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편집자의 시대_전성원(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전성원(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1.
대학을 졸업하고 편집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 1994년부터의 일이니 어느덧 내년(2024년)이면 편집자가 된 지 만 30년이다. 그중 27년을 『황해문화』라는 종합인문교양 계간지 만드는 일을 해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급신문을 시작으로 중학교, 고등학교 교지 편집장, 대학 시절 교지편집위원회 활동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내 삶의 대부분을 남의 글을 읽거나 편집하면서 살아온 셈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평을 써달라는 제안이 왔을 때,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편집자의 시대』는 1965년 일본 미스즈서방의 인문서 편집자로 출발해 2021년 4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미스즈서방의 대표를 거치며, 한일 출판문화 교류를 이끌었던 편집자 가토 게이지 선생의 회고록이다. 미스즈서방은 일본의 전후인 1946년 창립해 한나 아렌트, 카를 슈미트, 레비스트로스, 롤랑 바르트 등을 소개하며 일본의 전후 문예부흥을 이끈 대표적인 학술 전문 출판사이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분된다. 1부는 주로 개인적인 생애를, 2부는 그가 편집자로 활동하며 만난 번역가들을 중심으로 한 지식인들의 이야기, 마지막 3부는 그가 만난 중요한 책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나는 생전의 가토 게이지 선생을 뵌 적이 없지만, 책을 읽으며 그에게 친숙한 감정을 여러 차례 느꼈다. 같은 직종에서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동료의 후일담을 듣는 기분과 동시에 까마득한 후배의 입장에서 평소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선배의 내밀한 속 이야기를 읽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화에 대해서도, 음악에 대해서도 나의 지식이나 감성은 어느 하나 대단한 것이 없다. 세상에는 정말 대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나 자신이 뭐든 어중간하다는 것을 통감하게 된다.”(35쪽)라는 고백은 마치 과거의 내가 어느 날엔가 일기에 썼던 한 대목을 다시 읽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만들고 있는 계간지는 계절별로 3개월에 한 번씩 나오는 잡지이다. 계간이란 잡지 특성상, 당대의 시사적인 이슈를 다루더라도 내용은 주로 학술적인 영역에서 대응하기 마련이라 함께 일하는 편집위원들은 물론 필자들 역시 대부분은 해당 분야의 지식인, 전문가들이다. 매 계절마다 새로운 이슈로 ‘지식의 최전선’을 다루는 계간지를 기획하고, 적합한 필자를 찾아내고, 원고를 읽고, 편집하는 일은 매호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는 재미도 있지만, 언제나 힘에 부치는 일이다. 때로는 완전히 낯선 세계를 다루기 때문에 필자가 쓴 원고의 내용과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교정·교열을 한 적도 있었다. 이 세계는 공부를 내려놓는 순간, 떠내려갈 수밖에 없다.
 

2.
매호 다른 주제의 특집이지만, 원고를 읽다보면 필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용하는 책들이 있다. 공부를 위해 그런 책들을 구입해 닥치는 대로 읽었다. 어떤 이에게 책을 읽는 것은 재미를 위한 일이고, 또 다른 어떤 이에게는 정보를 획득하는 일이며, 또 어떤 이에게는 감동을 얻는 일이겠지만, 내게 독서란 이처럼 누군가가 공부한 세계를 엿보고, 그의 도서목록을 훔치는 일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그런 일을 거의 30년 동안 1년에 4번씩 했더니 무엇 하나 제대로 정수(精髓)를 꿰는 분야는 없어도 두루 아는 척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을 일러 “박이부정(博而不精)” 또는 영어로는 “Jack is all trades, and master of none(이것저것 잘하는 사람은 무엇 하나 잘하는 게 없다)”이라고 한다. 가토 게이지 선생은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아주듯 회고록에 다음과 같이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편집자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것에 대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것,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그 전체를 알고 있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교양학부의 교육은 리버럴 아트(liberal art, 기초 교양)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고 쓸모도 없어 보였지만, 전문 영역으로 가기에 앞서 이루어진 이 교육은 미래의 편집자를 위해서는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어렴풋하게나마 나 자신에게 문화 지도 같은 것이 형성되고 있었고, 나는 그것에 의지하여 마음 내키는 대로 여행을 계속해나갔다. - 49쪽
 
국악계에는 ‘열 명창(名唱)에 일 고수(鼓手)’라는 말이 있다. 판소리는 한 사람의 가객이 서사적인 긴 이야기를 고수의 장단에 맞춰 소리(노래)와 아니리(말)와 발림(몸짓)으로 엮어나가는 극적인 음악이다. 판소리는 〈춘향전〉이나 〈심청전〉같이 긴 서사를 그 자리에 서서 몇 시간씩 부르는 연희(演戲)이기에 가객은 청중을 사로잡기 위해 노래 사이사이에 어떤 정경과 장면 등을 말로 설명하고, 실감나게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하며 껑충 뛰면서 몸짓을 내보이기도 한다. 명창은 이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연희의 모든 부분을 받쳐주는 토대가 고수다. 노래 잘하는 명창이 열 명이면, 명창의 소리(노래)와 아니리(말), 발림(몸짓)에 맞춰 사이사이에 ‘얼씨구’, ‘잘한다’, ‘아먼’, ‘좋다’ 등으로 흥을 돋우는 추임새를 제때에 적절하게 넣어줄 수 있는 고수는 한 명 나오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고수는 단순한 반주자가 아니라 공연자의 위치에 있으며 판소리의 ‘판’을 유지하는 연출자이며, 가객의 소리를 조절해주는 지휘자의 역할까지도 담당하는 막중한 자리다. 명창이 특정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라면 고수는 판소리의 대사는 물론 가객의 개성, 장점과 허점을 알아 이를 북돋우고(‘기운이나 정신 따위를 더욱 높여 주다’란 의미의 이 말에도 ‘북’이 들어간다) 적절하게 보완해주어 청중의 흥취를 돋우어주는 ‘제너럴리스트’인 셈이다. 고수란 말을 편집자로, 청중을 독자로 바꿔서 이해하면 된다. 소리의 속을 제대로 아는 명고수가 되려면 어려서부터 북채를 잡아도 한 오십 년쯤 해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철학자 쓰루미 슌스케는 이야기식으로 써 내려간 자서전 『기대와 회상』에서 “뛰어난 필자에 비해 뛰어난 편집자는 매우 적다, 희귀하다”라면서 패전 후에 그렇게 이야기할 만한 편집자를 든다면 만화 잡지 『가로』의 편집장 나가이 가쓰이치와 미스즈서방의 오비 도시토 씨일 것이라고 했다. (…) 마루야마 씨는 오비 씨에게 옥스퍼드의 블랙웰 서점을 방문하라고 권했다. 내 기억에 오류가 없다면 이때 마루야마 씨는 “블랙웰에는 가토 군 같은 점원이 있어서 어떤 주제에 대해 물어보면 그와 관련된 책을 모두 가져와서 각각의 특징에 대해 설명해준다”라고 했다. 좋은 서점에는 스페셜리스트는 아니어도 훌륭한 제너럴리스트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서점을 출판사로 치환해보면 이것이 아마도 ‘내가 편집자가 된 이유’일 것이다. - 87~88쪽
 
편집자로 일가(一家)를 이룬 가토 게이지 선생이었지만, ‘학계의 천황’이라 불리던 마루야마 마사오의 이런 평가가 당신에게도 내심 자랑거리였던 모양이다. 나는 가끔 편집자를 광어회 밑에 깔리는 무채 같은 존재라고 말하곤 한다. 메인 요리를 빛내주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존재를 지울 수 있는 존재 말이다.
 

3.
책을 읽으며 편집자로 공감했던 부분도 많았지만, 유난히 인상적인 대목은 그가 번역과 번역가에 대해 별도의 장을 할애할 만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일급 저자가 읽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쓴 책에 인용되고, 심지어 중요하게 언급한 도서 목록을 발견하는 것은 평범한 독자에게는 다음 읽을거리를 찾아내는 소소한 즐거움이지만, 전문 연구자나 공부하는 사람에겐 저자의 지적 이력을 확인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고 중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때때로 이렇게 발견한 도서가 정작 한국에 번역되어 있지 않은 경우를 발견한다. 최근작은 물론 해당 분야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저작이지만, 번역되지 않아 읽을 수 없었던 경험은 가뜩이나 좌절하고 분개할 일이 많은 내 삶의 여러 좌절 가운데 비교적 빈도가 잦은 일이다.
그는 자신이 출판 강국 일본의 편집자로서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던 순간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 강의』의 세계 최초의 외국어 번역서는 1928년에 나온 일본어판이다. 20세기 후반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친 이 책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번역된 것은 일본 번역 문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일로 기억되어도 좋다. - 128쪽
 

한 사회의 지적 성장을 책임졌던 사람, 지식의 최전선을 자신의 문화 지도를 가지고 펼쳐 보였던 제너럴리스트 가토 게이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번역되지 않은 책은 세상에 없는 책’이란 말이 있다. 번역되지 않은 책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외국어에 능통한 번역자가 이를 번역해 출판해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읽고 싶은 사람이 외국어를 직접 공부해 그 책을 읽는 것이다. 일본은 전자의 길을, 한국은 후자의 길을 선택한 것 같다. 국내 연구자보다 해외유학 경험이 있는 연구자를 더 높이 평가하고, 외국어로 된 논문을 써내라고 닦달하는 풍경이 말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엔 ‘세계 문명에 관한 지식을 얻으려면 일본어를 습득하면 된다, 일본어로 다 준비되어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학술・출판문화의 토대를 막대한 양의 번역서가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것과 비교해 우리의 학술・출판문화가 처한 현실은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마침 이번호 『황해문화』 통권 118호(2023년 봄호)의 서평에서 한 필자는 “자율적 학술장의 전제 조건은 적대적 협력자 공동체 형성이고, 이것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연구자들이 서로의 글을 읽어야 한다. 그러나 외산 이론이 완제품으로 수입되는 상황에서는 번역으로 읽어놓고서도 참고문헌은 원서로 표시한다.”라는 글을 썼다. 이런 내용을 다른 연구자에게 말했더니 심지어 한국인이 한국어로 쓴 논문도 참고문헌 목록에는 영어로 써놓은 경우도 많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출판의 황금기는 과연 언제였을까? 단군 이래의 불황은 끝난 적이 없다고 하는데, 그 전성기가 아직까지 온 적 없다면, 앞으로 그런 시대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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