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으로 빚는 자유 - 옹기장이 이현배 이야기
- 2391
• 지은이 : 이현배
• 가격 : 8,500원
• 책꼴/쪽수 :
210*148mm, 246쪽
• 펴낸날 : 2000-12-15
• ISBN : 9788971967539
• 십진분류 : 문학 > 한국문학 (810)
• 태그 : #문학 #수필 #옹기장이
저자소개
지은이 : 이현배
전북 장수군 장계에서 3녀 2남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살림에 먹을 것이 없으면 흙담을 뜯어먹곤 했다는 그는 흙이 참 좋았답니다.
대처에 나와서는 경희호텔경영전문대학을 나와 유수한 호텔에서 초콜릿을 만들었는데, 1991년 봄 돌연 짐을 꾸려 식솔들과 함께 흙으로 돌아왔습니다. 흙의 숨결이 살아 있는 흙그릇을 만들려고 전남 벌교의 징광옹기점 박나섭옹과 경북 문경의 영남요 백산선생 밑에서 3년간 공부하고, 진안군 백운면 솥내마을로 돌아온 지는 8년이 되어갑니다.
옹기장이들이 모두 떠나버린 옹기마을의 토담집을 쌀 세가마 반에 사고, 막힌 가마의 불구멍을 틔우고 그릇을 굽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을 섬기는 옹기를, 그 질박한 삶의 그릇을 만들려고 여직 땀흘리고 있구요.
그의 곁에는 든든한 동반자 최봉희씨와 아들 물이, 딸 솔이와 바우가 있습니다. 그이들의 바람은 꺼져가는 옹기굴의 불씨가 확 되살아나는 겁니다.
플라스틱 세상에 부질없다 마세요. 옹기를 제대로 알고 아끼는 분들이 늘어가고 있으니 머잖아 이루어질 꿈입니다.
대처에 나와서는 경희호텔경영전문대학을 나와 유수한 호텔에서 초콜릿을 만들었는데, 1991년 봄 돌연 짐을 꾸려 식솔들과 함께 흙으로 돌아왔습니다. 흙의 숨결이 살아 있는 흙그릇을 만들려고 전남 벌교의 징광옹기점 박나섭옹과 경북 문경의 영남요 백산선생 밑에서 3년간 공부하고, 진안군 백운면 솥내마을로 돌아온 지는 8년이 되어갑니다.
옹기장이들이 모두 떠나버린 옹기마을의 토담집을 쌀 세가마 반에 사고, 막힌 가마의 불구멍을 틔우고 그릇을 굽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을 섬기는 옹기를, 그 질박한 삶의 그릇을 만들려고 여직 땀흘리고 있구요.
그의 곁에는 든든한 동반자 최봉희씨와 아들 물이, 딸 솔이와 바우가 있습니다. 그이들의 바람은 꺼져가는 옹기굴의 불씨가 확 되살아나는 겁니다.
플라스틱 세상에 부질없다 마세요. 옹기를 제대로 알고 아끼는 분들이 늘어가고 있으니 머잖아 이루어질 꿈입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우리 시대의 마지막 옹기장이 이현배! ‘마지막 옹기장이’라 한 것은, 아직 옹기를 만드는 사람은 꽤 있지만 고대부터 내려온 전통 방식으로 옹기를 만드는 사람으로는 이현배씨가 거의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는 발물레로 그릇을 빚고, 잿물 유약을 입히고, 옹기굴에서 구워내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발물레로 그릇을 빚는 것은 그래야 옹기장이의 호흡만큼 그릇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며, 가스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장작불의 자유분방한 불꽃이 다양한 옹기를 만들어낼 수 있게 한다는 생각에서다. 인간의 몸이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졌듯이 지수화풍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옹기를 만드는 것이 이현배씨의 꿈이다.
목차
1부 : 옹기, 깨지는 아름다움
옹기는 옹구다
옹기, 깨지는 아름다움
옹기는 쉬운거
흙과 옹기
태림바탕
옹기는 무엇으로 만드나
옹기는 힘
솜씨 깃들인 '연장', 연장이 만드는 '솜씨'
득도
소똥으로 질그릇 빚은 순임금
옹기는 개도 할 수 있는 일(?)
공부 - 함께 살고 함께 일한다
지두화
째즈, 째즈옹기
불
산짐승 사건
바우단지
솥내, 솟내, 손내
옹기골의 '풍'자 내력
옹구막 사장님
옹기는 그냥 가만히 있을 뿐
전문가
'물'과 도랑사구, 그 이름에 얽힌 사연
이름
나는 아직 행복한 사람 못 봤어
2부: 아빠는 옹기쟁이, 아들은 고집쟁이
길어지지 않는 화장지
이사오던 날
물이 있으니 물이 흐른다
아랫집 개가 내 노래를 비웃을지라도
아들과 아버지
1992년 5월 14일, 벌교 장날, 맑음
품앗이
닭죽
바다
내일에 가서 기다리는 어제
아빠는 옹기쟁이, 아들은 고집쟁이
똥타령
똥방위
똥
서른세번째 생일에 앵긴 똥독
나는 객관식에 약하다
핍우
천명 받드는 옹기장이 '天牛'
아카시아꽃의 충고
진안고원 '무진장' 사람들이 살아온 방식을 제안합니다
동물원
3부: 밥과 똥 사이, 똥과 밥 사이
절, 저를 받으세요
죄인
사람은 가도 그릇은 남는다
화해와 치유의 능력
바람난(?) '송흰둥'과 개밥그릇
옹기골의 처녀 하나, 총각 하나
루까 수녀님께
북도에 김봉수, 남도에 심봉수
진안에서 살기
곰발바닥과 무국
무슨 영화를 보겄다고
www.놈.co.kr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세상
무거 로터리
밥과 똥 사이, 똥과 밥 사이
부활
맛과 멋
자유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먼 문화, 가까운 문화
근본의 자리
다가오는 '내일'도 '오늘'과 같을 것이다
노래하는 가위
옹기에 대한 몇 가지 오해
4부/다시 쓰는 옹기사전
도랑사구_일단지_청단지_귀단지(냉장고용 단지)_곤쟁이꽃병_꽃장군_쌀독_확독_찻그릇_한송이꽃병_고춧가루단지, 깨소금단지_왕소금단지_시루_옴박지_수저통_장병_물분지(물독)_오목아리_반곤쟁이_키다리꽃병(우산꽂이)_필통, 붓통_엄지_화분_재떨이(사각소스볼)_오목단지_양식기_샐러드볼, 수프볼_질접시_칼전접시_과반_술병_약탕관_푼주(큰뚝배기)_키큰뚝배기_물잔_오지솥_상차림_등잔_장독대
옹기는 옹구다
옹기, 깨지는 아름다움
옹기는 쉬운거
흙과 옹기
태림바탕
옹기는 무엇으로 만드나
옹기는 힘
솜씨 깃들인 '연장', 연장이 만드는 '솜씨'
득도
소똥으로 질그릇 빚은 순임금
옹기는 개도 할 수 있는 일(?)
공부 - 함께 살고 함께 일한다
지두화
째즈, 째즈옹기
불
산짐승 사건
바우단지
솥내, 솟내, 손내
옹기골의 '풍'자 내력
옹구막 사장님
옹기는 그냥 가만히 있을 뿐
전문가
'물'과 도랑사구, 그 이름에 얽힌 사연
이름
나는 아직 행복한 사람 못 봤어
2부: 아빠는 옹기쟁이, 아들은 고집쟁이
길어지지 않는 화장지
이사오던 날
물이 있으니 물이 흐른다
아랫집 개가 내 노래를 비웃을지라도
아들과 아버지
1992년 5월 14일, 벌교 장날, 맑음
품앗이
닭죽
바다
내일에 가서 기다리는 어제
아빠는 옹기쟁이, 아들은 고집쟁이
똥타령
똥방위
똥
서른세번째 생일에 앵긴 똥독
나는 객관식에 약하다
핍우
천명 받드는 옹기장이 '天牛'
아카시아꽃의 충고
진안고원 '무진장' 사람들이 살아온 방식을 제안합니다
동물원
3부: 밥과 똥 사이, 똥과 밥 사이
절, 저를 받으세요
죄인
사람은 가도 그릇은 남는다
화해와 치유의 능력
바람난(?) '송흰둥'과 개밥그릇
옹기골의 처녀 하나, 총각 하나
루까 수녀님께
북도에 김봉수, 남도에 심봉수
진안에서 살기
곰발바닥과 무국
무슨 영화를 보겄다고
www.놈.co.kr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세상
무거 로터리
밥과 똥 사이, 똥과 밥 사이
부활
맛과 멋
자유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먼 문화, 가까운 문화
근본의 자리
다가오는 '내일'도 '오늘'과 같을 것이다
노래하는 가위
옹기에 대한 몇 가지 오해
4부/다시 쓰는 옹기사전
도랑사구_일단지_청단지_귀단지(냉장고용 단지)_곤쟁이꽃병_꽃장군_쌀독_확독_찻그릇_한송이꽃병_고춧가루단지, 깨소금단지_왕소금단지_시루_옴박지_수저통_장병_물분지(물독)_오목아리_반곤쟁이_키다리꽃병(우산꽂이)_필통, 붓통_엄지_화분_재떨이(사각소스볼)_오목단지_양식기_샐러드볼, 수프볼_질접시_칼전접시_과반_술병_약탕관_푼주(큰뚝배기)_키큰뚝배기_물잔_오지솥_상차림_등잔_장독대
편집자 추천글
“행복한 삶이란 자기가 하고 있는 일과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야 할 일이 일치하는 것이다. 요즘 세상 사는 형편이 대부분 얽매이는 일로 돈을 벌어 그 돈으로 재미를 사서 균형 감각을 가지려 하는데, 나 같은 경우 일 자체가 재미있으니 돈벌이가 적은 게 별로 억울하거나 아쉬운 일이 아니다. 돈이 더 벌리면 덤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일이 더 재미나다.”(본문 85쪽)
1. 이 책의 기획 의도
우리 시대의 마지막 옹기장이 이현배! ‘마지막 옹기장이’라 한 것은, 아직 옹기를 만드는 사람은 꽤 있지만 고대부터 내려온 전통 방식으로 옹기를 만드는 사람으로는 이현배씨가 거의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는 발물레로 그릇을 빚고, 잿물 유약을 입히고, 옹기굴에서 구워내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발물레로 그릇을 빚는 것은 그래야 옹기장이의 호흡만큼 그릇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며, 가스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장작불의 자유분방한 불꽃이 다양한 옹기를 만들어낼 수 있게 한다는 생각에서다.
인간의 몸이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졌듯이 지수화풍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옹기를 만드는 것이 이현배씨의 꿈이다.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이현배씨 또한 옹기장이의 길을 가기 위해 외로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혼자 고생하는 것은 좋지만 함께 고생해야 하는 가족들은 왜 희생양이 되어야 하느냐는 주위의 핀잔은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가야할 길이 분명 한 사람에게 작은 시련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잘 나가는 초콜릿 요리사 일을 그만두고 폐허가 된 전통 옹기 마을로 들어가 묵묵히 옹기장이의 길을 갔다. 처음에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주저앉고 싶기도 했지만, 옹기장이의 길을 간 지 10년 만에 세상이 알아주는 옹기 전문가가 되었고, 옹기장이의 삶 속에서 자신만이 누리는 ‘자유’를 느낀다.
그는 말한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해서 근근이 살아가느니 힘들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행복이냐고. 따라서 그는 옹기일을 통해 자유를 느끼면서도 옹기에 얽매이지 않는다. 좋아서 하는 일이어야지 무슨 행세가 되고 방편이 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는 것이 그의 직업관이다. 그런 생각으로 그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꼭 그 자기 생각만큼만 살아간다. 그리고 그 생각을 글로 옮겼다. 그의 삶에 옹기가 그렇듯이 글 또 한 행세가 되고 방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옹기의 호흡 같은 글을 쓰는 것은 흙으로 그릇을 빚는 것과 같은 행위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옹기장이의 글 또한 옹기의 호흡임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것이다. 숨막히는 감동이 아니라 숨통을 탁 틔워주는 시원한 들판, 아니 따뜻한 삶의 온기를 전해주는 포근한 아랫목이 그의 글 속에 숨쉬고 있다.
2. 이 책의 특징
▶ 옹기처럼 자유로운 호흡으로 써내려간 글 옹기는 특별한 재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옹기를 만드는 흙은 어디에나 있으며, 유약도 재와 매흙을 섞어 만든다. 어떻게 보면 그야말로 흔한 것이 옹기이다. 그러나 그러기 때문에 옹기는 우리 삶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좋은 물건이다. 진리는 보편타당성 속에 있고, 이로움 또한 흔한 가운데 있게 마련이다. 옹기장이 이현배씨에게는 글 또한 그런 것이다. 그는 특별한 멋을 부리지 않으며 그냥 얘기하듯이 자유롭게 글을 쓴다. 그의 글에서 꾸미지 않는 진솔한 삶의 향기가 풍겨나오는 이유이다.
▶ 젊은 옹기장이와 그의 가족들이 엮어내는 삶과 사랑의 공동체 전북 진안군 백운면 솥내마을의 아름다운 소나무숲을 배경으로 10년 동안 옹기일을 함께한 이현배씨와 아내 최봉희씨, 수많은 시련을 이기고 그들은 오늘을 개척하면서 또 아들 물이와 딸 솔이와 바우, 가장 빚기 어려운 옹기를 빚었다. 이들 옹기 가족들이 꾸려가는 삶이 글 한편 한편에 올올이 배어 있어, 공동체로서의 가족이 어떻게 서로를 아끼고 살아갈 수 있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숨쉬는 그릇, 옹기의 특성 자연스럽게 전달해줘 속이 비어 두드리면 청량한 소리를 내는 옹기, 무엇이 든 담으면 곰삭게 하는 옹기, 좋은 기운은 꼭 가둬두고 역한 기운은 자연스럽게 뱉어내는 옹기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설명했다. 아울러 옹기를 만드는 과정을 실감나게 설명했지만, 수상집이라는 성격을 감안하여 전문적인 지식은 생략하였다.
▶ 옹기, 깨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그릇의 묘미 옹기는 깨지는 물건이다. 우리 현대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플라스틱 그릇이나 쇠그릇은 깨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옹기는 좋은 그릇이 아닌가? 아니다. 깨지는 그릇이어야 쓰면서 조심하게 되고, 그게 몸에 익으면 그릇뿐만 아니라 사람을 대할 때도 남을 배려할 줄 알게 된다. 또한 플라스틱 그릇이나 쇠그릇은 멀쩡해도 버리지 않는가. 옹기는 오히려 깨지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그릇이다. 이 책은 이러 한 옹기의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절묘하게 전달하고 있다.
▶ 이현배보다 더 고집쟁이인 옹기 스승들 이현배씨는 타고난 고집쟁이다. 그 고집으로 그는 우리 시대 마지막 옹기장이가 되었다. 타고난 고집쟁이 뒤에는 역시 고집쟁이 스승들이 있었다. 징광 한상훈 선생, 호남 제일의 옹기공 박동순 선생, 김봉수·심봉수 선생, 박나섭 선생 등 고집스럽게 옹기장이의 길을 갔던 스승들의 삶을 통해 이현배씨는 끝내 자기 길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 만큼 그들과 함께 했던 추억들, 그들의 준열한 가르침이 제자의 글 속에 알알이 배어 있다. 특히 “가지로 가서 꽃을 피우지 말고 본 대를 지키라”는 징광 한상훈 선생의 말씀은 오래도록 옹기장이 이현배의 좌우명이 되었다.
▶ 옹기의 질감을 그대로 전해주는 사진 수록 오랫동안 이현배씨와 우정을 나누었던 경험으로 사진작가 최광호씨가 애정 어린 시선으로 찍은 사진을 이미지의 흐름에 따라 배치했다. 내용을 그대로 설명해 주기보다는 사진 자체로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해 줄 것이다.
▶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가장 모던한 옹기들의 세계 가장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이현배씨가 만드는 옹기는 매우 모던하다. 샐러드와 수프를 담을 접시를 만드는가 하면 양식기 세트도 마련했으며, 소스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예쁜 재떨이를 만들기도 했다. 그의 눈에는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옹기를 만드는 아이디어가 된다. 커피잔의 손잡이를 엄지손톱 모양으로 만들어 ‘엄지’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으며, 냉장고용 단지도 개발했다. 이 책의 4부에 이러한 다양한 모양의 옹기를 재미있게 소개하였다.
3. 옹기장이 이현배는 누구인가?
옹기장이 이현배는 1962년 전북 장수군 장계에서 가난한 농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한 살림에 먹을 것이 없으면 흙담을 뜯어먹곤 했다는 그는 흙이 참 좋았다. 장계중·고등학교 시절 그는 ‘제법’ 문제아였다. 친구와 도둑질을 하다 잡히기도 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는 가출하여 무작정 상경하기도 했다. 가출소년 이현배는 롯데호텔 스카이라운지에 갔다가 사람들이 모래알처럼 보인다는 사실에 심한 충격을 받았으며, 전화번호부를 뒤져 자신의 이름을 찾아보곤 동명이인이 너무 많은 데 또 한번 놀랐다. “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구나” 하는 이른바 실존의 문제에 부닥친 것이다. 어찌 보면 흔히 가출한 아이들이 무심히 지나쳤을 법한 사소한 체험에서 그는 색다른 의미를 체득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자신이 살고 있는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 지역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에게는 농토가 없었다. 우선 농대부터 가려고 시험을 쳤으나 떨어졌고, 대신 ‘농가공’을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 경희호텔전문대학을 들어갔으나 그 공부는 농가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무렵 사회과학서적을 읽고 심한 고민에 휩싸이다가 휴학하고 낙향하여 고물장사를 했다. 이후 복학하여 졸업하고 서울 스위스그랜드 호텔에서 초콜릿 만드는 일을 했다. 거기서 노조활동을 했는데 그가 배후조종자로 찍혔다. 그래서 아예 직업적으로 노조를 하느냐, 고향 가서 사느냐 고민하던 때에 아내가 여행을 권했다.
함평, 무안, 목포, 강진으로 떠돌다가 벌교에 닿아 징광옹기를 만났다. 이현배와 옹기의 기나긴 만남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옹기의 멋스러움에 취한 그는 징광옹기점 박나섭옹과 경북 문경의 영남요 백산선생 밑에서 3년간 공부한 후 마침내 지금의 보금자리인 전북 진안군 백운면 솥내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그가 터를 잡은 솥내는 오랜 역사를 가진 옹기마을이었다. 200호가 넘는 가구가 옹기일을 하던 거대한 옹기마을이었다. 호남지방의 그릇은 거의 이 마을에서 공급했다. 그러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옹기장이들이 모두 떠나버린 마을은 적막만이 가득했다. 적막에 싸인 마을의 토담집을 쌀 세 가마 반에 사고, 막힌 가마의 불구멍을 튀우고 그릇을 굽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죽어 있던 솥내마을의 혼을 그의 가족들이 깨운 것이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아들 물이(13살), 솔이(11살), 바우(9살) 등 이씨네 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이 곳을 살려냈다. 빈집에서 먼지를 털어냈고, 새마을운동으로 초가 위에 슬레이트를 덧씌운 그대로 버려졌던 옛 공방에 이씨는 새 물레를 앉혔다. 아내 최봉희(39)씨는 그와 장계중학 동 기동창이었다. 반장이었던 아내와 문제아였던 이현배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화여대 동양화과 재학 중 아내는 조소공부를 하고 싶어하던 그를 도와주면서 만났고, 이듬해 결혼했다.
그의 살림은 아직 빠듯하다. 옹기를 찾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지만, 깨지지 않는 편리한 그릇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옹기장이 이현배는 그 특유의 고집으로 언제나 여유가 넘친다. 하기 싫은 일을 해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보다 비록 넉넉하지는 않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옹기 또한 자신을 얽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옹기일을 붙들 수도 놓을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갖고 싶다. 좋은 일로 옹기일이어야지 이게 무슨 행세가 되고 방편이 되는 그런 불행한 옹기장이가 되고 싶지 않다. 사람한테 옹기여야지 옹기한테 사람이 매이고 싶지 않다”(191쪽)고.
1. 이 책의 기획 의도
우리 시대의 마지막 옹기장이 이현배! ‘마지막 옹기장이’라 한 것은, 아직 옹기를 만드는 사람은 꽤 있지만 고대부터 내려온 전통 방식으로 옹기를 만드는 사람으로는 이현배씨가 거의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는 발물레로 그릇을 빚고, 잿물 유약을 입히고, 옹기굴에서 구워내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발물레로 그릇을 빚는 것은 그래야 옹기장이의 호흡만큼 그릇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며, 가스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장작불의 자유분방한 불꽃이 다양한 옹기를 만들어낼 수 있게 한다는 생각에서다.
인간의 몸이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졌듯이 지수화풍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옹기를 만드는 것이 이현배씨의 꿈이다.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이현배씨 또한 옹기장이의 길을 가기 위해 외로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혼자 고생하는 것은 좋지만 함께 고생해야 하는 가족들은 왜 희생양이 되어야 하느냐는 주위의 핀잔은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가야할 길이 분명 한 사람에게 작은 시련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잘 나가는 초콜릿 요리사 일을 그만두고 폐허가 된 전통 옹기 마을로 들어가 묵묵히 옹기장이의 길을 갔다. 처음에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주저앉고 싶기도 했지만, 옹기장이의 길을 간 지 10년 만에 세상이 알아주는 옹기 전문가가 되었고, 옹기장이의 삶 속에서 자신만이 누리는 ‘자유’를 느낀다.
그는 말한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해서 근근이 살아가느니 힘들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행복이냐고. 따라서 그는 옹기일을 통해 자유를 느끼면서도 옹기에 얽매이지 않는다. 좋아서 하는 일이어야지 무슨 행세가 되고 방편이 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는 것이 그의 직업관이다. 그런 생각으로 그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꼭 그 자기 생각만큼만 살아간다. 그리고 그 생각을 글로 옮겼다. 그의 삶에 옹기가 그렇듯이 글 또 한 행세가 되고 방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옹기의 호흡 같은 글을 쓰는 것은 흙으로 그릇을 빚는 것과 같은 행위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옹기장이의 글 또한 옹기의 호흡임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것이다. 숨막히는 감동이 아니라 숨통을 탁 틔워주는 시원한 들판, 아니 따뜻한 삶의 온기를 전해주는 포근한 아랫목이 그의 글 속에 숨쉬고 있다.
2. 이 책의 특징
▶ 옹기처럼 자유로운 호흡으로 써내려간 글 옹기는 특별한 재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옹기를 만드는 흙은 어디에나 있으며, 유약도 재와 매흙을 섞어 만든다. 어떻게 보면 그야말로 흔한 것이 옹기이다. 그러나 그러기 때문에 옹기는 우리 삶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좋은 물건이다. 진리는 보편타당성 속에 있고, 이로움 또한 흔한 가운데 있게 마련이다. 옹기장이 이현배씨에게는 글 또한 그런 것이다. 그는 특별한 멋을 부리지 않으며 그냥 얘기하듯이 자유롭게 글을 쓴다. 그의 글에서 꾸미지 않는 진솔한 삶의 향기가 풍겨나오는 이유이다.
▶ 젊은 옹기장이와 그의 가족들이 엮어내는 삶과 사랑의 공동체 전북 진안군 백운면 솥내마을의 아름다운 소나무숲을 배경으로 10년 동안 옹기일을 함께한 이현배씨와 아내 최봉희씨, 수많은 시련을 이기고 그들은 오늘을 개척하면서 또 아들 물이와 딸 솔이와 바우, 가장 빚기 어려운 옹기를 빚었다. 이들 옹기 가족들이 꾸려가는 삶이 글 한편 한편에 올올이 배어 있어, 공동체로서의 가족이 어떻게 서로를 아끼고 살아갈 수 있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숨쉬는 그릇, 옹기의 특성 자연스럽게 전달해줘 속이 비어 두드리면 청량한 소리를 내는 옹기, 무엇이 든 담으면 곰삭게 하는 옹기, 좋은 기운은 꼭 가둬두고 역한 기운은 자연스럽게 뱉어내는 옹기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설명했다. 아울러 옹기를 만드는 과정을 실감나게 설명했지만, 수상집이라는 성격을 감안하여 전문적인 지식은 생략하였다.
▶ 옹기, 깨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그릇의 묘미 옹기는 깨지는 물건이다. 우리 현대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플라스틱 그릇이나 쇠그릇은 깨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옹기는 좋은 그릇이 아닌가? 아니다. 깨지는 그릇이어야 쓰면서 조심하게 되고, 그게 몸에 익으면 그릇뿐만 아니라 사람을 대할 때도 남을 배려할 줄 알게 된다. 또한 플라스틱 그릇이나 쇠그릇은 멀쩡해도 버리지 않는가. 옹기는 오히려 깨지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그릇이다. 이 책은 이러 한 옹기의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절묘하게 전달하고 있다.
▶ 이현배보다 더 고집쟁이인 옹기 스승들 이현배씨는 타고난 고집쟁이다. 그 고집으로 그는 우리 시대 마지막 옹기장이가 되었다. 타고난 고집쟁이 뒤에는 역시 고집쟁이 스승들이 있었다. 징광 한상훈 선생, 호남 제일의 옹기공 박동순 선생, 김봉수·심봉수 선생, 박나섭 선생 등 고집스럽게 옹기장이의 길을 갔던 스승들의 삶을 통해 이현배씨는 끝내 자기 길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 만큼 그들과 함께 했던 추억들, 그들의 준열한 가르침이 제자의 글 속에 알알이 배어 있다. 특히 “가지로 가서 꽃을 피우지 말고 본 대를 지키라”는 징광 한상훈 선생의 말씀은 오래도록 옹기장이 이현배의 좌우명이 되었다.
▶ 옹기의 질감을 그대로 전해주는 사진 수록 오랫동안 이현배씨와 우정을 나누었던 경험으로 사진작가 최광호씨가 애정 어린 시선으로 찍은 사진을 이미지의 흐름에 따라 배치했다. 내용을 그대로 설명해 주기보다는 사진 자체로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해 줄 것이다.
▶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가장 모던한 옹기들의 세계 가장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이현배씨가 만드는 옹기는 매우 모던하다. 샐러드와 수프를 담을 접시를 만드는가 하면 양식기 세트도 마련했으며, 소스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예쁜 재떨이를 만들기도 했다. 그의 눈에는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옹기를 만드는 아이디어가 된다. 커피잔의 손잡이를 엄지손톱 모양으로 만들어 ‘엄지’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으며, 냉장고용 단지도 개발했다. 이 책의 4부에 이러한 다양한 모양의 옹기를 재미있게 소개하였다.
3. 옹기장이 이현배는 누구인가?
옹기장이 이현배는 1962년 전북 장수군 장계에서 가난한 농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한 살림에 먹을 것이 없으면 흙담을 뜯어먹곤 했다는 그는 흙이 참 좋았다. 장계중·고등학교 시절 그는 ‘제법’ 문제아였다. 친구와 도둑질을 하다 잡히기도 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는 가출하여 무작정 상경하기도 했다. 가출소년 이현배는 롯데호텔 스카이라운지에 갔다가 사람들이 모래알처럼 보인다는 사실에 심한 충격을 받았으며, 전화번호부를 뒤져 자신의 이름을 찾아보곤 동명이인이 너무 많은 데 또 한번 놀랐다. “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구나” 하는 이른바 실존의 문제에 부닥친 것이다. 어찌 보면 흔히 가출한 아이들이 무심히 지나쳤을 법한 사소한 체험에서 그는 색다른 의미를 체득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자신이 살고 있는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 지역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에게는 농토가 없었다. 우선 농대부터 가려고 시험을 쳤으나 떨어졌고, 대신 ‘농가공’을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 경희호텔전문대학을 들어갔으나 그 공부는 농가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무렵 사회과학서적을 읽고 심한 고민에 휩싸이다가 휴학하고 낙향하여 고물장사를 했다. 이후 복학하여 졸업하고 서울 스위스그랜드 호텔에서 초콜릿 만드는 일을 했다. 거기서 노조활동을 했는데 그가 배후조종자로 찍혔다. 그래서 아예 직업적으로 노조를 하느냐, 고향 가서 사느냐 고민하던 때에 아내가 여행을 권했다.
함평, 무안, 목포, 강진으로 떠돌다가 벌교에 닿아 징광옹기를 만났다. 이현배와 옹기의 기나긴 만남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옹기의 멋스러움에 취한 그는 징광옹기점 박나섭옹과 경북 문경의 영남요 백산선생 밑에서 3년간 공부한 후 마침내 지금의 보금자리인 전북 진안군 백운면 솥내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그가 터를 잡은 솥내는 오랜 역사를 가진 옹기마을이었다. 200호가 넘는 가구가 옹기일을 하던 거대한 옹기마을이었다. 호남지방의 그릇은 거의 이 마을에서 공급했다. 그러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옹기장이들이 모두 떠나버린 마을은 적막만이 가득했다. 적막에 싸인 마을의 토담집을 쌀 세 가마 반에 사고, 막힌 가마의 불구멍을 튀우고 그릇을 굽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죽어 있던 솥내마을의 혼을 그의 가족들이 깨운 것이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아들 물이(13살), 솔이(11살), 바우(9살) 등 이씨네 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이 곳을 살려냈다. 빈집에서 먼지를 털어냈고, 새마을운동으로 초가 위에 슬레이트를 덧씌운 그대로 버려졌던 옛 공방에 이씨는 새 물레를 앉혔다. 아내 최봉희(39)씨는 그와 장계중학 동 기동창이었다. 반장이었던 아내와 문제아였던 이현배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화여대 동양화과 재학 중 아내는 조소공부를 하고 싶어하던 그를 도와주면서 만났고, 이듬해 결혼했다.
그의 살림은 아직 빠듯하다. 옹기를 찾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지만, 깨지지 않는 편리한 그릇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옹기장이 이현배는 그 특유의 고집으로 언제나 여유가 넘친다. 하기 싫은 일을 해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보다 비록 넉넉하지는 않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옹기 또한 자신을 얽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옹기일을 붙들 수도 놓을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갖고 싶다. 좋은 일로 옹기일이어야지 이게 무슨 행세가 되고 방편이 되는 그런 불행한 옹기장이가 되고 싶지 않다. 사람한테 옹기여야지 옹기한테 사람이 매이고 싶지 않다”(191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