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이야기] 편집자의 시대




일본의 인문 출판사 미스즈서방에서 35년간 편집자로 일한 가토 게이지 선생님의 회고록을 작업했다. 가토 선생님과는 동아시아출판인회의를 통해 여러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다. 2007년 타이완에서 처음 뵈었고, 이후로도 몇 년에 한 번씩 회의 자리에서 인사를 드렸다. 그러나 대화다운 대화는 한 번도 나누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언어 장벽이었지만, 잔잔한 미소를 띤 기품 있는 모습이 어딘가 다가가기 어렵다는 느낌도 있었다. 내가 훗날 선생님의 회고록을 작업할 줄 알았다면, 선생님이 일본 사회의 지적 성장을 이끈 주요 편집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서툰 영어로나마 이런저런 질문을 해볼 것을 그랬다.
1946년에 창립한 미스즈서방은 한나 아렌트, 카를 슈미트, 레비스트로스, 롤랑 바르트 등 서구 지성들의 저작을 번역 출간하는 한편 마루야마 마사오, 후지타 쇼조 등 당대 일본 사상가들과도 활발히 교류해온 일본의 저명 출판사이다. 1965년부터 이곳에서 편집자로 일한 가토 선생님은 중간쯤에는 2대 편집장, 마지막에는 대표로 일하신 뒤 2001년에 퇴임하셨다. 퇴임 후에는 이와나미의 오쓰카 노부카즈 선생님, 헤이본샤의 류사와 다케시 선생님과 함께 동아시아 지역 출판인의 협력을 도모하는 동아시아출판인회의를 조직하고 초대 회장을 맡았다. 평생을 읽고 쓰며 책 만드는 사람으로 살았던 가토 선생님은 2021년 4월 이 책의 마지막 교정을 보던 중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개인의 회고록이지만, 1940년생인 한 편집자의 일대기를 통해 전후 일본이 사회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출판물이 쏟아져 나오고, 그것을 읽고 자란 한 세대가 출판의 황금기를 이끌며 사회에 새로운 지식과 담론을 공급하는 과정을 담은 역사적 기록으로도 읽을 수 있다. 이와나미소년문고, 『소년아사히연감』, 『어린이의 과학』 등을 탐독하며 일찌감치 독서가의 길에 들어선 가토 선생님은 1960년 도쿄대학에 진학해 격렬한 학생운동의 현장 한가운데 놓인다. 폭력에도, 권력에도 취약한 자신을 보며 “그렇다면 한순간의 용감함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저항을 지속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품게 되는데, 이후 편집자로 일한 35년의 인생을 통해 스스로 그 답을 찾아가신 게 아닐까 생각한다.
편집자에도 여러 유형이 있을 텐데, 이 책에서는 ‘지식인으로서의 편집자’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일례로 서구 사상가들의 저작을 번역 소개하는 데 여념이 없던 1960년대에 가토 선생님은 당시 편집장이었던 오비 도시토에게 “편집장님, 세계의 절반은 이슬람입니다”라며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책들을 펴내자고 제안한다.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미스즈서방은 1960~70년대에 걸쳐 버나드 루이스의 『아랍의 역사』 등 여러 권의 이슬람 관련 서적을 의욕적으로 펴내고, 이는 이후 일본 사회에서 ‘오리엔탈리즘 논쟁’을 촉발하는 바탕이 된다. 한 발 앞선 기획을 선보였던 미스즈는 잠시 머뭇거리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의 판권 계약을 헤이본샤에 빼앗기고 마는데, 그 일을 회고하는 가토 선생님의 글에서 여전히 아쉬움이 느껴져 읽을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당대의 주요 사상을 발 빠르게 번역 소개하는 편집자와 번역가, 출판사의 크고 작은 노력이 소개되어 있고, 마루야마 마사오 등 일본의 현대 사상가들이 편집자와 어떻게 함께 일했는가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일화도 많이 등장한다. 뒤표지에 “저자와 함께 한 사회의 지적 성장을 오롯이 책임진”이라는 말을 써보았는데 ‘오롯이’라는 말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당당한 편집자의 위상을 볼 수 있다.
나는 물론이고, 한국에는 아마 이런 유형의 편집자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직이 잦고 각자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환경에서 이렇게 성장하기도 어렵지만, 누군가 이만큼의 역량을 갖춘 편집자로 성장했다 하더라도 그의 기획을 출판사가 받아들이고 그 결과물로 나온 책을 충분한 수의 독자가 읽는 선순환 구조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책의 표지 회의 때였던가, 마케팅 회의 때였던가. 초판을 얼마나 찍을지, 표지에 후가공을 해도 될지, 정가를 더 올려도 괜찮을지 등등 숫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던 중에 내가 “여러분, 이 책에는 손익분기니 비용 절감이니 하는 말이 한마디도 안 나와요! 정말 꿈같은 출판사 아닌가요?!”라고 외친 적이 있다. ‘인문서의 벨 에포크’라 불리던 시기의 미스즈서방이라 하더라도 손익분기를 따져가며 일했겠지만, 그것이 어떤 기획을 확정하고 추진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3000부 이상 팔리지 않는 책은 낼 수 없다”며 다른 출판사에서 거절한 책을 미스즈가 받아서 낸 일은 나와도 비용 때문에 무슨 일을 포기했다는 회고는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아래 카드뉴스에 나오는 『현대사 자료』와 『속‧현대사 자료』 같은 작업을 보면 비용 생각을 아예 안 한 것 같기도 하다).
요즘 우리는 ‘+’가 되지 않는 여러 지표들을 보며 포기하는 일들이 많다. 번역 왕국, 출판 왕국으로 불리던 일본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인문계 학과들이 폐지되고, 국내 대학에서 연구자를 키워내지 못하고, 인문서의 초판 부수가 줄어들고, 절판 시기가 빨라지고……. 여러 가지 소식들이 차곡차곡 쌓여 우리에게는 어떤 체념의 정서 같은 것이 감돌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또 사회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우직하게 일하는 것이 이 일이 지닌 낭만 같은 것 아닐까. 보도자료의 마지막 부분을 아래와 같이 써놓고 팀 동료들에게 “보도자료를 이렇게 끝내면 너무 쓸쓸한가요”라고 물었더니 한 분이 “아, 저물어가는군요”라면서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가 생각난다고 했다. 결국 보도자료는 고치지 않았고, 쓸쓸하지만 낭만을 품은 채 또 다음 책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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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의 경력 가운데 “마지막 무렵에는 그늘이 있었다”(5쪽)라는 저자의 언급처럼 일본에서도 더 이상은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 이 책은 개인의 회고를 넘어, 인문 출판이 꽃을 피웠던 한 시대를 증명하는 역사적 기록으로도 읽을 수 있다. “미스즈서방의 구사옥이 있던 삼각형 토지는 지금은 24시간 코인 주차장이 되어 몇 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다. 책 만드는 일에 홀렸던 사람들의 꿈의 흔적을 보여주는 현대의 풍경이다”(176쪽)라는 저자의 다소 쓸쓸한 회고처럼, ‘꿈같은 출판사’를 여럿 가졌던 일본이나 그런 기억조차 거의 없는 한국이나 이제 인문서 출판의 현장에는 꿈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 편집자 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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