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오메 할머니 _ 할머니, 당신만을 비추는 별 :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할머니, 당신만을 비추는 별 :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박채란(동화작가)

저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오메 할머니』를 처음 읽었을 때, 눈물을 줄줄 흘리는 저를 보며 깜짝 놀랐죠. 할머니의 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저는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울고 말아요.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죽기 전에 한 바꾸 돌라고’ 은지네 집에 오신 오메 할머니. 은지는 할머니랑 같이 사는 게 좋아 방방 뛰지만, 은지네 개 봉지는 영 못마땅해요. 은지네 엄마도 그렇고요.
할머니는 비록 늙어서 몸이 예전 같지 않지만, 그냥 가만히 계시지는 않아요. 친구도 있고 돌봐야 할 사람이 있어요. 버릇없는 반지댁 딸에게 호통을 치고 빡스댁이 교통사고를 당하자 두 팔 걷어붙이고 돕지요. 은지랑 같이 일기를 쓰고 은지의 생일날에는 쌈짓돈을 털어 은지의 소원 물결파마를 해 주시기도 해요. 마음에 드는 목걸이를 발견하고는 큰맘 먹고 사서 예쁘게 목에 걸기도 하시죠. 늙은 개 봉지가 아파하는 것을 알아봐 주는 것도 오메 할머니지요.


 

 
돈을 벌어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아빠, 엄마지만 아픈 것을 어루만지고 마음에 난 상처를 보듬는 것은 늙고 거친 할머니의 손입니다. 젊은 시절 온 힘을 다해 살아오신 할머니, 이제는 삶을 정리하는 시간입니다. 더 훌륭해질 필요도, 더 대단해질 필요도 없는, 그래서 가장 가까운 곳의 가장 작은 존재들을 향해 남은 사랑을 모두 쏟아부어 줄 수 있는 절정의 시간이지요.
 
그래서일까요? 『오메 할머니』를 읽으면, 이제는 돌아가신, 사실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제 할머니들이 되살아납니다. 나의 할머니들도 오메 할머니 같았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저는 꼭 은지 같았겠지요?
작고 외롭고 보잘 것 없어진, 삶의 마지막. 그것은 모든 인간이 가닿는 어쩌면 존재의 근원인지도 몰라요. 하지만 무엇도 기대할 수 없는 바로 그 순간에 인간은 역설적으로 가장 큰 소망을 품게 됩니다. 그 소망은 다름 아닌 나보다 약한 존재들의 안녕과 행복이지요. 죽음의 문턱에서 오메 할머니가 봉지의 아픈 이빨을 걱정하는 것처럼요.
 


오메 할머니가 떠난 자리, 화자인 봉지는 할머니의 치마에 얼굴을 묻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방 앞에 늘어선 별모양의 밥을 한 알 한 알 씹어 먹으며 기운을 내지요. 할머니는 떠났지만, 사실 할머니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힘내서 잘 살라는 할머니의 당부는 언제까지나 우리를 지켜줍니다.
 
이제 저는 할머니가 보고 싶어지면 이 책을 읽습니다.
제 할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 있다면, 바로 우리 할머니일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근처 어디쯤에 오메 할머니의 별이 있을지도 몰라요. 아마도 그 옆엔 여러분의 할머니 별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오메 할머니는 은지와 봉지를, 여러분의 할머니 별은 여러분을 지킵니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는 나를,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지킵니다.
 
그렇게 수많은 영혼들이 지금도 우리에게 말합니다.
절대 지치지 않고, 결코 실망하지 않습니다.
“힘내. 괜찮아. 그저 행복하렴. 이 할미가 지켜 주마.”