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서평] 『아무도 들어오지 마시오』 "성장이란 마음에 박힌 아픈 가시를 뽑아내는 과정"_안광복 철학교사

“성장이란 마음에 박힌 아픈 가시를 뽑아내는 과정”   안광복| 철학 교사
 
주인공의 엄마는 해마다 3월이 시작되기 전에는 꼭 대청소를 했다. 그리고 한 해 동안 썼던 노트와 책, 물건들을 추려내어 계속 쓸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렸다. 엄마는 “남겨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들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지나간 해를 돌아보고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런 행동을 ‘한 해의 정리’라 불렀다.
그랬던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아이는 깊은 상실감에 빠져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다. 집 밖으로 1년이나 나가지 않았고,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웠다. 엄마의 죽음으로 아이의 시간은 멈춰 버렸다. 『아무도 들어오지 마시오』라는 책 제목은 아이의 마음 상태를 한마디로 콕 집어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아이는 엄마가 만든 공간, 추억이 얽힌 집 안으로 누구도 새롭게 들어오기를 바라지 않았다. 나아가,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그랬다간 엄마가 사라진 막막한 현실이 비로소
물밀 듯이 닥칠 것 같아서일 테다. 아빠는 이런 주인공의 마음을 돌려 세우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쓴다. 이럴수록 아이의 마음은 더 차갑게 닫혀 갈 뿐이다. 마침내 아빠는 폭발해 버리고 만다.

“일 년이야! 일 년이면 빠져나올 때도 되지 않았어? 내가 너한테 특별한 걸 바라니? 그저 평범한 애들처럼 지내라는 거잖아. 성적 떨어져 야단도 맞고, 여자 친구 때문에 고민도 하고, 용돈 더 달라고 거짓말도 하고.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아이들이 하는 일이야! (…) 엄마 없는 애가 세상에 너 하나야? 이만큼 시간이 흘렀으면 너도 뭘 하겠다고 해야 하잖아!”
하지만 상처 입은 마음이 ‘평범’한 상태까지 오기는 결코 쉽지 않다. 손가락에 가시가 박혀 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잊어버리려 해 보라. 이런다고 아픔이 사라질까? 그렇지 않다. 통증을 없애는 방법은 가시를 뽑아내는 것뿐이다. 물론, 주인공의 죽은 엄마를 다시 살려낼 길은 없다. 자신에게 닥친 시련의 의미는 겪어야 할 아픔을 다 겪고 느껴야 할 고통을 다 느낀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나아가, 이런 과정을 겪고 나야 상처가 정리되며 한층 성숙한 상태로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살아 있을 때 엄마가 3월마다 ‘한 해의 정리’를 하게 한 후에 새 학기를 시작하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주인공의 아빠는 성실한 사람이다. 그러나 아들이 고통을 빨리 잊게끔 문제를 덮어 버리는 데 매달릴 뿐 아픔을 직면하고 해결책을 찾는 데까지 이끌지는 못했다. 답답한 집에 ‘침입’한 간호사 출신의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아빠와 아들은 불행의 늪에 더 깊이 빠져들었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에게 누군가로부터 죽은 엄마의 휴대폰이 담긴 택배가 왔다. 보낸 문자함에는 택배를 보낸 이의 문자 하나가 남아 있다. “이번에도 너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 생각하겠지?” 주인공은 무슨 소리인지 막막하기만 하다. 왜 사라진 엄마의 휴대폰을 이제야 자기에게 보냈을까? 아프게 살 속을 파고드는 가시를 뽑을 때처럼, 주인공은 필사적으로 비밀을 풀기 위해 매달린다. 이 가운데 주인공이 자신도 모르는 채 누군가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혔음을 깨닫게 된다.
“피한다고 있었던 일이 없어지는 거 아니다.” 소설 속 할머니가 던지는 충고다.

“아들, 만약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 때문에 누군가 힘들어졌다면, 그런데 뒤늦게 알게 되었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어?” 죽기 전에 엄마가 주인공에게 물었던 말이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이제 겨우 안 거잖아요. 걔는 몇 년을 힘들어했는데 고작 답장 한 번 받은 것 갖고 내가 뭐라고 그러겠어요? 마음 풀릴 때까지 뭐든 해야죠. 이제 시작하면 돼요.”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주인공의 결심이다.

이렇듯 소설은 주인공이 은둔형 외톨이에서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오는 성장 과정을 세심하게 그려낸다. 사춘기는 온갖 상처들이 곪아 가고 갈등이 폭발하는 시기다. 이 시기에 상실의 아픔과 후회의 고통을 겪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어느 독자라도 등장인물들과 비슷한 체험을 안고 있기 마련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따뜻한 공감과 위로가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던 이유다. 성장이란 마음에 박힌 아픈 가시들을 뽑아내는 과정이다. 이 책은 성장통을 앓는 친구들과 부모들에게 위안과 지혜를 안겨 주는 소설이다.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