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발표

제15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이 결정되었습니다.
 
김진나, 「소년아, 나를 꺼내 줘」

 
심사는 오정희(소설가), 신여랑(소설가, 제4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자), 김지은(문학평론가), 최상희(소설가, 제12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자) 선생님이 고생해 주셨습니다.
당선자에게는 개별 통보하였고, 작품은 2017년 8월 사계절1318문고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사계절문학상에 응모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15회 사계절문학상 본심 심사평

우리가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에 기대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지금까지 보아 왔던 청소년문학과는 다른, ‘새로움’이리라.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시선, 새로운 해석, 새로운 시도. 그러한 새로움이 주는 강렬함과 신선함으로 독자를 매료하고, 유의미한 화학 작용을 일으켜 청소년문학의 이정표가 될 작품. 우리는 늘 그런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하기에 응모자들 또한 ‘새로움’을 고민하고 작품에 담으려 노력했으리라 믿는다. 다만 새로움을 찾으려다 ‘센’ 이야기, ‘센’ 소재, ‘센’ 캐릭터 찾기에만 골몰한 것은 아닌지, 새로운 시도나 설정이 착상에 그친 채 무기력한 전개에 머무르고 만 것은 아닌지 돌아보기를 바란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신문 사회면 사건 사고 기사에서 읽을 수 있는 ‘센’ 이야기들의 줄거리 요약이 아니며, 착상만 있고 유야무야 희미해진 전개 또한 아니다. ‘센’ 이야기를 받쳐 줄 섬세한 캐릭터 구축과 그들이 주는 울림, 흥미로운 착상을 이끄는 작가만의 시선과 해석. 무엇보다 우리가 아직 모르는 ‘새로움’의 발견.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그것이다.

115편의 응모작 가운데 본심에 오른 여덟 편의 작품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있었다.

『붉은 탑에 오르다』는 미래 배경으로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루며, 강렬한 첫 장면으로 시선을 붙잡았다. 그러나 첫 장면의 강렬함을 이끌 캐릭터도 전개도 없었다. 교양 과학 서적에 등장할 법한 지식의 나열로 구축된 세계는 허약하고, 개연성이 부족하며 결정적으로 흥미롭지 않았다. 소설은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서사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고무벽 만들기』는 읽는 재미가 있었다. 학교를 배경으로 남자 고등학생의 일상이 리얼하게 그려졌다. 그러나 자극적인 첫 장면은 이야기 전개에 아무런 역할을 못 했을 뿐더러, 또 다른 주인공인 담임선생님 캐릭터는 기존 베스트셀러 작품을 연상시키며 작품 전체를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로 만들어 버렸다. 성장기 남학생의 시선을 솔직하게 그린다는 것과 여성의 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여과 없이 그리는 것의 경계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 江』은 캐릭터가 살아 있고, 문장도 안정감이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역사소설로서 지녀야 할 덕목,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한 재해석을 찾기 어려웠다. 단종 유배지에 살았던 소년 셋과 단종의 만남은 있을 법하지만 그들이 그려 내는 이야기는 무기력하다. 역사소설은 새로운 이야기이면서도 과거의 실제 공간과 있었던 기록에 근거한 이야기라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기억 복원, 그 후』는 단편집으로 ‘환상특급’ 같은 이야기들이 묶여 있었다. 그중 ‘진로탐색’, ‘후아유’, ‘농담이 아니다’ 같은 작품은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작품 간 편차가 심하고, 전체적으로 아이디어는 좋은데 확장이나 깊이가 부족해서 아쉬웠다. 밀도와 완성도가 고루 높은 단편집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작가의 정진을 기대해 본다.      

『블루문을 위하여』는 차분하게 또박또박 읽혔다. 십대의 임신과 출산 이야기가 과장 없이 세밀하게 그려져 르포를 읽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본 듯한,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십대 미혼모 서사에서 오는 기시감이 컸다.

『은둔형 외톨이 구조단』은 흥미로운 설정이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초반부는 이만큼 잘 읽힌 작품이 없었을 것이다. 특히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이야기를 유쾌하고 신선한 플롯으로 풀어내는 발상이 돋보였다. 군데군데 보이는 개연성 부족이 아쉬웠지만 중반까지 재미있게 읽혔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작품 후반, 설정과 전개의 매력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마무리로 큰 실망감을 안겼다.

『거침없이, 당당하게』는 교차서술 화자 가운데 여중생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외모나 체형에 억압받지 않는 여중생으로서의 생기가 있었다. 반대로 교차서술의 다른 한 축을 담당하는 히키코모리 윤수의 캐릭터는 기계적이고 피상적으로 그려졌다. 이 둘이 얽히는 전개 또한 억지스러운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파국으로 마무리한 점이 아쉽다.
                
『소년아, 나를 꺼내 줘』는 어떻게 보면 가장 낯선 작품이었다. 주인공에게는 특별하거나 치명적인 상처가 없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임에도 상대방과 얽히는 사건도 없다. 작가는 오로지 짝사랑에 빠진 소녀의 심리를, 극적인 사건 없이 투명하고 잔잔하게 밀고 나간다. 만약 후반부에 주인공의 짝사랑 상대가 전면에 등장해 무슨 일인가 벌어졌다면, 이 작품은 금방 시시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짝사랑의 과정을, 벽에 부딪히는 마지막 순간까지 한 방향으로 그려 낸 소녀의 성장 서사가 작은 뭉클함을 안겨 준다. “사랑을 하면 발꿈치가 투명해지는 기분이 든대.”라고 말하는 소녀 앞에서,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사랑의 기억과 어디선가 그 기억을 현재형으로 앓고 있을 지금의 청소년들이 동시에 떠올랐다. 우려되는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강렬하고 도발적인 서사를 기대한 독자에게 이 작품은 밋밋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전개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들의 첫사랑은 나 자신을 향한 사랑이며, 세계 속에 자신이 있어야 할 단 하나의 근거를 찾는 지루한 과정이기도 하다. 소녀가 꺼내 달라고 했던 ‘나’는 소년에 의해 꺼내지지 않으며, 결국 소녀 스스로 내면을 관찰하여 발굴한다. 이는 그동안 청소년문학이 외부 구조와 충돌하며 빚어내는 거대한 서사를 통해서 성장의 의미를 깨달았던 것과 사뭇 다른 길을 걷는 것이다. 반어적인 제목의 매력만큼이나 우리 청소년문학에 신선한 파장을 만드는 작품이 되기를 기대한다.    

최종적으로 『은둔형 외톨이 구조단』, 『기억복원, 그 후』, 『소년아, 나를 꺼내 줘』를 두고 논의를 거듭한 결과, 『소년아, 나를 꺼내 줘』를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어떤 독자에게는 밋밋한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보여 준 성취가 유의미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강렬하고 센 이야기에 취해, 설정과 착상에 취해 우리는 내면을 응시하는 것을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우리가 찾던 새로움의 기준을 ‘새롭게’ 고민하라는 전언과도 같았다.

이번 수상작이 새로운 청소년문학에 하나의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많은 작품을 응모해 주신 분들에게도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우리는 같은 길을 가고 있으니 언제 어디서든 작품으로 만날 날이 있으리라는 믿음과 함께.

오정희·신여랑·김지은·최상희(제15회 사계절문학상 심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