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서평단] 너의 길, 나의 길, 우리의 길! - 이송현의 라인

두 소년이 줄을 타고 있다. 표지를 자세히 보면 아래쪽은 우리나라 전통 줄타기를 하는 주인공 '이도'의 모습이고, 위쪽은 우리나라 전통 줄타기에 매료되어 독일인이 익스트림 스포츠로 만들어낸 독일의 슬랙라인을 타는 주인공 '이율'의 모습이다.



열여덟 살, 두 소년은 쌍둥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병원에서 같은 날 태어났고, 이도를 낳은 부모가 소리없이 사라지는 바람에 이율의 부모는 이도와 이율을 쌍둥이이자 형제로 키웠다.



그들은 왜 줄타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소설의 초반에서는 친아들인 이율이 트램벌린에서 줄타기 연습을 하다 머리를 다치는 것으로 시작된다. 평소 사고 한 번 없이 성실하고 모범생인 이도와 달리 이율은 지극히 평범하다. 자주 사건사고를 내다보니 율은 엄마와의 갈등도 자주 겪는다.

율은 그런 엄마를 '백발 마녀'라고 부른다. 일방적이진 않다. 율의 엄마 역시 아들 율과 자주 갈등하는 것을 솔직히 인정한다. 심지어 아들에게 같은 자식이라도 전생에 은혜를 입어 맺은 인연이 있고, 지독한 원수가 현생에서 만나는 악연도 있다고 말한다.

이들의 갈등이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몸으로 낳은 아이와 마음으로 낳은 아이를 함께 키우며 부모로서의 마음이 어떠할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늘 담대하고 호탕하게 두 아들을 대하는 엄마의 모습은 든든하기도 하다. 심지어 좋은 직업에 연금까지 보장되는 공군 남편과 갑자기 사별하며 힘든 상황에서도 쿨하게 받아들이고 꿀리지 않게 살아가는 점이 멋있기도 하다.



이도와 이율이 열 네살 때였던가, 아버지는 민속촌에서 줄타기 체험을 하게 했다. 사춘기가 되면서 급격하게 말수가 줄어들던 이도가 줄타기를 배워보고 싶다고 한 이유를 이율은 나중에야 깨닫는다. 자신은 그저 아버지 없이 살아내기 위해, 공포를 이겨보려는 몸부림으로 줄을 탔다면, 이도는 달랐다. 점점 이목구비가 뚜렷해지며 혼혈아임을 한눈에 알아보게 되면서 이도를 바라보는 친구들, 동네 사람들은 쌍둥이라면서 왜? 라는 의문의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도가 입을 닫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줄을 타며 오히려 위태로운 줄 위가 더 낫다는 걸 느낀다. 줄 위에서는 타인의 시선과 말을 떠나 그저 자신의 길을 걸어가면 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목적이 다른 줄타기는 한동안 서로를 힘들게 하는 일들도 생기지만, 갈등을 해소하고 서로의 마음을 토닥이는 과정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따스하게 전개된 점이 참으로 훈훈한 대목들이었다.

이제부터 네가 타는 줄과 내가 타는 줄, 똑같을 거야.

절대 줄 위에 널 혼자 내버려두지 않을 거니까.

이율이 이도를 향해 한 말(185p.)



이 작품에서 눈여겨봐야 하는 인물들 중에 이도와 이율의 부모가 있다.

입양을 하고 나면 으레 전개되는 일처럼 이도의 친모가 나타나는데, 그녀 앞에서 당당하게 이도를 내어줄 수 없다고 말하는 엄마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아이를 버리고 갈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줄타기로 유명해지고 언론에 오르내리니까 '내 아들'이라며 찾아온 그녀를 독자들은 아마 그 누구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는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그녀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통쾌했다.

난 세상에서 이런 신파가 제일 짜증 나요. 도는 절대 못 주니까. 그럼 얘, 율을 데려가요. 얜 내가 직접 낳은 애니까. 나도 남이 낳은 아들 18년 키웠으니, 당신도 더도, 덜도 말고 쟤 18년 데리고 있다가, 쟤가 서른여섯 살 되면 그때 봅시다. 그때 만나서 우리 얘기합시다.

208쪽

우와, 어느 누가 친아들 앞에서 입양아들의 친모에게 이런 말을 통쾌하게 날릴 수 있을까? 상당히 이성적이고 명쾌한 도와 율의 엄마가 훌륭해보이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이 부분을 목격한 아들 율은 멋진 엄마의 매력을 제대로 알아보는 부분이어서 감동적이다.



교육관 역시 훌륭한데, 두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 교사가 이도의 외모만 보고 아역배우로 추천하며 혼혈아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엄마는 당장 도와 율을 전학시키는 일이 있었다. 학교는 성장의 발판이 되는 곳이어야 하는데, 아이들의 겉모습만으로 판단하고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다면 다닐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요즘 찾아보기 쉽지 않은 '올바른 시력을 가진 학부모'이자, 학교의 부당함에 정면승부하는 용기있는 학부모의 모습이었다.



또한 일찍 떠나서 너무나 안타깝지만, 아버지가 이도를 격려한 대목도 인상적이다. 이도를 버려진 애라느니 반반 섞인 짬뽕이라느니 놀려대는 아이의 코를 박살내는 일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이도를 위해 수시로 그가 안심할 만한 말을 해줬다. 이도가 선택받은 게 아니라, 아버지가 이도에게 선택받은 거라고 말이다. 마음으로 낳은 아들이 겪을 법한 정체성의 혼란을 걱정하며 미리 마음을 헤아리고 따스하고 든든하게 옆 자리를 지켜줬던 아버지의 모습은 독자의 마음까지도 뭉클하게 만든다.



각자의 줄을 타던 이도와 이율은 서로 다 이해하지 못했던 마음을 알아가며 함께하는 무대를 마련한다. 전통 줄타기와 슬랙라인의 만남이고, 백인 혼혈인이 타는 전통 줄타기와 순수 한국인이 타는 독일형 슬랙라인이 콜라보하는 공연!



각자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줄타기이지만 이제는 완전히 승화된 새로운 줄타기가 된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오르는 도와 율은 행복감에 젖어든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의 상황과 내면적 요소들을 다양한 갈등과 인물간의 관계로 풀어내고 마지막엔 이렇듯 아름답고 완벽한 공연으로 마무리한 점에서 완벽한 순간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반드시 혼자 설 수 있게 된다. 이 시기만, 이 터널만 지나면 누구든 혼자 서는 법을 알게 된다. 그것이 줄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셋, 두울, 으랏차!

도와 율의 합동 공연 (231p.)

이 책은 남학생들의 성장소설로 아주 적절한 것 같다. 형제이자 친구, 부모와 자식, 교사와 학생 그리고 로맨스까지 골고루 아주 적절하게 스토리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두 주인공이 각자 하는 줄타기만의 특징에서도 두 아이들의 고뇌와 꿈을 살펴볼 수도 있는 작품이다.



★ 생각해보고 싶은 것들..

내가 이율의 엄마라면 병원에서 버려진 아이를 데려와서 키울 수 있었을까?

부모와 이율이 이도를 친아들, 친형제처럼 대하려고 노력했으나, 이도는 자신의 외모가 그들과 다르고, 출생비밀도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그런 이도에게 줄타기는 어떤 의미였을까? (+우리는 무엇을 통해 자신만의 길을 올곧게 걸어갈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이도의 전통 줄타기와 이율의 슬랙라인이 가진 특징으로 두 주인공의 생각이나 고뇌, 희망 등에 대해 비교해보자.

이도의 외모만 보고 내세우기에 급급한 어른(교사)과 아들의 유명세를 보고 친모라 밝힌 어른의 모습을 인간성에 비유해서 비판해보자.

이도와 이율의 합동공연이 우리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