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인터뷰] <세네갈의 눈> 요안나 콘세이요

 
“독자는 자신의 발자취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갈 수밖에 없어요.”

『세네갈의 눈』 요안나 콘세이요Joanna Concejo 편

*인터뷰 번역_이지원 / *인터뷰 진행_사계절출판사 그림책 편집부

엄마를 향한 회상의 풍경, 『세네갈의 눈』을 보면서 많은 독자가 각자의 보석을 찾아가곤 했습니다. 글 그림이 말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심하는 분들도 많았지요. 한 편의 글에 새로운 인상을 불어넣은 그림 작가, 요안나 콘세이요는 이 작품을 어떻게 대했을까요? 작가는 국경과 언어를 넘어 작품의 목소리를 기꺼이 따라가는 한국 독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아르투르 스크리아빈(Artur Skriabin)’이라는 필명의 글 작가 그리고 선생님의 남편인 라파엘 콘세이요(Rafael Concejo) 역자와 만나 이 작품이 탄생되었어요. 그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이 책의 시작은 아주 평범했어요. 아르투르가 저에게 메일로 몇 개의 글을 보내고는 파리에 오는 김에 만나고 싶다고 했어요. 그때 저는 다른 작업을 한창 하고 있던 중이라 바로 그 원고들로 작업을 시작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그냥 카페에서 몇 번 만났어요.
 드디어 책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왜 아르투르가 보낸 여러 원고 중에서 제가 『세네갈의 눈』을 고르게 되었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그 안에 눈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제가 눈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이었을까요.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고 굳이 확실히 알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그냥 이미 그렇게 되어 버린 거죠.
작업 초반에 펼침면 일러스트레이션 몇 장을 그려 보았는데, 제가 원하는 형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저는 스케치를 여러 장 해서 출판사에 보여 주었지요. 출판사가 프랑스 출판사라, 스페인어로 된 텍스트를 번역해야만 했어요. 그래서 마침 남편인 라파엘에게 부탁을 했어요.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사람 중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으니까요. 처음에는 그냥 더미를 출판사에 보여 주기 위한 목적으로 한 번역이었어요. 그러고는 제게 다른 일들이 생기면서 이 책의 작업을 중단해야 하는 타이밍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디어가 제 머릿속에서 익어 가고 발전할 시간이 생긴 것이라 잘된 일이었던 것 같아요.

 

혹시 이 작품이 『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와 작업 기간이 맞닿아 있을까요?

 그렇진 않아요. 『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가 훨씬 먼저 한 책이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저에게는 새로운 것들을 많이 가르쳐 준 작업이었어요. 그전에는 그 방식으로 작업한 적이 없었고, 완성된 형태 역시 저에게조차 예상 밖이었어요. 그 뒤 『세네갈의 눈』 작업에서, 이제 그림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이 제게 분명해졌다고 느껴요. 그래서 이 책은 좀 더 ‘정돈이 되어 있고’, 이 책에서 이전과 같은 예상 밖의 결과는 별로 없었어요. 오히려 제가 보여 주고 싶은 것을 잘 골라서 보여 줄 수 있었지요. 여러 가능성의 집합체로 구상된 것이 아니었고, 어떤 그림들과 아이디어는 포기하기도 했어요. 서사는 훨씬 더 간결하고, 더 선형적이에요. 하지만 두 책이 연관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결혼 사진 일러스트만 봐도 그렇죠. 만약 독자들이 한 책을 어떤 다른 책의 후편처럼 여겨도 저는 개의치 않아요. 그건 독자의 판단이니까요. 세상에 나온 책들의 운명에 저는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 양식적으로 두 책은 유사한 지점이 많아요. 스케치의 방식이나, 현실의 여러 조각을 모아서 조합하는 방식. 두 책 모두에서 독자는 자신의 발자취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갈 수밖에 없어요. 적극적인 읽기와 개인적인 감정 이입을 통해서 그 길을 만드는 것이죠.


처음 글 원고를 선택하셨을 때, 작가님의 첫 감상은 어땠나요?

저의 첫인상을 무어라 말하기란 쉽지 않아요. 왜냐하면 첫 번째 감상은 머릿속에서 마치 초점이 맞지 않는 흐릿한, 흔들리는 그림처럼 나타나니까요. 무언가 인상 같은 것인데, 이 이야기에서 저를 매혹시키는 것, 그림을 그리게 하는 어떤 지점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결국 이 텍스트를 가지고 작업해도 되겠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요. 앞으로 이 책이 어떻게 완성될지 모른다 해도 아무렇지 않아요. 오히려 바로 그 인상 덕분에, 내 안의 무언가를 움직이는, 이야기를 읽었을 때 내 안에서 깨어나는 그 무엇 때문에 스스로 이 텍스트의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구나, 알게 되어요.

 


화자의 이야기에는 복합적인 감정이 담겨 있었는데, 작가님께서는 엄마를 향한 그 회상을 어떤 이야기로 생각하셨나요?

사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남자아이의 목소리를 들을 때 저는 아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어요. 저한테는 그러는 편이 더 좋아요. 저는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이지, 생각을 해야 하는 게 아니니까요. 한마디로, 제 모든 생각은 그냥 그림이 되어요. 그것이 저의 언어예요. 바로 그때 가장 제 자신답다 느끼고, 제가 보여 주고 싶은 것을 가장 근접하게 표현한다 생각해요. 그러나 그것은 생각보다는 어떤 느낌이에요. 제가 느낀 것은 한 남자아이의 회상 속에 담겨 있는 엄청난 다정함과 감수성이었어요.


작가님의 느낌을 작품에 담을 때, 그림 조각을 겹치거나 모아서 그 이미지를 보여 주셨어요. 이번 작품에서 그런 표현 방식이 더 도드라진 것 같아요.

이전 질문에서 ‘복합적인 감정’이란 말이 나왔는데, 저는 이것이 일러스트레이션의 형식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저는 한 장의 그림만을 고를 수 없을 때가 종종 있어요. 그러면 여러 장을 함께 배열하지요. 하나의 모티브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하나로 보여 주는 것이에요. 하지만 가끔은 단 한 개, 펼침면으로 그려야 할 일러스트레이션이 떠오르기도 해요. 저는 가끔은 이런 다수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감정과 그림에서의 불확실함, 그런 망설임을 보여 주는 것이니까요. 그것이 아무리 불명확하고 꿈처럼 보인다 해도, 그 상태 그대로가 현실에 대한 저항일 수도 있겠지요.

 

작가님의 일러스트레이션은 낡은 분위기로 연출되곤 하는데, 『세네갈의 눈』이 회상을 다룬 이야기라 더욱이 그 감성이 잘 어우러진 것 같아요. 이미지 재료들 중 작가님의 개인적인 물건, 사진도 많았을까요?

물론이죠! 저는 제 모든 책 작업에 개인적인 물건과 개인적인 사진들을 넣어요. 제가 잘 알고 있는 것을 써서 작업하는 것이 가장 쉽고, 또 제게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뿐만 아니라, 제가 작업하기로 결정한 글들은 보통 제게 있어서 매우 개인적인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글들이에요. 저만의 경험과 기억을 상기시키는 글들이지요. 저는 직접 찍은 사진이나 가족 사진을 자주 써요. 아니면 라파엘의 사진들도 쓰지요. 물론 라파엘의 허락을 받고요. 그래서 제 책에는 저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 혹은 제가 아는 사람들이 등장해요. 『세네갈의 눈』에서도 그랬어요. 그렇다고 전부 저와 제 개인사와 관련이 있다는 말은 아니에요. 책에서 스쳐 지나가는 어떤 순간들이 그런 것이지요.


그럼 작가님과 가장 가까운 가족이자 번역가인 라파엘 콘세이요와의 소통 안에서 새로워진 이미지도 있을까요?

네, 라파엘은 제 남편이죠. 하지만 이 원고에 대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각자 아르투르를 알고 있고, 우리 둘 다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둘이서 작업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를 만났던 일을 회상하는 등 샛길로 흐르기 일쑤였지요. 정작 글에 대한 이야기는 옆으로 미뤄 둔 채로요. 그래도 이야기를 하긴 했어요. 번역을 하면서 텍스트 부분부분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도 했어요. 라파엘은 단어 선택이 고민되는 지점을 이야기했고요.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그림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어요. 저는 그림으로 서사를 구성하기 위해 무조건적으로 제 자신의 느낌에 집중해야만 해요. 작업을 위해 어떤 특정인과의 대화가 필요하지는 않아요. 글 저자는 자기가 할 말을 글로 다 썼고, 번역자는 자신의 최선을 다해 번역을 마쳤으니까요. 저는 그들의 작업에 믿음을 가지고 있고, 그들이 저에게 주는 것을 받아들여요. 그러고 나서는 저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이미지 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작가님의 작품에는 책갈피 요소도 다양하게 등장해요. 이번 작품에선 유독 꽃갈피가 눈에 띄었습니다.

저는 서사 안에서 나오는 요소들을 그림에 더하는 작업을 좋아해요. 꽃갈피는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에요. 저는 책장 사이에 나뭇잎이나 다른 식물들을 끼워 넣곤 해요. 말리고 보존하기 위해서죠. 예뻐서,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것도 있고요. 제가 아주 잘 찾는, 네 잎 클로버도 많죠. 저는 책장을 넘기다 그런 과거의 작은 흔적들을 우연하게 발견하는 것이 좋아요. 가끔은 어떤 기억과 맞물려서 지나간 순간을 불러내기도 하지요.


옛 사진 같은 그림 속 이름 모를 곳들은 세네갈일까요 프랑스일까요, 아니면 폴란드의 전원 풍경일까요?

제가 그리는 풍경은 이 지구상의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는 장소예요. 그것이 어디인지는 특별한 의미가 없어요. 왜냐하면, 예를 들어 저는 폴란드를 떠올리며 그렸지만 이 책을 보는 누군가는 자신이 다른 곳에서 본 다른 풍경을 연상할 수 있으니까요. SNS에서 제가 ‘누군가의 기억을 그린다’는 댓글을 본 적이 있어요. 그건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제가 다른 이의 기억을 어떻게 볼 수 있겠어요, 그것도 제가 모르는 사람의 기억을요. 저는 그저 제 그림이 사람들 속에서 잊혀진 어떤 현을, 아주 예리하고 중요한 현을 움직인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러면서 가까운 감정이 생겨나겠지요. 독자와 제가 서로 연결되었다고 느끼는 그런 마음이요. 어쩌면 그런 연결이 정말로 있을지도 몰라요. 우리 모두는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같은 사람이니까요. 어떤 장소의 풍경을 제가 정확하게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풍경을 그릴 때 시작점은 진짜로 존재하는 장소예요. 그 풍경을 서사에 필요한 대로 변형시킬 수는 있겠지요. 무언가를 바꾸기도 하고 빼기도 하고 더하기도 하면서요. 서사뿐만 아니라 화면 구성에 따라 변할 때도 있어요.
마지막으로, 사계절출판사 편집부가 이 책을 이렇게 따뜻하게 받아들여 주셔서 감사하다고 꼭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그렇게 받아들여 주셨으면, 그 내용에 각자의 감동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이 책 작업을 하며 그렇게 마음에 잔향이 남았던 순간들이 많았어요. 제 책이 한국으로 긴 여행을 떠나, 한국의 독자들이 읽고 볼 수 있음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