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서평단] 모로의 내일 - 절대적이고 상대적인 다양한 정체성을 보듬는 삶

절대적이고 상대적인 다양한 정체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해볼 수 있게하는 책 같다. 다섯 편의 소설에서 만나는 인물들의 경험들을 더이상 낯설게 바라보지 않는 건 아마도 작가들의 진솔한 마음이 담긴 스토리들이기 때문 아닐까.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들이 조금은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지구상에 살아가는 그저 같은 인간이란 생각을 진지하게 하며 읽어본다면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이들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게 아니라 공존하는 삶 그 자체로 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1. 선택 - 이선주

청소년 소설 작가에게 한 학부모가 민원 메일을 보낸다. 비혼에 대한 내용이 담긴 책을 청소년 소설이랍시고 내놓은 것은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민하지 않는 책임감 없는 어른이라는 지적이있다. 과연 그럴까. 작가가 고민해야하는 게 정해진 답을 이끌어내는 글쓰기일까? 나쁜 사상을 세뇌시키려는 심보가 아니고서는 어느 작가도 청소년들이 잘못된 사상을 갖도록 하기 위해 글을 쓰는 건 아니라고 반론하는 그 마음에 힘을 보태고 싶어졌다.


2. 모로의 내일 - 최영희

친구들 세 명에게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평소 성향과는 너무나 다른 행동으로 심지어 경찰에게 잡혀가는 일까지 생긴다. 모로는 일상과는 괴리가 있는 이 사건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료진과 언론인들은 그저 성장기의 혼란과 정서적 고립감을 SNS나 게임 등으로 해소하는 청소년들이 감정 조절을 어려워하며 생기는 돌발행동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런데 청소년만이 아닌 유아들에게도 같은 현상이 발생하자 모로는 분명 뭔가 감정을 조종하는 것이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처음엔 공감하지 않던 담임도 조카마저 같은 증상을 겪자 적극적으로 모로와 함께 원인을 찾기 시작하는데...

환청같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공통점은 그 행동 이전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며 행동을 스스로 통제하기 힘들었다는 거다.

모로는 암시와 최면을 불러온 힘을 '꼰대들의 목소리'로 통일한다.

'나 때는 말이야....!!' 가 불러온 정신과 행동 조종 현상인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지혜롭고 너그러워져야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인해 정신적으로 힘든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문득 나도 나이들면 저러면 안되는데 하는 걱정이 생기기도 한다. 꼰대의 잔소리나 참견이 아닌 진정 후대를 아끼고 존중하는 인자함을 갖춘 어른이 되고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갖게 하는 소설이다.


3. 행성어 작문시간 - 최상희

무대는 지구가 아닌 우주다. 수많은 행성에서 사용하는 각기 다른 언어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강자와 약자, 번성하는 행성과 쇠퇴하는 행성. 요킨네 가족도 더이상 살아가기 힘든 '구오진'에서 '헤카테'로 이민온 상태다. 행성어 학교를 무사히 졸업해야 헤카테의 정규 학교에 진학이 가능한데 깐깐한 조우마린 작문선생님의 강의는 2년째 재수강 중이다. 새로운 사회로 진입하기 위해 필수로 알아야 하는 것이 언어인 것은 맞지만, 단순히 언어를 배운다는 것에 더해서 작문 과제를 매번 통과해야 한다는 것은 요킨에게 참 버거운 일이었던 것 같다. 최소한 열 문장 이상, 한 페이지를 채워야 하는데, 늘 딱딱하게 대하던 조우마린 선생님은 그날 따라 조금 상세히, 그리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완전히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없지만 기억을 통해 모든 것을 나 자신으로 남아있게 해준다는 말은 이주민의 입장에서 새로운 사회에 편입하기 힘든 요킨과 사실은 자신도 이주민인 조우마린 선생님 자신에게 해주는 위로의 말과 같이 들린다.

그동안 많은 이주민들이 헤카테 행성에 모였다. 이주민 정착을 지원하는 사회체제도 마련되어 있기에 힘든 통과의례라도 열심히 해내리란 희망과 의지를 갖고 살아가는 이주민들이었는데, 점점 토착민들은 반기를 든다. 마치 우리 시대에도 볼 수 있는 난민수용에 대한 반대 입장과 유사해 보이는 양상이 이곳 헤카테에서도 점점 확산되기 시작한다.

마지막 작문 과제는 'OO하는 법'이다. 발표의 마지막 순서로 요킨은 '화물칸에서 살아남는 법'이란 글을 발표한다. 화물칸에 몸을 싣고, 구오진을 떠나 헤케테로 오기까지의 여정 속에 담긴 살아남은 이들의 기적과 삶의 단면들은 이들을 거부하는 헤카테인들의 이주민 정책 지원 반대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준다. 우린 과연 누군가를 품어줄 수 있는 아량을 가졌을까...


4. 안녕! 정신 나간 천사 - 황영미

웹소설이 한창 인기를 얻고 있을 때였다. 나는 시골에 살다 서울로 이사온 전학생으로 사투리가 튀어나올까봐 늘 주눅들어 있던 그때 <정신 나간 천사>라는 웹소설의 주인공 '강재경'에게 빠져든다. 십대 소녀 시절 누군 한번 쯤은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속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 경험이 있지 않을까? 작품 속 '나'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등장인물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를 점찍어보기도 하며 어쩌면 그를 좋아하면서 삶의 활기를 찾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너무나 강재경과 많이 닮은 J를 만나 좋아하게 된다. 소위 썸을 탄다는 표현이 더 맞으려나? 같은 말을 해도 사람 마음을 더 흔들어 놓는 J, 그 사람의 한 마디에 내 삶이 바뀌어버리게 만드는 J앞에서 '나'는 청순가련형의 전형적인 여주인공이 된 기분으로 J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그런데.. 점점 하나씩 얼음송곳같은 것이 마음을 지르고 들어오는데.. 어쩌면 가치관의 차이일 수 있으나 가난하면 무용도 배우기 힘들고 해외 유학도 가기 힘들다는 것이 당연한 원칙이라 여기는 이들 앞에서 점점 '나'는 J에 대한 마음이 식어간다. 정작 자신을 좋아해서 자신과 만난게 아니라 자기를 좋아한다니까 만나준 나쁜 자식인거다. 시골 출신이라 비아냥거리는 말투 안에서 더이성 '나'는 J를 바라볼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것이 곧 십대에 마음을 휩쓸었던 <정신 나간 천사>에 대한 이별 통보이기도 한데, 오히려 독자로서는 진작에 내던져버려야 했던 것 아닌지, 왜 그렇게 늦게 깨달은 건지 답답함에 한참을 씩씩대게 만들었다. 숭상했던 작가의 작품이 늘 가지고 있었던 레파토리를 뒤늦게 현실 속에서 깨달은 '나'에게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J를, <정신 나간 천사>를, 그 작가를 잘 걷어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5. 너와 함께 트와일라잇을 - 조우리

제목에 있는 트와일라잇! 그렇다 인간 벨라가 뱀파이어 에드워드와 사랑에 빠진 로맨스 판타지 영화!! 설마하며 읽었다. 게다가 항상 두통에 시달리는 나의 미간을 이영이가 어루만져준 다음부터 신기하게 두통이 사라지고, 영이가 스스로를 뱀파이어라고 밝히는 부분에서는 실소가 나오기도 했다. 뭐야, 진짜 그 트와일라잇? 그런데, 컨셉이 다르다. 다양한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이 책의 출발점이란 점에서 본다면, '나'의 엄마가 가진 성 정체성으로 인해 부부의 관계가 끊어지고, 세상에서 단 둘만이 서로를 알아볼 수 있게 되어버린 영이와 '나'의 실체로 인해 결국 '나'는 홀로 어른이 되어간다. 그러나 작가는 결코 성 정체성이 다름으로 인한 실패의 모습으로 그리지 않는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된 이후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그저 담담하게 서술한다. 그래서 처음엔 이상했다가도 안타카운 마음이 더 많아진다. 이상적인 가정을 꿈꿨다가 절망에 빠진 아빠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고 가족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갖지만 자신의 삶을 선택한 엄마도 그리고 인간이 아닌 영생의 존재로서 자신만의 삶을 꿋꿋히 살아가는 주인공 솔이의 모습도 어느 하나 비난하고 싶지 않고 그저 신경이 쓰이게 하는 작가의 글이어서 계속 마음에 남는다...


평범하다는 표현의 기준이 무엇일까? 그저 지끔껏 일반적으로 생각해온 것들이 평범하다는 것으로 정하고 싶다면 표현상의 양해를 구해서 평범하지 않은 인식과 가치관이 우리 삶에서 많이 드러나고 있고 작품 속에서도 다양하게 다뤄지고 있는 현상이 결코 감출 일은 아니란 생각에 동의한다. 다만, 누구의 탓이 아닌 각자의 삶 그 자체를 서로가 존중하는 사회로 성장하면 참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