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나의 진주 드레스_가슴을 뛰게 할 아름다운 진주 드레스



제가 어릴 때 동네에는 양장점이 있었어요. 하지만 큰맘 먹어야 옷을 맞춰 입을 수 있었어요. 달마다 돈을 모아 계를 타면 아줌마들은 투피스 정장이나 원피스를 주문했어요. 양장점에서 맞춘 옷들은 중요한 자리에 갈 때만 입었어요. 엄마의 원피스도 늘 장롱 속에 있었어요. 좀약 냄새가 적당히 밴 채 얌전히 모셔져 있었지요. 결혼식장에 갈 때 몇 번 입은 것이 전부라 몇 십 년이 지났지만 새것과 다름없었어요. 몇 해 전 엄마가 그 옷을 버리려는 걸 얻어 왔어요. 꽃무늬가 자잘한 코발트색 원피스를 치마로 수선했어요. 봄이 되면 이 긴치마를 나풀거리며 입고 다녀요. 이걸 입고 있으면 엄마 치마폭에 매달려 양장점을 기웃거리던 계집애로 다시 돌아갈 것만 같거든요.
   
사실 저는 드레스를 입어 본 적도 없고 진주 드레스는 더더욱 없어요. 엄마가 진주 드레스는커녕 귀걸이나 목걸이를 하는 것도 본 적이 없거든요. 화려한 차림을 하고 다니는 건 왠지 엄마를 창피하게 하는 일 같았어요. 그래서 『나의 진주 드레스』를 읽고 글을 쓰라고 했을 때 땡깡부렸어요. “진주 드레스라도 사 줘야 글을 쓸 거 아니야!”라고요. 그랬더니 송미경 작가가 말했어요. 진주 드레스 입은 모습을 그려 주겠다고요. 그 그림을 다른 누구도 아닌 저 자신에게 보여 주고 싶어요.
 
소양이는 엄마 그리고 할머니 이렇게 셋이 사는 것 같아요. 엄마는 쉬는 날도 없이 일을 해요(어쩌면, 저랑 똑같아요). 아마 아빠가 없거나 멀리 가신 것 같아요. 어린이 드레스 가게를 하는 소양이 엄마는 부지런히 일해요. 때때로 소양이 말이 들리지 않을 만큼요. 하지만 소양이 엄마는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는 날이면 창밖을 보며 한숨을 쉬곤 해요(이것도 저랑 똑같군요). 햇빛이 찬란하게 내리비치거나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면 맘속에서 두런두런 소리가 들리나 봐요.
“이봐, 소양이 엄마. 뭘 위해 사는 거야? 바빠서 소양이랑 놀이동산도 못 가고!”


사실 소양이는 드레스 가게 딸이지만 드레스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엄마가 입어 보자고 해도 고개를 젓곤 했지요. 그런데 소양이만 그런 건 아니에요. 떡볶이집 아들이 가장 싫어하는 음식은 떡볶이고요. 빵집 아이가 쳐다보지도 않는 건 다름 아닌 그 말랑말랑하고 맛있는 빵이거든요.
허리를 펴지도 않고, 쉬는 날도 없이 엄마가 매일매일 손님들에게 파는 드레스는 소양이에게 결코 입고 싶은 옷이 아니에요. 아름다운 옷일 수도 없지요. 아무리 비싼 장식이 달리고 색깔이 화려하다고 해도요. 하지만 엄마가 콧노래를 부르며 만든 드레스, 아주 오래된 커튼을 잘라 장식을 만든 드레스는 달라요. 기쁨으로 완성한 옷이에요. 아름다운 옷이고말고요.
송미경 작가는 『바느질 소녀』라는 동화에 이런 말을 적어 두었더군요.

"동화를 쓴 지 7년째입니다. 매일 내가 걷는 길을 의심했고, 매일 한 걸음만큼의 믿음이 필요했어요. 앞으로도 나는 가 보지 않은 길로 계속 나아가려 합니다. 어떻게 되더라도 괜찮을 것 같아요. 언젠가 그곳에 도착할 수 있을 테니까요.”



소양이 엄마에게 매일 매일은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가 자욱한 길이었겠지
요. 그 길을 조심조심 걸으며 넘어지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했겠지요. 그러느라 길가에 피어난 선홍색 홍매꽃도, 점점이 노란별을 단 산수유 꽃도 보지 못하고 지났겠지요. 긴장을 한 탓에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소양이에게 다정한 말도 못하고요. 내일은 또 어쩌나 그 생각만 가득하니까요.
소양이 엄마는 오랜만에 드레스를 직접 만들며 ‘언젠가 그곳에 도착할 수 있다’는 믿음 혹은 좋아하던 일을 하는 즐거움을 맛보았어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만든 옷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레스로 탄생했어요. 소양이는 단번에 알 수 있었어요. 그동안 엄마가 팔던 드레스와 다르다는 걸요.


소양이는 아마 평생 이 진주 드레스를 잊지 못하겠지요. 소망과 기쁨으로 엄마가 만든 진주 드레스였으니까요. 『나의 진주 드레스』는 그동안 작가가 쓴 이야기 중 가장 아름다운 동화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진주 드레스를 어린이들에게 선물하는 책이니까요.  
자, 이제 제게도 평생 양식으로 삼을 만큼, 가슴 뛰게 할 아름다운 진주 드레스를 선물로 주세요.
 
글 - 한미화(출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