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료시카』 유은실 작가

 
“마트료시카의 이야기지만, 온 생애의 이야기입니다.
너무 어둡지만도 너무 밝지만도 않았으면 했어요. 우리 인생처럼요.”


『마트료시카』 유은실 작가 인터뷰
 


1. ‘마트료시카’를 소재로 이야기를 쓰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마트료시카를 처음 만난 곳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누군가가 ‘러시아 인형’이라고 가르쳐 주었죠. 처음 본 날 매료되었어요. 그리고 가끔 상상했어요. 아주 추운 나라 러시아로 여행을 가서, 그 인형을 사는 나를.
문학청년이 되어 내면에 침잠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더 자주 마트료시카가 떠올랐어요. 지난 시간이 각자의 얼굴을 가지고 겹겹이 쌓여 있는 것 같았죠. 입이 없는 가장 작은 인형이 마트료시카의 중심이듯, 저의 중심도 ‘까마득히 어린 나’고요. 내 안의 그 작은 존재가 동화로 저를 당긴 것 같아요. 이제라도 입이 되어 달라고.
데뷔 초반엔 장편동화로 썼어요. 출판사에서 거절당했어요. 오랫동안 묻어 두었죠. 2017년에 그림책 원고로 개작했습니다. 돌아보면 제가 가진 ‘마트료시카’의 서사는 그림책의 글이었어요. 그걸 장편동화라는 형식에 넣었으니 어긋난 거죠. 최근에도 여전히 어긋난 형식을 찾아 헤매긴 합니다. 마트료시카가 나오게 되니 좀 느긋해지네요. “20년쯤 지나면, 그것도 제 형식을 찾아 이 세상에 나올 수도 있지 않겠어?” 하면서.



2. 그림의 서사에 대한 작가님의 감상이 궁금합니다. 어떤 장면을 가장 좋아하셨는지요?

울림이 큰 그림이에요. 제가 쓴 문장보다 그림의 울림이 더 커진 채, 교정지가 제게 왔어요. 겁이 났어요.
“아, 이건 내가 시작한 건데……. 그림책 작가 김지현의 명작이 되어 나타나 버렸네! 그림을 해치는 글이 되면 어쩌지? 이 울림을 건드리지 않게 교정지 잘 봐야겠다. 조사 하나도.”
모든 장면이 좋았습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첫째와 일곱째 각각의 서사를 한 쪽씩 할애해 풀어낸 부분이었어요.



3. 그림에서 꼭 표현되었으면 하셨던 것은 무엇인가요?

마트료시카의 이야기지만, 온 생애의 이야기입니다. 너무 어둡지만도 너무 밝지만도 않았으면 했어요. 우리 인생처럼요. 잘 표현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입 없는 막내가 마트료시카의 중심인 것도 잘 표현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또한 잘 해내셨다고 생각합니다.
 

4. 마트료시카는 잃어버린 아이를 다시 품고 “가득 차네. 가득 차고 넘치네”라고 노래합니다. 작가님의 영혼을 결정적으로 채워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의 마지막 문장은 “사랑해야 한다.”입니다. 뜬금없으면서도 앞의 서사와 기막힌 연결이에요. 작가가 하나하나 눈을 맞추고 ‘후’ 불어서 마트료시카를 세상에 내보내잖아요? 저를 만드신 분이, 사랑으로 저에게 그런 생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와의 만남을 가면 독자들이 인생관을 물어요. 그럼 이렇게 대답해요. 나는 사랑받고 사랑하기 위해 존재한다. 결국, 사랑이 저를 채웁니다.


5. 독자의 연령을 구분하진 않습니다만, 어린이 독자가, 어른 독자가 각자의 시간에서 느꼈으면 하는 것이 있으실까요?

어린이 독자들은 충만하게 몰입했으면 좋겠어요. 특히 놀이와 예술에. 어른 독자들은 살아온 시간이 많아서 겹이 많지요. 아픈 겹도 많을 겁니다. 그 아픈 겹들이 현재의 시간과 함께 겹치는 순간이 많을 겁니다. 겹치는 순간이 발목을 잡고요. 그 순간들을 잘 살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밖의 어린 존재들을 책임질 수 있는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도 생기니까요. 쓰고 보니 저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네요.


6. 그림책과 동화 혹은 청소년소설 작업을 하실 때 특별히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청소년소설은 표지 외에 그림 작가와 함께 가는 부분이 없습니다. 유년동화에선 간혹 그림으로 충실히 풀어내어, 한두 단어 정도를 덜어 내는 일이 있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제가 서사를 장악합니다. 무너지지 않는 서사의 구조물을 혼자 쌓아야 한다는 무게를 집니다. 그림책 글 작업은 많이 다릅니다. 팀워크입니다. 아무리 공들여 쓴 문장이라도, 그것이 그림 서사로 잘 풀어졌으면 다 덜어 내야 합니다. 그걸 전제로 쓴다는 게 근본적으로 다르지요. 함께 서사를 쌓기에 어깨가 덜 무겁습니다.


7. 글을 쓰실 때 내 안의 아이를 만나기가 수월하신 편인가요? 아닐 때 나만의 방법이 있다면?

힘듭니다. 일고여덟 살 아이들을 주 독자로 상정한 동화를 쓸 땐, 그 즈음의 제 사진을 작업 책상 유리 밑에 깝니다. 걔한테 부탁합니다. 나 좀 도와달라고. 이런 식으로 어린 저를 불러냅니다. 동유럽을 여행한 선배와 가족을 통해 마트료시카 3개를 수집했습니다. 내 안의 아이를 불러내려고 그걸 만지작거리는 날도 있습니다. 한때는 어린이가 쓴 일기나 문집을 빌려 필사하기도 했습니다. 동화 창작에 몰입할 땐 어른과 너무 긴 대화를 하지 않기도 했어요. 아동청소년문학은 늘 어렵습니다. 한 번도 자신이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8. SNS에는 아직 뜻이 없으실까요?

대중 강연만으로도 세상에 많이 열려 있는 느낌이 듭니다. 아마도 홀로 닫혀 있는 시간이 많아야 하는 성향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몇 번 시도해 봤는데 못 하겠더라고요. SNS는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합니다. 제 한계를 아는 것이지요. SNS를 하는 인물을 그리기 위해 깡통에 가까운 계정을 만들어 놓고 흐름을 공부한 적은 있습니다. SNS에 대한 욕심은 없는데, 텃밭 욕심은 있습니다. 텃밭 분양이나 농부학교 수업은 언젠가는, 언젠가는, 하고 있습니다. 김종철 선생님이 말씀하신 소농으로 살아 보고 싶어요. 제 상황은 여러 가지로 여의치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