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해설] 아가미에 손을 넣으면
- 2025-07-28 15:33:34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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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 『아가미에 손을 넣으면』
발견하는 눈, SF
글 * 송수연(어린이청소년문학 평론가, 제11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심사위원)
문학은 ‘발견’이다. 발견이라는 단어의 핵심은 대상이 이 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그러니까 이미 있었지만 인지되지 않았던 것을 새롭게 감지하는 것이 발견 인데, 이는 문학이 오랫동안 담당해 온 일이기도 하다. 문학 은 우리 주변에 늘 있지만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 혹은 보지 않았던 것을 새롭게,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를테면 문학은 꽃이 피는 순간을 포착한다. 세상만사에 쫓겨 만개한 꽃을 무감한 눈으로 스쳐 지나가는 우리에게 문학은 봉오리 앞에 오래 쪼그리고 앉은 이만 볼 수 있는 개화의 순간을, 만개와 낙화로 이어지는 꽃이라는 우주를 경이로 보여 준다.
제11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에는 총 네 명의 작가가 쓴 다섯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각기 다른 작가의 다른 이야 기가 공교롭게 다양한 발견의 순간을 포착한다는 사실은 어 린이청소년SF로 한낙원과학소설상이 걸어왔던 길과 지금의 자리, 앞으로 걸어갈 길을 보여 주는 것 같아 새삼 의미심 장하다.
대상 수상작 「아가미에 손을 넣으면」은 케토라 행성에 불 시착한 지구인 유나를 만난 케토라 행성인 ‘나’의 이야기다. 외계 생명체와의 만남은 SF에서 비교적 많이 다루는 소재 로, 보통 지구인이 만난 외계 생명체를 이야기한다. 영화 〈에 일리언〉으로 대표되는, 지구인이 바라본 외계 생명체는 공 포와 혐오를 상징한다. 알 수 없는 타자를 두려움으로 포착 하는 방식은 날카로운 이빨도 힘센 앞발도 두터운 가죽도 없는 인간이 생존을 위해 오랜 시간 자신의 유전자에 새긴 생존 방식이기도 하다. 문제는 인류가 벌거벗은 원시 상태 를 넘어 소위 ‘만물의 영장’이 되고 마침내 ‘인류세’ 시대를 열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타자를 ‘관계의 그물’ 속에서 바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아가미에 손을 넣으면」은 인류의 오만과 배타성이 불러 온 인류세 시대와 종말이라는 현재 우리의 자리를 염두에 두고 읽을 때 더욱 종요롭다. “지금 나는 유나를 위해 특별 설계된 공간에서, 물이 채워진 우주복을 입고 이 애의 생김 새를 알아보려 애쓰고 있다.” 소설은 케토라인이 본 적도, 알수도 없는 외계 생명체인 지구인을 ‘알아보려 애쓰는’ 장면 에서 시작한다. 케토라인은 아가미 대신 코라는 것을 가진, 물 밖에서 사는 지구인과 소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한 다. 타자와 소통하기 위한 노력은 닮은 게 하나도 없는 나와 유나의 접촉을 ‘감탄’과 ‘경이’로, 마침내 ‘아름다움’으로 포 착한다. 외형도 삶의 방식도 언어도 다른 두 존재의 만남이 두려움과 공포가 아닌, “감격 어린 환호”가 될 수 있다는 사 실을 담담하게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의 가치와 의 미는 충분하다.
「나란한 두 그림자」는 저승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이야기 한다. 죽은 사람들이 갑자기 현실로 귀환한다는 설정은 외 계인과 접촉하는 일만큼 낯선 일이다. 핵심은 이 낯섦을 대 하는 사람들의 방식이다. 사람들은 이 상황을 “이상 현상” 으로 정의하고 정부 기관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들을 조사한 다. 쉽게 파악할 수 없는 대상은 살아 있음에도 ‘유령’으로 불리고,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유령보호소’가 만들 어진다. 환향녀나 게토를 떠올리게 하는 이 모습은 무지가 어떻게 두려움과 공포로 전화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 무 지가 어떻게 인류의 역사에 길이 남을 폭력으로 둔갑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 모든 혼란 속에서도 주인공이 자신의 앎이 얼마나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이었는지를 깨닫고 변화 를 다짐하는 결말은 믿음직하다.
「몽유」는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다행으로 받아들여 야 하는 상황에 놓인 인물이 흔들림과 자책, 질투 등 복잡한 감정과 상황을 넘어서는 과정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로봇 몽유병’이라는 설정이 흥미롭고, 자신과 달리 창창한 미래 를 가진 친구 세나가 보여 주는 정의감을 못내 삐딱한 시선 으로 볼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심리를 잘 그렸다. 하지만 ‘우 리가 꾸는 악몽은 개꿈이고 살인 로봇의 소유자가 꾸는 꿈 은 정말 살인을 소망한’ 결과물이라는 인물들의 이해는 소 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사뭇 어긋나는 발언으로 보여 이 해하기 어려웠다. 물론 ‘내 개꿈을 내 로봇이 그대로 행동으 로 옮기면 소름 끼치겠다’는 발언이 뒤따르기는 하지만 세 나가 자신의 인생 첫 시위가 ‘살인자의 엄마’ 때문에 망했다 며 투덜거리는 장면과 겹쳐지면서 이 부분의 사유가 끝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고백 시나리오」는 재미있는 연애 소동극이다. 로봇과 휴 머노이드가 사람의 일을 대행하는 게 자연스러운 근미래. 주인공 나인은 남사친 정후를 남친으로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로봇 고백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고, 고백 에 성공한다. 하지만 고민을 받아들이는 순간의 정후를 직 접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자신에게 비어 있는 그날의 기 억이 성가시게 발목을 잡아 불편하다. 여기에 예상하지 못 했던 곳에서 사고가 터지면서 나인이 고백 대행 서비스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정후가 알게 되어 버린다. 소설은 진심 은 무엇인가, 나의 진심은 어떻게 상대에게 전달되는가, 하 는 무거운 질문을 재미있게 던진다. 하지만 진심은 통한다 는 후기만 믿고 모든 걸 고백봇에게 맡긴 자신의 행동을 후 회하며 스스로 고백하기로 결심하는 결말은 읽기에 따라 결 국 로봇으로 진심을 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로봇은 인 간과 근원적으로 다른, 기능적인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해 아쉬움이 남는다.
「플루토」는 한때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이었던 명왕성 (플루토)이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왜행성 134340이라는 번호를 부여받기까지의 과정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소년 마빈은 이사 간 동네에서 “살짝 맛이 간” 혹은 “마귀할멈”이라고 불리는 옆집 할머니 베티와 친구가 된다. 스스로 “별에 미쳤”다고 말하는 베티와 친구가 되면서 마빈은 수많 은 별과 별에 숨은 빛나는 이야기들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이 실제 교류한 시간은 유성처럼 짧게 끝나지만, 소설의 결말 은 나이와 시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는 우정의 모습 을 보여 준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단다. 플루토가 인간에 게 발견되기 전부터 거기에 있었듯. 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 로이듯. 각자의 별에서 빛나자.” 베티의 편지는 늘 함께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모습이나 결말이 아니어도 우리는 친 구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SF는 언제나 발견하는 눈이었다. 외계 생명체부터 행성 (별), 우주에 이르기까지 SF는 가장 낯선 대상을 두려움을 넘 어 아름다움으로 새롭게 발견했다. 무릇 타자에게 다가가는 방식은 항상 조심스럽고 섬세해야 한다. 유나가 ”내 아가미 에 손을 살짝 넣는 것”처럼 어색하고 어려워도 내 방식이 아 니라 상대의 방식으로 다가가는 태도, 타자의 ‘모든 것을 경 이’로 발견하는 눈이 SF다(「아가미에 손을 넣으면」). 원래라는 말을 내려놓고, “내 멋대로 판단할 게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 꼼꼼히, 그러나 천천히 배우”고자하는 게 SF다(「나란한 두 그림자」). 타인에게만 허락된 듯한 “창 창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적의를 넘어 상대의 눈 속에 담긴 나를 읽는 것(「몽유」), 상처받을 게 두려워도 “빙빙 에워가는 대행 대신 직행을 선택”하자고 마음먹는 게 SF다(「고백 시나 리오」). “먼지보다 조금 더” 큰 아이를 “새로운 행성을 발견한 기분”으로 대하는 것(「플루토」), 알지 못하는 수많은 대상에 서 적의 대신 가능성을 읽는 것이 SF다.
어느새 11회를 맞이한 한낙원과학소설상이 그동안 발견 한 숱한 타자의 얼굴과 이름을 그려 본다. 서투르고 무지하 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상대를 내치는 대신, 타자의 이름 을 정확하게 부르기 위해 서툴지만 애써 조심스레 내디딘 발자국들을, 작지만 소중한 목소리들을 떠올려 본다. 혼자 빨리 가기보다 함께 천천히 가는 쪽을 선택한 사람들의 숨 결을 되짚어 본다. 그 모든 순간이, 작은 호흡이 모여 오늘 이 책에까지 도달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우주가 될 수 있다. 이 작은 온기가 나와 당신을, 우리의 아이들을 살게 할 것이 다. 그것이 SF이고 문학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