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발표

제16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이 결정되었습니다.

정은, 「산책을 듣는 시간」

심사는 오정희(소설가), 김지은(문학평론가), 김선희(소설가, 제11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자) 선생님이 고생해 주셨습니다.
당선자에게는 개별 통보하였고, 작품은 2018년 8월 사계절1318문고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사계절문학상에 응모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16회 사계절문학상 본심 심사평


제16회 사계절문학상 응모 원고를 읽으며 과연 청소년소설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고민했다. 일반소설과 동화의 중간이라고 하기에는 현재 청소년소설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번 응모작들 중에는 청소년소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작품이 많았다. 아무리 읽어도 청소년의 삶과는 무관한 작품이라든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작품, 지나간 청소년 시절을 단순히 회상한 작품, 지나치게 청소년을 미화한 작품 등 청소년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가볍고 단순하게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풀어 가는 작품들이 많았다. 어른이나 어린이 시기가 그들의 고유한 세계라면 청소년기도 그들 고유의 세계이다. 나이 먹은 사람들이 청소년들의 세계를 작품 속으로 끌어오기 위해서는 지나간 추억을 되짚어 보거나 청소년들을 미루어 짐작하기보다는 청소년들의 삶을 최대한 그들의 눈으로 들여다보고 그들 속으로 들어가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질풍노도의 시기로 정의하고 쓴 작품은 청소년이라고 하는 독특한 세계의 심층보다는 표피를 다룰 수밖에 없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본격 문학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요즘, 청소년소설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나 작가 지망생들의 열정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앞으로 ‘과연 청소년소설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해 주리라 기대해 본다.

본심에 오른 다섯 편의 작품들은 작가들이 비교적 오래 고민하고 공들여 쓴 흔적이 역력했다. 어부가 한 땀 한 땀 그물을 꿰매듯 한 글자 한 글자 진심을 다해 써내려 갔을 작가들의 노고에 존경을 보낸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 중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산책을 듣는 시간」을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다음은 본심에 오른 각 작품에 관한 의견이다.

「토요일, 그리다」는 한 편의 잔잔한 수채화 같은 옅은 농도의 작품이다.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씩 언니의 비밀을 향해 다가가는 쌍둥이 동생의 행로를 통해 결국에는 자기 자신의 본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언니와 주인공에 대한 심리 기반이 약해 주인공이 언니의 행로를 따라가야 했던 이유, 언니가 아무도 모르게 토요일마다 화실에 다녀야 했던 이유가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아무리 쌍둥이지만 주위 사람들이 감쪽같이 속는다는 것도 공감하기 어렵다. 무리 없이 읽히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분량에 비해 이야기가 단순한 것도 아쉬웠다.

「그 여름의 섬」은 시종일관 안정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서사의 힘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작품은 섬이라고 하는 공간이 주는 전형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약점을 갖고 있다.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 집을 떠난 부모, 그 집에 홀로 남아 섬을 지키는 소년의 이야기는 우리가 연상할 수 있는 구조 안에 갇혀서 더 이상의 확장을 보여 주지 못한다. 지나치게 감상적인 묘사나 감정 과잉도 아쉽다. 주인공이 섬에 머무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부모를 기다리거나 할머니를 대신해 섬을 지키는 이유 말고 주인공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언어의 그늘」은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듯한 섬세한 감정 표현이 돋보인다. 두 명의 화자가 돌다리를 건너고 성벽을 오르는 행적에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기법도 흥미롭다. 독자들은 뭔가 굉장한 비밀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화자를 따라 여행에 동행한다. 하지만 여행이 끝나고 그것이 살아남은 자가 죽은 자를 비로소 보내기 위한 의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허탈해진다. 나머지 두 명의 등장인물들이 왜 이런 의식에 동참해야 했는지 개연성을 찾기도 힘들다. 자주 등장하는 버지니아 울프가 이 작품 안에서 갖는 상징성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뜨거운 피」는 비교적 안정된 문장과 단단한 서사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는 네 명의 삶이 교차하면서 등장한다. 주인공 오구, 웹소설 속의 지오, 아버지와 박수. 네 명의 삶은 각자의 영역 속에서 그 나름대로의 사연을 갖고 있다. 오구는 타인의 삶을 관통하거나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을 찾아간다. 그러나 각자의 삶 하나하나가 상징으로 작용해 구체적이고 통일적인 이미지 구성을 갖고 있지 않다. 아버지와 지오, 박수의 삶의 변화가 주인공에게 왜 중요한지, 그들과 주인공의 삶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다수의 삶의 등장으로 오히려 오구의 캐릭터가 힘이 빠져 버린 느낌이다.

장애인의 삶을 다루는 작품은 어지간히 빼어나지 않으면 독자들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또 어설픈 감상에 빠지거나 억지감정을 조장할 수도 있다. 「산책을 듣는 시간」은 농인을 다룬 작품이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관념까지도 완전히 깨버린 탁월한 작품이었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문체는 자칫 애매한 아포리즘의 남발로도 보일 수도 있지만 유머러스한 서사 속에 적절히 스며들어 작품의 완성도를 한층 높여 준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세계에 살던 주인공의 세계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사는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행복한’ 곳이었다. 그는 장애를 바라보는 타인의 어설픈 동정을 ‘장애도 남이 갖고 있지 못한 또 하나의 능력’이라는 말로 멋지게 거절한다. 장소마다 자신만의 감정을 담고 비밀의 공간을 만들고, 소리는 듣지만 색을 구별할 수 없는 한민이와 세상에 하나뿐인 멋진 사업도 구상할 만큼 주체적이다. 주인공 주변의 인물들은 (심지어는 시각장애 안내견까지) 하나같이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엄마는 곰돌이 아저씨가 오랜 기간 사랑할 정도로까지 매력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점,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한 점은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높은 건물 사이에 놓여 있어 도르래를 타고 내려가야 하는 할머니의 무덤은 흥미로운 설정이기는 하지만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기에는 너무 과한 설정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작가의 탄생을 축하하며 우리나라 청소년소설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작가로 발전하길 기대해 본다.

오정희·김지은·김선희(제16회 사계절문학상 심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