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인터뷰] 『달님이랑 꿈이랑』 양선 작가

"무의식이 꿈을 만든다면, 그 무의식을 좋은 재료들로 채워서
예쁜 꿈을 꾸는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달님이랑 꿈이랑』 양선 작가 인터뷰
 
 


제2회 사계절그림책상 수상을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일 년 가까이 작업한 끝에 그림책 출간을 했는데요, 책을 받아 보았을 때 어땠어요?

처음 책을 받고 나서 색감이나 제본, 종이 질감부터 살펴봤어요. 책을 보면 그게 먼저 눈에 들어와요. 빈티지하고 따뜻한 느낌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종이를 정하거나 인쇄할 때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출간된 책은 책장 한 칸을 비우고 표지가 보이게 세워 두었어요. 가끔씩 쳐다보며 행복해하고 있답니다.


『달님이랑 꿈이랑』 의 이야기는 어떻게 떠올리게 됐나요?

작년 초에 무서운 꿈을 며칠 동안 연달아 꾼 적이 있어요. 하루는 커다란 괴물한테 쫓기고, 하루는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루는 인간관계가 틀어지는 그런 꿈이요. 원래는 이불 덮고 포근하게 잠자는 시간을 제일 좋아했는데 그땐 밤이 오는 게 싫었어요. 눈을 감으면 악몽이 또 찾아올 것 같았거든요. 저도 모르는 불안이나 걱정이 있었나 봐요. 한편으로는 제가 재난 영화나 스릴러 영화를 자주 보니까 그게 꿈에서까지 나오는 거라고 아빠가 그러시더라고요. 영화를 좋아하는데 한번 보면 푹 빠져서 보거든요. 아빠와 대화를 하다가 문득 ‘평소에 좋은 것들을 보고 듣고 경험해서 나에게 좋은 자극을 주면 어느 순간 예쁜 꿈을 꾸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의식이 꿈을 만든다면, 그 무의식을 좋은 재료들로 채워서 예쁜 꿈을 꾸는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꿈을 기록하고 수집한다고 들었어요.

전 가끔 인상 깊었던 꿈의 한 장면을 드로잉으로 남기는데요. ‘꿈의 책’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드로잉을 모으고 있어요. 꿈에서 펼쳐지는 신비롭고 이상한 상황들이 재밌거든요. 잊어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장면들이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가끔 ‘꿈의 책’ 속에서 그림책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하고요.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영화, 그림들을 보면 초현실적인 느낌이 많아요. 꿈이라는 낱말도 좋아하고 꿈을 꾼 것 같은 느낌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꿈(악몽)으로 표현한 캐릭터가 눈에 띄었어요. 아이한테 무서운 존재일 텐데도 어느 순간에 아이와 또래 같은 친근한 느낌이 들었어요.

악몽이라고 해도 너무 무섭게 그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제가 조류랑 개구리를 특히 무서워하는데요, 가끔 책에서 사실적인 개구리 사진을 보면 그것마저 순간 소름이 돋아요. 저와 같은 아이도 어딘가 있겠죠? 그런 아이들이 책 넘기기 무서워할 정도로 거부감 있는 캐릭터를 그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미묘하게 변화하는 악몽의 상태를 보여 주고 싶었어요. 처음엔 감정이 없는 괴물 같지만 뒤로 갈수록 아이처럼 감정을 느끼고, 관계 맺을 수 있는 친구 같은 이미지를 상상하며 그렸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두려움의 대상과 정서적 유대감을 쌓는 거예요. 이 책을 보실 때의 팁을 하나 드리면요. 책장을 넘길수록 경계를 풀고 감정을 드러내는 꿈(악몽)의 작은 변화들을 찾아보면 이야기를 더 재밌게 감상하실 수 있을 거예요.
 


꿈을 만나러 갈 때 달님이 든 보따리가 궁금했어요. 붓, 책, 사탕, 크레파스 등이 들어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데요. 

원래 더미에는 달님이 아이와 방에서 재료를 찾아 보따리에 챙기는 장면이 한 컷 더 있었어요. 이 컷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요. 편집자님과 의논하면서 너무 구체적이고 친절하게 보여 주는 느낌이 들어서 결국 삭제했어요. 아는 물건들이 담겨 있는 보따리보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수수께끼의 보따리가 더 매력적이니까요. 


고요한 분위기의 글 없는 그림책으로 연출하셨어요. 글을 넣지 않은 이유가 있다면?

맨 처음 이 작품을 구상할 때 이야기보다 ‘변화하는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글 없이 순차적으로 화면이 변화하고 채워지는 흐름을 먼저 구상하고, 앞뒤 맥락을 만들었어요. 내용 자체를 글로 설명하는 것보다 이미지의 변화로 느껴야 하는 책이라서 글이 들어가면 오히려 시선을 방해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편집 단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원고를 다 넣어 보기도 했는데 마지막에는 원래 의도대로 글 없는 그림책으로 돌아갔어요. 보는 사람에 따라 3분짜리 이야기가 되기도, 30분짜리 이야기가 되기도 하는 게 글 없는 그림책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을지 궁금해요. 


꿈이 사는 세상에 색깔이 입혀지고, 나무와 꽃이 자라서 가득 채워지는 장면이 아름다워요.

꿈이 사는 곳은 마음속 풍경 같아요. 마음이 불안으로 가득 차면 꿈자리도 뒤숭숭할 때가 있잖아요. 실제 아이가 달님과 함께 꿈을 만나서 하는 행동은 현실에서 아이가 해 볼 수 있는 경험에서 떠올린 거예요. 아이가 읽은 책이 집이 되고,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이 꽃밭이 되고, 아이가 들은 노래가 꿈의 세상에서 산들바람이 되는 것을 상상했어요. 평소에 좋은 것들을 보고 듣고 채워서 아이들이 예쁜 꿈을 많이 꿨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렸습니다.




전작 『반짝이』에는 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요. 이번에도 별은 중요한 순간마다 표현됩니다. 별을 좋아하시나요?

저도 몰랐는데 그림들을 보면 별 모양이 안 들어간 곳이 없더라고요.(웃음) 별도 좋아하지만 반짝거리는 모양 자체에 끌렸던 것 같아요. 마치 마법이 일어날 것처럼 예쁘잖아요. 전 그림을 그리고 주로 마지막에 반짝이 가루를 뿌리듯 별 모양을 그려 넣어요. 이번 그림책에서 별은 밤이라는 시간을 더 긍정적으로 느끼게 해 주는 역할로 그렸어요. 앞뒤 면지에 등장하는 별도 아이 마음속 변화를 보여 주고 싶어서 다르게 표현했어요.


악몽을 꾸는 어린이 독자들에게 한마디

악몽은 우리가 크면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꿈이에요. 저도 아직 악몽이 무서울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이렇게 해 보는 건 어떨까요?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좋아하는 걸 그려요. 색종이 접기도 하고요. 맛있는 음식도 먹고, 좋아하는 노래도 맘껏 듣고, 친구와 함께 신나게 놀아 보아요. 하루를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 보는 거예요. 그러
면 무서운 꿈은 어느새 예쁜 꿈으로 바뀔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