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의 낭만과 비극 (박한제 교수의 중국역사기행 2)
- 1688
• 지은이 : 박한제
• 가격 : 16,800원
• 책꼴/쪽수 :
223*152mm, 302쪽
• 펴낸날 : 2003-04-15
• ISBN : 9788971969502
• 십진분류 : 역사 > 아시아 (910)
• 추천기관 :
문화체육관광부, 교보문고,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교보문고 5월 인문권장도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권장도서 추천, 제36회문화관광부추천도서
교보문고 5월 인문권장도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권장도서 추천, 제36회문화관광부추천도서
• 태그 : #역사 #중국사 #강남 #한족 #남조
저자소개
지은이 : 박한제
1946년 경남 진주(진양)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1년간 일본학술진흥회 초청으로 오차노미즈お茶の水 여대에서, 그리고 대만 교육부 초청으로 한학연구중심漢學硏究中心에서 연구했다. 1996~1997년에는 중국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에서 연구한 바 있다. 1985년 이후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2001~2002년에는 한국중국학회 회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중국중세호한체제연구』(1988), 『인생-나의 오십 자술』(1997), 『유라시아 천년을 가다』(공저, 2002)가 있으며, 중국 중세 민족 관계 논문을 주로 쓰고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오랑캐에 떠밀려 남만의 땅 강남으로 쫓겨난 한족 왕조 동진과 남조(송제양진)의 정치와 문화. 한 제국 400년을 버티어 온 가치관이 무너진 시기의 이야기. 강남으로 도망 온 귀족들은 안락한 자연환경과 그들만이 최고라는 문벌 의식에 안주할 뿐, 왕조와 민생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멀리했다. 지식인들은현실을 벗어나 도교적 은둔과 예술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죽림칠현이 이 시대에 등장했고, 중국 서예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난정서」도 이 시기에 쓰여졌다. 죽림칠현이 은거했던 자리에는 이제 죽림은 사라지고 칠현의 이름만 남아 있다. 왕희지가 「난정서」를 썼던 난정이 있는 소흥에는 인간의 유한함과 그에 따른 허무, 예술의 지고한 가치와 정치의 각박함이 묘하게 혼합되어 있다.
저자는 말한다.
”그대 소흥에 오래 머물지 말라. 혹여 소흥주에 취해 소흥을 더럽힐지 모르니.”
이들의 낭만은 낭만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결국 그들이 오랑캐라 폄하했던 이들에게 나라를 송두리째 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책에서는 화려했던 남조의 수도 강남의 낭만과 비극을 음미해 본다.
죽림칠현이 이 시대에 등장했고, 중국 서예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난정서」도 이 시기에 쓰여졌다. 죽림칠현이 은거했던 자리에는 이제 죽림은 사라지고 칠현의 이름만 남아 있다. 왕희지가 「난정서」를 썼던 난정이 있는 소흥에는 인간의 유한함과 그에 따른 허무, 예술의 지고한 가치와 정치의 각박함이 묘하게 혼합되어 있다.
저자는 말한다.
”그대 소흥에 오래 머물지 말라. 혹여 소흥주에 취해 소흥을 더럽힐지 모르니.”
이들의 낭만은 낭만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결국 그들이 오랑캐라 폄하했던 이들에게 나라를 송두리째 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책에서는 화려했던 남조의 수도 강남의 낭만과 비극을 음미해 본다.
목차
序
강남의 낭만과 비극
동진남조 시대
一
50~60년대 정다운 한국을 다시 보려면 사천四川에 가라
도교의 성지 사천 순례기
二
죽림竹林은 사라지고 칠현七賢의 이름만 남아
술과 마약과 기행奇行으로 세월 보낸 죽림칠현
三
인생은 환상, 끝내는 공空과 무無로 돌아가리니
도연명陶淵明과 도화원桃花源 - 구강九江 시상柴桑 기행
四
소흥`紹興에는 여전히 겨울비가 내리고 있을까?
왕희지王羲之와 난정서蘭亭序의 배경
五
장강長江이 젖먹여 키운 강남의 보석 남경
동진 남조 귀족 체제와 오의항烏衣巷
六
화려한 남조 황릉에 얽힌 한문寒門 출신 황제들의 엽기 행각
남조 송宋제齊 황가皇家의 비극과 그 현장
七
만 권의 책이 무슨 소용이람! 인문학자 소역蕭繹의 탄식
형주 기행
八
황하는 그래도 굽이굽이 동쪽으로 흘러가야 한다
삼문협三門峽의 지주지험砥柱之險 기행
강남의 낭만과 비극
동진남조 시대
一
50~60년대 정다운 한국을 다시 보려면 사천四川에 가라
도교의 성지 사천 순례기
二
죽림竹林은 사라지고 칠현七賢의 이름만 남아
술과 마약과 기행奇行으로 세월 보낸 죽림칠현
三
인생은 환상, 끝내는 공空과 무無로 돌아가리니
도연명陶淵明과 도화원桃花源 - 구강九江 시상柴桑 기행
四
소흥`紹興에는 여전히 겨울비가 내리고 있을까?
왕희지王羲之와 난정서蘭亭序의 배경
五
장강長江이 젖먹여 키운 강남의 보석 남경
동진 남조 귀족 체제와 오의항烏衣巷
六
화려한 남조 황릉에 얽힌 한문寒門 출신 황제들의 엽기 행각
남조 송宋제齊 황가皇家의 비극과 그 현장
七
만 권의 책이 무슨 소용이람! 인문학자 소역蕭繹의 탄식
형주 기행
八
황하는 그래도 굽이굽이 동쪽으로 흘러가야 한다
삼문협三門峽의 지주지험砥柱之險 기행
편집자 추천글
:: 재미있는 이야기들
> 유랑민의 종착지, 사천
역사적으로 사천은 피난 유랑민의 종착지였다. 로맨스에 빠져 정권을 잃어버린 당 현종 최후의 피난처도 사천이었고, 시성 두보를 비롯하여 명청 시대의 빈곤한 유민들이 찾아갔던 곳, 일제의 침략을 피해 장개석의 국민정부가 옮겨갔던 곳도 사천이었다. 그곳 사천에 가면 지금도 정다운 50~60년대 한국의 정겨운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2권 1장)
> 죽림칠현이 복용했던 마약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유령은 술만 마시면 옷을 홀랑 벗고 나체가 되었다. 누군가 그를 꾸짖자 유령은 ”나는 천지를 거처로 삼고 집을 속옷으로 삼는데, 당신들은 어찌 나의 속옷까지 들어왔소?”라 반문했다. 이것은 순전히 기존 예법을 파괴하고자 하는 뜻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라 한식산(마약)을 복용한 결과였다. 한식산을 먹으면 몸에서 열이 나고 더위를 참을 수 없으며 몸이 부어올라 의관을 정제하기 어렵게 된다. 유령뿐만 아니라 관직에서 물러난 왕희지도 약물 중독으로 고통을 당했고, 그의 아들 왕휘지도 죽기 전에 등이 갈라지는 한식산 중독 증세를 보였다. 한식산을 먹지 않으면 명사가 될 수 없는 낭만에 쩔은 시대였다.(2권 2장)
> 중국 최고의 명문 「난정서」
명필 왕희지가 쓴 「난정서」는 역사상 최고의 명문으로 꼽힌다. 마치 경주의 포석정처럼 곡수를 만들어 술잔을 띄우고 술잔이 도달한 곳에 있는 자는 술 한 잔에 시 한 수를 내놓아야 했다. 이 모임에서 26명이 지은 주옥 같은 시 37수를 모으고 그 서문으로 붙인 글이 「난정서」이다. 325자의 이 글은 당시 남조 사대부들의 사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산수에 대한 사랑, 각자 하고 싶은 대로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 정신, 영원에 대한 사모, 유한한 인생의 덧없음뀉 . 그 전문과 번역 및 왕희지의 글씨 사진이 본서에 실려 있다. (2권 4장 141쪽 이하)
> 14만 권의 장서를 불태운 황제
남조의 마지막 왕조였던 양나라의 마지막 황제 원제는, 역대 중국 황제 중에서 가장 공부를 많이 했던 황제였다. 그러나 결국 나라를 빼앗겼고, 평생 모으고 저술했던 14만 권의 장서를 스스로 불태워야 했다. 박 교수는 그가 인문학을 선택했기 때문에 나라를 잃은 것은 아닌지 반문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인문학이 해야 할 일을 다시 묻고 있다. 배추는 생산하지 못하더라도 소금은 되어야 한다는 박 교수의 학문관은, 수천 년 중국 인문학의 고향이었던 형주 이야기와 함께 펼쳐진다.(2권 7장)
> 유랑민의 종착지, 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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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최고의 명문 「난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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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만 권의 장서를 불태운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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