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사계절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발표

제1회 사계절어린이문학상 수상작이 결정되었습니다.
 
이재문, 「몬스터 차일드」
 
제1회 사계절어린이문학상 예·본심 심사는 이금이(아동청소년문학 작가), 최나미(아동청소년문학 작가), 김민령(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 선생님이 맡아 주셨습니다. 본심에 오른 모든 작품에 대한 애정 어린 심사평을 아래에 공개합니다. 수상작가님께 축하를 전하며, 사계절어린이문학상에 응모해 주신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수상작은 2021년 8월, 책으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제1회 사계절어린이문학상 본심 심사평
 
높다랗게 쌓인 투고작들을 보며 이 작품들이 쓰여진 각각의 시간들을 생각했다.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써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지난한 시간이 필요했을 테고, 이야기를 상상하고 짜맞추고 세계를 구성하느라 궁리하는 시간은 직접 원고를 써내려가는 시간보다 어쩌면 더 힘겹게 흘러갔을 것이다. 무엇이 이런 시간들을 가능하게 했을까? 코로나 시대에 개인의 시간이 늘어난 것은 책을 읽고 쓰는 모든 이들에게 호기일 수도 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외출을 할 수 없고 학교에서 새 친구를 사귀고 웃고 떠들 기회를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이야기들을 들려줄 수 있다는 건 행운이기도 하고 그만큼 더 무거운 책임이기도 하다. 투고작들을 쓰고 퇴고하고 우편으로 발송하면서 작가들 마음속에 어떤 독자들이 자리잡고 있었는지도 궁금했다. 응모작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또한 그 속에 담긴 어린이와 어린이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원고를 읽었다.
총 160편의 응모작들을 세 명의 심사위원이 나눠 예심을 진행했으며 그중 5편을 본심에 올렸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장편 3편, 단편집 2편이었고 현실동화, SF, 판타지, 호러 등 다양한 장르가 골고루 포함되어 있었다.
 
<나 혼자 사춘기>는 열한 살짜리 아이가 우연히 수습 천사들을 만나 소원을 빌었다가 소동에 휘말리는 이야기다. 한 뼘 정도로 작아진 아이를 두고 엉뚱한 생각을 거듭하는 부모님이나 문제를 해결하려다 계속 꼬이는 상황 전체가 유머러스하고 재치가 넘친다. 주인공이 응석받이 사촌동생 때문에 속상해하는 이야기나 친구로부터 받은 손편지를 아껴 가며 읽는 대목을 보면 예민한 감수성도 느껴지고 어린이들의 감정과 생각을 소중히 여긴다는 인상도 받을 수 있다. 코로나19로 바뀐 어린이들의 일상을 발 빠르게 적용한 부분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현실공간의 이야기를 세심하게 다룬 데 비해 판타지는 산만하다. 사촌동생으로 인한 일상의 어려움, 친구의 편지를 읽으며 새로운 가치에 눈뜨는 과정 등 현실적인 상황에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내 머리에 딱따구리가 산다 외 4편>은 오컬트와 호러가 결합된 판타지로 독창적이고 흥미로웠다. 죽은 아이가 친구를 찾아온다거나 장승신이 상처받은 아이를 위로해준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은 무속신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기획성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서사구조가 단조로워 예측이 가능하며, 판타지 서사가 작위적으로 도입된 혐의가 없지 않다. 이러한 샤머니즘적 판타지 세계가 어린이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을지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신선비의 새 각시 외 3편>은 문장과 상황 제시, 감정 표현 등 문학적 기본기가 탄탄해 눈길을 끌었다. 각각의 단편이 결론과 주제를 정하고 쓴 글이 아니라 차분히 서사를 쌓아올려 결론에 이르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혼란스럽다. 일상의 세밀한 감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문학적 감동을 얻기에는 역부족이다. 분명한 결론을 유보하려는 태도가, 인간사의 복잡다단함을 보여주기보다 어린이의 입장이나 감정에 충분히 다가가지 못한 탓이 아닌지 의구심을 제시하는 의견도 있었다.
본심에서 심사위원들을 가장 오래, 가장 깊이 고민하게 만든 작품은 <세주, 어떤 세주>와 <몬스터 차일드>였다. 논의에 논의를 거듭하였다는 표현만으로는 본심 현장의 고민과 망설임, 난감함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우리라.
<세주, 어떤 세주>는 고분고분하고 순해서 이리저리 치이던 아이가 자기 마음속 저항의 목소리를 듣고 나름 일탈하는 이야기이다.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언어폭력에 위축된 주인공을 그리며 ‘어떤 세주’를 내면의 목소리에 그치지 않는 독립된 인격체로 만들어냈다는 점이 서사를 풍성하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어린이 인물들의 우정과 연애 감정을 드러내주는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고학년 어린이들이 보편적으로 겪을 법한 자아분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이끌며,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나가는 뚝심이 느껴졌다. 다만, ‘어떤 세주’의 목소리를 빼면 서사가 단선적이라는 점이 심사위원들을 망설이게 했다. 엄마 캐릭터가 너무 무기력하게 그려지고 학교에서 만나는 여학생들이 비뚤어진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점도 지적되었다.
<몬스터 차일드>는 MCS(Mutant Cancerous Syndrome 혹은 Monster Child Syndrome)라는 가상의 질병을 소재로 하는 판타지인데 어린이의 본성이나 장애에 대한 비유와 상징이 분명해 보인다. 인물들 사이의 갈등과 오해, 사회적 편견 등을 서사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한편, 주인공 하늬와 나루의 캐릭터가 중심을 잡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몬스터로 변한 아이들이 자유롭게 숲을 뛰노는 모습이나 운동장을 어슬렁거리는 나루의 모습 등이 금세 눈앞에 그려진다는 점이 장점이며, 거울을 통해 자기 안의 괴물을 맞닥뜨리고 그 과정에 진짜 친구를 사귀는 이야기도 장편 서사로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한정된 공간과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좁은 시야에서 서사가 전개되다 보니 가상의 질병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전체적인 세계상이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판타지 설정 자체가 모순되는 지점들이 눈에 띄어 작가 스스로 판타지 세계를 구성하는 데 충분한 고민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두 편 모두 어린이 독자들에게 망설임없이 추천할 수 있을 정도의 문학성과 완성도를 갖추었다. 그러나 ‘사계절어린이문학상’의 첫 번째 당선작인 만큼 사회적으로도 아동문학적으로도 좀 더 의미 있는 작품이 무엇일까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모전을 시작하며 내건 “참신한 소재와 주제 의식을 담은” 작품을 찾겠다는 포부에도 걸맞는 작품이어야 했다. 결국 심사위원들은 오랜 논의 끝에 <몬스터 차일드>를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크리처물의 대중서사를 따르면서도 질병을 다루는 사회적 시선을 문제 삼고, 어린이들의 생명력에 애정과 믿음을 보여주는 작가의 태도가 미더웠다. 당선자에게 축하와 기대의 박수를 보낸다.
오랜 시간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수많은 응모자들에게도 존경과 감사를 보내고 싶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어린이 독자들을 위해 원고를 써내려간 시간과 그 마음들이 헛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
-심사위원 이금이, 최나미, 김민령(대표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