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한국의 능력주의가 만든 아수라장 <대치동>_작가 온라인 북토크

 
한국의 능력주의가 만든 아수라장 『대치동』
글*이정은(쩜오책방 대표)

코로나 19는 아직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작년 말부터 세계적으로 유행한 오미크론 변종이 드디어 한국에서도 우세종이 되어 내가 사는 파주에도 매일 1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온다. 다들 먹고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인 중에도 집값은 계속 치솟고 있다. 방역 대책으로 자영업자, 소상공인은 그야말로 밥그릇 챙기는 것도 어려워졌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올 봄 새로운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겪지 못한 상황에서의 대통령 선거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신중하고, 더욱 차분하게 대선 후보를 살펴야 함에도 정책은 사라지고 서로에게 칼을 겨누라고 부추기는 자들의 유세에 그나마 남은 기운도 다 빠져나가는 것 같다.

앞선 세대보다 잘살기 어려워진, 미래의 꿈을 잃은 청년 세대의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적인 현상인 것이다. 하지만 각기 다른 사회에서의 원인과 결과는 다를 터, 우리는 우리의 사회를 살펴봐야 한다. 능력주의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상에서 한국은 어떤 아픔을 겪고 있을까. 배경은 무엇이고, 원인은 무엇이며, 과연 해법은 있는 것일까?

사계절출판사에서 나온 『대치동』(조장훈 저)을 읽는 순간, 『한국의 능력주의』(박권일 저, 이데아출판사)가 떠올랐다. 단순히 서울시 강남구의 한 지역에 대한 폭로가 아니라 왜 우리에게 ‘대치동’이라는 아수라장이 생겨난 것인지를 알려면 한국에서의 능력주의를 살펴봐야 했다. 사계절출판사 담당자는 『대치동』과 『한국의 능력주의』를 함께 읽고 저자와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많은 독서 동아리들이 참여할 수는 없었으나, 다행히도 교하도서관 독서 동아리 책벗은 함께 읽고 고민을 나눌 수 있었다. 『대치동』을 함께 읽는 우리는 ‘멘붕’에 빠졌다.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나서도 그런 입시 상황을 알지 못했던 사람은 이게 현실이냐며 허탈해했다. 작년 고3 학생을 두었던 학부모 책벗 회원(무려 4명이나 되었다)은 다양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대치동에서 제법 먼 파주 교하에 살면서—전국에서 대치동으로 몰려온다니, 파주면 가까운 편인지도 모르겠다—주말에 대치동 학원으로 아이를 데리고 다닌 사연을 들었다. 또 다른 회원은 경쟁률에 쫓겨 원서를 넣고 나니 정작 아이가 원하는 학과가 아니었다면서 허탈해했다.

『대치동』의 저자 조장훈은 학벌주의가 만들어낸 사교육 시장 ‘대치동’과 영혼을 끌어 모아서라도 부동산을 손에 넣으려는 욕망이 어떻게 작동하게 되었고, 입시 제도가 바뀔 때마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강요당했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욕망의 최전선’이라는 말보다 ‘아수라’가 더 어울리는 곳에서 명문 대학에 합격한 사람이나 내 집값이 두세 배가 오른 경험을 한 사람을 보고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 자진해서 아수라장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너무나도 견고해진 능력주의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성공하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사람을 질책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아수라장은 누가, 왜 만들었을까? 우리는 이어서 『한국의 능력주의』를 읽었다. 이 책 역시 『대치동』과 마찬가지로 소화제가 필요하다는 회원들이 많았다. 지금 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머릿속에 뒤죽박죽이던 몇몇은 덕분에 정리가 되었다고도 했다. 『대치동』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능력주의』 또한 능력주의 자체를 비판하지 않는다. 조선의 과거제, 양반 등에 대해 살펴보는 것을 시작으로 한국에서의 독특한 문화 속에서 능력주의가 어떻게 불평등을 심화하는가를 살펴본다. 지금 한국에서는 시험을 통해 얻은 지대가 우리 사이를 가르고, 한번 갈라놓은 계급은 그 차이가 심해 회복하기 힘들다. 그러니 우리는 9수를 해서라도 고시에 합격해야 하고, 판사들은 사법연수원 점수를 평생 안고 살아가며, 시험을 보고 합격한 정규직은 비정규직과 함께 잘 사는 세상을 꿈꿀 여유가 없다. 이 모든 것이 개인의 욕망으로만 만들어진 것일까? 개인이 열심히만 살면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박권일 저자의 강연을 듣고 많은 질문이 오갔으나 실마리가 풀리기는커녕 더 엉켜버리는 불편함은 나만의 느낌일까?

대통령 선거판에서 흘러나오는 무수한 혐오, 갈라치기의 단어들을 생각해본다. 오랜 역사를 이어 지금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졌음에도 그들의 말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는 ‘너 때문’이다. 페미, 일베, 메갈, 보수, 빨갱이, 그리고 이대남. 나와 선을 긋고 비난하기 위한 프레임에 우리는 갇혀 있다. 흑 아니면 백. 내 편이 아니면 적. 이런 이분법의 선 긋기로는 우리가 처한 문제의 원인이나 해결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독서와 토론의 진정한 힘은 조금 더 넓게 바라보기 위함이 아닐까? 『대치동』을 통해 수십 년간 심화된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우리에게서 빼앗아버린 것을 찾아야 하며, 『한국의 능력주의』를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만 갈려서 싸운다고 세상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읽어내야 한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에 지지율이 널을 뛰는 대한민국은 여전히 OECD 국가 중 성별 임금 격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나의 현상에 원인이 하나만은 아니다. 더 넓게 보고 서로의 다른 생각을 나누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