의 이러한 생각이 언뜻 소박한 이해 같지만 저자는 19세기 한촌에서 맞이한 근대의 물질문명은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원불교는 그런 혼란 속에서 매우 정제된 세계이해를 보였다고 평가한다. 현재 원불교의 표어인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현실 대응법이라고 한다. 인간이 물질을 이용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 물질문명이 인간을 압도하는, 그래서 인간을 조종하는 시대를 그 초입에서 간파한 것이다. 소태산은 인간이 물질에 의해 조종당하여 외부의 물질적 가치기준에 의해 행동하고 결국은 환경파괴와 같은 자기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현대문명의 서두를 경험한 인물이었다.
◇ 모든 곳에 불상이 있어 모든 일이 불공이다
저자는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을 두고 불교를 당시 현실에 맞게 혁신한 인물로 평가한다. 물질이 정신을 압도하는 현실에서 ‘정신의 개벽’을 주장한 소태산은 자신의 깨달음이 불교와 가장 근접하다고 생각하고 새 종교의 기반을 불교에 두었다는 것이다. 그 혁신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기존 불교가 우상과 기복에 얽매여 있는 것을 비판한 소태산은 불상 대신 ‘원’을 법당에 두도록 했다. 소태산에 따르면 “진리는 원과 같이 원만구족(한자)하”기 때문에 화려한 불상 대신 단순한 원을 두는 것으로 사람과 진리가 매개물을 통하지 않고 직접 교통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기존 종교에서 사제집단이나 그 종단이 진리를 막고 서서 민중들 위에 군림한 폐혜가 주지의 사실임을 볼 때 소태산의 원은 바로 진리를 민중들에게 개방한 ‘진리의 민주화’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불상이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 모든 곳에 불상이 있다는 말과 통한다. 소태산은 보이는 모든 사물과 사람이 불상이라면(처처불상, 處處佛像) 그것들을 대하는 사람은 모든 일이 불공이 될 것(사사불공, 事事佛供)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소태산의 목적을 못배우고 가난한 민중들이 쉽게 불법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이해한다.
◇ 전통 불교를 개혁하다
원불교가 전통불교와 어떤 점에서 다른지 보자. 먼저 전통불교가 “삶은 괴롭다”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명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원불교는 “진리는 원과 같이 원만구족하다”는 식의 긍정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개인의 해탈이 전통불교의 이상인데 반해 원불교는 정신 개벽을 통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전통불교가 개인적인 차원의 사고에서 출발하는데 비해 원불교는 처음부터 전 사회적인 관심을 유지한다. 수행방식도 전통불교의 출가와 금혼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 소태산은 사회에서 일상을 유지하면서도 불법을 닦는 것이 진정한 수행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점을 두고 원불교의 종교사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전통 불교가 민중과 점점 멀어져 이제는 산에서 자아의 해탈만을 추구하고 있을 때 사회는 큰 시련을 겪었다. 소태산은 불교가 사람들과 더 가까워지고 사회를 향한 적극적인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생활속에서 쉽게 만나는 ‘가까운 불교’를 추구한 것이 바로 소태산 원불교의 의미이다.
3. 책의 결론
▶ 오해와 무관심 속에 빠진 신종교 저자에 따르면 증산교와 원불교는 동학과 더불어 한말 민족의 정신 세계를 넓힌 공로가 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통 종교를 수용하고 재창조한 결과 증산교는 동학에서 실패한 현실개혁의 좌절감을 무교적 해원의식으로 승화시켰고 원불교는 현실감각을 잃어가는 불교를 다시 사람들 속으로 가까이 끌어들이는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신종교에 대한 학자적 결론을 내린다. “한말 현실의 ‘천지개벽’속에서 전통 종교의 쇄신과 개혁을 위해 노력한 신종교는 당시 사회를 압도하던 외래 문명에 대해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과 주체성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의미가 사람들의 관심밖에 머물러 있는 현실에 대해 저자는 매우 안타까워한다. 먼저 학자들의 무관심을 비판하면서도 해당 종단의 잘못을 따끔하게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교주의 좋은 가르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구태의연한 현실인식과 전도방식으로 좋은 전통을 살리기는커녕 오해와 무관심 속에서 헤메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개벽이란 시대적 화두를 들고 격변하는 세계에 대한 정신적 대응법을 구했다.
▶ 엄연한 우리역사인 증산교와 원불교 결국은 “도를 아십니까” 식의 오해와 편견으로 귀결되고야 마는 신종교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돌아봐야 하는 까닭은 어찌되었든 그것들이 우리 현실에서 배태된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가치있고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 대부분은 사실 기존의 해석에만 매달려 있을 때에만 의미있는 것이다. 새로운 역사적 사실은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할 때에만 얻을 수 있다고 볼 때 엄연한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인 증산교와 원불교를 진지하게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 전문가가 쓴 한국의 종교문화 교과서
종교(宗敎)하면 사람들은 신앙행위만을 연상하기 쉽다. 삶과 세계의 궁극적인 문제가 무엇이고 그에 대한 인간의 대응방식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은 주로 철학에서 찾을 뿐 종교란 구시대의 산물로만 여기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종교가 religion의 번역어로서 자리잡으면서 생겨난 것이다. 서양의 religion이 신앙행위를 주로 의미한다면 종교(宗敎)는 말 그대로 큰 가르침이다. 철학적인 사유방식과 그 실천을 하나로 묶는 완전한 정신 영역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민족 공동체의 정신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그들이 지녔던 종교를 공부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다.
한국의 신종교 연구로 미국 템플대학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화여대 한국학과 최준식 교수는 이번 책을 내면서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시리즈에서 한국 역사를 관통해온 전통종교인 무교, 유교, 불교, 선교와 19세기 한말(韓末)에 그것들을 새롭게 해석해 탄생한 신종교인 동학, 증산교, 원불교를 단행본 3권, 1200여 쪽에 걸쳐 설명하는 일을 완수했다. 종교에 대한 책은 많지만 대부분 해당 종단에서 펴낸 교리서나 학술 논문 일색이고 드물게 교양 수준의 책들이 나왔지만 분량이나 전문성 면에서 빈약한 것이 우리 출판 현실이다. 이번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3(증산교·원불교 편)으로 완간된 ‘한국 종교 시리즈’는 종교학 전문가가 각권 400여 쪽에 걸쳐 각 종교의 역사, 교주의 삶, 기본 교리를 해설하여 본격적인 한국 종교 문화 교과서로서 손색이 없다.
▶ 신종교에 대한 편견과 무관심
저자는 증산교와 원불교 등 신종교에 대한 기존 종교계와 학계의 무관심을 강하게 비판한다. 기존 종단이야 종교적 이해 관계 때문에 그렇다 치더라도 종교를 연구한다는 학자들마저 동학을 조금 알아 줄 뿐 증산교와 원불교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인들도 “도를 아십니까”는 한 번쯤 겪어보는 일이라도 그 사람들이 증산사상의 지류인 대순진리회 소속 신자들이란 사실은 모른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기성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콤플렉스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유교, 불교, 기독교 등 외래 종교만 좋은 줄 아는데 그것이야말로 종교가 발생한 해당 지역의 찬란한 전통에 눈이 가려 한국적 종교 문화를 보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 ‘개벽’을 화두로 한 종교개혁 운동
최준식 교수는 우리 나라 역사에서 정신적 호황기를 통일 신라 전후와 19세기 한말(韓末)로 본다. 통일 신라하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정신 문화의 수준이 최극성기에 이른 때라고 인정할 수 있겠지만 외세에 한참 시달리던 한말이 정신문화의 호황기였다면 의아해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저자는 바로 3대 신종교, 동학·증산교·원불교가 그 정신문화의 주역이라고 설명한다. 신종교는 전통 종교와 맞서는 말로서 소위 ‘종교개혁’의 결과인데 동학이 유교를 개혁했고(2권) 증산교는 무교와 선교를 결합했으며 원불교는 기존 불교를 일신했다는 것이다.
이들 신종교가 한국 종교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바로 이것이다. ‘천지가 개벽하는’ 한말, 외세와 일제의 침탈 속에서 민족 공동체의 존재기반마저 위태로워진 상황이 되어도 아무런 효용가치를 보이지 못하는 기존 종교를 정신의 ‘개벽’이라는 화두를 잡아 개혁하고 재해석한 것은 바로 신종교라는 점이다.
2. 주요 내용
1) 증산교 - 한 판 해원 굿으로 여는 개벽 세상
동학 혁명의 폐허 위에서(보강 : 동학의 발생 기반과 실패원인) 증산교를 창시한 강증산(1871~1907)은 원래 동학과 관련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동학 이후 국정과 민중의 삶이 거의 궤멸 상태에까지 이르자 동학의 무력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개혁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한다. 김지하 시인은 증산을 두고 “동학이 무장 혁명에 의해 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동세개벽(動世開闢)이라면 증산의 움직임은 세상을 진정시키는 정세개벽(靖世開闢)”이라고 했다. 이런 맥락과 같이하여 저자는 증산의 활동이 동학 혁명과 그 실패로 인해 파괴된 민중의 삶과 사회 개혁의 꿈을 다른 방법으로 살리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증산교는 세계의 구조적 모순에서 기인하는 여러 갈등을 현실의 혁명이 아닌 종교적 차원에서 푸는 방법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 천지공사 : 세상을 구하는 한판 굿
증산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세운 구상은 다음과 같다. 먼저 선천(先天) 세계는 상극지리(相剋之理)로 짜여진 곳이다. 다시 말해 서로 누르고 이겨서 나 혼자 살아남는 원리로 움직인다는 의미다. 당시 정세가 꼭 그러했을 것이다. 그래서 원한이 천지에 가득하다. 세상을 구하여 ‘후천 개벽(後天開闢)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천지공사(天地公事)’라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는 세상의 모든 원한을 없애는 작업을 말한다. 바로 이것이 증산교의 핵심사상인 ‘해원(解寃)’이다. 저자는 이를 전통 무교를 확대 발전시킨 결과라고 하는데 오구굿으로 대표되는 무교의 ‘풀이’가 개인이나 마을, 특정 구역의 원한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 반면 증산은 ‘한 풀이’의 범위를 전 세계로 확장시켰다는 것이다. 여기서 증산교의 종교사적 위치가 잡힌다. 기존의 무교가 개인적이고 소규모 지역적인 이해관계에 매몰되었으나 증산교는 공사(公事), 즉 세계와 민중을 구하는 작업에 무교의 한판 굿을 이용한 것이다. 동학 혁명의 무력적 방식에 실망하고 민중의 삶이 위협받는 상황을 본 증산은 무교의 ‘한 풀이’ 개념에서 출발해 민중의 삶과 세계의 모순을 위무하는 거대한 해원 굿을 벌였다는 것이다.
◇ 무교와 선도를 결합하다
증산교가 지니는 종교사적 의미는 한국 종교의 중심전통인 무교와 선도(仙道)를 아울러 수용한 데 있다. 저자에 따르면 무교는 월드컵 때 붉은 악마의 응원을 “한판 거대한 굿”이라고 표현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인의 심성을 결정적으로 규정지은 요소이다. 그리고 선도는 현재 그 흔적이 별로 남아 있지 않지만 옥황상제, 선녀, 신선 등으로 우리 전통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종교 전통이다. 증산교는 ‘해원’ 이라는 무교의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선도의 수행법인 주문외기 등을 도입했다. 다시 말해 세계 속의 원한을 푸는 작업, 곧 세계의 모든 모순을 없애는 굿을 벌인 다음 당대 사람들이 주문외기 등 선도의 수행법을 통해 신령과 교통할 수 있게 되면 새로운 세상, 곧 개벽 선경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특징을 바탕으로 증산교를 ‘무교적 선도(Shamanistic folk Toism)'라고 규정했다.
2)원불교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
천지개벽의 근대를 맞아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박중빈, 1891~1943)은 현대인을 “칼을 쥔 아이”에 비유했다고 한다. 물질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세계에서 인간의 정신 수준은 아직 전근대의 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인간들은 그 물질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남을 해치는 데만 쓴다는 것이다. 소태산의 이러한 생각이 언뜻 소박한 이해 같지만 저자는 19세기 한촌에서 맞이한 근대의 물질문명은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원불교는 그런 혼란 속에서 매우 정제된 세계이해를 보였다고 평가한다. 현재 원불교의 표어인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현실 대응법이라고 한다. 인간이 물질을 이용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 물질문명이 인간을 압도하는, 그래서 인간을 조종하는 시대를 그 초입에서 간파한 것이다. 소태산은 인간이 물질에 의해 조종당하여 외부의 물질적 가치기준에 의해 행동하고 결국은 환경파괴와 같은 자기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현대문명의 서두를 경험한 인물이었다.
◇ 모든 곳에 불상이 있어 모든 일이 불공이다
저자는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을 두고 불교를 당시 현실에 맞게 혁신한 인물로 평가한다. 물질이 정신을 압도하는 현실에서 ‘정신의 개벽’을 주장한 소태산은 자신의 깨달음이 불교와 가장 근접하다고 생각하고 새 종교의 기반을 불교에 두었다는 것이다. 그 혁신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기존 불교가 우상과 기복에 얽매여 있는 것을 비판한 소태산은 불상 대신 ‘원’을 법당에 두도록 했다. 소태산에 따르면 “진리는 원과 같이 원만구족(한자)하”기 때문에 화려한 불상 대신 단순한 원을 두는 것으로 사람과 진리가 매개물을 통하지 않고 직접 교통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기존 종교에서 사제집단이나 그 종단이 진리를 막고 서서 민중들 위에 군림한 폐혜가 주지의 사실임을 볼 때 소태산의 원은 바로 진리를 민중들에게 개방한 ‘진리의 민주화’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불상이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 모든 곳에 불상이 있다는 말과 통한다. 소태산은 보이는 모든 사물과 사람이 불상이라면(처처불상, 處處佛像) 그것들을 대하는 사람은 모든 일이 불공이 될 것(사사불공, 事事佛供)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소태산의 목적을 못배우고 가난한 민중들이 쉽게 불법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이해한다.
◇ 전통 불교를 개혁하다
원불교가 전통불교와 어떤 점에서 다른지 보자. 먼저 전통불교가 “삶은 괴롭다”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명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원불교는 “진리는 원과 같이 원만구족하다”는 식의 긍정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개인의 해탈이 전통불교의 이상인데 반해 원불교는 정신 개벽을 통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전통불교가 개인적인 차원의 사고에서 출발하는데 비해 원불교는 처음부터 전 사회적인 관심을 유지한다. 수행방식도 전통불교의 출가와 금혼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 소태산은 사회에서 일상을 유지하면서도 불법을 닦는 것이 진정한 수행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점을 두고 원불교의 종교사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전통 불교가 민중과 점점 멀어져 이제는 산에서 자아의 해탈만을 추구하고 있을 때 사회는 큰 시련을 겪었다. 소태산은 불교가 사람들과 더 가까워지고 사회를 향한 적극적인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생활속에서 쉽게 만나는 ‘가까운 불교’를 추구한 것이 바로 소태산 원불교의 의미이다.
3. 책의 결론
▶ 오해와 무관심 속에 빠진 신종교 저자에 따르면 증산교와 원불교는 동학과 더불어 한말 민족의 정신 세계를 넓힌 공로가 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통 종교를 수용하고 재창조한 결과 증산교는 동학에서 실패한 현실개혁의 좌절감을 무교적 해원의식으로 승화시켰고 원불교는 현실감각을 잃어가는 불교를 다시 사람들 속으로 가까이 끌어들이는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신종교에 대한 학자적 결론을 내린다. “한말 현실의 ‘천지개벽’속에서 전통 종교의 쇄신과 개혁을 위해 노력한 신종교는 당시 사회를 압도하던 외래 문명에 대해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과 주체성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의미가 사람들의 관심밖에 머물러 있는 현실에 대해 저자는 매우 안타까워한다. 먼저 학자들의 무관심을 비판하면서도 해당 종단의 잘못을 따끔하게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교주의 좋은 가르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구태의연한 현실인식과 전도방식으로 좋은 전통을 살리기는커녕 오해와 무관심 속에서 헤메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개벽이란 시대적 화두를 들고 격변하는 세계에 대한 정신적 대응법을 구했다.
▶ 엄연한 우리역사인 증산교와 원불교 결국은 “도를 아십니까” 식의 오해와 편견으로 귀결되고야 마는 신종교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돌아봐야 하는 까닭은 어찌되었든 그것들이 우리 현실에서 배태된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가치있고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 대부분은 사실 기존의 해석에만 매달려 있을 때에만 의미있는 것이다. 새로운 역사적 사실은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할 때에만 얻을 수 있다고 볼 때 엄연한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인 증산교와 원불교를 진지하게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