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인터뷰] 『고롱고롱 하우스』 조신애 작가

"눈앞에 펼쳐진 모습이 다 대단한 기록이었고 코미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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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롱고롱 하우스』 조신애 작가 인터뷰

1. 첫 그림책이 나왔어요. 특별히 수상작이라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쓰고 그린 첫 책이 나와서 너무 좋아요. 수상 발표가 난 날은 무엇 때문엔가 지쳐 있었는데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송미경 작가님이라 하셔서 꿈인가 싶었어요. 그 이후로 책을 만들기까지 같은 장면을 몇 번이나 다시 생각하고 다시 그렸어요. 그러다 보니 같은 장면에 집중하는 게 힘들 때도 있었어요. 마감을 하고 나서는 끝이 나서 후련하면서도 왠지 끼고 살던 아이를 다 키워 독립시키는 느낌이었어요. 시원 섭섭 뿌듯한 마음? 지금은 그냥 멀리서 지켜보는 엄마 기분입니다.

2. 『고롱고롱 하우스』를 만든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육아에 파묻혀 있을 때 눈앞에 보이는 게 다인 풍경을 그리면서 시작됐어요. 좀 늦은 나이에 아기를 만나 모든 게 처음이라 무척 조심스러웠고, 주변에서 도움 받을 상황도 안 되어서 집에서 말 못 하는 고양이랑 아기랑만 있었어요. 특별히 만나는 사람도 없이 육아 노동에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죠. 나 자신을 내려놓는 시간이었고 내일을 위해선 부지런해져야만 했습니다. 내가 사라진다는 기분에 사로잡혔을 때, 그냥 뭐라도 그려야만 했어요.

똑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가도 하루가 다르게 조금씩 새로운 아이의 표정이나 행동, 그런 아이를 보는 고양이의 모습을 볼 때면 조용한 감동이 차올랐어요. 장난감들을 널브러트리는 모습, 부엌 그릇들을 헤집는 모습, 과자 집어 먹는 모습. 대수롭지 않게 눈앞에 펼쳐진 모습이 다 대단한 기록이었고 코미디였습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모험을 하고 있다 느꼈고, 그릴 이야기가 참 많았어요.

이 이야기가 나에게는 재밌어도 남들에겐 별로 특별하지 않을 텐데 그림책이 될 수 있을까 걱정도 했어요. 더 재밌고 공감되는 육아툰도 많고요. 그리고 순간순간의 느낌을 이야기로 만든다는 것이 처음엔 쉽지 않았어요. 만화처럼 그릴까 하다가, 이 네모난 종이가 집이 되고 만화 칸 하나하나가 방이 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렇게 집 단면도를 꾸려 방 한 칸 한 칸을 채워 나갔습니다. 바다가 노는 방, 고롱고롱 씨가 일하는 방 외에도 불이 꺼진 빈 방, 의자만 놓인 방, 옷들과 예전에 쓰던 물건들이 쌓여 있는 방 등을 그려 넣었어요. 최대한 시간 순으로 나열했고, 빈 방들도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나름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생각했어요.

3. 고롱고롱 씨라는 캐릭터가 참 독특해요. 이 친구의 정체성이 궁금해요.

 


고롱고롱 씨의 모델, '콩이'입니다. 인절미를 닮지 않았나요?
고롱고롱 씨의 모델은 저희 집 콩이입니다. 스코티쉬폴더 고양이예요. 표정이 정말 독특해요. 눈이 쭉 삐죽해서 화난 듯한 표정인데 성격은 그렇지 않습니다. 독립적인 걸 좋아하지만 어느 순간 옆으로 와서 몸을 비비는 정 많은 고양이죠. 제 말을 잘 들어주지 않고 잠을 정말 많이 자요. 저희 집에 고양이가 한 마리 더 있는데, 페르시안 친칠라, 루비예요. 얘는 성격이 달라서 잠도 잘 안 자고 저만 따라다니며 제 무릎에만 있으려고 하는 개냥이랍니다.

저는 대학 졸업 후 죽 프리랜서 일을 해 와서 시간에 구애 없이 자유롭게 살았어요. 여행도 자주 다니고 다른 친구들 회사 다닐 시간에 카페에 한가로이 있고, 이따금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방황도 많이 했어요. 스스로 게으르다 생각하진 않지만 혼자 사색하는 걸 좋아하고 늘어지는 걸 좋아해서 우리 집 고양이들과 제 성격이 참 비슷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결혼을 하고 아기가 오고 나서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어요. 나의 시간과 공간을 내주어야만 하는 일상에 놓였지만 점점 함께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좋아하게 되었어요. 고롱고롱 씨는 이런 저를 많이 닮았는데, 본성은 느긋하고 자기중심적인 고양이지만 현재는 쉼 없이 움직이며 가정을 돌보는 사람이죠.

4. 이 이야기를 처음 시작한 때부터 출간 때까지 환경이나 마음이 많이 바뀌었을 것 같아요.
작업을 시작했을 땐 아이가 완전 아가였는데 지금은 다섯 살 어린이가 되었습니다. 10개월 아기가 주인공이라 처음엔 제 경험으로 수월하게 그리다가 나중엔 기억이 가물가물했어요. 그때 어땠지 하면서 지난 사진을 다시 꺼내 보고 유튜브로 다른 10개월 아기들도 많이 찾아보고 그때의 감정을 살리려 애썼습니다.

처음엔 아기가 노는 귀여움을 그리려 했었는데, 나중엔 양육자의 노동을 더 그리게 되었어요. 외출 장면도 더 길었습니다. 육아 당시 밖은 나와 상관없는 풍경, 어느새 계절이 달라져 있는 낯선 풍경이었어요. 그걸 강조하려고 집 안과 집 밖 분량을 똑같이 그렸어요. 지나가는 행인들도 다 의인화해서 낯설게 표현했어요. 그리고 첫 더미는 병풍책으로, 하루의 모습이 길게 이어지는 구조였어요.


 
병풍책이었던 첫 더미

원고 수정을 거치면서 바다와 고롱고롱 씨 둘에게 더 초점을 맞추었고, 시선을 너무 가져가는 내용은 많이 덜어냈습니다. 고롱고롱 씨의 힘듦보단 바다가 커 가고 같이 자라는 모습으로, 집 안 한 칸 한 칸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었어요.

5. 고롱고롱 하우스는 사실 정말 이상적이죠. 개인적인 로망을 반영하셨나요?


작가가 캐치한 어느 평화로운 낮, 베란다 풍경(feat.루비)

일단 저희 집은 고롱고롱 하우스와 다르게 창고처럼 쌓아 놓고 사는 모습이에요. 고롱고롱 씨처럼 식물을 많이 키우는 것, 저녁 때 여유 있게 한 잔 할 수 있는 베란다, 혼자 별 구경을 할 수 있는 비밀스런 다락방, 그리고 고롱고롱 하우스 같은 단독 주택에 사는 것도 로망입니다. 그런데 사실 하우스에서 여기는 놀이방, 여기는 거실, 여기는 부엌, 이렇게 공간이 칸칸이 나뉜 것부터가 로망이었어요. 아기가 기어 다니면서부터는 방의 경계가 다 허물어졌거든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책 속의 바다도 칸 선을 넘어가곤 해요.

6. 현재도 육아의 연장선일 텐데, 언제 작업을 많이 하세요?
아이가 아가였을 때는 일을 하기 어려웠어요. 주로 아이가 자는 시간에 맞춰 일해야 했습니다. 아이 낮잠 자는 시간이 길긴 했는데, 힘들어서 그냥 같이 옆에서 자거나 인터넷으로 드라마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죠. 지금은 유치원에 가 있는 시간에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자는 시간에는 생각만 많이 해요. 얼마 전엔 아이 유치원 방학이라서 전혀 작업을 못했고요, 다행히 그 전에 책 작업이 끝나서 많이 놀아 줬어요.

꾸준히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 보려 해요. 아무래도 같이 있으면 집중이 안 되죠.


7. ‘아기자기함의 끝판왕’을 보여 주셨어요. 작업 과정은 어땠나요?
 
작가의 작업실

주로 수채화, 과슈를 사용해요. 채색 들어가기 전에 스케치를 많이많이 해서 동작, 표정을 이렇게 저렇게 살려 보았어요. 이 방에는 뭐가 있었지, 이쯤이 뭐 하는 시간이지 떠올리면서 그렸고요. 한 칸을 바꾸면 전체적으로 또 바꿔야 해서 드로잉을 정말 많이 했어요. 다 되면 라이트 박스로 필요한 선 하나만 찾아서 진한 연필로 밑그림을 그렸어요. 채색은 수채화로 가벼운 느낌을 주고 싶었고, 조그만 소품들, 타일이나 벽지 패턴을 묘사할 때 건조하고 거친 붓을 많이 썼어요.

8. 이것저것 만드는 걸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소장 욕구 뿜뿜! 만능손재주꾼 작가님의 공예품들 (첫 번째 사진은 어디서 많이 본 방이죠?)

전에 도자기로 인형이나 소품을 한창 만들었어요. 자유자재로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것에 재미를 붙였어요. 요즘은 박스와 펠트 천으로 아이 장난감을 만들곤 해요. 아이를 낳기 전부터 아이에게 종이로 된 인형의 집을 만들어 주려 했는데, 재료만 잔뜩 챙겨 놓고 아이가 여태 클 동안도 다 못 만들었어요. 요즘은 고롱고롱 하우스를 만들고 있어요. 그럼 옆에서 아이가 “민성이는 어디 있어?” 하고 물어봅니다. 아이 이름은 민성이고, 사실 ‘바다’는 민성이 태명이에요. 책에 나오는 무대를 실제로 만들어 보면 좋겠다 싶어서 작업 중이랍니다. 다 만들면 아이의 멋진 장난감이 되겠죠.


                                                                         고롱고롱 하우스 ing

9. 어떻게 그림책 작가의 길을 가게 되셨나요?
어렸을 적에 종이 인형 놀이나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회화과에 갔지만 순수미술은 잘 안 맞는 것 같았어요. 그림을 자유롭게 그리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다 생각했어요. 손으로 만드는 것도 많이 하고요. 다행히 졸업 후에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같은 길을 가는 것이 힘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작업실에서 같이 만들고, 같이 전시도 하고, 같이 같은 길을 가는 데 서로 원동력이 되어 주었어요.

10. 고롱고롱 하우스를 찾아 주신 독자분들께 마지막 이야기!
저희 아이는 『고롱고롱 하우스』를 책이라기보단 자기 앨범을 보듯 보고 있습니다. 고롱고롱 씨가 엄마로 보이나 봐요. 똥 이야기를 좋아해서 화장실에서 엉덩이 씻는 컷이나 고롱고롱 씨가 당황하는 표정을 보면 막 웃어요. 아이와 처음 만났던 순간도 그랬지만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한 때, 드디어 한 단계를 떼었다 생각한 그때 무척 설렜던 것 같아요. 지금도 여전히 돌봄이 쉽지 않지만, 왜 더 힘들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일상 기록이나 육아 노동에서 그쳤을 수도 있는 이야기를 고롱고롱 씨와 바다의 따뜻하고 소중한 하루로 만들어 준 사계절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나중엔 고롱고롱 씨와 바다의 뒷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또 재밌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몇 년 사이 코로나를 겪으면서 다시 전처럼 집에 갇히는 기분이었어요. 각자의 힘든 시기가 잘 지나가고 나서 ‘그때 그런 일들이 있었지’ 하고 그리워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