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과 고조선사
- 2044
• 지은이 : 노태돈 외
• 가격 : 19,000원
• 책꼴/쪽수 :
210*148mm, 264쪽
• 펴낸날 : 2000-03-08
• ISBN : 9788971966518
• 십진분류 : 역사 > 아시아 (910)
• 도서상태 : 절판
• 추천기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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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그 : #역사 #한국사 #단군 #고조선
저자소개
지은이 : 노태돈 외
노태돈 : 1949년생. 서울대 사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문학박사). 계명대 사학과 조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로 재임중이며, 하버드-엔칭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국고대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주요 논저로는 『고구려사 연구』, 『역주 한국고대금석문』(공저), 『시민을 위한 한국역사』(공저), 『한국사를 통해 본 우리와 세계에 대한 인식』, 「고조선 중심지의 변천에 대한 연구」, 「나대의 문객」, 「발해국의 주민 구성과 발해인의 족원」 등이 있다.
서영대 : 서울대 대학원 국사학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인하대 인문학부 교수로 재임중이다. 주요 논저로 『북한 학계의 단군신화 연구』, 『단군― 그 이해와 자료』(공저), 「강화도의 첨성단에 대하여」, 「고구려 귀족가문의 족조 전승」 등이 있다.
정영훈 : 고려대 대학원 졸업(문학석사), 단국대 대학원 졸업(정치학 박사). 현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 대학원 정치학 교수로 재임중이다.
주요 논저로 「단군과 근대 한국민족운동」, 「북한의 민족문화유산 정책」, 「해방 후의 중도파와 통일운동」 등이 있다.
조인성 : 서강대 대학원 사학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경희대 사학과 교수로 재임중이다.
주요 논저로 『전통사회에서의 종교와 반란』(공저), 「모본인 두로」, 「태봉의 궁예 정권 연구」 등이 있다.
서영대 : 서울대 대학원 국사학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인하대 인문학부 교수로 재임중이다. 주요 논저로 『북한 학계의 단군신화 연구』, 『단군― 그 이해와 자료』(공저), 「강화도의 첨성단에 대하여」, 「고구려 귀족가문의 족조 전승」 등이 있다.
정영훈 : 고려대 대학원 졸업(문학석사), 단국대 대학원 졸업(정치학 박사). 현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 대학원 정치학 교수로 재임중이다.
주요 논저로 「단군과 근대 한국민족운동」, 「북한의 민족문화유산 정책」, 「해방 후의 중도파와 통일운동」 등이 있다.
조인성 : 서강대 대학원 사학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경희대 사학과 교수로 재임중이다.
주요 논저로 『전통사회에서의 종교와 반란』(공저), 「모본인 두로」, 「태봉의 궁예 정권 연구」 등이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단군신화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신화일 뿐일까? 그렇다면 고조선이라는 나라도 신화적인 존재일 뿐일까? 단군신화에서 새로운 역사적 비전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그런 태도는 민족주의의 낡은 잔영에 불과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두 갈래의 목소리는 최근 공공 장소에 단군상을 건립하는 문제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한편 단군 시대의 이야기를 정리했다는 『환단고기』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이는 단군신화와 고조선사에 대한 우리 민족의 높은 관심을 반영한다.
목차
- 이책을 내면서
1부 단군과 고조선사의 이해
1) 단군과 고조선사에 대한 이해 l 사실과 상징의 변주곡 ll 노태돈
- 단군신화는 고조선 시기의 산물인가
- 단군신화의 역사적 성격
- 단군과 고조선사에 대한 인식의 변천(1)
- 단군과 고조선사에 대한 인식의 변천(2)
- 단군의 현대적 의미
2부 고조선사와 단군신화
1) 고조선 중심지의 변천에 대한 연구 ll 노태돈
-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
- 연(燕)·진(秦) 장성의 동쪽 끝
- 왕험성(王險城)과 패수(浿水)
- 고조선의 초기 중심지
- 맺음말
2) 위만조선(衛滿朝鮮)의 정치구조 l 관명(關名) 분석을 중심으로 ll 노태돈
- 상(相)과 장군
- 비왕(裨王)
- 구성 집단의 족속 계통
- 맺음말
3) 단군신화의 의미와 기능 ll 서영대
- 단군신화의 의미
- 단군신화의 기능
- 맺음말
3부 단군과 고조선사에 대한 인식의 변천
1) 전통시대의 단군 인식 ll 서영대
- 고려시대의 단군 인식
- 조선시대의 단군 인식
- 맺음말
2) 단군의 민족주의적 의미 l 근대기 민족교육과 관련하여 ll 정영훈
- 단군의 민족주의적 의미
- 근대 한국 민족교육에서의 단군
- 맺음말
3) '재야사서(在野史書)' 위서론(僞書論) l 『단기고사(檀奇古史)』·『규원사화(揆園史話)』를 중심으로 ll 조인성
- 예비적 검토
- 『단기고사』에 대한 사료 비판
- 『환단고기』에 대한 사료 비판
- 『규원사화』에 대한 사료 비판
- 맺음말
4) 북한학계의 고조선사 연구 동향 ll 노태돈
- 초창기(1945~1956)의 고조선사 이해
- 요녕성 중심설과 노예제사회설의 정립(1957~1966)
- 주체사상화와 학문의 침체(1967~1992)
- '단군릉' 발굴과 역사학의 위기(1993~)
- 맺음말
1부 단군과 고조선사의 이해
1) 단군과 고조선사에 대한 이해 l 사실과 상징의 변주곡 ll 노태돈
- 단군신화는 고조선 시기의 산물인가
- 단군신화의 역사적 성격
- 단군과 고조선사에 대한 인식의 변천(1)
- 단군과 고조선사에 대한 인식의 변천(2)
- 단군의 현대적 의미
2부 고조선사와 단군신화
1) 고조선 중심지의 변천에 대한 연구 ll 노태돈
-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
- 연(燕)·진(秦) 장성의 동쪽 끝
- 왕험성(王險城)과 패수(浿水)
- 고조선의 초기 중심지
- 맺음말
2) 위만조선(衛滿朝鮮)의 정치구조 l 관명(關名) 분석을 중심으로 ll 노태돈
- 상(相)과 장군
- 비왕(裨王)
- 구성 집단의 족속 계통
- 맺음말
3) 단군신화의 의미와 기능 ll 서영대
- 단군신화의 의미
- 단군신화의 기능
- 맺음말
3부 단군과 고조선사에 대한 인식의 변천
1) 전통시대의 단군 인식 ll 서영대
- 고려시대의 단군 인식
- 조선시대의 단군 인식
- 맺음말
2) 단군의 민족주의적 의미 l 근대기 민족교육과 관련하여 ll 정영훈
- 단군의 민족주의적 의미
- 근대 한국 민족교육에서의 단군
- 맺음말
3) '재야사서(在野史書)' 위서론(僞書論) l 『단기고사(檀奇古史)』·『규원사화(揆園史話)』를 중심으로 ll 조인성
- 예비적 검토
- 『단기고사』에 대한 사료 비판
- 『환단고기』에 대한 사료 비판
- 『규원사화』에 대한 사료 비판
- 맺음말
4) 북한학계의 고조선사 연구 동향 ll 노태돈
- 초창기(1945~1956)의 고조선사 이해
- 요녕성 중심설과 노예제사회설의 정립(1957~1966)
- 주체사상화와 학문의 침체(1967~1992)
- '단군릉' 발굴과 역사학의 위기(1993~)
- 맺음말
편집자 추천글
이 책의 기획 의도
단군신화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신화일 뿐일까? 그렇다면 고조선이라는 나라도 신화적인 존재일 뿐일까? 단군신화에서 새로운 역사적 비전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그런 태도는 민족주의의 낡은 잔영에 불과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두 갈래의 목소리는 최근 공공 장소에 단군상을 건립하는 문제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한편 단군 시대의 이야기를 정리했다는 『환단고기』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이는 단군신화와 고조선사에 대한 우리 민족의 높은 관심을 반영한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할까?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단군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고 단군을 우리의 조상으로 모셔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단군은 우리 모두의 조상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 옛 왕의 명칭이거나 일부 종교의 ‘신(神)’일 뿐이라는 주장도 목청이 높다. 이러한 목소리들은 다소 격앙되어 있는 데다가 자신의 주장에 찬성하지 않으면 매국노로 보거나 국수주의자로 보는 경향마저 있어 우리의 판단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단군과 고조선사는 결국 이렇게 민족주의자와 합리주의자 또는 종교적 입장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입장에 의해 달리 인식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 사실에 대한 판단은 끝내 명확히 할 수 없는 것일까? 이제는 이러한 입장들을 함께 정리하고 단군과 고조선의 문제에 대해 최대한 차분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어느 정도까지가 사실이고 어떤 부분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는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단군과 고조선사에 대한 여러 움직임과 논의는 현대 한국 민족주의론의 차원에서 검토해야 할 면이 있고, 그럴 때 이들 현상에 대한 보다 명료한 이해를 얻을 수 있는 면이 있다.
그러나 민족주의적인 입장은 자칫 역사적 사실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 역사적 근거가 희박한 자료를 중요한 문헌으로 취급하여 역사를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 유의하여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민족주의적인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를 총괄하여 가능하면 최대한 실증적으로 단군과 고조선사의 비밀을 밝히고자 했다.
이 책의 특징
△ 고조선사와 단군에 대한 그간의 논의와 연구 경향을 총정리하여 바람직한 이해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대중적 관심에 영합하여 빈약한 연구 성과만으로 독선적인 주장을 일삼아서는 안 되며,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고조선의 중심지는 요하 유역에서 평양으로 이동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조선 중심지에 대해 평양에 있었다는 설, 남만주 요녕성 지역에 있었다는 설, 요하 유역에서 평양으로 이동하였다는 설 등이 제기되어 논란이 이어져 왔다. 노태돈 교수는 「고조선 중심지의 변천에 대한 연구」에서 이동설을 조심스럽게 주장하면서 이동설의 문제점까지 함께 검토하고 있다.
△ 신화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세계와 인간, 문화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라는 입장에서 단군신화를 해석하고 있다. 서영대 교수는 「단군신화의 의미와 기능」이라는 글에서 단군신화는 청동기 문화를 기반으로 등장한 정치권력이 주변의 군소 정치세력들을 통합하고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라 주장한다.
△ 단군과 고조선사가 민족주의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영훈 교수는 「단군의 민족주의적 의미」라는 글에서 제국주의의 침략에 직면한 근대 우리 민족에게 단군에 대한 역사의식이 중요한 구심점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근대 한국 교육계가 고민하던 민족적 문제상황이 아직도 완전히 해소된 것이 아니므로, 단군이라는 요소는 여전히 민족 교육을 위한 필요조건의 하나임에 틀림없다고 말하고 있다.
△ 『환단고기』, 『규원사화』, 『단기고사』 등 끝없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단군 관계 서적들은 20세기 초반에 집필된 위서(僞書)라고 주장한다. 이들 책들에 의하면 한국 상고사는 그야말로 찬란한 영광의 시대였다. 그러나 그것이 명백한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일제의 황국사관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조인성 교수는 다양한 예를 들어 이들이 근대 이후에 만들어진 위서임을 밝히고 있다.
△ 우리 선인들이 단군과 고조선사를 어떤 식으로 인식해 왔는가를 살폈다. 고조선이 멸망한 후 그 지역은 오랫동안 중국 왕조의 군현이 되었다. 고구려가 고조선 지역을 차지한 것은 고조선 멸망 후 4백여 년이 지난 뒤였다. 따라서 삼국시대에는 고조선에 대한 계승 의식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고려 후기 대몽항쟁기에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단군본기』에 비로소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인식이 나타나게 된다. 이후 조선시대에도 단군을 모시는 묘당이 조정에 의해 건립되어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냈다.
△ 북한의 사학계에서 진행된 고조선사 연구 동향을 검토하였다. 노태돈 교수는 「북한 학계의 고조선사 연구 동향」에서 해방 후부터 최근의 ‘단군릉’ 축조에 이르기까지 북한에서 진행된 고조선사 연구 동향을 살폈다. 이 글에 따르면 북한 학계의 가장 획기적인 사건은 ‘단군릉’ 발굴이다. 단군릉은 원래 평양시 강동군 대박산 기슭에 있던 석실봉토분이다. 무덤 양식과 그 속에서 나온 금동관 조각은 고구려 때의 것이다. 그런데도 북한 학계에서는 이를 5천여 년 전에 죽은 사람의 뼈라고 주장하고, 이 무덤이 곧 단군릉이라고 밝혔다. 노태돈 교수는 이렇게 객관성을 결여한 연구는 결국에는 역사 자체를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민족적 관점에도 배치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단군신화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신화일 뿐일까? 그렇다면 고조선이라는 나라도 신화적인 존재일 뿐일까? 단군신화에서 새로운 역사적 비전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그런 태도는 민족주의의 낡은 잔영에 불과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두 갈래의 목소리는 최근 공공 장소에 단군상을 건립하는 문제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한편 단군 시대의 이야기를 정리했다는 『환단고기』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이는 단군신화와 고조선사에 대한 우리 민족의 높은 관심을 반영한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할까?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단군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고 단군을 우리의 조상으로 모셔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단군은 우리 모두의 조상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 옛 왕의 명칭이거나 일부 종교의 ‘신(神)’일 뿐이라는 주장도 목청이 높다. 이러한 목소리들은 다소 격앙되어 있는 데다가 자신의 주장에 찬성하지 않으면 매국노로 보거나 국수주의자로 보는 경향마저 있어 우리의 판단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단군과 고조선사는 결국 이렇게 민족주의자와 합리주의자 또는 종교적 입장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입장에 의해 달리 인식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 사실에 대한 판단은 끝내 명확히 할 수 없는 것일까? 이제는 이러한 입장들을 함께 정리하고 단군과 고조선의 문제에 대해 최대한 차분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어느 정도까지가 사실이고 어떤 부분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는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단군과 고조선사에 대한 여러 움직임과 논의는 현대 한국 민족주의론의 차원에서 검토해야 할 면이 있고, 그럴 때 이들 현상에 대한 보다 명료한 이해를 얻을 수 있는 면이 있다.
그러나 민족주의적인 입장은 자칫 역사적 사실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 역사적 근거가 희박한 자료를 중요한 문헌으로 취급하여 역사를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 유의하여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민족주의적인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를 총괄하여 가능하면 최대한 실증적으로 단군과 고조선사의 비밀을 밝히고자 했다.
이 책의 특징
△ 고조선사와 단군에 대한 그간의 논의와 연구 경향을 총정리하여 바람직한 이해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대중적 관심에 영합하여 빈약한 연구 성과만으로 독선적인 주장을 일삼아서는 안 되며,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고조선의 중심지는 요하 유역에서 평양으로 이동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조선 중심지에 대해 평양에 있었다는 설, 남만주 요녕성 지역에 있었다는 설, 요하 유역에서 평양으로 이동하였다는 설 등이 제기되어 논란이 이어져 왔다. 노태돈 교수는 「고조선 중심지의 변천에 대한 연구」에서 이동설을 조심스럽게 주장하면서 이동설의 문제점까지 함께 검토하고 있다.
△ 신화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세계와 인간, 문화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라는 입장에서 단군신화를 해석하고 있다. 서영대 교수는 「단군신화의 의미와 기능」이라는 글에서 단군신화는 청동기 문화를 기반으로 등장한 정치권력이 주변의 군소 정치세력들을 통합하고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라 주장한다.
△ 단군과 고조선사가 민족주의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영훈 교수는 「단군의 민족주의적 의미」라는 글에서 제국주의의 침략에 직면한 근대 우리 민족에게 단군에 대한 역사의식이 중요한 구심점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근대 한국 교육계가 고민하던 민족적 문제상황이 아직도 완전히 해소된 것이 아니므로, 단군이라는 요소는 여전히 민족 교육을 위한 필요조건의 하나임에 틀림없다고 말하고 있다.
△ 『환단고기』, 『규원사화』, 『단기고사』 등 끝없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단군 관계 서적들은 20세기 초반에 집필된 위서(僞書)라고 주장한다. 이들 책들에 의하면 한국 상고사는 그야말로 찬란한 영광의 시대였다. 그러나 그것이 명백한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일제의 황국사관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조인성 교수는 다양한 예를 들어 이들이 근대 이후에 만들어진 위서임을 밝히고 있다.
△ 우리 선인들이 단군과 고조선사를 어떤 식으로 인식해 왔는가를 살폈다. 고조선이 멸망한 후 그 지역은 오랫동안 중국 왕조의 군현이 되었다. 고구려가 고조선 지역을 차지한 것은 고조선 멸망 후 4백여 년이 지난 뒤였다. 따라서 삼국시대에는 고조선에 대한 계승 의식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고려 후기 대몽항쟁기에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단군본기』에 비로소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인식이 나타나게 된다. 이후 조선시대에도 단군을 모시는 묘당이 조정에 의해 건립되어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냈다.
△ 북한의 사학계에서 진행된 고조선사 연구 동향을 검토하였다. 노태돈 교수는 「북한 학계의 고조선사 연구 동향」에서 해방 후부터 최근의 ‘단군릉’ 축조에 이르기까지 북한에서 진행된 고조선사 연구 동향을 살폈다. 이 글에 따르면 북한 학계의 가장 획기적인 사건은 ‘단군릉’ 발굴이다. 단군릉은 원래 평양시 강동군 대박산 기슭에 있던 석실봉토분이다. 무덤 양식과 그 속에서 나온 금동관 조각은 고구려 때의 것이다. 그런데도 북한 학계에서는 이를 5천여 년 전에 죽은 사람의 뼈라고 주장하고, 이 무덤이 곧 단군릉이라고 밝혔다. 노태돈 교수는 이렇게 객관성을 결여한 연구는 결국에는 역사 자체를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민족적 관점에도 배치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