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페르마타, 이탈리아>


이은진 독자님
다시 떠나기 위해서 일상을 열심히 살아 내야겠다.

좋아하는 이금이 작가의 책이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 『거기 내가 가면 안돼요?』, 『허구의 삶』까지. 이금이 소설에 한동안 폭 빠져 살았다 해도 좋을 만큼 최근에 읽은 책들이 모두 이금이 작가의 책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기도 하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여행 에세이라니! 코로나19로 발이 묶인 상황에서 여행에 대한 욕구를 충분히 채우고도 남았다. 언제쯤 다시 떠날 수 있을까? 사람마다 왠지 좋고, 그냥 좋은 말이 있을 것 같은데 내겐 여행, 공항, 비행기, 여권이 그것이다. 이 단어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두근 설렌다.

얼마 전 친한 친구랑 대화 중에 ‘직장 다니며 아이들 키우고, 집안 살림을 하는 내 인생에서 앞으로 어떤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 과연 남은 즐거움이 있기나 할까?’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우리가 좋아하는 걸 해 보자.’, ‘그래, 우리 아이들 조금만 더 키우면 떠나자.’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어디를 제일 먼저 가고 싶어? 나는 남미가 그렇게 가고 싶더라.’, ‘그래, 그러면 코로나19가 끝날 때까지 우리 스페인어 공부를 하자. 그리고 코로나19가 끝나면 남미에 가는 거야.’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스페인식 이름도 정해 놓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마침 이 책을 접했다. 읽는 내내 이미 친구와 남미를 여행한 느낌이기도 했고, 10년도 더 전에 갔던 이탈리아 곳곳을 다시 여행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맞다. 친구와 여행 스타일이 달라서 여행지에서 다투기도 했었다. 지금은 생각나지도 않는 주제로 격하게 논쟁을 하며 얼굴이 상기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은 이어졌고, 언제 언쟁을 했냐는 듯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경에 감탄하며 서로의 사진을 찍어 주고, 기념품을 골라 주기도 했었다. 현지의 여행사에서 의사소통이 잘 안 돼 예약 날짜가 이상해지는 바람에 버스 정류장에서 담요를 덮고 밤새 오돌오돌 떨었던 기억도 있고, 친절한 사람을 만나 길을 안내 받았을 때는 고마운 마음에 소박하게나마 미리 준비해 간 한국의 전통미가 담긴 선물을 드리기도 했었다.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과 일정을 함께하며, 밤에는 같이 술도 마시고 끝도 없이 대화를 하기도 했고, 길을 잘못 들어 몇 시간이고 걸었던 적도 있었는다. 그렇게 이 책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내가 갔던 여행지를 너무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해주었다.

다시 떠나기 위해서 일상을 열심히 살아 내야겠다. 여행의 본질이 담겨 있는 ‘페르마타’라는 단어처럼. 잠시 멈추어 평소엔 바쁘다고 미뤄 두었던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일상에서 만들어야겠다. 좋은 음악, 향기 좋은 커피, 좋은 책과의 만남, 추억을 회상하며 글쓰기. 다시 떠날 수 있을 때까지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일들과 함께 ‘지금 여기’에서 ‘생각 여행’을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저절로 흐른 세월이 아니라 성실하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도달한 나이(141쪽)’를 먹기 위해서 ‘햇빛에 바랜 역사와 달빛에 물든 나만의 신화(123쪽)’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