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인터뷰] 『왼손에게』 한지원 작가

"작업할 때마다 그게 마치 잔뜩 예민해진 오른손의 인내심이 ‘톡’ 하고 끊겨서
‘툭’ 왼손에게 날아가는 것 같았어요. 꼭 불똥이 튀는 것처럼요. 그게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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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에게』 한지원 작가 인터뷰
 

이 이야기를 어떻게 떠올리게 되었나요? 

- 동네 편의점에서 2L 생수 6개 묶음을 사서 집으로 가는 길이었어요. 자연스럽게 오른손에 들고 있던 가벼운 가방을 왼손에 들고, 생수병을 오른손으로 들었습니다. 무거운 생수를 들고 집에 도착했는데 오른손이 빨개져 있었어요. 불현듯 ‘내가 오른손이면 화나겠는데?’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게 이 책의 시작이었어요.

 

오른손잡인가요?

- 오른손잡이입니다. 어린 시절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친구가 멋져보여서 몇 번 시도 왼손 쓰기를 시도했는데 실패했어요. 표지의 오른손을 비뚤비뚤하게 그리느라 왼손으로 그려 봤는데 역시 쉽지 않더라고요. 


얇은 연필 선 스타일이 인상적이에요.

- 손에 쥔 사물을 물감으로 연하게 칠하다 보니까 연필 선이 유독 두껍고 진하게 보였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얇은 선으로 그리게 되었어요. 저는 연필을 칼로 깎는데 최대한 길고 가늘게 깎아요. 그래서 그림을 그리다 힘을 살짝만 주면 심이 ‘톡’ 하고 부러지면서 ‘툭’ 날아가요. 작업할 때마다 그게 마치 잔뜩 예민해진 오른손의 인내심이 ‘톡’ 하고 끊겨서 ‘툭’ 왼손에게 날아가는 것 같았어요. 꼭 불똥이 튀는 것처럼요. 그게 좋았어요.

 

작업하면서 손을 수백 번은 보았을 것 같아요. 특별한 경험일 텐데 어땠나요?

- 매일 마주하는 손이라서 특별하진 않았어요. 다만 나이가 들면서 손의 주름이 많아지고 손마디가 좀 굵어진 느낌이에요. 작업 기간에는 어떤 손동작을 해야 감정이 잘 표현될까 고민하며 본 기억밖에 없네요. 


작품 속 왼손과 오른손 중 어떤 쪽에 더 가까운가요?

- 저는 왼손에 가까워요.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늘 눈치를 살펴요. 그렇다고 그 역할이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누구나 왼손이었다가 오른손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는 엄마 품에 안겨서 회전목마를 탔고, 운동화 끈이 풀리지 않게 묶는 법도 엄마가 알려 주셨는데 언젠가부터 엄마에게 휴대폰 기능을 알려 드리고 온라인 쇼핑도 대신해 드리고 있어요.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갈 때도 느끼죠. 


인간관계는 어떻게 해야 잘 풀 수 있을 것 같나요?

- 글쎄요. 저는 협소한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서요. 간신히 사칙연산을 푸는 저에게 미적분을 물어보는 느낌이네요. 저는 그냥, 약속은 잘 지키자! 흉보지 말자! 이 두 가지만이라도 잘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어려웠던 장면이나 고민되었던 부분이 있다면? 

- 종이가 구겨지는 장면이요. 그림은 아니지만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였어요. 제가 집에서 책상 스탠드를 조명 삼아 찍었는데 사진의 완성도에 비해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잘 나온 것 같아 마음이 놓여요. 의외로 종이를 잘 구기는 게 어려웠습니다. 

 

엉뚱하고 천진한 유머가 보여요. 

- 저는 공감이 되면 웃음이 후해져요. 그래서 책 작업을 할 때 공감이 되는지를 중요하게 봅니다. 막상 실생활에서는 ‘유머러스하다’는 말보단 ‘왜 이렇게 기운이 없니?’ 혹은 ‘어제 잠 못 잤어? 어디 피곤해?’라는 말을 더 자주 들어요. 좀 기운이 없는 편이긴 해요. 또 이야기를 재밌게 하기보단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리액션을 담당하는 편입니다.


친숙한 소품이 보여요. 자주 쓰시는 소품들인가요? 

- 책에서 익숙한 소품이 나오면 반갑지 않을까 해서 그리게 되었어요. 대부분의 소품들이 책상 위나 서랍에 있는데, 조금씩 달라요. 책에는 스테들러 연필이 자주 등장하지만 사실은 파버카스텔 연필로 그렸습니다. 그리고 세타필 핸드크림보단 바디로션을 애용하고 페리오 치약, 초극세모 칫솔을 사용합니다. 


왜 사건의 발단으로 매니큐어를 선택했나요? 

- 서로에게 번갈아 해주는 걸 고민했어요. 처음에는 손톱깎이를 떠올렸는데 이미 오랜 시간 왼손에게 훈련이 된 일이라 서로의 실력 차가 확연하게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매니큐어를 골랐습니다. 그리고 손톱에 색칠을 하는 모습이 그림을 그리는 제 모습과 닮아서 더 끌렸어요.

 

이 그림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을 소개한다면? 

- 간결해요. 깨끗한 배경에 두 캐릭터만 등장하고 심지어 둘은 똑같이 생겨서 1인 2역을 하는 느낌도 납니다. 간소한 차림이여서 오히려 독자가 둘의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작가님의 하루를 소개해 주세요. 작업은 하루 중 언제 하시나요? 

- 저는 집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출퇴근이 없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어 환기를 꼭 시킨 다음 오전 작업을 하고 점심을 먹은 후 곧바로 오후 작업을 합니다. 중간에 커피를 마시거나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기도 하고요. 저녁 식사 후에는 TV를 보거나 간단한 운동 혹은 산책을 해요. 작업이 안될 때는 책상 앞에 앉아서 딴짓을 하는데 그마저도 힘들 때는 밀린 청소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면서 몸을 움직입니다. 


앞으로 특별히 다뤄 보고 싶은 소재가 있다면? 구체적인 사물도 좋고요.

- 외로운 주인공이 판타지 세계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이 책을 만날 왼손잡이들에게!

- 오른손잡이 입장에서 쓴 책이라 왼손잡이들이 혹시나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늘 걱정했어요. 하지만 만약 제가 왼손잡이였다면 이 책의 제목은 아마도 ‘오른손에게’가 되었을 거예요. 부디 명칭보다는 그 관계에 주목해 책을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