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인터뷰] 『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질서』 이해영 교수

우크라이나전쟁에 관한 일곱 가지 질문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전쟁이 시작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미국과 서방의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는 침략 세력인 러시아를 ‘절대악(惡)’으로, 피해자인 우크라이나를 ‘절대선(善)’으로 바라본다. 국제관계 전문가인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이 같은 이분법에 질문을 던진다. 최근 『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질서』를 펴낸 이해영 교수에게 이번 전쟁의 원인과 경과에 대한 해석을, 그리고 평화적 해법의 가능성을 질문했다.
 
 
Q.
전쟁의 이전: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도대체 세계는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나요?

 
A.
저는 전쟁 이전의 과정 전체를 파국적 균형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1991년 소련의 몰락과 함께 미국이라는 세계 유일 최강국 중심의 단극 체제가 수립된 지 3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사건입니다. 하나의 국가가, 한 나라가 지구상의 모든 질서의 관리자로 등극한 것은 세계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이죠.
그런데 아무리 미국이 슈퍼 파워를 갖고 있고 경제적으로 막강하다 하더라도 ‘단극’은 기본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나의 나라가, 하나의 가치가, 하나의 경제가, 하나의 군대가 전 세계를 하나의 질서로 묶을 수 있나요. 이에 대해 역사학자 폴 케네디는 이미 1980년대 “Imperial overstretch(제국적 과잉 팽창)”라고 정의했습니다. 이 개념에서 보면 단극은 이미 상당한 붕괴 위험을 안고 시작된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지난 30년간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던 군사력, 미국의 군사상의 우위라는 신화와 신자유주의 질서 통합력이 끊임없이 훼손되고 마모되었습니다.
그다음은 “Liberal Democracy(자유민주주의)”입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른바 미국적 가치와 그것을 부를 때 흔히 덧붙이는 “규칙 기반 질서”라는 설명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결국 미국 한 나라만을 위한 질서에 불과하다는, 단극 체제의 정통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마침내 임계점에 도달한 순간, 저는 이번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파국적 균형, 아주 가까스로 밸런스를 잡고 있던 세계 체제가 이제 기우뚱하기 시작한 것이죠.
 

 

Q.
전쟁의 개전: 언론을 통해 이번 전쟁은 2022년 2월 24일에 시작되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이번 책에서는 그보다 앞선 사건을 지목합니다. 어떤 일들이 일어났나요?

 
A.
우선 이 전쟁은 여러 가지 성격을 갖고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중 하나가 2014년 이른바 유로마이단입니다. 한쪽에서는 혁명이라 하고 한쪽에서는 쿠데타라고 하는 이 마이단 이후 돈바스 내전이 시작되었죠. 이것이 바로 핵심 사건입니다. 유로마이단은 여러 성격을 갖고 있지만 그 결과로 서우크라이나에 있는 민족주의 강경 우파, 민족주의 세력이 키예프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이후 여기에 저항하고 항의하는 돈바스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죠. 당시 우크라이나에서는 이 공격을 ‘반테러작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거기에 대한 돈바스 인민의 반격으로 돈바스 내전이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다시 8년을 경과했습니다. 그러다 2022년 2월 16일을 기해 사태가 한층 더 위험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2월 16일은 우크라이나 ‘통일의 날’입니다. 그날을 맞이해 우크라이나가 돈바스를 향해 대대적인 폭격을 가합니다. 이를 계기로 돈바스에 총동원령이 발동되고 주민들은 러시아로 소개됩니다. 그런 뒤에 2월 24일 러시아군이 본격적인 전면 개입을 시작했지요. 이것이 개전에 관한 상세한 전말입니다.

 
Q.
전쟁의 반전: 텔레비전과 신문, 그 밖의 포털 뉴스에서는 온통 러시아의 패배와 우크라이나의 영웅적 승리만 보도하는데, 정말로 그러한가요?

 
A.
글쎄요.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가 세계의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한창 서방에서 우크라이나가 이기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 게 2022년 9월 말 이후입니다. 그러다 연말과 2023년 초가 되자 다시 전쟁의 내러티브가 바뀌었지요.
2022년 9월에 어떤 일이 있었나요? 하르코프를 점령하고 있던 러시아군이 후퇴하고, 드네프르강 서안에 있던 러시아군도 후퇴했습니다. 서방 언론은 그 과정을 ‘우크라이나의 승리’로 보도하였고요. 그런데 당시에 전황을 자세히 보고 있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르코프에서 러시아군이 철수한 까닭은 군사적 패배가 아니라 기존에 투입한 병력에 비해 점령지가 너무 넓었기 때문입니다. 적은 병력으로 넓은 점령지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병력을 뒤로 뺀 것이죠. 그다음에 헤르손 지역(드네프르강 서쪽)의 러시아군은 보급로가 너무 길어져서 불안했습니다. 당시 우크라이나군은 그 보급로를 계속 공격했고요. 따라서 러시아는 전략적으로 병력을 강 오른쪽으로, 동쪽으로 이동해 재편했습니다.
하르코프 방면의 부대 이동은 전선 조정 내지 축소를 뜻하고, 마찬가지로 헤르손도 전선을 재정비하려는 의도였습니다. 패배가 아니라요. 그리고 재편한 병력은 이번 전쟁의 핵심이자 전략적 핵심 목표인 돈바스로 이동 배치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언론의 경우는 지금도 ‘우크라이나의 승리, 러시아의 패배’만 이야기합니다. 이 전쟁의 전체 양상, 그리고 방향에 대해 좀 더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분명하게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제가 보기에는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인하지 않고 아주 일방적인 이야기들만 보도하는 실정입니다.

 
Q.
전쟁의 확전: 우크라이나 대 러시아의 전쟁을 넘어 (우크라이나가 포함된) 서방 세계와 (러시아가 포함된) 나머지 세계의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우려됩니다. 이 전쟁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요?
 

A.
2023년 1월 바흐무트 전투의 전황이 러시아 쪽으로 확 기울면서 미국이 막후에서 평화 교섭을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각종 설이 들리는데요, 분명한 것은 미국이 평화안을 던졌다는 것입니다. 그 후 상황이 돌변했죠. 미국은 평화안을 던졌고, 러시아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 양보를 했습니다. 현재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러시아의 입장에서 보면 이미 러시아연방에 가입한―우크라이나 동남쪽 4개의 주에 대한 종주권을 인정하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러시아 입장에서는 영토의 점령이 다가 아닙니다. 이제 그들의 목표는 미래를 위해 유럽 방면에서의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협상 결렬 이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과 서방의 무기 지원이 대대적으로 강화되었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미국의 목표는 이것입니다. 협상은 정해진 코스이고, 여기에서 우크라이나에게 좀 더 유리한 국면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방안이 서방의 전차와 장거리미사일, 각종 군수물자 지원이고요, 핵심은 전차죠.
이와 같은 국면에서 우리는 서방 주류 언론이 이야기하는 내러티브, 스토리 말고 이 전쟁의 본질과 실체를 봐야 합니다.

 
Q.
전쟁의 환전: 전쟁이 1년 가까이 지속되며, 벌써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도 종전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고요. 과연 이 전쟁은 누구에게 이익인가요?

 
A.
최근에 유럽의 투자자문 회사가 보고서를 발표했더군요. 투자사 입장에서는 전쟁에서 누가 이기고 지는지가 핵심이잖아요. 지는 쪽에 투자했다가는 큰일이니까요. 그 리포트의 결론만 말하면 이렇습니다. “이번 전쟁의 승자는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러시아다.” 저 또한 다른 이변이 없는 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단지 손익을 계산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러시아의 국가 전략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지금 유럽에 관심이 없어요. 이젠 떠나겠다는 거죠. 떠나서 어디로 가느냐? 동쪽과 남쪽입니다. 남쪽으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뭄바이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회랑을 연결하려 합니다. 그리고 동쪽은 중국이죠. 새로운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될 동쪽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옮기려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미 쇠퇴한 유럽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지요.
다만 이렇게 국가 전략의 대전환을 구상하는 동안에 다시는 후방에서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통해서 자신들의 안보 이익이 위협하지 못하도록 방점을 찍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전쟁의 또 다른 승자는 분명히 미국, 미국의 방위산업입니다. 따라서 이 전쟁이 어떤 형태로 끝나더라도 우리 인류는 또 다른 전쟁의 위협 내지 가능성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은 아시아, 특히 중국이죠.
 
 
Q.
전쟁의 관전: 지금 세계에서는 우크라이나전쟁뿐 아니라 수많은 인종, 국가, 민족 갈등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이 전쟁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할까요?
 

A.
아마 여러 가지 출발점이 있을 것이라고 보는데요. 이번 전쟁의 관건은 돈바스에 있습니다. 돈바스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이번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의 출발선입니다. 이건 정치철학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현대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의 근본 지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주권불가침은 의문의 여지없이 근대국가가 딛고 선 기반 중 하나입니다. 동시에 또 다른 기반이 민족자결입니다. 둘 다 유엔헌장이 확실하게 보장하는 국제법입니다.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라고 하는 개별 국가의 주권을 침해했죠. 여기에 대해서는 누구도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내부를 뜯어보면 돈바스와 크림반도에 살고 있는 800~900만 명의 러시안 슬라브 주민의 민족자결권도 걸려 있습니다.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들의 민족자결권을 박탈한 상황 말입니다.
지금 서양의 주류 언론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돈바스 주민에 대한 민족자결권 박탈을 깡그리 무시하고 이제는 아예 보도도 안 합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는 엄청나게 많은 보도를 쏟아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말도 꺼내지 않아요.
저는 한국은 주권불가침과 민족자결권 중 어느 것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민족자결을 부인한다면 임시정부 이후의 국가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마찬가지로 주권을 부인할 수도 없습니다. 어느 것이든 부인해서도 안 되고 거부해서도 안 되는, 필수불가분하고 필수불가결한 우리들의 정체성입니다. 그런데 서방의 주류 언론만 쭉 수용한 결과 지금은 우리도 둘 중 하나(민족자결)를 완전히 빼버린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균형이 몹시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Q.
전쟁의 종전 혹은 안전: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니 전쟁의 최종 종착지는 결국 평화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집니다. 앞으로 세계가, 그리고 한국이 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요?
 

A.
다행히도 우리는 이 전쟁 국면에서 국가의 이익과 평화를 합치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둘이 괴리되지 않는 이상 둘 다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현재 상황은 북한은 러시아를 지지하고 우리는 미국을 따라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뭐라고 해야 할까요, 신냉전의 최전방에 남북이 다시 선 것만 같은 매우 불편한, 매우 좋지 않은 흐름이에요.
주권불가침과 민족자결 원칙을 둘 다 지키면서, 한국의 가장 중요한 핵심 이익이 평화라고 한다면 지금은 오히려 긴장이 고조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전쟁은 이처럼 매우 불행한 방식으로 우리 안으로 깊이 들어왔습니다.
근대 국가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 딜레마가 이번 전쟁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주권불가침과 민족자결이 충돌한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까지 그 충돌 지점으로 따라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핵심 가치이기 때문에요.
그다음 두 가치를 지키면서도 전략적 자율성을 발휘하여 평화와 국익을 모두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남북이 또 갈라져서 한쪽은 이쪽을 한쪽은 저쪽을 지지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만약 우크라이나전쟁이 끝나고 그 갈등이 아시아로 옮겨오면 그때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요. 지금 필요한 것은 중장기적 시각, 세계사 내지 현재의 국면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그래야만 앞으로 닥칠 리스크, 거대한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이 리스크의 저항력을 국가와 사회 공동체가 함께 만드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해영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독일 마르부르크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부터 한신대학교 국제관계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양 정치사상과 국제 정치경제 전공자로서 마키아벨리, 그람시, 슈미트, 하버마스 등의 사상을 강의하며, 국제 통상과 한미 관계도 연구 분야로 삼고 있다. 최근에는 오리엔탈리즘과 지정학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박사학위 논문으로 『그람시와 하버마스: 시민사회, 생활세계 그리고 정치』(독일어)를 썼다. 지은 책으로 『임정, 거절당한 정부』 『안익태 케이스』 『낯선 식민지, 한미 FTA』 『독일은 통일되지 않았다: 독일통합 10년의 정치경제학』 등이 있으며 『한미 FTA, 하나의 협정 엇갈린 ‘진실’』 『 1980년대 혁명의 시대』 등에 공저자 및 편저자로 참여했다. 그 밖에 주요 논문으로 「카를 슈미트의 정치사상: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중심으로」 「역사문제와 ‘동맹의 논리’: ‘아미티지-나이 보고서’를 중심으로」 등 다수가 있다.

한신대학교 부총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1세기한국정치학회 이사, 국제지역학회 부회장을 지냈고, 현재 (사)한국안보통상학회 회장, 시민단체인 ‘국가國歌만들기시민모임’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독일 마르부르크대학교 방문교수, 파리 콜레주 드 프랑스 방문학자로 연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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